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_불암산

글 이재호 기자      사진 정종원 부장      협찬 레드페이스  

전날부터 새벽까지 이어진 비로 아침부터 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엷게나마 우리를 덥혀주던 가을 온기는 빗방울에 모두 씻겨 내려간 듯하다. 추워질 날만 남은 지금, 늦가을의 볕이 주던 따스함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흰 눈이 바위와 나무를 덮기 전, 우리는 사라져가는 낙엽 내음을 맡기 위해 서둘러 불암산으로 향할 짐을 꾸렸다.

 정상의 큰 바위가 부처의 얼굴을 닮아 불암산이라 이름 붙여진 산은 509.7m의 높이로 서울과 남양주에 걸쳐있다. 이름에 걸맞게 산 곳곳에는 절과 불상이 가득하며,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곳에도 불교의 흔적이 남아있다. 지하철 4호선 상계역과 당고개역에서 산의 들머리가 가깝고, 산이 높지 않아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중상급자 등산객들에게 유행인 불수사도북 종주의 시작이 되는 산이며, 암벽등반을 위한 자연 암장들도 여럿 위치하고 있다. 불암산 등산로는 총 9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족 단위로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나비정원과 철쭉동산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새벽 비가 몰고 온 이른 추위와 맑은 하늘

예고 없이 시작된 아침 추위와 그와는 상반되는 지하철의 답답한 더위를 간신히 뚫고서야 불암산 앞에 섰다. 맑은 하늘에는 해가 들었지만, 추위는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동 제자리걸음을 구를 바에야, 움직여 몸을 데울 생각으로 서둘러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는 9개의 등산 코스 중 세 번째 코스를 선택했다.

 잘 정돈되어있지만 조금 가파른 공도를 따라 오르니 금세 몸에 열이 올랐고, 이내 도착한 경수사 뒤로는 시원한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시원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있자니 괜히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몸의 온기가 모두 식어버리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홀린 듯 바라보던 폭포를 뒤로했다. 이정표는 따로 필요가 없었다.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소리가 우리를 안내했다. 여름내 임무를 마친 잎들이 쌓여있는 바위와 흙길을 지나는 동안 앙상해진 나무들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젖은 길과 잠깐씩 올라오는 땀을 말려주는 고마운 바람이었다. 천보사 앞 작은 돌탑과 폭포 약수터를 지나 이어지던 오솔길을 벗어나니, 어느새 머리 위로 가려졌던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양옆으로는 광활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장엄하게 늘어진 능선이 주는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배낭에 들어 있는 패딩에 먼저 손을 뻗었다. 땀이 마르지 않게 단단히 옷깃을 여민 다음에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복잡한 도심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넓고 긴 산맥이 오묘하게 잘 어울렸다. 부조화의 조화랄까. 배가 고팠던 탓인지 김밥의 단면 같기도 했다. 반대쪽으로는 다양한 타워들이 우뚝 서 있었다. 몸만 살짝 돌리기만 하면 휙휙 바뀌는 풍경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앞으로는 가파른 바위 능선이 이어졌다. 바위 이음새에도 예외 없이 작은 낙엽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드디어 따듯한 기운이 쏟아져 내려왔다. 크고 작은 바위를 넘고, 쥐의 앞니를 닮아 이름 붙여진 쥐바위도 지나니 어느새 정상 앞에 이르렀다. 정상은 지나온 바위 능선보다 더욱 가파르게 솟아있었고, 정상석이 세워진 바위 위로는 태극기가 시원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바위를 손으로 짚고, 설치된 줄을 잡고 오르내리며 마침내 불암산 꼭대기에 다다랐다. 불암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를 스치는 가을의 끝을 오롯이 만끽하며 산행을 마무리했다. 

적당한 추위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잠이 들기 가장 좋은 온도는 16도이며 적당히 쌀쌀한 기온은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산행 당일 느껴지는 한기는 추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산행 중에는 몸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자연스럽게 식혀주는 쿨링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오늘 산행에서도 약간 쌀쌀한 날씨가 오히려 상쾌한 발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주었다. 준비해야 할 것과 신경 쓸 것이 많은 추운 겨울 산행은 3계절의 산행보다는 대중적인 인기가 없지만, 그 매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다가오는 추위에 겨울잠 자는 곰처럼 움츠러들기보다는, 차가워진 공기를 잘 이용한다면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추위, 적당한 자극이 주는 쾌감을 오롯이 느껴보길 바란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함께 거닐었던 둘의 이야기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먼저 김정헌 씨의 소감이다. “이번에 불암산 원점회귀 코스로 왕복 3시간 정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전날에 비가 와 아침 기온이 0도에 가깝게 뚝 떨어졌지만, 오히려 산을 오르기에는 시원한 공기로 느껴져 되레 상쾌하기까지 했다. 산 입구에서는 어디서 왔는지 귀여운 토끼가 우리의 방문을 반기며 껑충 뛰어다녔다. 입구 쪽 절에 위치한 폭포는 그간 쌓여있던 고민거리를 모두 씻겨주려는 듯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 불암산을 오르면서 북한산과 도봉산이 선명하게 보이고 어느 방향을 봐도 예쁜 경치가 있어 눈이 즐거웠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멀리 롯데타워가 혼자 우뚝 서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도 신기했는데, 또 반대편에는 남산타워도 보여서 장난감처럼 랜드마크를 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산행하면서 다양한 포즈도 취해보고 다른 모델 분 그리고 기자님과도 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어서 박경아 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불암산은 처음이다. 주말 동안 내린 비로 물들었던 단풍잎들은 거의 다 떨어져 등산로에 소복이 쌓여있었다. 산은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듯했고, 그에 따라 날씨도 상당히 쌀쌀해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등산로 초입에 섰을 때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하지만 몇 걸음을 걷다 보니 기분 좋은 땀이 나기 시작했고, 도시의 소란과는 정반대의 고요함을 품은 산에 오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나무들이 곧게 뻗어 있는 등산로, 정상을 향해 안내하는 거대한 화강암들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도봉산과 북한산이 장엄하게 우뚝 솟아있고, 서울의 도심이 넓게 펼쳐진 불암산 정상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가을의 마지막 숨결과 겨울의 서막이 만나는 이 계절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산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산에는 미운 계절은 없다.”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