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찻오름이라고도 부른다. 제1횡단도로의 성널(성판악)휴게소 건너편 표고재배장으로 통하는 숲길로 접어들어 얼마 가지 않아 왼편 숲 너머로 오름 두엇의 능선이 언뜻언뜻 보여 온다. 그 제일 동쪽 것이 산정호로 유명한 검은오름이다. 중간에 삼나무 육종장과 표고재배장을 거치고 이 오름 바로 밑에 있는 또 하나의 표고버섯재배장까지는 횡단도로에서부터 4킬로미터 가량이다. 동쪽으로는 남조로의 남· 북군 경계에 있는 붉은오름 남록을 끼고 승용차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새로 뚫렸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검은오름은 조천 남원 표선 3개 읍면의
어느날 갑자기 스님이 되겠다며 표표히 집을 나선 이웃이 있었다. 내 공부방이 있는 시골마을 양짓말에서는 얼마 전 김씨 성을 가진 농부가 벼를 베다 급사하는 변고가 생겼다. 과묵하지만 수줍음 많았던 김씨가 돌연 이승을 졸업한 뒤 그의 집안에서는 좀 야릇한 일이 벌어졌다. 김씨의 아우 되는 사십대 중반의 사내가 느닷없이 중이 되겠다고 가출해버린 것. 그 의외의 소동은 양짓말 사람들에게 우스꽝스런 기억으로 남을 한바탕 희극으로 끝났다. 그러나 누구나 얼마간의 씁쓸한 감회를 맛보아야 했다. 일찌감치 상처한 김씨가 아우에게 상속시킨 유산은
과묵하지만 수줍음을 잘 타는 사람이었던 이웃집 김씨의 주검이 꽃상여에 실려 나가던 날 낙산사를 향했다. 상여는 안쓰러이 흔들리며 비안개 자욱한 산모롱이로 환영처럼 사라졌다. 김씨의 가벼운 육신을 흙의 분자로 귀환시키기 위한 매장의 행사가 진행되었을 시간에 나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대며 달려야 했다. 비정하고도 현란한 속도를 내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차량들의 경주에 휩쓸려. 떨어지는 한 점의 낙엽처럼 김씨의 생은 허무하게 조락했다. 나의 공부방이 있는 후미진 시골 양짓말 이웃들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인물에 속했던 김씨의 죽음은 벼락
지금 계룡산 자락에 은거한 채 고요한 평온에 충만한 나날들을 누리고 있는 소설가 송기원은 강원도 묵호를 사람살이의 온정과 감흥 가득 찬 가장 아름다운 고장으로 꼽는다. 시인 신경림은 전주를, 고은은 광주를 마음밭에 새겨두었고. 팔도의 오일장을 누비며 떠도는 장돌뱅이에 대해 남모를 선망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역마살 낀 팔자의 후원을 받은 나머지 오랜 세월 꽤나 많은 고장들을 싸돌아다니며 살아왔다. 그러는 사이 몇몇 고장들에 대한 감명과 추억이 가슴에 스미게 되었다. 그곳을 떠올리면 늘상 향수와도 같은 그리운 감회가 스멀거리는 그런 고장
그 무장간첩의 청춘은 몸뚱이에 최후까지 붙어 있었던 장식물들의 정체와 무게만큼이나 삼엄하고 무거웠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배역이었던 것일까?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면 더욱 좋았을, 그러나 불가해한 세상사의 천박한 게임을 더욱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맡아야 할 그런 종류의 배역, 또는 운명…. 그 미숙한 주검이 마지막 일순까지 가동시켰을 의식의 카메라에 박힌 세상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청평 감로암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열반한 충담스님의 최후 사유와 어떻게 다른 것이었을까. 맥락이 닿지 않는 발상일지
