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_북한산 인수봉

글 김경수 기자  사진협찬 레드페이스

북한산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 양주시에 걸쳐 한북정맥의 만경대에서 분기한 마루금의 산이다. 높이는 백운대가 해발 856m이며 인수봉과 만경대가 같이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불린다. 북한산은 도봉산을 포함하여 국립공원이며 워낙 넓어 접근로가 다양하다. 이번 등반은 인수봉 동면이므로 우이동으로 가야 한다. 버스로는 120번을 타고 영신여객 종점에서 내리면 되고 전철로는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려서 2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규모가 큰 사찰인 도선사가 있어 그곳까지 2.4km의 아스팔트 도로가 깔려있다. 셔틀버스가 다니므로 약간의 시주비(?)를 내면 타고 갈 수 있으나 노골적인 등산복차림을 하게되면 승차를 거부 당할 수 있다. 그냥 걸어가도 좋으나 시간이 40여분 이상 소요되므로 좀 더 편하고 빠르게 가려면 버스 종점근처에서 주말에 이 길만 오르내리는 택시가 있어 2천원을 내면 6분이면 오르지만 3석의 승차인원이 다 찰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운수에 맡겨야 한다.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불상이 가운데 있고 왼쪽으로는 도선사로 가는 길이며 정면 입구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중간에 하루재까지 꾸준한 오르막이며 수직 거리는 약 600m 정도지만 체감적으로는 쉬운 길이 아니다. 하루재에서는 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땀을 식히며 쉬고 나서 다시 내리막을 가다가 인수봉 대슬랩까지도 비슷한 거리를 걸으면 된다. 사실 북한산의 큰 장점은 2천만이 사는 수도권에서 접근하기가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인수봉을 보러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와서 어마 어마한 암장을 보고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고 한다. 국내 최고의 대표적 암장으로 현재 약 90여개 루트가 열려있고 휴일이면 300명 이상의 클라이머들이 암벽등반을 즐기는 곳이다. 동남벽의 가장 긴 암장거리는 직선 거리로 약 250m이며 하단부 둘레는 500m가량 된다. 암질은 화강암으로 되어있어 강하고 마찰력이 좋다. 

벼르고 별러 멀티등반을 하려 했지만 농무가 앗아간 꿈

 드디어 인수봉이다. 그동안 코로나시기에는 등반이 아예 금지되었고 한 달전 안전점검도 끝나 터라 오랜만에 멀티등반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안전벨트도 새로 바꾸고 장비도 몇 개 구입하여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주간날씨는 한동안 흐림으로 안내되어 날씨만큼은 걱정하지 말자고 잠들었고 눈을 뜨고 밖을 보니 웬걸? 베란다 난간에 물방울이 맺혀있는 것이 아닌가! 얼른 창을 열어 손을 내밀어 보니 비는 그새 그친 듯 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정오를 지나며 약간 해가 뜬다고 나와있다. 그렇다면 어프로치하는 동안 바람만 좀 불어준다면 인수봉의 슬랩을 중심으로 루트를 보며 마른 곳을 택하여 등반하면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바람은 초속 2m~3m 정도 오후내내 분다고 하니 이만하면 드러난 암벽은 거의 마를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선사 주차장에 차를 대니 농무가 북한산 일대를 점령하여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지. 그래도 계획을 했다면 다소 변경이 있더라도 산악인이라면 실행해야 한다. 일행과 간단한 의견조율을 마치고 인수봉 대슬랩을 향하는 최단 거리의 계곡길로 접어들었는데 가시거리는 길어야 70m 정도. 아무래도 무리가 아닌가 싶은 걱정스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일행은 이미 대슬랩에 당도해 있었다.

 역시 슬랩은 거의 마른 듯 싶었으나 우리가 계획한 취너드B의 크랙은 물이 차 있고 안개로 루트조차 모습을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이 돕지않는다면 등반은 공염불이란 것인가. 아쉬움을 접고 그냥 하산할 수는 없어서 가능한 슬랩을 안전하게 등반하고 크랙에서는 후랜드를 설치하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독자님께서도 양해해 주시리라 믿으며...)  그래도 아쉬워 몸을 풀며 행여나 뭐가 보일까 루트를 올려다 본다. 역시 시선이 60도이상 올라가는 걸 보면 거대한 화강암의 규모를 직감하며 한편으로 그 위압감에 마음 한편이 눌리는 기분을 맛본다. 물론 인수봉을 아무리 많이 올라도 이러한 감정을 완전히 털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상상으로만, 그리고 내가 수백번도 더 봤던 인수의 자태를 떠올리며 머릿속에서는 완벽한 인수봉의 동남벽이 그려진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산악인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니까’ 야만의 시대(?)에는 등반헬밋조차 쓰지 않고 음주바위(?), 야바위(?), 물바위(?)하던 것을 무용담삼아 떠들던 철모르던 시절은 아득히 지나갔다. 그래도 인수봉의 슬랩 첫피치를 오른 것만으로도 오늘은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리고 미련없이 발길을 돌렸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그것도 산악인의 덕목 중 하나니까.

