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예술_충북 괴산 외진 산속에 사는 김용규

 

숲에서 옷 갈아입기

글 | 박원식 사진 | 주민욱 기자

 

산중의 겨울은 깊고 적막하다. 내린 눈 위로 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봉긋하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을 밟으며 숲길을 걸어 오른다. 때론 비탈길에서 몸이 기역자로 꺾인다. 숨을 몰아쉬며 멈춰 돌아보면 사방으로 뻗은 은빛 능선이 눈부시다. 순결한 풍광이다.

눈 속에 푹 파묻힌 집 한 채가 보인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았던 김용규가 홀로 살아가는 집이다. ‘백오산방(白烏山房)’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백오’란 흰 까마귀. 이 산중을 처음 찾아들었을 때 김용규는 허공을 나는 흰 까마귀를 보았고, 그 흔치 않은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당호를 지어 붙였다.

상서로운 새라는 흰 까마귀의 후원을 받아서였을까. 산에 살면서 김용규의 인생은 크게 변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았고, 그걸 기화로 자신의 삶을 들어올렸다. 도시를 떠돌던 맹수이거나 고독한 여행자였던 그는 이젠 농부이자 글쟁이이자 청중을 불러 모으는 강연자로 바뀌었다. 이를 일러 변신이라 하나.

그가 서울을 떠나 이 후미진 산골짝으로 들어온 건 8년 전이었다. 서울을 탈출한 까닭은 나날이 반복되는 진부한 일상에 문득 참을 수 없는 신물을 느낀 탓이었다. 그는 썩 유능한 직장인이었다. 벤처회사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따라서 술자리가 많았다. 비즈니스를 위해 마시기 싫어도 들입다 마셔야 했다. 어느 날부턴가 그게 고역스러웠다고 한다. 이게 뭔가, 내가 왜 이렇게 사나, 그런 회의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밤낮 없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의 얘길 들어볼까.

“술 먹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접대를 위해 분 냄새 풍기는 여자들을 돈으로 사는 일도 불편했어요. 곰곰 생각한 결과 제가 근원적으로 도시와 맞질 않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도시와 불화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저 자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누군지는 알아야겠다, 그런 생각였어요. 해서, 저의 기질이나 성격, 이런 걸 파고들어 봤는데요, 제가 원래 내향적인 사람이건만 훈련된 외향성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내게 맞지 앉는 옷을 입고 살았던 거죠. 학창 시절이나 회사 일에서 항상 뭔가를 주도했지만, 그게 본질적으로 제게 맞질 앉았던 거예요. 저는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하고 혼자 가만히 앉아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삶을 통째 바꿔야 했어요.”

“살아온 습관이나 체계를 서둘러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방황의 시간이 길었습니다. 제가 원래 범생이에요. 몹시 반듯한 사람이죠. 그런데 반항하고 싶어졌어요. 식당 문에 ‘미시오!’라 쓰인 걸 보면 무조건 당겼고, 들어가지 말라는 잔디밭을 기어이 들어가는 식으로. 그러니까 어린애 같은 반항기, 사춘기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죠. 그게 즐겁던데요. 서른아홉 살쯤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기도 했어요(웃음). 자유란 걸 맛보았죠.”

“그 자유를 맛본 끝에 산골행을?”

“산에 살기로 작정한 건 산과 많이 만나면서였습니다. 내게 맞지 않는 세상의 옷을 발기발기 찢으리라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반항을 하는 한편 서울 근교의 산을 수시로 올랐어요. 혼자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가장 좋아했던 산이 수락산인데, 어느 날 바위를 뚫고 자라는 소나무를 바라보다가 심한 유혹을 느꼈습니다. 저 소나무처럼 나도 나답게 살리라, 나무도 하는데 사람인 내가 못하랴, 할 수 있다, 그런 결단이 섰어요. 실로 숲이 좋아졌고 말이죠. 그때부터 숲이 뭘까, 산이 뭘까, 자연이란 뭘까, 책과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했죠. 이후 회사를 떠나 2006년 겨울에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곳 산자락을 적지로 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군요. 무척 험하고 가파른 산마루지만.”

