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_인수봉

글 이재호 기자    사진 정종원기자    협찬 레드페이스  

 심기일전이다. 지난 5월, 야속한 빗방울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던 인수봉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하늘이 우리 편이었다. 딱 한 점의 구름을 제외하고는 머리 위로 푸르름뿐이었다. 멤버도 더할 나위 없었다. 등반 교육 프로그램에서 보조강사를 맡아 등반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서울농대산악부 준아와 외대산악부의 떠오르는 등반 샛별, 승혁이형과 함께 자일을 묶을 생각을 하니 염라대왕 두렵지 않았다.

아침 10시쯤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예상보다 뜨거운 태양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젯밤 꿈꿨던 시원한 가을 등반은 태양빛에 녹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이따금씩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만족하기로 했다. 탐방지원센터 옆 들머리를 통과해 등산로를 걷다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인수봉 갈림길로 접어들었다. 취나드B 시작점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장비를 착용하며 인수봉을 올려다보았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바위 전면에 붙어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그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 모두가 취나드B를 오르고 있었다. “과연 2피치는 오를 수 있을까..?” 약속을 더 일찍 잡지 않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지만, 순간을 즐기는 암벽등반을 앞두고 과거를 후회하는 미련한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앞선 팀을 기다리며 하네스에 선등 장비를 하나씩 착용하고 있는데, 준아가 연신 신기한 표정으로 장비들을 쳐다봤다. 트랑고 캠의 독자적인 사이즈 표기 방식부터 무거운 도그본이 달린 퀵드로우까지... 평소 정확하고 효율적인 등반을 선호하는 준아에게는 신기한 물건들뿐이었다. 앞 팀 마지막 주자가 등반을 시작하기 전까지 서로의 산악부와 장비에 대한 뜨거운 토론을 이어갔다. 나는 더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바위에 붙었다. 준아의 유려한 선등빌레이 덕분에 맘 편히 첫 피치 등반을 완료하고 촬영을 위한 줄을 설치할 수 있었다.

  다음은 둘의 차례였다. 비장한 표정으로 선등을 준비하는 준아와 그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승혁이형의 모습이 바위 아래로 보였다. 달랑 하나 있던 구름 뒤로 가려졌던 태양도 그들의 등반을 감상하려는 듯 마침 고개를 내밀었다. “출발”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강단 있는 목소리와 함께 준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동작들의 연속은 감탄을 자아냈다. 물론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처음 밟아보는 루트를 몇 번을 왕복한 사람처럼 올라갔다. 확보물도 차분하게 설치하고 줄 유통도 자연스럽도록 유도했다. 많이들 떨어지는 크랙에서 슬랩으로 넘어서는 구간도 가볍게 올라섰다. 준아의 등반 완료 후 뒤따라 오르는 승혁이형도 거침없이 올랐다. 확보물을 회수하면서 오르던 중 크랙 사이에 깊게 박혀 빠지지 않는 트랑고 캠 하나가 승혁이형을 괴롭혔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피치를 마무리했다.

  촬영과 등반을 동반하다보니 시간이 꽤 많이 흘렀고, 앞선 팀을 기다린 후 사선 크랙을 등반하기 시작하면 늦은 시간에 하산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우리는 과감하게 하강을 결정했다. 하강줄을 내리고, 장비를 정리하고, 도선사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가는 내내 우리의 산 이야기는 단 한순간도 끊기지 않았다. 공도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다음 등반 약속을 잡는 둘의 모습은 ‘산에 미쳐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아쉬운 등반을 마친 날만큼 산에 대한 열의가 불타는 날도 없을 것이다. 결국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까운 날, 못 다 마친 이 길을 다시 오르자는 기약이 있고나서야 그들의 불타는 열정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다.

하늘로 올라갈수록 덥다

  신서유기라는 방송에서 가수 은지원이 이런 말을 했다.

  “하늘로 높이 올라갈수록 더워! 그래서 비행기에서 에어컨을 틀어주잖아!”

