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용의 티롤 알프스

글•사진 임덕용 EU주재기자      Foto.APT Val di Fassa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투어 격전지를 걷는 것도 좋지만 겨울철에 스키를 타면서 도는 것도 제맛이다.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가. 유네스코 자연 유산 (2023년 12월 26일)에 등제된 돌로미티 자연과 역사상 전쟁의 참혹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오스트리아, 헝거리, 이탈리아의 치열했던 산악 전투를 반성할 수 있는 역사 공부도 된다. 3국의 산악 부원들과 스키 부대원들의 격전지였던 카이저예거 “피의 산”인 꼴 디라나 COL di Lana 를 돌아본다. 이 스키 투어의 최 정점은 돌로미티에서 단일 슬로프로 최장거리인 라가주오이 Lagazuoi 정상에서 아르멘타롤라 방향으로 스키로 하산하는 것이다. 

(2023년 12월 말부터 2024년 3월 말까지 스키장 운영)  

 

돌로미티 슈퍼 스키의 수 백 개 슬로프 중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스키 투어는 바로 셀라 론다(본지에서 기사화 했음) Sella Ronda green orange 두 가지 스키가 있다. 셀라 Sella Group의 중심지를 중앙으로 시계 방향으로 도는 법과 반대 방향으로 도는 방법을 표지판 슬로프를 보면서 도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다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스킹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두 가지 색상을 모두 다 해보아야 진정한 셀라 론다를 완주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스키 전문지 Skiresort.de 에서 전 세게 스키 투어 중 최고의 스키 투어상을 받았다.

 550km의 광활한 산에서 4개의 주요 계곡과 산을 오르고 내리며 스킹을 하는 것으로 가르데나 알타 바디아, 아랍바, 팟사의 라딘 Gardena, Alta Badia, Arabba FassaLadin 계곡을 달린다. 40km 거리이며 최소 27km는 스키다운 힐이다. “평화의 여행아라고 불리는 제 1차 세계 대전 여행은 1차 대전의 상징인 콜 디라나를 중심으로 치베타 Civetta, 몬테 펠모 Monte Pelmo, 코르티나 지역의 토파네 Tofane 를 지나간다. 

 

 백두산을 검색하니 황당하게도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화산이라고 나온다. 우리의 영봉, 대한민국 최고봉이 아니라 국제상에서는 이렇게 부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구나싶어 슬프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 있는 화산이라고 나온다. 화산의 분류 체계에 따르면 성층화산, 활화산, 초화산에 속한다. 봉우리는 총 16개이고 최고봉은 해발 2,744m인 병사봉(兵使峰)으로 북한에 속해 있으며, 북한에서는 이를 장군봉으로 부른다. 중국을 통해 관광이 가능한 남한 사람은 정상에 오를 수는 없고 천지 너머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는 칼데라 호수천지를 품었다.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수원은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풍수지리에서는 한반도'조종산()' 즉 모든 산맥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며, 특히 근대 이후에는 민족영산(靈山)”으로 자리매김하여 남북한 양쪽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상징물이 되었다. 분단 이후에도 행정구역이나 교육 등 공식적인 부문에서는 남북 모두 백두산을 자국의 산으로 간주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오기라도, 아니 대한민국 국민 중 산의 정신 병자들의 마음 속에서는 어떨까? 몇 년 전부터 우리 산악인들이 술 한잔 하면서 건배사도 여러 역사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최근 인기 있는 말은 백두산이었다. “100살까지 내 두 발로 산에 가자얼마나 멋지고 힘찬 자신 넘치는 건배사 인가. 말이라도 신명 나는 외침, 절규이다.

 “백두용이번 돌로미티 슈퍼 스키를 2주일간 참여한 4인의 한국 스키어들의 마지막 건배 사는 백두용으로 바뀌었다. 이번 스키에 참여하신 김태성 선생님은 8순을 넘기신 대 선배님이시다. 고 최창민 선배님은 우리나라 1세대 히말리언이셨다. 최선배님의 절친으로 인수봉, 선인봉 등 무수한 암벽 등반과 국내 산을 섭렵하신 선배님이시다. 키가 매우 크시고 롱 다리를 기지고 계시며, 스키 자세도 매우 안정적이며 안전하게 스킹을 잘 즐기시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외국인 스키어같다. .김 선생님은 얼마 전 상처를 하시고 커다란 슬픔을 안고 사신다. 그간 사업으로 많은 재산이나 잘 자란 딸들이 있지만 평생을 같이 지낸 아내의 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었다. 지금도 아웃도어 매장만 있으면 들어가셔서 아이 쇼핑을 즐기시며 왕년 산에서 날라 다니시던 시절을 그리워하신다.

용평 스키 시즌이 시작되면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서울에서 매일 새벽 첫 셔틀 버스를 타시고 출근하셔 오전 스킹을 하시고 점심 후 다시 버스로 퇴근하고 계신다. 지극정성이신 김 선생님께서 돌로미티 슈퍼 스킹을 하시다가 이제 용평을 못 가겠어하시며 한숨을 쉬신다. 돌로미티와 용평을 비교하신 게 아니라 당신의 스키 능력에 한탄을 하셔서 동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용평에서 지금도 스키 레슨을 지속적으로 받으시는데 기본에만 충실하라고 배워서 스키에 진전도 없고 다리 힘도 저하되시니 나올 만한 말이었다.

무슨 격려의 말이 필요하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터득하신지 오래되셨는데. 스키 마지막 날 팀원들의 돌로미티 슈퍼 스키 소감을 논하다가 갑자기 내 입에서 백두용하십시오. 선배님! 하자 모두 놀라신다. “백두산은 알겠는데 백두용은 뭐에요. 백두산 용?” 내 닉네임은 중학교 시절 중등 친구들이 정해 준 더그리이다. “덕용 + 너구리는 순간 순간 순발력이 빠르며 위트 있고 재치가 있다고 만들어 준 별명이다.

 “, 선배님. 이제 선배님은 100살까지 선생님 두 발로 용평에서 스키를 타실 만큼 실력이 늘으셨다는 말입니다.” 모두 박수가 터졌고 와인 잔들이 수 없이 맑고 밝은 소리를 내었다. 김생님의 두 개의 와인 잔에는 화이트 와인 속에, 레드 와인 속에 김태성 선생님의 안정된 스키 자세와 용평의 모든 슬로프는 물론, 돌로미티 슈퍼 스키를 타시는 모습이 보였다. 사실 김 선생님은 하루에 48km의 셀라 론다 스킹을 하시고 연장으로 주변 블랙과 레드<한국 용평의 레드에 비해 20~30배 이상 길며 레인보우 슬로프 보다 몇 배로, 긴 슬로프를 스킹 하루에만 56km 스키 주행을 하셨다. 백두산에서 백두용으로 힘차게 달려가시는 선배님의 건각과 의지, 집념의 스키가 참가자 오길동, 노미순, 이상식 님들의 눈 속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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