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용의 티롤 알프스

글•사진 임덕용 EU주재기자   사진 제공 Dolomiti Super Ski. 

“마주친 이가 슬픈 표정으로 울릴 수 없는 종이라고 일러주어도 나는 종탑을 올라갑니다. 종을 울리기보다는 회개를 위해 오르기 때문입니다.

종탑을 오르며 죄로 두터워진 마음을 땀과 바람에 씻기 위함입니다. 더 멀리까지 바라보면서 종소리가 어디까지 닿아야 하는지 그대가 어디쯤 있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종이 되기 위함입니다. 바람결만으로 울리는 종시간의 진동만으로도 맑은 소리를 내는 종, 그러한 종소리를 다시금 그대에게 들려주기 위함입니다.”

종탑을 오르며(우정의 글/우정 시선) 

이태리 중부의 피렌체Firenze는 영어명으로는 프로렌스라고 한다. 중세 최고의 문화와 예술의 상징인 르네상스가 탄생 한 도시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주의 주도이다. 피렌체 중심가는 약 40만 명이 살고 있지만, 주변 위성 도시포함 약 150만 명이 살고 있다. 아르노Arno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며 로마와 밀라노 중간에 있고 아직도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빈치, 두 천재의 치열한 경쟁 속에 과학과 미의 발전을 거듭했고 두 사람의 예술의 숨결이 아직도 생생한 관광지로 유명하다.

 피렌체 중심지의 두오모 대 성당은 파스텔 색상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아름답고 역사적인 건축물의 결정판이다.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오랜 세월 이탈리아의 명문가 메디치Medici 가문이 다스렸다. 1865년부터 1870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매년 수 백만 명이 관광을 오는 도시가 되었다.

중심지 성당 주변에는 여러 박물관이 있는데 여기에 전설의 천재들 작품도 경쟁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남성 누드상의 상징인 다비드상은 박물관 입구에 모조품으로 전시되어 있지만 실 작품과 차이를 절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두오모 대 성당을 중심으로 여러 종탑이 서로 키를 자랑하듯 솟아 있다. 종탑을 이태리 말로 하면 또레Torre이다. 산악 용어로는 침봉, 날카롭게 솟아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탁 트인 전망과 아찔할 정도로 솟아 있는 종탑은 잔잔한 우리 마음에 신선한 충격을 준다. 바라만 보아도 시내 중심에 있는 장난감 가게 앞에서 넋을 잃고 서 있는 어린이처럼 매혹되어 버린다. 피렌체 타워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1359년 완성되었고 95m의 높이를 자랑하며 약 414개의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아르놀프Arnolfo 타워, 두오모 성당 콤플렉스Complex의 지오또 벨 타워Giotto Bell, 고대 성벽의 일부인 산 니꼴로 Niccolo 타워가 3대 유명한 종탑이다. 14세기 고딕 건축의 화려한 증거가 되었다. 463개의 계단으로 만들어진 지오토의 종탑도 유명하다.

발 룽가에 솟아오른 피렌체의 지오토 종탑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운 등반 루트, 훌륭한 암벽, 칸테 만의 아름다운 자태, 산장부터 매우 습하고 가까운 어프로치, 북벽이면서도 고도가 높지 않아 클라이머들에게 사랑받는 벽. 확보점 마다 확실한 하켄과 다양한 확보물을 설치 할 수 있는 바위틈새가 많아 비교적 안전하게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다. 피렌체 산장에서 스테비아Stevia 산장으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약 300m를 간 다음 왼편 산길로 올라간다. 약간은 습한 듯 차가운 바위 골을 올라서자 칼바람은 밑에서부터 불어와 얼굴을 심하게 때린다. 고개를 드니 하늘을 찌르는 듯한 벽이 나타났다. 근 40년 전 이탈리아 유학 초기 피렌체의 종탑을 쳐다보고 놀랐던 모습이 기억났다.

 당시는 30대의 젊고 도전적인 청년의 몸이었지만 400개가 넘는 좁고 경사가 급한 터널 속 안의 돌계단을 올라가기 싫어서, 종탑 위에서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는 도전도 안 했지만, 발 가드레냐Val Gardena 계곡 중 가장 긴 계곡인 발 룽가Val Lunga 입구에 있는 또레 피렌체Torre Firence는 친근감이 돌았다. 55년간 클라이머의 삶을 살아온 나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리 어렵지 않고 노친들끼리 삼삼오오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오르며 적당히 운동 할 수 있는 벽이기 때문이다.

