간밤 비바람을 동반하며 무섭게 쏟아졌던 장마비는 송천의 한 줄기가 되어 굉음을 내며 여량으로 내달리고 있다. 칠흙의 산골 밤처럼 발목까지 휘감던 간밤의 먹구름은 노추산의 어깨까지 감겨 올라갔다. 자개골과 송천 합수점인 자개골 입구에 자리잡은 민박집 산수갑산. 송천에 걸쳐진 철로로 1량짜리 기차가 소리없이 지나간다. 구절리 종점에서 8시에 출발했을 기차다. “어젯밤 구절리 들어가는 기차에는 한 사람 타고 있던데요. 저러다가 곧 끊기겠어요.” 산골에는 점점 사람들이 줄어든다. 풍광은 좋되 자녀 교육 문제, 생계 문제로 사람 사는 집보다
남대천은 오대산 두로봉(1,421.9m)과 만월봉(1,280.9m), 응복산(1,359.6m)에서 발원한 물들이 모여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부연동과 법수치리, 어성전리를 거쳐 양양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백패킹이 가능한 남대천의 부연동에서 어성전리까지의 약 20킬로미터 구간은 오염원이 거의 없는 청정지역으로 물이 맑고 수량도 풍부한 편이다. 그리고 바두재(봉장)에서 법수치리에 이르는 약 4킬로미터 구간은 무인지경으로 계곡미가 빼어나다. 아무래도 장마철은 폭우가 무서운 법, 비를 피하기 위해 취재 일정을 앞당겼다. 강릉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들 듯이 어떤 장소에 대해서도 불현 우정을 느끼는 때가 있다. 무심코 찾아든 낯선 도시가 미처 예기하지 못했던 친화력을 가지고 가슴을 뜯어쥐어 마치 돌연히 폭발하는 연애감정 같은 뜻밖의 감상에 빠져드는 수가 있는 것이다. 통영(統營)은 그런 경험으로 기억에 박힌 도시다. 유치환·김춘수·박경리·윤이상 같은 빛나는 예술의 영혼들을 생산한 통영은 둘도 없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절묘하게 거듭 휘어지는 해안선과 매혹적인 작은 섬들, 호수처럼 평화스런 군청빛 바다와 그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는 고깃배 또는 여객선들…
모처럼의 열차여행을 작정한 순간부터 약간의 흥분기가 일었다. 열차는 늘 유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무쇠 발굽으로 지축을 울리고 불과 연기를 내뿜으며 벽력같은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철마(鐵馬)처럼 어린 영혼을 온전히 휘어잡는 존재가 다시 있었던가. 아스라한 지평선으로 뻗어나간 궤도 위를 불타는 유성처럼 질주하는 기관차는 그 자체로 우상이자 반신(半神)이었다. 깊은 밤 멀리서 울리는 기적소리의 세레나데는 또 얼마나 큰 동경을 자아냈던가. 그러기에 열차를 생각하면 유년에 스민 근원된 꿈과 욕망이 상기되는 것이다. 열차간은 출근 시
세상은 지금 꽝꽝한 얼음장에 뒤덮였다. 몸도 마음도 빈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춥고 시리다. 이제 축제의 노래는 멈춰졌다. 끝 모를 욕망과 은밀한 광기의 온갖 표정들이 벌이던 한판 가면무도회는 끝장났다. 나라 경제의 파탄 위기라는 이 아연한 사태를 우리는 난파한 어부가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지켜볼 뿐이다. 도대체 왜? 라는 물음 뒤에 치솟는 분노조차 허망스럽다. 사태를 초래한 자들의 광기 뒤에 패인 고통의 거대한 검은 구멍 속으로 모두가 숨가쁘게 빨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목마른 다음에 우물을 파는 식의 부조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