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용의 티롤 알프스

글•사진 임덕용 EU주재기자 

홀로 살던 여인은 엄지 손가락 만한 아이라도 좋으니까 달라고 했다. 여인은 마법사를 찾아가 씨앗을 얻어 화분에 심었더니 튤립 꽃봉오리 속에서 키가 엄지손가락 정도로 작고 예쁜 소녀가 태어났다. 소녀는 키가 엄지손가락만큼 작고 예쁘기 때문에 엄지공주라고 불렸고 딸처럼 길렀다.

엄지공주는 아버지 두꺼비에게 납치를 당해 두꺼비 아들의 청혼을 받지만 물고기와 나비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풍뎅이가 엄지공주를 낚아챘고,  혼자 남아 길을 헤매다 들쥐 할머니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엄지공주는 쓰러진 제비를 발견해 돌봐준 덕분에 건강해진 제비는 함께 남쪽 나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엄지공주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 준 들쥐 할머니를 두고 갈 수가 없어 거절했다.

이웃인 부자 두더지가 찾아와 엄지공주에게 청혼을 했지만 결혼하고 싶지 않아 슬퍼하며 웨딩 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때 엄지공주가 구해준 제비가 나타나 엄지공주를 등에 태우고는 꽃의 나라로 데리고 갔다. 꽃의 나라에 도착한 엄지공주는 자신과 똑같은 키의 왕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며, 날개와 '마이아'라는 새 이름도 갖게 되었다.

엄지는 최고를 의미한다. 검지는 주변에는 감사할 것들을 가리키면서 셀 수도 있으며, 중지는 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손의 중심이다. 약지는 약함을 나타낸다. 소지 새끼손가락은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 (가족, 친구,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할 수 있다.

클라이머들은 로프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벽의 중간 확보 점에서 재회와 이별을 계속하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중력을 무시하고 오르기를 좋아하는 동물들이다. 그러한 클라이밍은 발의 힘으로 70% 이상을, 손으로 30% 미만의 힘과 균형을 유지하며 올라야 가장 이상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주변 풍광이 뛰어나고 평소 등반했던 벽과는 완벽하게 다른 차원의 벽으로, 제 4 차원의 세계에서 등반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면 남 티롤 알프스와 돌로미티가 만나는 경계선의 벽 셀라 삿쏘룽고의 침 봉 “엄지 손가락”을 올라보아라.

처음 생각했던 벽으로의 어프로치와 벽 상태 그리고 매 마디마다 서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루트는 미로 속의 마법에 빠지는 것 같다. 특히 수시로 바뀌는 경치는 말로 표현이 안되며 압도적인 벽과 침 봉 사이에서 클라이밍 오르가즘을 만끽할 수 있다.

돌로미티의 거인과 산악 역사를 탐구하는 루트, 푼타 델레 친퀘 디타 삿쏘룽고 (Punta delle Cinque Dita del Sassolungo)

전설에 의하면 삿쏘룽고는 거대한 거인이었고 좀 도둑이 아니라 어떤 산적보다 크고 험악했는데 하느님께 죄를 지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땅속 깊이 박혀버렸다고 한다.

한 번 받은 벌은 몸의 반 이상이 땅 속 지하로 가라앉도록 선고 받아 평생을 몸의 반 이상을 땅속에 집에 넣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악당의 꼭대기(하늘을 향해 치솟는 1킬로미터 이상의 바위 기록)와 그 손의 손가락뿐이다. 마귀의 발톱 같은 손가락 끝을 올려다 보는 것만 해도 클라이머의 온 몸에는 오르가즘이 생긴다. 가벼운 흥분, 잠시 후 벌어질 새로운 등반 세계. 그래 이제 그를 올라가 보자.

Sassolungo의 손가락을 찾아 가는 법은 매우 쉽다. 빳쏘 셀라 Passo Sella에 주차를 하자 마자 2인승 미니 곤돌라로 편안하게 갈 수 있다. 운동 삼아 다리 근육을 늘리고 싶고 더 힘들게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오른다면 바로 걷는 자의 머리 위로 미끄러져 올라가는 곤돌라를 보며 내가 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후회하게 된다.

1시간 이상 걸어서 오를 수 있는 가장 급한 협곡을 오르면 다섯 손가락의 엄지 손가락 사이에 거의 짓눌려 있는 데메츠 산장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순식간에 거인의 손가락 사이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돌의 왕국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등반 루트는 홀드에 너무 인색하지 않고 단단한 바위에 허공에 매달린 등반의 기쁨에 대해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그곳으로 모험을 떠난 두려움 없는 초등자들의 개척 정신에 대해 놀라게 되었다.

