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사진 · 이규태(등산안전협회 회장)지난 7월 27일 친구와 운길산을 올랐다. 올해 6월호에 소개했던 ‘내 마음의 그 산길 - 운길산 쪽동백골’을 다시 올랐다. “그때는 여기 울타리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없어졌네?” “기억력이 아직 좋구먼.” 1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오른 적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간 것이다. 나의 제안으로 우리 둘은 준비해간 표시기를 등산로가 분명치 않은 곳 나무에 매달면서 올랐다. 얼마 전 그 코스로 오르던 여러 팀이 도중에 길을 못 찾아 되돌아 내려왔고 혹은 휴대폰을 분실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중년의
위기의 블랙야크 전국민의 몸과 마음 건강에 크게 기여하는 아웃도어 활동은 우리 사회, 경제 활동의 주요 원동력이다. 이에 따라 아웃도어 산업과 참여 활동 인구의 증가는 동반성장이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최근 그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아웃도어 참여 활동 인구의 상승세에도 업계성장은 침체기로 접어들었으며,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업계 간 경쟁에 따른 시장 구조조정의 시기’라는 의견을 제시한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월 1회 이상 등산을 즐기는 인구가 2,500만 명이다. 인구의 절반이 등산을 즐기는 현재, 등산 아웃도어
사건이 역사가 되려면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유전학에서 말하는 돌연변이 중에는 후대에 유전되는 것도 있고 유전되지 않는 것도 있다. 후대에 유전되지 않는 것은 한 번의 돌연변이로 끝난다. 허나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그 목적이나 정체성이 일관성을 유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면 그것은 역사가 된다.작은 물줄기가 합류하여 큰 강이 되듯 각 분야의 역사가 모여 한 나라 전체 역사가 되므로 각 분야 역사를 잘 정리함은 중요한 일이다. 등산사는 한국사의 한 분야이니 시대를 구분함에 있어 연계성이 있어
‘精進의 山’ 서울문리대산악회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지난 5월 29일 속초시에 위치한 국립산악박물관에서 의미 있는 기획전시회 개막식이 있었다. ‘정진精進의 산山’이란 주제로 3개월간 전시되는 이 특별전은 서울문리대산악회가 보관하고 있던 자료와 회원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자료를 한데 모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마련된 것이다. 1954년 창립한 서울문리대산악회서울문리대산악회는 1954년에 창립했다.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에 1933년 예과(2년 과정) 스키산악부와 1935년 본과(4년 과정)
선구적 등반가 황욱과 김정태의 글 사진 · 이규태 (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금강산이 기교로 아름답다면 오대산은 기교가 없이 아름답지요. 높은 산이라 하니 그저 기암괴석으로 된 바위산이나 사태가 남직한 험산으로 여기겠지만, 기실은 뭐랄까 어머니의 품처럼 인자한 산입니다. 그저 부드럽고 인자하고 착하고 다정해보이지요. … 대개 명산이나 고산은 말하자면 앙칼진 인상을 주는데 오대산은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면서도 부드러워요. … 산악에서 여러 날 천막을 치고 오대산부터 설악산까지 백여 리를 바로 갔지요.”1937년 신문
한국 알피니즘의 발상지, 금강산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알피니즘이란 빙, 설, 암이 있는 조건에서의 등산을 의미한다. 그 어원은 알프스지역 등산에서 연유되었으나 지금은 지역에 관계없이 고산등산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고산이란 대략 3,000m 이상 만년설이 있는 산을 일컫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비록 3,000m 이하의 산이라도 겨울철 빙, 설, 암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우리의 겨울산도 고산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한국 근대등산에 있어서 북한산의 인수봉(810m)과 도봉산의 만장봉(718m)은 암벽등반의 시발점이다
산악 학회(學會)의 출범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역사란 의미 있는 과거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등산사란 의미 있는 과거 등산에 관한 기록이며 그에 대한 인식이다. 과거의 인식은 미래의 예측도구가 된다. 지구 최고봉을 측량하고 신들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히말라야 8천미터 상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고 외치던 근대등산의 황금기. 등산이 추구하는 가치인 탐험과 도전정신은 최고의 빛을 발했다. 등산의 최고가치, 탐험과 도전정신의 퇴색1953년 에베레스트 인류 초등에 이어 1977년엔 우리나라 고상돈도 정상에 섰
학교산악부창립 90여년, 아직도 오르고 있는가?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1920년부터 1940년까지 대략 20년을 근대등산 여명기로 본다면 그 시기는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였다. 사회활동은 물론 교육의 기회조차 차별당하면서 모든 문화활동은 감시의 대상이었다. 일본인은 강산을 약탈하고 휘젓고 다니는데, 정작 이 땅의 주인은 우리 산악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다.근대 암벽등반의 출발점인 북한산 인수봉 초등에 관한 역사를 명확하게 결론내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1925년경, 인수봉
등산문화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근대등산이 있다면 근대등산문화도 있을 것이다.인간이 알프스, 히말라야를 오르지 못했던 시대, 그곳은 신들의 영역이었다. 허나 등산장비의 발달로 오르지 못할 산이 없게 되자, 산은 신들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탐험과 도전의 대상이 되었다. 거처할 장소를 잃은 신들은 이산저산을 떠돌고 있다. 인간이 오르지 못할 봉우리는 없고 아무리 어려운 루트라도 첨단 장비를 이용하면 오를 수 있다. 보다 높은 정상을 추구하던 등정주의시대를 지나, 보다 어려운 루트를 추구하는 등로주의 시대도 막을 내
‘국립공원’ 산악박물관의 뜬금없는 전시물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필자는 지난 호(사람과 산 2020년 6월호)에서 등산자 안전을 내세운 국립공원공단의 등산로 출입금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국립공원공단법 제1조 설립목적에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국립공원공단은 ‘자연생태계, 자연·문화경관 및 지형·지질 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 하는 것이 공단 본연의 임무이지 등산자 안전을 우선시 하는 것이 공단의 주된 임무가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국립공원공단에서 왜 등반장비를 전시하는가?필자는 이번 호에서는 공
알프스 등반대가 체르마트와 자스페를 중심으로 한 팬닝(Pennine) 알프스에서 여러 봉우리들을 등반하고 난 다음의 목적지는 몽블랑 산군이었다. 등반대가 한동안 묵었던 자스페의 아담한 민박집을 떠나 샤모니로 향한 날은 7월 3일이었다. 샤모니에 접근하는 길은 남쪽과 북쪽 두 길뿐이다. 체르마트에서 접근하기 위해선 스위스의 마르티니(Martigny)란 소도시를 경유해야 한다. 즉 우린 북쪽에서 샤모니로 향했는데,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깊은 협곡을 끼고 도는 천길 낭떠러지 위의 아스팔트 도로를 한시간 이상 달려야 했다. 이윽고 꼴 데
알프스는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느 곳에서 끝나는가. 이 질문이 이번 장정을 기획하게 된 동기였다. 아름다운 풍광과 풍요로움의 상징으로, 특별히 산악인에게는 알피니즘의 고향으로, 그래서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으로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알프스를 정작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껏 우리가 알고있는 알프스란 곳은, 베르너 산군의 융푸라우나 샤모니의 몽블랑, 그리고 체르마트의 마터호른과 그 3개 산군에 솟아 있는 3대 북벽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70년대이래 지금까지 알프스로 진출했던 많은 한국산악인들이 이 3대 북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