울산광역시를 에두른 산줄기에서 발원한 물은 울산 시민의 식수인 ‘사연댐’으로 모인다. 이 사연댐 상류 반구대에서 대곡천 물길을 거슬러올라 백련정에 다다르는 6∼7킬로미터쯤의 구간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돌아다니듯 시간 여행을 하며 백패킹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대곡(大谷)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모가 큰 이 계곡에는 국보로 지정된 선사인들의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와 공룡이 어슬렁거렸던 흔적, 그리고 원시인들이 바윗돌에 그림을 그리고 그 곁에 삼국시대 신라 화랑들이 바윗 돌을 파내어 명문을 새긴 ‘천전리 암각화’가 있기
간밤 비바람을 동반하며 무섭게 쏟아졌던 장마비는 송천의 한 줄기가 되어 굉음을 내며 여량으로 내달리고 있다. 칠흙의 산골 밤처럼 발목까지 휘감던 간밤의 먹구름은 노추산의 어깨까지 감겨 올라갔다. 자개골과 송천 합수점인 자개골 입구에 자리잡은 민박집 산수갑산. 송천에 걸쳐진 철로로 1량짜리 기차가 소리없이 지나간다. 구절리 종점에서 8시에 출발했을 기차다. “어젯밤 구절리 들어가는 기차에는 한 사람 타고 있던데요. 저러다가 곧 끊기겠어요.” 산골에는 점점 사람들이 줄어든다. 풍광은 좋되 자녀 교육 문제, 생계 문제로 사람 사는 집보다
남대천은 오대산 두로봉(1,421.9m)과 만월봉(1,280.9m), 응복산(1,359.6m)에서 발원한 물들이 모여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부연동과 법수치리, 어성전리를 거쳐 양양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백패킹이 가능한 남대천의 부연동에서 어성전리까지의 약 20킬로미터 구간은 오염원이 거의 없는 청정지역으로 물이 맑고 수량도 풍부한 편이다. 그리고 바두재(봉장)에서 법수치리에 이르는 약 4킬로미터 구간은 무인지경으로 계곡미가 빼어나다. 아무래도 장마철은 폭우가 무서운 법, 비를 피하기 위해 취재 일정을 앞당겼다. 강릉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들 듯이 어떤 장소에 대해서도 불현 우정을 느끼는 때가 있다. 무심코 찾아든 낯선 도시가 미처 예기하지 못했던 친화력을 가지고 가슴을 뜯어쥐어 마치 돌연히 폭발하는 연애감정 같은 뜻밖의 감상에 빠져드는 수가 있는 것이다. 통영(統營)은 그런 경험으로 기억에 박힌 도시다. 유치환·김춘수·박경리·윤이상 같은 빛나는 예술의 영혼들을 생산한 통영은 둘도 없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절묘하게 거듭 휘어지는 해안선과 매혹적인 작은 섬들, 호수처럼 평화스런 군청빛 바다와 그 위를 조용히 미끄러지는 고깃배 또는 여객선들…
모처럼의 열차여행을 작정한 순간부터 약간의 흥분기가 일었다. 열차는 늘 유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무쇠 발굽으로 지축을 울리고 불과 연기를 내뿜으며 벽력같은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철마(鐵馬)처럼 어린 영혼을 온전히 휘어잡는 존재가 다시 있었던가. 아스라한 지평선으로 뻗어나간 궤도 위를 불타는 유성처럼 질주하는 기관차는 그 자체로 우상이자 반신(半神)이었다. 깊은 밤 멀리서 울리는 기적소리의 세레나데는 또 얼마나 큰 동경을 자아냈던가. 그러기에 열차를 생각하면 유년에 스민 근원된 꿈과 욕망이 상기되는 것이다. 열차간은 출근 시
세상은 지금 꽝꽝한 얼음장에 뒤덮였다. 몸도 마음도 빈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춥고 시리다. 이제 축제의 노래는 멈춰졌다. 끝 모를 욕망과 은밀한 광기의 온갖 표정들이 벌이던 한판 가면무도회는 끝장났다. 나라 경제의 파탄 위기라는 이 아연한 사태를 우리는 난파한 어부가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지켜볼 뿐이다. 도대체 왜? 라는 물음 뒤에 치솟는 분노조차 허망스럽다. 사태를 초래한 자들의 광기 뒤에 패인 고통의 거대한 검은 구멍 속으로 모두가 숨가쁘게 빨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목마른 다음에 우물을 파는 식의 부조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