“원래 홍천쪽을 마음에 두고 1년쯤 누비고 다니다가 이곳의 정보를 듣고 답사차 찾아왔었죠. 산이 쏟아질 듯 너무 험하다고들 말했어요. 경운기가 겨우 들어가는 길이 있을 뿐 온통 가시덤불이었고…. 그런데 제겐 첫눈에 느낌이 좋았어요. 이후 반년에 걸쳐 세 개의 계절을 경유하며 이곳을 거듭 찾아 산에게 물었어요. 산아, 나를 받아들여 주겠느냐? 지극히 사적인 체험이지만, 남들은 미친 소리라 하겠지만, 어느 날 드디어 산이 나를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숲의 음성이랄까, 그런 걸 들었어요.”

“산의 소리를 듣는 귀. 놀라워요. 터를 장만하고 처음 한 일은 집짓기였겠어요?”

“거의 오두막에 가까운 집이지만 2년이 걸렸습니다. 손수 지었으니까요. 전기를 끌어오는 데 1년, 길을 내는 데 다시 1년이 걸렸고요.”

 

 

‘변화’가 아니라 ‘변신’을

시간은 붕어처럼 허공에서 뻐끔거리고, 삶은 고달프거나 지루하다. 그렇다면 이 수족관을 벗어나는 게 상책일 텐데 김용규는 마침내 산으로 삶을 옮겼다. 소박해서 더욱 폼이 나는 집을 지었다. 이젠 신바람 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며, 세상의 문법을 따르지 않아도 될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산중에서도 먹어야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밥을 버는 일의 수고를 면제받을 길은 없다.

“일단 집은 지었으나 생활이 막막하더라고요. 아내를 회유하고 설득하고 협박했죠.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해서 전세로 옮겨 아내와 딸을 거기에 살도록 하고 저 혼자 산골살이를 시작했어요. 도시를 떠나기 싫어하는 아내에게, 당신은 서울에 살아라, 난 이제 산골농부로서 창의적으로 생산하는 삶을 살겠다, 그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산비탈을 일궈 농사를 시작했죠. 감나무 매실나무 호두나무를 심었고, 토종벌 농사도 했어요.”

“그것들로 생활이 되던가요? 농사처럼 힘든 게 없다 하는데.”

“농업마이스터대학을 다니며 농사를 배웠어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죄짓지 않을 수 있는 직업이 농업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엔 유기농 농사를 하기 위해 다년생 유실수들을 주로 심었어요. 그러나 이건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10년은 흘러야 합니다. 답답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단기에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토종꿀을 시작했는데 첫해부터 수확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생산한 농작물을 돈으로만 사려는 사람들에겐 팔지 않았어요. 꿀 한 숟갈에 담긴 꿀벌들의 노고와 수백만 송이 꽃들의 향기를 함께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꿀을 팔았죠. 꿀 농사를 하며 자연과 생태, 작은 생명들에 관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아쉽게도 두어 해 전, 전염병이 돌아 벌들이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마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어렵지 않았나요?”

“도시인들이 흔히 돈만 있으면 시골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산일 겁니다. 시골에 들어왔으면 부지런히 이웃 분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저는 이곳에 이사 오기 전 반년쯤을 마을 분들과 사귀며 지냈어요. 이장님을 찾아뵙고 막걸리를 같이 나누며 시골 물정을 공부했고 농사를 배웠어요. 정착단계에선 손해보고 사는 게 상책입니다. 스며들기라 할까, 그게 가장 훌륭한 전략이죠. 나비가 나뭇잎에 앉아 색깔을 바꾸는 건 ‘변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건 ‘변신’입니다. 시골에, 자연에 살고자 한다면 ‘변신’이 필요해요. 마을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물음으로써 스며들어야 합니다.”

“숲에 관한 책을 두 권 쓰셨더군요. ‘숲에게 길을 묻다’와 ‘숲에서 온 편지’.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나요?”

“‘숲에게 길을 묻다’는 자연과 생명이, 숲이 제게 준 가르침을 써낸 책입니다. ‘숲에서 온 편지’는 삭막함 가득한 숲 밖의 세상에 보내는 편지고요. 산에 사는 저의 삶은 본래의 제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에요. 숲속에 살며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면서 온전히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러한 저의 경험을 기록한 글들로 불안과 절망, 상처와 통증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싶더라고요.”

“‘여우숲 숲학교’는 무슨 일을 하나요?”