1890년 8월 8일, 20세의 비엔나 화가 로버트 한스 슈미트와 50세의 티롤리안 시계 공 요한 산트너는 처음으로 가느다란 꼭대기에 올라서며 온 몸에 전해주는 강렬한 진동과 현기증을 느꼈다. 133년 전, 당시 초라하고 형편없는 장비와 의복을 입고 어떻게 이 침봉의 연속을 직벽과 오버행 그리고 또아리치고 있는 뱀처럼 구불 구불 벽 사이를 돌면서 루트 화인딩을 하고 올랐을까? 그저 경이로움과 그들의 용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들은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첫 도전자로 역사에 남는다.

72세의 돌로미티 경험이 풍부한 산 그림 화가 에른스트 뮐러와 내가 가장 애용하는 포르도이 호텔 사장 아들인 세바스티안(스키 선생과 코치)과 팀을 만들어 133년 뒤로 돌아갔다. 산장까지 쉬운 접근을 위해 2인승 미니 곤돌라는 두 사람이 껴 안고 타야 할 정도로 좁고 서서 가야 한다. 꼴 바람이 강해 다른 곤돌라와 다르게 관 모양의 캡슐처럼 만들었다. 타고 내리기가 마치 공수부대원들처럼 곤돌라의 문 손잡이를 잡고 뛰어 올라타고 뛰어 내려야 했다.

산장에서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며 장비 점검을 했다. 가장 먼저 출발하는 곤돌라를 타고 왔지만 이미 2팀이 벽에 붙어 있었다. 가장 먼저 오르기 위해 곤돌라 출발 시간 보다 최소 1시간 30분 전에는 걸어서 올라온 것 같다. 출발 당시 기온은 조금 쌀쌀했지만 햇빛이 충분해서 오늘 등반을 축해해 주었다. 에른스트가 먼저 4마디를 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선등을 세바스티안이 섰다. 하드프리는 잘하지만 멀티 등반 경험이 거의 없는 그는 나에게 벽 등반과 빙벽 등반을 배우고 있었기에 비교적 쉬운 루트라 그에게 루트 화인딩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출발하자 마자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어 버렸다. 두 노친들이 보기에는 루트를 벗어나 너무 어려운 곳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입이 간질간질한 에른스트를 툭 쳐서 아무 말 못하게 했다. 세바스티안은 거의 12m를 오르며 오버행에 이미 후렌드 2개를 설치했고 3번째 후렌드를 설치할 크랙을 찾고 있었다. 당황해 하는 모습이 로프로 전달되었다. 5분 이상 그가 멈칫거리는 것을 즐기던 내가 입을 열어야 했다. 더 이상 두면 위험했다.

“세비 그만 내려와, 꼭 내가 선등해야 하나?”

“루트가 이상한 것 같아”

“아니야 루트는 바로 네가 있는 옆 3m인데 왜 어려운 곳만 골라서 가지, 더 이상 올라가면 확보 보는 내가 위험해지니 천천히 클라이밍 다운해,”

그가 다시 3m 이동 후 매우 쉬운 루트를 오르자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가 우리를 보며 소리쳤다.

“베끼오 루뽀 에 미오 마에스트로 Vecchio lupo e mio maestro. (내 선생은 늙은 늑대이다)” 매우 긴장하던 두 늙은 늑대는 이제야 마음이 편해졌고 젊은 늑대는 힘차게 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이 거세졌다. 자켓을 모두 껴 입고 털 모자도 썼으나 손과 발이 시려졌다. 300m가 넘는 수많은 침봉의 칼날 같은 칸테를 바꿔가며 오르는 재미보다 온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에 등반의 즐거움이 모두 얼어버렸고 거세고 날카로운 칼 바람에 우리가 모두 사라질 것 같은 첫 봄 맞이 등반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하늘 가득한 풍선처럼 많지만

조그마한 나의 소망으로 건강하세요

마지막으로 혼자 부르고 있는 이 노래는

다섯 손가락 시절 같진 않지만

노래하는 나의 마음처럼 행복하세요

어느 날인가 내가 만들고 부른 노래들이

기억 속에서 흩어지고 말겠지

바람 부는 어느 날인가에 사라지겠지

바람 부는 어느 날인가에 사라지겠지

(가수; 다섯 손가락, 앨범; 골든 다섯 손가락)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