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검봉산자연휴양림

 

제3주차장~학바위~임도~정상~임도~산림문화휴양관 7km

과거와 현재, 미래 공존하는 ‘칼코딩이’숲은 임원(臨院)에 있다

모두 고생 많으셨다. 오월의 숲이 우거지기까지. 이제 일상의 전원을 잠시 끄시고, 저 놀랄만큼 아름다운 연초록 숲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다. 사람 떼와 자동차더미에 시달리며 줄곧 닳아빠지기만 해온 몸과 마음을 한 이틀쯤 숲속에 던져둬야 할 때다. 맑은 물소리로 찌든 귀 헹구고, 진한 흙내음에 막힌 콧구멍 열며, 흐려진 눈을 푸른 바람으로 씻어낼 일이다. 동해바다가 보이는 검봉산지연휴양림, 그곳에 나를 맡긴다.

 

전국의 산과 들판이 고루고루 푸르러지고 있는 오월이다. 세상에 막 얼굴을 내민, 연초록 여린 새순들이 뭉게뭉게 산을 덮어가고 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심산유곡 숲에 푹 파묻혔다 돌아오는 계획을 짜볼 만하다. 숲에는 도시생활에 찌든 심신을 다스려주는 힘이 있다.

그 편안한 휴식을 돕기 위해 공식으로 지정해놓은 숲이 바로 휴양림. 그 중 산림청에서 전형적인 해안형 자연휴양림으로 2008년 말 개장한 곳이 삼척시 원덕읍 소재 검봉산(劍峰山·681m))이다. 동해바다의 멋진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임원항에서 서쪽으로 불과 4킬로미터 거리에, 병풍처럼 둘러진 울창한 산림에 주위환경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 속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최근 조성된 만큼 세련되고 깨끗한 시설을 자랑한다. 어느 펜션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콘도형 숙박시설과 더불어 7킬로미터 길이의 등산로가 정비돼 있다. 1~2킬로미터 길이의 숲해설 코스와 오토캠핑장, 잔디마당, 산악자전거 코스도 마련돼 있다. 특히 산악자전거 코스는 임도를 따라 20킬로미터에 이른다.

전형적인 해안형 자연휴양림

“얼마 전에도 이용 문의 전화를 받았는데, 친절하게 시설현황부터 이것저것 한참을 설명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서울에서 몇 시간 거리냐고 묻길래, 한 4시간쯤 걸린다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이어진 물음은 “거기 춘천 검봉산 아니예요?”였다. 개장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심낙경(45세) 주사는 지금도 이런 전화를 종종 받는단다. 한자까지 같은 춘천 검봉산(530m)이 더 많이 알려진 탓이다.

그에 비하면 삼척 검봉산은 자연휴양림이 들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리며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사실 자연휴양림이 들어서기 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준령이 즐비한 강원도에서는 682미터의 높지 않은 산은 주목할 만한 산행 대상지가 되지 못했고 그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고성·강릉·삼척 지역에 걸쳐 발생한 이른바 ‘동해안 산불’로 검봉산 일대는 화마에 휩싸였던 곳이다. 당시 산불은 진화될 때까지 서울 여의도 면적의 78배인 2만 3794헥타의 산림을 태웠으니, 산행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생채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점차 아물고 있는 중입니다.”

산림문화휴양관 A·B동 뒤편 사면에서 경관 복구 작업을 하던 삼척국유림관리소 한승길(34세)씨의 말이다. 이처럼 휴양림 일대는 내화림 조성 실현 사업지가 조성된 것을 비롯해 산불 피해지 장기 생태 연구 조사지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강원대 등이 숲의 변화하는 모습과 경관 및 피해 복구, 송이균 복원 빛 동태, 토양 호흡, 야생동물 등 산불 피해를 줄이거나 효과적인 피해 복구 방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이곳에 기반공사 하고 진입로 개설하면서 애 많이 먹었어요.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산림휴양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자문도 많이 구했죠. 인공구조물 등 무리하게 시설물을 배치하기보다 나무 한그루도 제 자리에 원형 그대로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신춘승(57세) 팀장은 검봉산이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동해바다와 산, 청정계곡이 흐르는 숲이 한데 이우러져 산림휴양의 최적지임을 자부한다. 단, 취약점이라면 접근성이 나쁘진 않은데도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볼 때 거리가 멀다는 것. 성수기에는 물론 100퍼센트이지만 연간 객실 가동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이유다.

청정계곡 끼고 올라 선 정상, 동해가 한눈에

검봉산 산행은 휴양림에서부터 시작한다. 숲속의 집을 나서 야영장을 지나 임도와 연결되는 제3주자장이 들머리다. 등산로는 곧장 계곡을 끼고 오른다.

휴양림에 근무하는 김성미(50세)가 길잡이로 나섰다. 임원리에 사는 김씨는 휴양림 조성 초기부터 숲에 관해 관심을 가지며 공부를 시작, 숲해설가 과정을 모두 마쳤고 지금은 어엿한 3년차 숲해설가가 됐다.    

“사람들이 검봉산하면 아직 잘 모르지만 임원항이라고 하면 더 많이 알아요. 동해 임연수 하면 임원, 여기 사람들은 세치(이곳 사투리)라고 하죠. 대게도 많이 나고요. 무엇보다 같은 동해안이라고 해도 여기 회가 싸고 맛있어요. 제가 이곳에 살아서 그런지 명칭을 검봉산보다는 임원자연휴양림이라고 붙였어도 좋았을 텐데……

산행을 마치고 나서는 꼭 임원항에 들러 회를 맛보라고 거듭 권했다. 여부가 있을 리 없다.