  당시에는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틀린 건 나였다. 냉담한 사람들과 차가운 도시에서 벗어나, 나와 우리만이 서있는 높은 산에서는 서로의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내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높은 곳, 우리에게는 산 위가 세상 어느 곳보다 따듯한 곳이다. 틀린 건 나였다. 어쩌면 오늘의 인수봉도 태양이 아닌 서로의 마음이 서로를 덥혔던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 대한민국은 특히나 싱숭생숭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시기와 질투와 냉소가 가득한 현대사회 속에서, 비로소 산에 오르면서 주변의 따듯함을 알아채기 시작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한다. 부디 이 글을 접하는 모두가 주변에 숨어있는 따듯함을 찾아내길 바라며.

먼저 강준아씨의 이야기이다. “오랜만에 인수봉을 가는 터라 설레는 기분이었다. 최근에 간 설악산에서는 계속 비가 내렸었는데, 북한산은 날씨가 좋아서 더 들떴다. 간만에 북한산을 가는지라 어프로치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취나드B 시작시점에 도착해서 장비를 차기 시작하니 약간 긴장이 됐다. 후등으로는 여러 번 올라봤지만, 선등은 처음이었다. 친한 지인이 다친 구간이기도 해서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준비를 하고 “출발”을 외친 후 침착하게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강한 햇살에도 바위는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고, 바싹 마른 크랙은 아주 잘 잡혔다. 조금씩 가다보니, 크랙이 끝나고 슬랩이 시작되는 지점에 도달했다. 이 구간에서 다쳤던 사람이 떠올라 집중하고, 발을 조심히 디뎠다. 다행히 슬랩의 첫 볼트 지점을 무사히 통과하고 짧은 슬랩 후에 확보점에 도달했다. 확보점에 도달하고 뒤를 돌아보니 비로소 경치가 보인다. 인수봉 전면에 달라붙어 보는 오른쪽의 수많은 빌딩들과 왼쪽으로 펼쳐진 산맥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풍경은 언제나 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산에 오면 이런저런 고민들을 잊을 수 있어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등반을 할 때는 순간에 집중하여 다음 홀드와 스탠스를 생각할 뿐, 속세의 걱정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후등자를 올리고 난 후 시간을 확인하니, 생각보다 늦어져 1피치 이후에 하강하였다. 오랜만에 온 인수봉을 한 피치만 등반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쉬웠지만, 산은 언제나 그곳에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하산 도중 인수암 스님께서 귤을 먹고 가라며 몇 개 주셨는데,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요즘 세상에 흉흉한 일도 많이 일어나고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들 하지만, 산을 다니면서 아직 세상은 따듯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양승혁씨의 소감과 함께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같은 대학산악부 재호와 동아리방에서 장비를 챙겨 우이동으로 함께 출발했다. 사진기자님, 서울대학 산악부 부원인 준아 그리고 편집장님을 만나 인수봉으로 향하기 전 함께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편집장님께 처음 등반을 할 때 느끼는 눈앞에 바위가 아른거리는 기분에 대해 들었는데 나도 처음 인수봉 정상에 다녀왔을 때 느꼈던 기분이라 신기하기도 했고 덩달아 이런 촬영에 임하면서 가졌던 긴장감도 풀어졌다. 인수봉 앞까지 올라가면서 재호와 준아가 나누는 산 얘기를 듣고, 취나드B 길을 선등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그들이 겪고 들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가 부럽고 멋져 보였다. 나도 둘처럼 산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노하우를 쌓아 즐거운 산행과 등반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지식을 나눠주고 싶었다. 사실 이번 촬영에 지원하게 된 이유도 기회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바위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정 전부터 듣기를 촬영을 하게 되면 등반만 할 때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많이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인수봉까지 가는 길도 눈에 익힐 수 있었고 함께 촬영하면서 나와 다른 세대, 다른 대학의 등반 문화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등반에 관해 모르고 있던 지식들도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비록 많은 피치를 오르진 못했지만 그 동안 가보고 싶었던 취나드B에 와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촬영 중 서로를 챙겨주고 도와주는 모습과 하산하며 지났던 인수암 암자 스님이 주신 귤에서 따듯한 정과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등반 경험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고, 오늘이 그런 경험의 시작이 된 것 같아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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