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일의 산행 에세이 _ 강화도 마니산

중중첩첩 암릉 품은 하늘과 땅의 야누스 영산

 

글 사진 · 배두일 편집위원

 

설악산 하면 굽이굽이 기암절벽이 나한진을 펴는 천불동 계곡이며 구불구불 드높은 능선이 천상의 성곽으로 넘실거리는 서북주릉이 백미로 꼽히건만, 으레 가풀막진 된비알과 지겨운 계단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번번이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직등하는 지름길을 택해 올랐던 지난날 탓이다. 난간을 붙들지 않으면 굴러떨어질 수직 계단의 사다리병창에서 치를 떨고도 치악산을 찾게 되니, 꿩 가족이 머리를 터뜨려 가며 종을 울림으로 보은한 상원사로 올랐던 웅숭깊은 골짜기를 잊지 못해서다.

조삼모사(朝三暮四)란 옛말이 엎치나 메치나 마찬가지인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희롱이지만, 산에서는 같은 코스일지언정 아침에 어디로 오르냐에 따라 산행의 맛깔과 산의 인상이 천양지차로 달라지는 거다.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과 만년설 곡빙하

멀지 않은 강화도의 마니산(摩尼山·472m)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음을 문득 떠올리고는, 산에서 막 걸음발 탈 무렵에 산악회를 따라 두어 번 나섰다가 등산객과 관광객이 뒤섞여 정상까지 꼬리를 무는 행렬 속에서 정신 줄을 놓친 후유증이지 싶었다. 하산 때 타고 넘었던 암릉이 그나마 눈앞에 사물거려, 거꾸로 오르는 조사모삼(朝四暮三)의 산행이라면 새로운 마니산을 만나지 않을까 했다.

줄느런히 껑충한 목련 나무들을 올려다보다가 몽실몽실한 겨울눈 사이로 멀리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이 환히 빛나 밤새 눈이 내렸나 하며 꺄웃했다. 기나긴 바위 능선이 들머리서부터 보일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데다가, 아침 햇살이 암릉을 설릉처럼 눈부시게 되비추어, 놀란 가슴이 목련 꽃눈으로 부푼다. 다부지게 놀리던 발길도 잠시, 이번엔 땅에서 빛나는 하얀 빛줄기 앞에 멈추어, 꽝꽝 얼어붙은 계곡을 휘둥그레 바라본다.

골골이 물길을 모을 만큼 고도가 높지 않고 촉촉이 물기를 품을 흙도 많지 않은 바위투성이거늘, 땅속에서 물이 솟아 흐르는지 빙판은 운동장처럼 넓고 끝이 안 보이도록 길다. 여느 얼음 계곡은 돌멩이와 바윗덩이들로 울툭불툭한데, 어디 한군데 불거진 곳 없이 빤빤하기 그지없어, 행여 누군가 꼭대기에서 호기심으로 얼쩡거리다가 삐끗하면 총알로 날아내리것다. 여름철엔 물줄기가 구름자락처럼 날릴 널펀펀한 통반석이 온통 계곡 바닥에 깔려, 만년설의 골짜기를 휘도는 곡빙하 같은 장관을 펼쳤다.

얼음판 한복판에 거뭇거뭇 어룽진 무늬가 꼭 팔다리를 벌리고 선 사람 모양이라 한껏 눈심지를 돋우자 하늘 천(天) 자가 전서체(篆書體)로 새겨졌고, 그 위로도 얼비치는 글자들을 찬찬히 톺아보자 못내 궁금하던 함허동천(涵虛洞天)이 우련히 떠오른다. 혹 전하기로는 이 능선 너머의 정수사에 주석하던 고승 함허대사가 고향서 찾아온 아내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망치질했다지만, 그거야 일삼아 수군숙덕대는 중생의 뭇소리일 터이다. 

조선 건국의 신진 사대부들이 삼엄한 억불숭유(抑佛崇儒)를 휘두를 때, 무학대사의 제자로서 의연히 유불도(儒佛道) 삼교합일론으로 확연대공(廓然大公)의 이치를 설파한 함허당이 아닌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함허동천에는 따따부따하는 시비질을 넘어 허허공공(虛虛空空)을 염원한 그의 마음을 새겼음이 분명하다.

 

일망무제 서해 장관 펼쳐지는 용의 등줄기

짱짱한 얼음 계곡을 뒤로하고 산등성으로 한참 오르다 걸음을 멈추고서, 두 손을 옴짝옴짝 구무럭거리고 마주 대어 주물럭거린다. 장갑을 끼었는데도 손가락 끝이 아려 금방 터질 것만 같으니, 아무래도 1km가 넘는 골빙하가 내뿜는 한기의 위력이다. 골짜기에 가득 앙상한 가지들을 펼친 나목들은 봄여름엔 축축한 물기가 더없이 좋았겠으나 이 겨울엔 얇은 나무껍질만으로 어찌 견딜까. 길바닥에 나뒹구는 나무초리며 생나무에 붙어 있는 삭정이가 바로 칼날 냉기에 얼어 부르튼 끝에 고사한 건 아닐까.

