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소요산(逍遙山) 길을 오르며 미당(未堂) 서정주의 시 〈자화상〉 떠올렸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첫 구절부터 공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시에는 ‘나를 키운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라는 곱씹을만한 대목이 나온다. 이 시구는 평소에 궁금해하던 의문점에 빛을 던져 주었다. 나는 평소에 유랑(流浪)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장돌뱅이, 선질꾼, 남사당패, 역마살이 낀 사람들, 산을 맴도는 알피니스트…등등. 그들에게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미당의 시구로 풀어내면 그것은 ‘바람’이었다. 유랑
가는 날이 ‘하필이면’ 장날이 아니라 ‘마침’ 장날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옥천(沃川) 읍내를 가로지르는 천변 소로를 중심으로 오일장이 서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 소읍의 오일장만큼 흥겨운 행사가 다시 있으랴. 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떨어대는 중이었지만 시장통은 무척 왁자하고 부산스러웠으며 볼거리도 많았다. 개천은 꽝꽝 얼어붙어 멍든 듯 시퍼랬다. 연탄 화덕을 하나씩 다리에 끼고 앉아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인들의 푸르딩딩한 얼굴도 안쓰러워 보였다. 어물전에 진열된 생선들은 잔뜩 오그라들어 딱딱한 박제처
애당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여량의 아우라지에서 출발한 뗏꾼들의 아라리가 녹아든 저 물길도. 댐 건설로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아주 오래 전 산간을 흘러내린 사행천이 일궈놓은 뼝대의 수려함이나 함부로 건너다닐 수 없는 강 이편과 저편에서 마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얘기들도. 그럼에도 정선땅 이 동강 언저리에 다가서면 까닭 모를 파문이 가슴속에 일어났다. ‘형언할 수 없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감탄사와 함께 눈앞에 천연히 버티어선 자연의 모습에 늘 압도당하고 말기 때문이었다. 동강 최상류, 조양강 끝자락쯤의 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 뱃전에 부서지리다 옛 시인 김동명은 강릉이 고향이다. 강릉은 호수를 3개씩이나 갖고 있는 호반의 도시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호수를 무대로 시를 즐겨 읊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고향인 강릉에서 고성까지 7번 국도를 타고 가노라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호수들을 만난다. 이 호수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석호(潟湖, Lagoon)로, 세계적으로 그 예가 많지 않아서 자연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매우 가치가 높다. 현재 동해안에는 풍호, 경포호, 향호, 매호,
12월 첫 오일장이 열리는 통리장터에 칼바람이 불어닥친다. 태백에서 가장 크다는 통리장. 오전 아홉시가 다 되도록 물건을 진열하는 사람이라곤 몇몇 뵈지 않는다. 통리장터식당이 내건 ‘꿩손만두 개시’ 안내문만 텅빈 광장을 지켜보고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데다 바람까지 불고 있으니 겨울장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저어기 더뎌질 터. 장구경이나 하고 고비덕재 옛길 산행에 나서려던 일행은 한산한 저잣거리를 뒤로하고 통골로 향한다. 장터식당 앞에서 태백선 철길을 건너 통리초등학교를 지나 우회전하면 이내 옛길 산행들머리인 통보탄광(정
푸른 안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강원도의 아침. 산도, 들도, 마을도 짙은 안개에 가려 환상처럼 몽롱해 보였다. 도로 위에도 안개가 가득 차올라 시계(視界)가 흐렸다. 그러나, 이 또한 좋은 날. 안개의 터널을 달리는 사이 짧았던 간밤의 수면이 가져다준 피로감이 씻기어 나갔고, 은밀한 회합을 끝낸 유령들처럼 서서히 안개가 걷혔다. 그러면서 숲과 산의 말끔한 풍경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가 마지막 제 외투 자락을 거두어들이는 산골짜기 너머로 펼쳐진 푸른 하늘 한 구석으로부터 은빛 햇살이 쏟아져 내렸고. 이렇게 눈부신 늦가을의 아침