 나의 암벽등반 파트너 이자 예술가끼리의 공통점이 마치 쌍둥이 같은 에른스트 뮐러Ernst Muler와 그와 같이 여러 등반을 했던 오스봘트, 드미트리 교수, 그리고 드미티리 교수와 같이 나에게 클라이밍과 빙벽을 배우고 있는 세바스티앙이 동행했다. 젊은 친구는 여러 면으로 도움이 된다. 내가 사용할 더블 로프와 모든 금속 장비를 자기 배낭에 넣고는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간다. 대 사부님 짐을 들어주는 것은 제자의 기분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동양인 같다.

 

이미 우리 앞에는 독일에서 온 젊은 클라이머 5명이 버걱거리고 있었다. 한눈에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설픈 로프 조작과 새로 구입한 장비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국내 인수봉과 선인봉을 등반하다 보면 한 팀이 각 클라이머마다 후렌드 몇조와 퀵드로를 장비 자랑하듯 달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었다. 심지어 사용하지 않을 쥬마와 여러 장비를 선등자나 후등자나 말번 등반자나 모두 각자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우리가 빠른 속도로 올라 2번째 마디에 확보를 마치자마자, 3번째 마디로 선등자가 올라가는데 루트를 잘못 오르고 있었다. 말이 많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에른스트가 독일말로 선등자를 코치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올라가 버렸다. 결국, 그가 겁을 잔뜩 먹고 클라이밍 다운을 하며 많은 낙석을 유발했다. 또 다른 그의 동료는 루트를 찾는다고 오른편으로 길게 횡단을 하면서 낙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길을 못 찾았는지 돌아오고 말았다.

 눈에 보이는 실수 종합 세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의 더블 로프와 횡단 하다가 철수하는 사람의 더블 로프가 서로 엉키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등반을 방해할 수 없었고 그냥 그들이 처리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털보가 우리에게 매우 정중하게 “우리가 실수한 것 같은데 먼저 가도 되며 자기들이 뒤따라가도 되냐”고 물어왔다. 얼마나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인가. 그들의 위와 아래로 엉키고 엉킨 4개의 로프 위로 또 우리의 두 조가 사용하는 더블 로프가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행히 2마디와 3마디 중간은 평평한 테라스 위라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등반 도중 전 대원들이 로프를 풀어서 정리해야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생각 보다 많이 오른편으로 횡단을 하자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뒤를 보니 독일인들이 결국은 서로 안전벨트에서 모두 로프를 풀고 로프 정리를 하는 것을 뒤로 보면서 헤어졌고 우리가 상단을 오르면서 그들이 하강하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우리에게는 초딩인 가장 젊은 세바스티앙을 선등을 시키며 그의 실수를 못된 영감들이 늙은 늑대들처럼 웃으며 즐기면서 격려를 해주지만 그는 한 순간, 한 오름 마다 발전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수줍어하며 그가 짓는 잔잔한 미소는 너무나 밝았고 귀여웠다. 55년 전 내가 클라이밍을 배우며 오른 첫 정상에서의 모습이 그를 통해 그림자처럼 보였다.

 등반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실패는 할 수 있지만, 실수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이나 대상 산의 거부로 인한 실패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는 인정하기보다 미리 예방하고 방지하는 기술을 잘 습득해야 한다. 단 한 번의 아주 작은 실수는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는다. 도전하는 우리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이다. 산이 나를 거부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얼마나 준비된 사람인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오래 살아 오랫동안 산행을 하고 싶다면 우리 인생에서도 실패는 할 수 있지만,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설사 실수를 했다면 가장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이상 실수를 안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가?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가? 이전의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가? 물론 우리는 자신이 한 잘못이나 실수를 쉽게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실수를 하는 것이 실패와 다르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실패는 의식적인 노력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실수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기회로 보자. 잘하는 것보다 실수를 성공으로 가는 과정을 즐겨보자. 솔직하게 연습하고 정중하게 배우자. 그리고 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관대하자. 내가 완벽하며,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내가 어떤 일을 잘한다고 해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실수를 했을 때 더 극복하기 힘들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고 인생을 아름답게 살려면 실패는 해도 실수는 하지 말자. 그것이 내가, 우리가 오래 산에 가는 길고 긴 길이면서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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