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역사가 되려면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유전학에서 말하는 돌연변이 중에는 후대에 유전되는 것도 있고 유전되지 않는 것도 있다. 후대에 유전되지 않는 것은 한 번의 돌연변이로 끝난다. 허나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그 목적이나 정체성이 일관성을 유지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면 그것은 역사가 된다.

작은 물줄기가 합류하여 큰 강이 되듯 각 분야의 역사가 모여 한 나라 전체 역사가 되므로 각 분야 역사를 잘 정리함은 중요한 일이다. 등산사는 한국사의 한 분야이니 시대를 구분함에 있어 연계성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는 사관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등산사를 잘 정리해야 할 책무는 산악인 스스로에게 있다. 역사란 한 두 사람이 기술하여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주장과 역사관이 제시되고 검증되면서 객관적 사실로 다듬어진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한 너무 많은 사람들로 정상 부근에서 정체를 빚고 있는 모습. 2019년 5월 22일  네팔산악인 '니스말 님스 푸르자'(1983년 생)가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푸르자는 2019년 4월 23일 부터 10월 18일 까지 179일(약 6개월)에 히말라야 8천 미터 14고봉을 모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등반은 상업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등반으로서 사전에 다른 사람들이 루트개설을 미리 해놓은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봉우리를 옮겨가며 등반을 했다. 그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3개봉을 불과 48시간에 올랐다. 그의 등반다큐 영상은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한 너무 많은 사람들로 정상 부근에서 정체를 빚고 있는 모습. 2019년 5월 22일 네팔산악인 '니스말 님스 푸르자'(1983년 생)가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하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푸르자는 2019년 4월 23일 부터 10월 18일 까지 179일(약 6개월)에 히말라야 8천 미터 14고봉을 모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등반은 상업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등반으로서 사전에 다른 사람들이 루트개설을 미리 해놓은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봉우리를 옮겨가며 등반을 했다. 그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3개봉을 불과 48시간에 올랐다. 그의 등반다큐 영상은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근대등산과 현대등산을 구분하는 기준

현대란 근대의 연장선상 즉 근대의 끝자락이므로 근대와 현대를 억지로 구분할 필요는 없겠으나 ‘지금 이 시대’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가? 아니면 큰 변화 없는 평범한 시기인가? 하는 판단을 함에 있어서 견해차가 발생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 있다면 그 변화의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서 근대와 현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변화의 소용돌이란 천둥번개처럼 요란하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을 감지하는 것은 국가나 사회 각 분야의 지성이요 성숙도다.

역사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집단지성에 달려있다. 다른 사람들이 변화시켜놓은 과정을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의 물결을 선도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할수록 좋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때그때의 기록에 충실하고 현재의 기록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대등산과 현대등산의 구분점은 어디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현대등산이라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설명되는가? 근대등산과 현대등산을 구분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근대등산과 함께 떠오르는 개념은 알피니즘이다. 우리나라에서 알피니즘을 가장 끈질기게 추구했던 집단은 대학산악부다. 그런데 대학산악부에서 알피니즘이 점차 퇴색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사의 측면에서 보면 등산사는 미시적 분야이겠지만 몽블랑 등정이나 에베레스트 등정은 세계사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07m)이 초등된 1786년 무렵을 근대등산의 시작으로 본다. 등반 형태의 측면에서 본다면 근대등산이란 고산등반을 의미하는 ‘알피니즘’ 이라는 용어로 대변된다.

알피니즘이란 빙, 설, 암이 있는 조건에서의 등산을 의미한다. 그 어원은 알프스지역 등산에서 연유되었으나 지금은 지역에 관계없이 고산등산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고산이란 대략 3,000m 이상 만년설이 있는 산을 일컫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비록 3,000m 이하의 산이라도 겨울철 빙, 설, 암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우리의 겨울산도 고산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탐험정신

