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용의 티롤 알프스

 글•사진 임덕용 EU주재기자

새끼 기린은 태어나면서부터 일격을 당한다. 키가 하늘 높이만큼 큰 엄마 기린이 선 채로 새끼를 낳기 때문에 수직으로 곧장 떨어져 온몸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충격으로 잠시 멍해져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는 순간! 이번에는 엄마 기린이 그 긴 다리로 새끼 기린을 세게 걷어찬다.

 새끼 기린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났고 이미 땅바닥에 세게 부딪쳤는데 또 걷어차다니! 아픔을 견디며 다시 정신을 차리는 찰라, 엄마 기린이 또다시 새끼 기린을 힘껏 걷어찬다. 처음보다 더 아프게!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 새끼 기린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흔든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는 계속 걷어차인다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은 가늘고 긴 다리를 비틀거리며 기우뚱 일어서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엄마 기린이 한 번 더 엉덩이를 세게 걷어찬다.

 충격으로 자빠졌다가 벌떡 일어난 새끼 기린은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엄마 기린이 달려와 아기 기린을 어루만지며 핥아주기 시작한다. 엄마 기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새끼 기린이 자기 힘으로 달리지 않으면 하이에나와 사자들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새끼 기린을 걷어차는 것이다. 일어서서 달리는 법을 배우라고. {기린 이야기} 

인생에 있어서 성장 과정 중에 우리는 우리 부모님들과의 여러 사연을 기억하고 자란다. 그 중에는 아름다운 사연도 있을 것이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몇 년 동안 클라이밍과 스키, 산악 스키를 개인 연수를 받고 있는 드미트리 교수 가족의 애들 교육을 보면 마치 러시아 군의 특수 훈련을 보는 듯하다. 모국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경에 있는 벨라루소인 그는 25년의 이태리 생활로 이중 국적자이며 볼차노 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애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가 하는 모든 익스트림 스포츠에 항상 동반하며 같이 즐긴다. 카약, 래프팅, 클라이밍, 스키, 산악 자전거, 다이빙을 가족과 같이 즐긴다. 겨울철에 눈길 트레킹을 하다가 얼어있는 호수를 보면 서슴지 않고 얼음을 깨고 먼저 들어갔다가 애들을 하나씩 얼음 호수로 불러들인다. 이제 겨우 10살 여자아이와 12살의 아들을 손 담기기도 어려운 얼음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는 그들을 불러들이기 전에 항상 몸을 덥히기 위해 제자리 달리기나 팔굽혀 펴기를 여러 번 시킨다. 애들이 얼음물에서 나오면 준비해 온 커다란 수건으로 감싸 안아주며 같이 커다란 소리로 웃는다. “거봐 너는 해내었어. 정말 자랑스러워”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인접한 비피테노 Vipiteno에 새로운 비아 페라타 루트가 생겼다. 2022년 만들어진 올베르그 루트는 발 디 빗제 Val di Vizze 계곡의 숨 막히고 전원적인 파노라마 전망을 제공하는 맛을 더해준다. “올리브 산”이란 뜻의 올베르그는 아베네스 Avenes(Afens)에 있다. 230m의 수직 벽은 칙칙한 검고 브라운 색의 벽이다. 최소 3시간의 중력 거부 행위가 오르는 동안 몸의 긴장감과 팽팽해지는 손과 팔 근육의 꿈틀거림은 마치 심장이 터져라 펌프질을 하는 것 같다.

 수많은 산악 스키와 비아 페라카 등반을 같이해온 프랑코 죤코 Franco Gionco와 드미트리 Dmitri 교수와 부인 리우다밀라 Lyudamilla, 살레와 암장에서 같이 등반하는 실바노 Silvano와 같이 볼차노에서 만나 약 1시간을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차를 몰았다. 이태리어가 아직은 조금 서툰 리우다밀라에게 프랑코 죤코가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항상 새로운 친구를 반기고 새로운 비아 페라카루트가 생기면 꼭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77세 어린이 영감이었다.

 남 티롤 알프스의 전형적인 초원과 짙고 푸른 숲 사이의 작은마을 터널을 지나자마자 작은 주차장이 나타났고 비아 페라타 등반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스타트 지점까지는 아스팔트 길로 15분을 편하게 걸어갔다. 전체 등반 길이는 550m이며 난이도가 높아 전문 등반가들에게 어울린다. 어린이 경우 최소 키가 1m 30cm는 되어야 하며 고소 공포증이 없어야 하고 어려운 페라타 등반 경험이 많아야 하며 체력이 좋아야 한다.

