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시현(山梨県) 기타다케(北岳, 3,193m)
한국인이 오른 일본 100명산

글•김동규(경희대 산악회 OB) 사진•우제봉((주)한진관광).   

남알프스의 첫 번째 거점마을은 히로가와라(広河原)이다. 좁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노로가와(野呂川)의 강물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안내 센터 건물과 버스 정류장 터를 제공하고 있다. 호오산(鳳凰山) 들머리가 되는 야사신 고개, 가이고마가다케와 센조가다케의 들머리가 되는 기타자와(北沢) 고개, 아이노다케(間ノ岳) 하산 지점인 나라다(奈良田) 온천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곳이다. 물론 여기서 하쿠후(白鳳) 고개를 통하여 호오산을 오르고 노로가와 강에 걸친 다리를 건너서 키타다케에 오른다. 안내 센터의 코인로커를 이용하여 짐도 맡길 수 있으니 남알프스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다.

히로가와라(広河原).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강폭이 넓어진 최상류라고 할 수 있다. 노토리다케(農鳥岳)의 남쪽 줄기에 히로고치다케(広河內岳, 2,895m)와 시로고치다케(白河內岳, 2,895m)가 있다. 그리고 히지리다케 남쪽 줄기에 가미코치다케(上河內岳, 2,895m)가 있다. 각각 넓고 넓으신, 밝고 밝으신, 높고 높으신 신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가와(河)는 ‘신’이라는 사실이 도출된다. 히로가와라의 ‘라’는 복수로 해석하여 넓고 넓으신 신들이다. 개울의 ‘개’가 그렇듯이 가와(河, 江)는 신(神)을 뜻하는 ‘감‘에서 나온 말이다. 도쿄의 옛 이름 에도(江戶)는 신들의 문이다.  

기타다케는 육중하면서도 날카로운, 피라미드 형태로 시작하는 산세가 끝을 약간 비틀어 뾰족한 창으로 마감하고 있다. 호오산과 가이고마가다케를 앞세우고 뒤로는 아이노다케, 시오미다케(塩見岳), 히가시다케(東岳), 아카이시다케(赤石岳), 히지리다케(聖岳), 데카리다케(光岳)를 이끌고 있다. 마치 남알프스 산군을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 같다.

기타(北)는 밝음을 말하는 ‘붉’의 한자표기이다. 밝뫼를 기원으로 하는 이름이다. 이런 산은 햇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니, 한 겨울에 방안에서 쬐는 화롯불의 붉은 기운 같다. 산의 남쪽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맞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 이름으로는 북배산과 북한산이  있다. 북배산(北培山)은 북에 연이어 배(培)를 써서 ‘밝’임을 강조하고 있다.

남알프스 산군을 이끄는 피라미드형태의 우두머리

우리나라 많은 군(郡)에서 북쪽 끝에 북면(北面)을 배치한 이유는 거기서 밝음을 비추어 달라는 요망사항 때문이다. 덧붙이면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북국일기(北国日記)』는 흰 눈의 다이세쓰산(大雪山)과 참으로 궁합이 맞는 제목이다. 작가가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는 내용도 밝음을 뜻하는 북(北)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산은 시간도 존재하지 않던 어둠의 세계에 밝음을 준 존재이다. 빛이 비추니 온 세상이 정적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북알프스에서는 기타호다카다케가 호다카 연봉의 북쪽에서 일대를 밝히고 있듯이 기타다케는 남알프스를 밝히고 있다. 이보다 더 막중한 임무는 후지산을 향하여 빛을 밝히는 일이다. 후지산은 기타다케가 있어 빛나는 산이다.

시로네고이케고야(白根御池小屋) 산장에서 고타로오네(小太郎尾根) 능선을 넘어서기 직전 왼편의 이케야마쓰루오네(池山吊尾根) 능선 너머로 후지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얼핏 보이는 것이 감질나서 기타다케 정상에서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한참동안 서서 후지산을 바라보았다.

기타다케 산장의 텐트장에는 먼저 도착한 나홀로 등산가들이 옹기종기 자기 텐트 앞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당연히 한자리에 모여 떠들썩한 장면으로 이어졌을 테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의 간격은 결코 좁아지지 않았고 간간히 큰소리로 날씨 얘기나 나누는 정도였다. 후지산이 없었더라면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기타다케 산장 텐트촌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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