의풍리의 아침은 더디게 깨어났다. 밤새 들녘에 내려앉은 안개가 오전 9시께의 햇살을 받고서야 부산히 대기중으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백두대간과 소백산 형제봉 자락이 드리워 놓은 너른 들판 위로 안개와 햇살이 뒤섞이는 광경은 눈부시면서도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속에 골짜기 건너 한 농가에서 도리깨질하는 부부의 모습은 한층 더 과거로 옮아간 듯 착각을 일으켰다. 곧 도경계를 넘을 것이었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와 경북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를 이어줄 경계. 일행은 마락리 지나 고치령을 넘을 계획이다. 대처 도경계 하면 험준한
비가 내린다. 실처럼 가는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그래 산길에는 빗물 번진 자국이 번들거리며 내려앉고, 한낮이지만 숲가에는 깊은 정적과 그늘이 내린다. 이렇게 내리는 것들과 더불어 내린천(內麟川)에 이르렀다. 내린천. 홍천군 내면에서 시작되어 인제군 기린면 쪽으로 빠져나간다고 해서, 내면의 ‘내’자와 기린의 ‘린’자를 따서 지어 붙인 이름이다. 음미할만한 이름이다. 강은 신이 내린 지고한 선물이다. 또 강이 내리는 가호와 성원 속에서 사람살이의 안정과 행복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모든 강은 내린강이다. 내린천에 가느다란 가을비
어스름이 깔리는 전후재를 차를 타고 넘는다. 삼년전 이 고개마루에서 보았던, 오대산 위로 막 두둥실 떠오르던 불그스레한 보름달을 생각했다. 부연동에서 험로를 곡예하듯 거슬러올라 안도의 숨을 내쉴 때 홀연히 불쑥 떠올랐던 보름달은 그후 전후재와 함께 늘 기억속에 따라다녔다. 오늘 목적지는 부연동이다. 이 전후재를 넘고도 ‘머구재’라는 자그마한 고개 하나를 더 넘어야 도착하는 곳. 일행은 내일 아침 그곳에서 이 고갯길을 반대로 걸어넘을 예정이다. 늪 속으로 빠져들기라도 하듯 차는 골짜기로 하염없이 내려간다. 10월 초 일찌감치 물든 단
허리 잘린 국토의 최전선, 철원군 김화읍 지암리. 철조망 휘어 감긴 삼엄한 철책 저 너머로 북녘 산수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미더운 오형제처럼 오순도순 이마를 맞댄 오성산(1062m, 일명 저격능선). 그 준수한 산의 형세를 돋을새김처럼 조명하는 코발트색 가을 하늘. 아름답다. 갈 수 없는 땅이라서 한결 애틋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산 풍경이다. 철조망이 아니라면, 멧부리 꼭대기마다 올라앉은 초소가 없었더라면 이 얼마나 평화로운 경승인가. 그러나, 남과 북이 화력을 배열하고 살벌하게 대치한, 분단
대관령에 거의 다 온 듯한데 짙은 안개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간다. 미등을 켜고 시속 20∼30킬로미터로 달린다. 속도를 줄이는데도 안개 속으로 더 깊숙이 빨려만 든다. 백두대간 언저리여서인가. 휘장처럼 드리워진 안개가 잠깐 펄럭인다 싶더니 봉분 같은 파란 구릉이 올록볼록 모습을 드러낸다. 횡계에 들어선 거다. 문득 여기가 제주 오름 한 자락이던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착각에 잠시 빠진다. 영동고속도로의 최동쪽 마지막 고개 대관령. 무상기간(無霜期間)이 짧아 9월이면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는 대관령. 순백의 안개에 파
여름 휴가를 얻어 모처럼 자유의 몸이 된 아우와 함께 길을 나섰다. 대학 졸업 뒤 그가 취직한 첫 직장은 ‘나그네’라는 잡지사였다. 나그네라는 단어는 언제나 우리의 정서적 반향(反響)을 일으켜 삶이 지닌 꿈과 허무의 느낌을 문득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바람이 불거나 들꽃 잠잠히 피어난, 혹은 눈이 내리고 푸른 안개 주름주름 번지는 아득한 낯선 길을 정처 없이 걸어드는 나그네. 생의 거창하고 지루한 여정 또한 나그네길이긴 마찬가지여서 자유와 우수와 고독이 늘 우리의 길벗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도시의 나그네로 살아온 아
36세(1942년)에 뇌막염으로 사망한 이효석처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봉평은 이효석과 그의 단편소설'메밀꽃 필 무렵'의 자장(磁場)안에서 숨쉬는 마을이다. 그곳에는 수익성이 떨어져 사라졌던 메밀들이 9월초, 눈이 내린 듯 흐뭏하게 피어난다. 꽃이 만개하면 열리는 '효석문화제'의 대규모 행사. 국내 유일한 문화마을인 '효석문화마을', 또한 '메밀꽃 필 무렵'이란 간판을 가진 식당과 여관들... 제아무리 문학과 담을 쌓은 사람이라도 '이효석'이라는 작가와 그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효석, 그
산북면 대하리에 이른 일행은 이제 33번 지방도를 버리고 김룡사 표지판을 좇아간다. 햇살을 받은 벼포기들이 더욱 싱싱해 보인다. "올해 농사가 아주 잘 됐네요" 문경시청 김규천씨의 애기 속에 추수의 넉넉함이 예견된다. 이번 엣길은 운달산 북쪽 가좌리와 문경읍의 경게에 있는 말구리재다. "소금 실은 말이 넘어져 굴렀다"는 소박한 이름의 내력, 또 가좌리에 이르는 길에 대가람 김룡사와 대승사가 인접해있다는 것 외에 기실 말구재가 지닌 이렇다할 만한 내력이나 자취는 전무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취재 대상으로 정한 것은 순전히 하늘재와의 연