 오늘 본격적인 등반을 할 두 파트너는 지난 번에도 수고해 주었던 이재호(외대 21)씨와 김신혜(서울농대 13)씨이다. 김신혜씨는 서울농대 산악부 OB로 활동하고 있는데 전공은 ‘농업경제’이지만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어 그에 관련된 일을 하는 한편, 이번에 발간된 ‘서울농대 산악부 60주년’ 책자의 편집업무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BAC암장에서 등반 지도를 하는 재원(才媛)이다.

 물론 정말 아쉬운 사람은 서로 호흡을 맞추며 함께 등반을 해야할 두 사람이 아닌가 싶다. 나와 같이 모처럼 인수봉을 등반하는데 기대가 컸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재호씨의 소감을 담으며 이번 산행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먼저 김신혜씨의 소감이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집 안 이 온통 어두컴컴하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집을 나서니 우산 을 든 사람들이 거리에 하나둘 보인다. 비는 거의 그친 것 같은데, 땅이 젖어있었다. 오늘 산행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일까 잠시 의구심을 가졌지만, 따로 연락 받은 것이 없으니 우선 약속 장소인 우 이동 종점으로 향했다.

우이동 종점에 모여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편집장님 차를 타 고 도선사 입구에 도착했다. 평일이고 비도 오는데 주차장이 만차였다. 오전 10시 경이었는데, 하산을 마친 사람들이 있었는지 운 좋게도 자리가 비어, 간신히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어프로치. 인수봉은 늘 추억같다. 2013년 여름 나의 첫 인수봉도 우중이었다. 10년을 다닌 길이지만, 안개 자욱한 풍경은 또 새롭다. 등반을 셀 수 없이 다녔지만, 생각해보면 비 오거나 안개 낀 날 인수봉으로 향한 기억은 손에 꼽는 것 같다. 오늘 등반이 정말 가능할 것인지 의심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대슬랩 앞이었다. 안개에 가려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길 잃은 등산객이 그저 험한 바윗길인 줄 알고 올라간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취나드b를 등반할 계획이었지만, 크랙 사이로 내리는 빗물 때문 에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대슬랩으로 계획을 튼 것인데, 대슬랩쪽도젖어있긴 마찬가지였다. 비가 왔어도 해만 잘 들었 으면 어느정도 등반 가능한 상태가 되었을텐데, 사 방이 안개에 싸여있어 바위가 촉촉했다.

고민 끝에 결국 안전을 위해 트래버스로 자일을 설치한 후, 대슬랩 1피치만 톱로핑으로 등반하기 로 결정했다. 1피치 상단 부근까지 남측 하산로로 우회해서 올라간 후, 트래버스로 대슬랩 1피치 완 료 지점의 쌍볼트까지 넘어가야 했다. 트래버스라 빌레이가 큰 의미가 없기도 하고, 시간도 아끼기 위해서 나는 자일을 양쪽에 픽스하고 자일에 확보 줄을 건 채로 등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짝 후회했지만, 평소에 무서워하는 '젖은' '슬랩' '트래버스'를 혼자 힘으로 해내서 조금 뿌듯했다.