“관의 지원을 받아 만든 농촌 공동사업체입니다. 마을분들과 함께 운영하는 숲체험학교죠. 제가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창기이지만 향후 수익이 발생하도록 해 주민들에게 배당도 하고 장학기금도 조성할 작정이에요. 저 개인으로 말하자면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숲학교를 통해 숲과 자연에 관한 저의 사유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이고요. 강연활동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강연은 주로 누구를 상대로 어떤 얘기들을 하시나요?”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부터 유치원 아이들까지 대상은 다양합니다. 최근엔 기업들이 저를 많이 불러줍니다. 기업들이 개인의 창의력에서 경쟁력을 찾고자하는데, 인문학 열풍은 그 조짐이겠죠. 저는 인문학을 뛰어넘는 생명의 열풍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요. 자연생태 안에 벌어지는 경쟁, 조화, 상생, 말하자면 피어나는 꽃 한 송이조차 열망으로 읽어내는 시각이 대단히 중요하고 재미있으니까요."

 

 

게으른 사람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산중에 들어온 김용규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책을 쓰면서 부르는 곳이 많아졌고, 찾아오는 사람도 불어났다. 작년엔 너무 바빠서 손수 숲에서 얻어다 아궁이에 지피던 장작을 외부에서 사다가 썼다. 인생은 너무 한가하면 수상한 생각이 몰래 생기고, 너무 바쁘면 내가 나의 진상을 대면할 기회를 놓칠 수가 있다. 그런데, 김용규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한다. 부지런을 떨 이유가 없다는 거다.

“제가 굉장히 게으릅니다. 급할 게 없어요. 사흘씩 세수를 하지 않고 지내기도 해요. 그렇게 살아도 불편할 게 없더라고요. 애당초 불편을 즐겁게 누리자고 산에 들어온 것이라서.”

“일상의 형식이 크게 변한만큼 생각과 관점도 많은 변화가 왔겠어요.”

“가치 체계를 바꾸게 됐죠. 도시가 주입한 가치, 세상이 입혀준 옷으로 나와 남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또, 미래를 잘 살자고 오늘을 죽이지 않고자 해요. 나답지 않은 걸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 그 무엇보다 이 숲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습니다. 무수히 많은 생명의 와중에 내가 끼어 산다는 것, 내가 밟고 다니는 폭이 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요즘 멧돼지 문제가 심각하지만 사실 숲은 멧돼지의 땅입니다. 우리가 동물들의 터전을 많이 훼손했다는 반성과 공존하는 태도가 필요하겠죠.”

“숲을 가만히 바라볼 때 당신의 마음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나요?”

“숲속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외부와 내가 사라지고, 몸과 영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더라고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해야 할까, 우주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뭔가 환하게 열린 상태. 사람들은 이걸 명상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나를 따라가 나를 자각하게 됩니다. 이건 아주 놀라운 경험이죠.”

“긴긴 겨울밤을 홀로 맞이하고 홀로 잠드는 일이 때로 쓸쓸할 텐데….”

“밤에 들려오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아주 좋습니다. 고라니 소리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을 흉내 내 소리쳐보기도 하고, 늑대처럼 포효하며 울기도 하고, 달이 뜨면 달빛에 젖고, 비 지나가면 그저 서글픔에 잠기기도 하고, 그렇게 삽니다.”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스테판 히딩이 지은 ‘지구의 노래’. 자연을 단순히 스포츠나 자원 활용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만나는 장소로 새롭게 보게 하는 책이죠. 아, 지구에 사는 생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놀랍구나, 우리가 잘못 살고 있구나, 그런 감명을 받았어요.”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은?”

“저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저처럼 생각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이웃도 함께 돌아보고, 소외된 사람들이나 마이너리티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요. 아직 어떤 수준엔 이루지 못했더라도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들이 참 좋습니다. 가장 불편한 사람들은 땅값을 물어보는 사람들이고요(웃음).”

“그런 이들에겐 어떻게 응수하죠?”

“그냥 아무 대꾸 없이 돌아앉아 숫돌에 칼을 갑니다. 하하핫!”

삶은 때로 허깨비춤. 허영과 악습에서 조속히 벗어나는 게 옳을 터인데, 산속에 홀로 사는 김용규는 벗어나 도달할 만한 길 하나를 찾아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음인가? 그 나름의 활보가 산뜻하다. 버리는 게 얻는 비결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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