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글•사진   김기현(서울대 문리대산악회 OB)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데날리 대비 훈련

 

산악스키를 처음 접한 것은 2018년 여름 데날리(6,194m) 원정을 가면서다. 용평스키장이 폐장하고 나서 최근에 남극을 성공적으로 다녀오신 김영미 선배가 기본적인 장비 사용법과 업힐 방법을 알려주었다. 맛있는 밥도 사주시고 데날리 책자도 빌려주셨다. 국내에서 몇 차례의 훈련을 하고 알래스카 현지에 가서도 한 번 예행연습을 거쳤다. 업힐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무거운 짐 썰매를 끌고 가는 것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걸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캠프3까지 스키로 잘 올라갔고 정상 등정도 모두 무사히 성공했다. 문제는 하산할 때였는데, 우리는 하이캠프이후부터의 보온성 문제로 스키마운티니어링 부츠가 아닌 일반 등반용 마운티니어링 부츠를 선택해서 가져갔다. 발목이 고정되지 않고 흐물거리는 신발로 무거운 짐과 썰매를 함께하여 다운힐을 하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는데, 보겐자세로 직활강을 하려고 해도 썰매가 곧장 나를 앞서 내려가 방향전환이 쉽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을 넘어지고 방법을 찾아 헤매다 이번에는 안되겠다 싶어 썰매에 스키를 매달고 걸어서 하산을 했다.

 스키로 잘만 내려가는 외국팀들은 부츠도 다르거니와 짐의 양, 무게의 배분, 몸과 썰매의 결속 방법 등이 달랐다. 무거운 짐은 최대한 배낭에 다 넣고, 썰매와 몸의 이음매는 얇은 파이프같은 것으로 몸에서 일정한 거리로 이격되지 않게 고정하는 것을 보았다. 다시 간다면 그들의 방법처럼 효율적인 준비를 하고 다운용 스키 부츠를 하나 더 챙겨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의 아쉬움도 있고, 정상 등정에는 관심도 없이 그저 그 아름다운 설경에서 스키를 즐기러 올라온 많은 팀들을 보고 저렇게 놀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직접 경험을 해보니 심설이 있는 원정 등반에 스키를 접목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팀들의 원정 영상으로만 볼 때는 체감되지 않던 부분들이 확 와닿았다.

 우선 발이 빠지지 않아 체력소모가 덜하고 대상지에 어프로치 할 때와 하산할 때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어 날씨 변화가 심한 대상지에서 시간 적으로 안전하게 등반을 빨리 마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휴가를 오래 못내고 원정기간을 짧게 잡아서 나갈 수 밖에 없는 제한적인 우리 실정에서 대상지의 폭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스키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눈에 덮혀 보이지 않는 히든 크레바스를 지나가는 데 유리하다. 발이 빠지는 정도의 폭은 그냥 안전하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단점이라고 하면 입문하는데 장비가 비싸고 배우는 데 드는 품도 만만치 않다는 점, 짐을 꾸릴 때 좀 불편해진다는 점 등이 있겠다.

 그 정도의 단점은 충분히 감수할만하다는 생각에 스키를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비의 진입장벽도 높거니와 경험이 부족해 내게 적합한 장비가 어떤지 판단할 수 없어 고심하던 와중에 대학산악부 선배인 경희대 박영식 선배가 안쓰는 투어링스키 세트를 빌려주셨다.   부츠가 내 발에 딱 맞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내 장비를 갖추지 못해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다음 해 겨울 19-20 시즌에 한국산악회 백컨트리 교육에 참가하면서 최희돈 선배를 만나게 되고 좀 더 배우게 되었다. 이후 20년, 21년, 23년의 3년에 걸쳐 시즌권을 사고 업힐도 종종하면서 폭설이 오면 국내 투어링을 몇 차례 나가기도 하면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시즌도 짧고 내가 몸치라서 그런지 실력이 쉽게 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연설에서의 다운 힐을 맛보려 떠난 울릉도행