나뭇잎 하나 없는 산등성에는 투명한 얼음장처럼 시리고도 따스한 겨울 볕이 에누리 없이 담뿍담뿍 얹히고, 조망 또한 사면팔방 어디로든 거리낌 없이 열리매, 가을이 제철인 줄 알았던 능선은 겨울도 그에 못지않다. 서해 하늬바람의 대가를 치를 각오가 넉넉히 돼 있건만 오늘은 그마저 조용한 데다, 간간이 늘 푸르른 고송까지 운치를 더하여 감격무지할 따름이다.

산길 복판에서 거북을 빼닮은 큼직한 바위가 무슨 눈짓을 하는가 싶은즉 옳아, 고래 등 같은 암릉이 거북이를 따라 능선 위로 허옇게 떠오른다. 바위틈에 사지를 비비적거리고 몇 걸음 줄타기 몸짓으로 되똥대며 우뚝한 암봉에 올라서자, 서해의 장관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늘 북적대던 나라의 관문 영종도가 코로나 환란 탓에 옆으로 점점한 신도, 시도, 모도를 말줄임표 삼아 적적하고, 기다란 장봉도가 잔잔한 서해에 물결표를 긋는다.

봉도가 잔잔한 서해에 물결표를 긋는다. 산자락의 여차리, 동막리, 동검리 해변과 섬 사이로 막 썰물이 져 드넓은 개펄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천연기념물 419호로 여의도의 52.7배나 되는 ‘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가 아닌가. 주걱 모양의 부리를 가로저어 물속 먹이를 찾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저어새는 모두 5천여 마리 가운데 번식 쌍 90%가 이 일대에서 새끼치기한다므로, 여기 갯벌은 인간과 생물을 아우르는 지구 생태의 한 축이다.

이제 가야 할 능선을 향해 몸을 돌린 순간, 머릿속에 어른댔던 암릉의 기억이 얼토당토않게 초라했음을 자조할 겨를도 없이, 만리장성이 창공으로 용사비등(龍蛇飛騰)하는 바윗줄기의 장관에 넋을 놓는다. 둥글넓적한 돌들이 켜켜이 겹치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겹겹이 접친 암릉은 승천하는 용틀임 따라 낱낱의 용 비늘이 뜰썩뜰썩하는 듯하다. 눈길로도 이루 다 더듬을 수 없이 포갬포갬 두두룩한 저 바위들을 어찌 넘을까 간을 졸이면서도, 까칫하고 듬직한 감촉이 손끝에 그닐그닐하여 마냥 설렌다.

 

야누스의 달에 오른 두 얼굴의 산

산은 흔히 덕유산, 포천 백운산, 민둥산, 가리왕산 같은 부드러운 흙산이거나 용화산, 동악산, 황정산처럼 흙산과 골산이 어우러지고 더러는 팔영산, 홍천 팔봉산, 용봉산같이 능선이 온통 골산일 때도 있으나 마니산에서 보듯 정상의 이쪽과 저쪽이 암릉과 흙길로 딴 세상인 듯 다른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앞뒤로 상반되는 두 모습을 지님을 일러 야누스라고 하거니와, 표리부동한 두 얼굴의 위선자라는 오명과는 달리 로마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문(門)의 신이었다. 누구든 무엇이든 문을 통하지 않고 들고 날 수 없기에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초를 주관하며 안과 밖, 시작과 끝, 젊음과 늙음, 과거와 미래, 전쟁과 평화를 함께 상징하는 ‘신들의 신’으로 통한다. 새해 첫 달에 마니산을 오르게 된 게 어쩌다이긴 해도 ‘야누스의 달(January)’임을 생각하면 새로운 다짐의 여정으로 더없이 맞춤하다.

돌부리에 걸채이고 바위짬에 끼이더라도 한 땀 한 땀 암릉을 넘다 보면 마침내 다다를 꼭대기에는, 하늘 문을 열어 이 땅에 나라를 세운 단군이 제를 올린 참성단(塹星壇)이 기다린다. 탑 꼭대기의 보주(寶珠)를 일컫는 영산 마니산은 백두와 한라의 중간에서 모두를 보듬는 머리요 야누스인즉 그 앞에 서거들랑 상하, 좌우, 남녀, 남북이 뭉켜 어우러질 영검을 내리시길 기원함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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