한국 근대등산은 북한산 인수봉(810m)과 도봉산 만장봉(718m)이 그 출발 무대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 이 무대에 등반루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암벽등반은 금강산(1,638m)으로 확장되었고 일부 묘향산(1,909m)으로도 연장되었다. 겨울철 혹독한 추위의 백두산(2,744m)과 함경남도의 북수백산(2,522m 한반도 제3위봉), 함경북도의 관모봉(2,541m 한반도 제2위봉)은 일본강점기 일본 본토 산악인들에게도 히말라야 등반 훈련대상지로 각광을 받았다. 이 시기가 1786년 몽블랑 초등 후 대략 140년이다. 금강산은 암벽등반의 요람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갈 수 없게 되자 설악산이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등산사를 논함에 있어 세계등산사와 한국등산사를 함께 논해야 함은 당연하다. 근대등산이 유럽 알프스에서 출발하여 히말라야를 비롯한 각 지역의 고산으로 확산되었지만, 고산등산의 풍조가 각 나라로 전파된 시기는 나라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몽블랑 등정으로 촉발된 근대등산 내지는 알피니즘은 히말라야 고산등반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그러한 행위의 저변에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탐험정신’이 깔려있었다. 이것을 ‘도전정신’ 이라 표현하기도 하여 근대등산이 추구하는 가치로 삼았다.

미지의 영역에는 미지의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신들이 살고 있을 것이라든지,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용기가 필요했고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미지의 세계를 밝혀낼 수 있다면 생명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용기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한 행위를 감행한 사람은 영웅시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일생일대의 성취감을 느꼈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었다. 나는 이런 때가 낭만적 알피니즘의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체험행위가 되어가고 있는 고산등반

속초시 설악산 자락에 국립산악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아이거북벽등반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다. 또 3,000m와 5,000m 고산과 유사한 환경의 저온, 저산소 체험관도 있다. 산악박물관에 이러한 체험관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앞으로는 에베레스트등반도 가상체험으로 등반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현대등반의 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올해로 몽블랑 등정 236년이 되었고 에베레스트가 등정된 지도 69년이 흘렀다. 우리나라에 근대등산이 유입된 지 100년이 되어간다. 이제 세계의 어느 고산이건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고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산악인이 목표로 했던 미지의 고산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 50년쯤 지나면서, 생명을 담보로 고산에 오른 행위에 박수갈채도 사라졌다. 혹독한 겨울이나 무산소, 단독등반, 8천미터 14봉 완등, 새로운 루트초등반도 시도할 만큼 많이 해서 그러한 등반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다만 행위자 자신의 성취감, 감동추구, 모험심을 즐기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기초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다. 상업적, 직업적 목적으로 고산등반을 추구하는 경향도 많아졌다. 고산등반은 일종의 체험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 알피니즘이 추구했던 목적이나 가치는 분명 변하고 있다. 근대등산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현대등산,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근대등산의 끝자락인 현대등산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근대등산이 추구했던 미지의 영역 탐구나, 인간의 접근을 거부했던 고산거벽 등반에 대한 갈채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생명을 담보로 올라야 할 대상이 사라진 지금, 등산을 통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등산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가. 그 물음에 누가 답을 해야 하는가.

산악인이 올라야 할 고산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현대등산은 어떤 형태로 전개될까? 산악인이 등산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는 어떻게 변할까? 등산을 상업적, 직업적으로 안내하는 사람과 이들을 따라 체험등산을 하는 형태로 변하는 건 아닐까? 우리 산악인들은 그러한 변화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50년 넘게 내가 추구했던 알피니즘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하고 자문해본다. 정확히 53년 전 처음 암벽등반을 한 후의 뿌듯함. 지리산, 설악산의 장기등반. 전국의 여러 암벽과 능선들. 산 친구들과의 우정. 일본북알프스 동계등반. 선배, 후배들의 등반사고와 슬픔. 히말라야 고산등반의 추억… 직장과 직업은 바뀌어도 변치 않았던 산을 그리워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는 말. 평생 산을 좋아하게 한 ‘그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이 낭만적 알피니즘이라면 ‘그것’이 행여 변할까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한다.

내가 죽을 때까지만 이라도 지금까지처럼 낭만적 알피니즘의 가치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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