 스키는 30년을 타도 제자리 걸음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거니와, 계속 혼자 타다 보면 안 좋은 습관이 몸에 베일 것 같아 이번 시즌에는 큰 마음 먹고 투자해 시즌 강습을 받았다. 그리고 캐나다 원정, 또 앞으로의 원정에 스키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꿈꾸고 있기에 조금 더 진지하게 연습에 임했다. 그러던 중 조금 감을 잡은 것 같아 자연설에서의 다운 힐을 한 번 맛보고 싶던 찰나, 울릉도에 살고 계시는 최희돈 선배가 울릉도 스키 투어링 일정을 잡아주셔서 참가하게 되었다. 아직 내게 맞는 장비를 갖추지 못했고, 울릉도는 스키 실력과 경험이 수준급이 아니면 다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사실 겁이 낫지만 경험은 해봐야 더 빨리 늘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횡계에 장비들이 있기에 나는 전날까지 스키를 타다가 저녁에 일행과 합류했다. 스키를 오래 타셨다는 조성일 선배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 후 최희돈 선배 차로 포항으로 이동했다. 크루즈 배를 처음 타봤는데 마치 해외여행을 나가는 것처럼 설렜다. 처음으로 가보는 울릉도이고 자칭 별산사진가 이기도 해서 욕심을 내 촬영 장비를 잔뜩 챙기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DSLR 2대, 삼각대 2대, 렌즈 여러 개. 원정을 나갈 때도 이렇게 챙기기는 한다. 마침 이제 막 새벽에 은하수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즌인데 오징어잡이 배가 없는 때라 한 장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담으로 소개를 덧붙이자면 나는 산도 좋아하지만 사실 별이 먼저였다. 어릴 적부터 천문학자를 꿈꿔왔고, 천문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타라(TARA)라는 천문교육업체를 운영하며 천문학의 대중화, 별 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타라는 네팔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히말라야를 좋아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경험한 이야기들을 위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 폭설이 왔을 때 보통 사람들이 가기 힘들고 산악스키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촬영을 더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편안한 크루즈에서 조성일 선배님이 챙겨주신 향 좋은 와인을 마시고 스키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다 일찍 잠이 든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멀리 울릉도가 보이고 산머리에는 눈이 아직 남아 있음에 안도한다. 근래에 날이 따뜻해 눈이 다 녹아 스키를 못 타고 워킹만 하다 올까 염려했지만 성인봉이 꽤 높아서 그런지 아래와는 다른 세상 같았다. 사동항으로 들어가 최희돈 선배 집인 천부로 이동한다. 차로 움직이는 동안 벌써부터 풍경들이 멋지다. 도착하고나서 내가 가진 얇은 투어링 스키로는 힘들거라고 폭이 넓은 스키를 빌려주셨다. 부츠에 장비를 맞추고 준비를 한 뒤 오징어 내장탕으로 식사를 하고 10시쯤 출발했다.

 ‘안평전’이라는 곳에서 등산로를 따라 출발했는데 시작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았다. 설악산 오색코스보다 가파른 느낌이었다. 쉬엄쉬엄 두 세시간 가량 걸어 올라갔고 마지막 한시간 가량을 스키로 올라가 성인봉에 도착했다. 날은 따뜻했지만 시야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정상 근처에는 1m가량 적설 된 눈이 남아 있었는데 한 달 전쯤 내린 눈이어서 푸석푸석 했다. 함께 입도했던 다른 산악스키 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행동식으로 요기 한 뒤 다운힐을 시작했다.

용평에서 최상급코스인 ‘레드’와 견주는 급경사

 그동안 타왔던 스키에 익숙한 나는 길어진 스키로 나무 사이를 지나갈 수 있을까 초장부터 겁에 질렸다. 심리적인 경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용평에서 최상급코스인 ‘레드’정도 되어 보였다. 그래도 사이드 슬립은 조금 익숙해져 있었기에 어떻게든 내려는 가겠지 싶었다. 쫄아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턴을 한번 시도해보는데 눈이 녹아 죽죽 미끄러지며 슬러쉬처럼 스키를 붙잡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도 넘어지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넘어져 버린다. 슬로프에서 타던 것처럼 내 마음대로 조작이 안 되니 더욱 겁먹어 들어가고 자세나 기술은 온데간데 없이 생존모드로 바뀐다. 아무튼 나무에만 박지 말자. 절대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턴을 시도해볼까, 그냥 사이드 슬립으로 내려갈까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대부분을 슬립으로 내려왔다.

 선배님들은 망설이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 주셨지만 함께하는 팀으로 각자 귀한 시간을 내주신 건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죄송했다. 애꿎은 장비 탓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장비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어 핑계 댈 수도 없다. 물론 심리적인 부분이 크기는 했지만 아직은 내가 여기에서 스키로 다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걸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시즌에 정말 열심히 탔지만 스키장에서 정설된 사면과 야생은 철저히 달랐다. 두 시간 가량 걸려 하산하고 든 생각은 휴 살았다, 근데 내일은 어떻하지 였다.

 아무것도 못하고 내려온 무력감에 상심이 컸지만 배는 배대로 고팠다. 최희돈 선배가 사와서 직접 요리해주신 밀복찜에 식당에서 챙겨주신 전호나물을 곁들어 울릉도 향이 풍기는 저녁식사를 했다.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이라 껍질을 남겼다가 그 맛있는 걸 왜 남기냐고 혼나기도 했다. 사실 복보다 전호나물이 더 맛있었는데, 나물 반찬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울릉도에서 이 시기에서만 맛볼 수 있다고 하는 전호나물은 울릉도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눈 속에서 여린 순이 올라와 울릉도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전도사라고 한다.

 다음날 눈이 조금 온다는 소식에 제발 신설이 많이 오기를 기대하며 약간의 음주 수면제와 함께 깊은 잠에 든다. 힘들게 챙겨온 촬영 장비는 흐림 예보덕에(?) 꺼낼 일이 없었고, 고단한 하루에 심신이 지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맑았으면 새벽3~4시에 일어나서 촬영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2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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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4박 5일

3명 (조성일 세종대OB, 최희돈 한국산악회, 김기현 문리대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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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0 (사진 1장) (2.28) 막걸리 와인 건파인애플

- 19:00 횡계 출발

- 11:30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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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3.1)

거리: 7.88km, 소요 시간: 6시간, 평균 기온: 8도

- 07:00 입도

- 10:00 출발

- 14:00 성인봉

- 16:00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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