여기까지 와서 등반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으니, 대슬랩 1피치라도 등반하기 위해 시작점으로 하강했다. 내 차례가 되어 8자 매듭을 묶고 있는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확신을 가지고 밟으면 밟힐 거라는 믿음으로 발을 딛었는데 어라? 바로 미끄러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대슬랩에서 미끄러졌는데, 사람들이 왜 다들 대슬랩에서는 미끄러져도 멈추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각도 때문인지 발이 미끄러져도 크게 추락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바위는 정말 믿을 곳 하나 없다는 교훈을 배우며 등반을 완료했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자리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밟을 때 종아리에 강한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짧은 등반을 마무리하고 잠깐의 간식 시간을 가진 뒤, 평소에는 정신없이 등반하느라 눈여겨 보지 않았던 대슬랩 초입 주변을 맴돌았다. 눈 앞에 보이는 크랙에 맞는 캠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또 다른 크랙에서는 안전한 높이까지만 발재밍을 해서 올라가보기도 했다. 짧은 등반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날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길도 온통 젖어있어 스틱에 많이 의지하며 조심히 내려와야 했다. 구조대에서부터 이어지는 잘 다져진 등산로에 들어서야 주변에 핀 꽃을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야영장 초입의 나무가 큰 꽃나무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하산을 마칠 때쯤 되니 조금씩 안개가 옅어지고 있었다. 날씨 때문에 계획한 코스대로 등반을 하지는 못했지만, 난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취나드b는 원하면 언제든지 다시 갈 수 있지만, 안개로 한 폭의 몽환적인 그림이 된 인수봉에서 아무도 없이 전세낸듯 한적한 오후를 보내는 일은 쉬은 일이 아니니까.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산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산행기를 쓰는 지금, 날씨가 어떻든, 또 내가 누구와 함께 하든 인수봉은 늘 거기 그대로 있어 줄 거라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다. 내가 인수봉을 알게 되고, 인수봉을 등반하게 되고, 인수봉을 추억이 깃든 장소로 여길 수 있도록 만 들어준 운명이 참 고맙다. 비를 맞아 몸은 피곤하지만, 새로 생긴 또 하나의 추억에 행복한 밤이다.'

다음은 이재호 씨의 소감이다.

‘오늘은 해빙기가 끝난 인수봉을 맞이하러 북한산으로 향했다. 목표는 취나드 b.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어프로치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목욕탕에 들어온 듯 주위는 습한 안개로 둘러싸였다. 바위에 붙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과 함께 하루재에 올라섰더니, 역시나 인수봉은 자욱한 안개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장비를 착용하고 대슬랩에 줄을 걸었다. 이후 다음 피치의 루트를 확인하며 같이 온 인원들과 대책을 도모했다. 진작에 포기했던 취나드B를 포함해, 오아시스를 넘어 모든 크랙에 물이 차고 슬랩이 미끄러울 거라고 판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작은 빗방울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이내 몸을 적실만큼 양이 많아졌다.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할 정도로 선등 실력이 월등하지 않은 나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위험 앞에서는 겸허해지려고 노력했다. 등반의 기회는 수없이 많으니까. 그래도 등반을 위해 기꺼이 평일 오전에 시간을 내준 신혜누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도저히 붙을 수 없는 인수봉 앞을 몇 번이고 서성이다 결국,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인수암까지 내려오는 길에도 안개는 더욱 짙어졌고, 그 하루재를 지나고서야 눈 앞의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 곳곳에 핀 철쭉마저 야속할 지경이었다. 결국 안개와 가랑비로 잔뜩 젖은 돌들을 조심히 밟으며 4시쯤 하산을 완료했다. 주리고 쓰린 배를 파전과 골뱅이로 간단히 채운 후,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이번 등반을 위해 소개하려 했던 취너드B를 개척한 이본 취너드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이본 취너드가 개척한 인수봉의 대표적 암벽루트

 이 루트의 개척자인 이본 취나드(1938년생)는 캐나다 이민자 집안의 출신으로 1960년대 주한 미군으로 우리나라에 2년을 근무하였다. 그 때 선우중옥씨와 함께 북한산 바윗길을 개척했다. 본인의 이름을 따서 취너드A,B루트로 불리우는 길이다.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등반과 낚시를 좋아하고 손재주가 있어 북한산을 등반할 때 서울 쌍림동 대장간에서 암벽등반장비를 직접 만들었다.

 등반장비회사 블랙다이아몬드의 전신인 취나드의 첫회사인 취나드 이큅먼트를 창업했는데 그는 당시에 등반용 쇠못인 피톤(독일어:하켄)을 반복적으로 박아 넣어 암벽의 크랙이 흉하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피톤을 포기하고 대신 암벽의 크랙사이에 끼워서 사용하는 초크를 1972년에 개발했다. 하지만 안전한 등반을 원한 등반가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톤을 계속 사용하였다. 이에 이본 취너드는 캘리포니아의 거벽인 앨캐피탄을 자신이 만든 소형 초크만을 사용하여 직접 등반해 보임으로써, 피톤의 수요보다 초크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일화가 있다.

 취너드B코스는 귀바위C코스로도 불리우며 인수봉의 동면에 대슬랩 우측의 의대길과 벗길 사이에 있다. 총 5피치 177m로 이고, 1피치 35m(5.7), 2피치 37m(5.8), 3피치 25m(5.6), 4피치 40m(5.7), 5피치 40m(5.6)로 이루어져 있다. 확보용 소요장비는 프랜드 1,2,3,5호가 필요하고 소요시간은 2인 1조일 경우 2시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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