성격이 급한 죤코는 벨트를 착용하자마자 출발을 해버렸고 실바노가 내 앞에 내 바로 뒤로 리우다밀라와 마지막에 드미트리 교수가 올라가게 부탁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서였다. 죤코는 워낙 빨리 올라가기를 좋아해서 그를 모델로 촬영을 하기는 어려워서 출발점에서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루트개념도처럼 다양한 선택을 하며 오를 수 있었다. 검고 짙은 회색의 직벽은 수많은 작고 큰 오버행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여러 개의 루트가 서로 엇갈리게 되어 있었지만 각 갈림길에는 작은 동판 표시가 잘 되어 있어 난이도별 등반을 할 수 있었다.

 작은 벽에 등반 길이를 연장하기 위해 다소 지루할 정도로 지그재그로 등반을 하게 만들었지만, 너무 빨리 등반이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팔 힘이 많이 드는 오버행 구간을 그간 클라이밍으로 다져진 리우다밀라가 조심스럽지만 자신 있게 올라온다. 간만에 환하게 웃는 그녀를 카메라 앵글로 담아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 실바노는 7급대를 등반하기에 오버행에서 보다 과감한 동작으로 올라 수시로 멋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2시간이 넘는 동안 휴식은 거의 없었다. 시원한 날씨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햇살이 몸과 뇌를 즐겁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수시로 친구들간에 농담으로 웃음꽃이 터지는 등반이었다. 리우다가 듬직한 남편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수시로 만나 입맞춤을 하는 그들 부부가 보기 좋았다. 혼자 산지 오래되는 실바노가 가끔 질투 섞인 투정을 하지만 그 역시 웃음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상에 오르자 모두 손에 손을 잡고“베르그 하이”(독일식 정상 인사로 산정에 도착을 축하해)를 하며 간단한 간식을 먹었다.

90세가 넘으셨어도 기린의 생존법을 실천하시는 부모님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서울에 올라온 해인 6살 때 북한산 백운대를 처음으로 올랐다. 아버지와 나는 당시 유행하던 베레모를 썼고 어머니는 얼굴을 보자기로 감싸고 재클린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다. 당시 사진은 내 첫 저서인 “꿈속의 알프스”에 기재되었다. 그 사진 뒤편의 인수봉 남벽에 붙어 있는 작은 사람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눈을 뗄 수 없었지만, 그들이 안 떨어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고 그 사건은 내가 산에 미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와 고교 시절 학교에서 시험 보는 날을 가장 좋아했다. 성적이나 시험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학교가 일찍 끝나면 공식적으로 산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외 수업도 안 받고 산에 다녀온 것을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다가 들켜 아버지에게 많은 회초리를 맞았다. 아버지는 은행에 다니셨는데 집에 커다란 금고가 있었고 내 클라이밍 장비를 몇 번이나 금고 안에 넣어버리고 굳게 잠가버렸지만, 산을 가는 나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시는 날이면 몇 시간을 들여서 다이얼을 돌리며 금고 여는 법도 터득했고, 장비를 친구들 집에 숨겨두고 산에 무조건 명령 복종 영원한 충성을 시작했었다.

 내가 존경하는 한 지인은 학창 시절 아버지가 공부 안 한다고 회초리를 맞았던 것을 자기 인생 중 가장 중요한 기회였고 지금도 아버지를 존경하며 고마워한다. 그때 아버지에게 맞는 게 무서워 공부하지 않았다면 좋은 대학도 못 다녔고 국내 대기업 임원과 패션 회사 회장도 못 되었을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신다. 어미 아비 기린의 자식 생존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고 계신다.

 우리 아버지는 이제 92세가 넘으셨고 어머니도 90세이시다. 코로나 기간이 끝난 지난해 한국 방문 시 두 분이 지팡이에 의지하시며 걷는 모습에 놀라고 많이 슬펐다. 이제는 길을 걸을 때면 내 손을 꼭 잡고 걸으신다. 38년을 해외에서 살던 장남이 서울에 와서 당신들 손을 잡고 같이 걷는다는 것에 만족해하시며 사신다. 중고교 시절 내 종아리를 힘차게 회초리로 내리치시던 손에도 이제 힘이 없으시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불굴의 의지로 당신들 건강 유지를 위해 노력하신 정신은 나를 감동시켰다. 어쩜 지금의 내가 되는데 필요한 정신력이 당신들에게서 나왔다는 증거가 된다. 크지는 않지만 두 분이 사시기에는 넉넉한 아파트에서 서로 시간을 정해 하루에 오전에 5,000보, 오후에 5,000보씩 걷는데 서로 부딪치지 않게 시간을 정해 응접실에서 걸으셨단다. 한 분이 걸으시는 동안 다른 한 분은 컴퓨터로 게임이나 뉴스를 보시거나 신문의 관심 기사를 오려서 스크랩하고, 당신이 보신 영화를 노트북에 감상문을 쓰면서 치매 예방과 건강 유지를 위해 하루 1만 보를 그 좁은 실내에서 매일 걸으셨단다. 기린의 생존 법을 90세가 넘으셨어도 당신들 스스로 실천하신 부모님들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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