비가 오건, 바람이 사납건 뭐 어떠랴 하며 길을 나섰다. 강 취재를 차일피일 미루며 뭉그적거리던 중이었다. 사람을 아예 궈삶겠다는 투로 야박하게 쏟아져 내리는 뙤약볕이 징그러워 만사가 귀찮았다. 복날이 가까워졌다고, 구탕에 소주가 참하지 않겠느냐고,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가 전화통 속에서 솔깃하게 속닥거렸지만, 애견가 대열에 들어간 게 언젠데 그러는고, 하며 뿌리치고 지내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비바람 거친 날 집을 나서게 되었던 거다. 태풍 ‘카이악’이라는 게 북상하는 중이라고 했다. 거 이름이 어째 좀 불길하다, 하지만 아서라,
지난 6월 14일 성공적으로 끝난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50년만에 이룩한 민족적 쾌거였다. 그것은 분단과 전쟁, 불신과 비방으로 얼룩졌던 한반도에 찾아온 평화통일의 메시지였다. 회담은 즉각적으로 남한 사회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80년대 운동권에서 주장했던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이 공개적으로 일어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 시민들에게 화려하게(?) 데뷰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찬양'과 '이적표현물 제작' 등 현재 개정논의중인 독소 조항들은 폐지될 전망이다. 이번 회담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反共主義
고개가 오죽 높고 험했으면 별을 만질 수 있다고 했을까. 정선읍 용탄리와 평창군 미탄면 경계에 있는 성마령(약 960m). 성마령은 정선으로 드는 가장 큰 길, 또 제천 원주 서울 등지로 가기 위해 누구든 넘어야 했던 고개였다. 지형의 험난함을 가리켜 앞산고 뒷산을 이어 빨랫줄을 걸 정도였다는 정선땅. 이곳으로 부임하던 오홍묵 군수 부인이 성마령을 넘으며 읊었다는 아라리 한줄. "아질아질 성마령/야속하다 관음베류/지옥 같은 정선 읍내/십년간들 어이가리//지옥 같은 이 정선을/누구 따라 아 여기왔나." 비단 군수부인뿐이었으랴. 성마령
부~웅! 기합을 매뱉으며 배는 서서히 육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섬으로 가는 길은 늘 설렌다. 섬은, 자신을 ㅂ여주기 전에 먼저 바다를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라.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의지해 미지의 섬으로 가는 길. 더구나 그곳은 멋진 암능이 기다리고 있다. 배 후미에서 뿜어나는 허연 거품 뒤로 삼천포의 와룡산(798m)과 고성군의 산줄기들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배에서 바라보면, 육지의 산줄기들은 바다를 만나면서 일제히 잠수(潛水)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산은 돌고래 헤어치듯 수면을 뚫고 섬으로 솟아난다. 방금 물에서 튀어
진달래며 벚꽃 눈부셨던 사월처럼, 봄이 무르익어 가는 오월의 길 위에, 여전히 온갖 꽃들이 지천이었다. 분홍색 철쭉이, 붉은 영산홍이 길가의 산언덕 곳곳에 흐드러져 제 한살이의 절정스런 순간들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꽃 피어나는 아름다운 풍경에, 꽃 지는 안쓰러운 정경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의 한구석이 저려옴을 느끼게 되는 건 어찌된 일인가. 피고 지는 꽃들이 환기하는 생의 개화(開花)와 조락(凋落)의 이치 때문일까. 꽃나무들의 참다운 성숙에 대한 선망과, 생의 지루한 여행길에서 마침내 꽃다이 만개하고 싶다는 염원이
고속도로에서도 ‘길의 서정’이 들려올 수 있을까? 가령 김동리 「역마」의 산협(山峽) 길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근친의 사랑이나, 이효석의 「메일꽃 필 무렵」에서 들려오는 물레방앗간 이야기가 요즘의 포장된 도로에서도 솟아나올 수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가 근대(Morden)로 들어오면서 인간의 교통수단에도 혁명이 일어난다. 지금은 철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공산당 선언」에서는 ‘생산수단과 교통수단이 급속하게 개선됨으로써, 가장 미개한 민족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이 문명화’ 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교통수단의 발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