대형 등산안내판 옆으로 ‘뱀 조심’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이는데, 그만큼 독사가 많다는 설명. 실제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등산로 정비 사업을 하던 도중 신춘승 팀장은 독사에게 물려 식겁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서쪽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림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여전히 옛길, 반들반들하지 않은 투박한 길이다. 사람이 다녔던 약간의 흔적만 있는 오래된 길은 걷기의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그 자체로 살아있는 길이다. 으레 보게 되는 그 흔한 산악회의 표지기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이 계곡길은 한국전쟁 때 마을 주민들이 산 정상부에 있는 한국군에게 기름을 지고 나르던 길이자 도시락 사들고 임원에서 호산 5일장까지 장보러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지난 2000년 동해안 전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대형 산불도 검봉산의 깨끗한 계곡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계곡은 솔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가득하다. 또 산 높이에 비해 수량이 많다. 겨우내 유난했던 폭설과 최근까지도 내린 눈 때문에 곳곳에 작은 폭포를 이루며 그 바닥에는 민물 게와 버들치, 가재 등이 살고 있을 정도로 청정계곡을 이루고 있다.

넓지 않은 계곡을 몇 차례 건너자 작은 알림판에 서 있는데 사투리로 ‘칼코딩이’이라고, 검봉산 정상이 칼끝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길 오른쪽 40여 미터 된비알 위로 ‘학바위’가 있다. 처마를 이루며 움푹 들어간 바위 밑은 서너평쯤 되는 평지인데 손을 갖다 대고 문지르니 금방 그을음이 묻을 정도로 천정이 시커멓다. 토속신앙을 숭배하던 시절의 전형적인 장소임을 보여준다. 아울러 바위 이름이 모양과 상관없이 학이 내려앉아 놀던 곳이어서 학바위로 불린다고 해설사는 덧붙였다.              

곧 계곡이 끝나갈 무렵, 길은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으로 붙는다. 150도로 꺾어지며 지그재그로 한참을 이어가니 서서히 검봉산 정상이 눈앞에 다가선다. 절골로 불리는 올라온 계곡은 심산유곡이 되어 수줍은 듯 모습을 감춘다. 그렇게 20분 만에 올라서니 마을 뒷동산 같은 산마루 끝에 벤치 2개가 기다리는 전망대에 닿는다. 긴 의자 옆 나무 밑동에 앙증맞은 이정표를 감아놓았다. '정상 1.2km'.

다리쉼을 하고 완만한 능선을 좀 더 오르자 임도와 만난다. 임도는 세 갈래로 나뉘는데 그 옛날 시인과 문사들이 동해를 바라보면서 수많은 시(詩)를 지은 소공대가 임도를 따라 이천리로 이어지고 중마읍리, 즉 원적읍 쪽으로 40리, 임원리로 20리가량 임도로 연결된다. 정상 가는 길은 이정표 뒤 나무계단으로 올라선다.  

 

산불 잔흔의 고사목과 금강소나무

동쪽으로 방향을 튼 길은 동해의 푸른바다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전에 없었던 바위지대를 지나 눈 무덕진 나대지 옆 양지바른 곳에 노랑제비꽃이 핀 부드러운 능선이 길을 열어준다.

헬기장을 지나자 682미터 정상이 코앞이다. 자연스레 정상부 일대가 훤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대형 산불의 잔흔이 고사목에 그대로 남아 있다. 능선 오른쪽의 금강소나무는 살아남았으나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검게 그을린 밑동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2000년 4월 7일 검봉산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근덕면 궁촌리 양지마을 뒤 야산. 쓰레기를 태우다 불꽃이 옮겨 붙어 삼척 일대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발화지점이다. 공교롭게도 만 10년 지나 찾은 4월 8일, 불탄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심은 소나무와 잣나무는 가냘프게 보였다. 오소리의 토굴이 여러 군데에 있었고 맷돼지와 너구리, 토끼의 배설물도 보이는 등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었지만 그 상처는 깊고 컸다.

자연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이 지역은 산불 이전과 전혀 다른 생태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울창하던 소나무 숲이 사라진 곳에는 생존에 강한 참나무류가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 불탄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자란 굴참나무와 신갈나무 등이다. 일부 조림지는 나무가 고사하거나 아예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산림 복구를 추진하면서 대형 산불을 막기 위한 내화수림으로 목백합나무 등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경제수림으로 들메나무, 고로쇠나무 등을 심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검봉산에는 2001년 심은 백합나무와 2003년 심은 목백합나무가 대부분 죽거나 성장이 1미터에 못 미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심은 소나무는 3미터 내외로 자랐다.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소나무가 자라던 곳으로 토양이 맞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김성미씨는 “지난 10년 생태계 복원을 위해 노력했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검봉산 일대는 50~60년생 소나무 숲이었는데 산불 이전의 산림을 복원하려면 40년은 더 지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검봉산은 이렇듯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강원도 삼척시 임원리 산 1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임원의 진산이다. 봉우리가 칼날처럼 날카롭다고 해 검봉산이라고 이름 했고, 능선이 삼척의 증지골, 사금산, 응봉산, 육백산으로 장쾌하게 연결돼 MTB 마니아들에게도 도전의 대상이 되는 웅장한 산이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 안내판의 설명은 춘천에만 검봉산이 있는 게 아니라 삼척에도 검봉산이 있음을 시위라도 하듯 그 위상을 드높여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아울러 산림청 카모프 헬기로 들어 올린 흑석에다 새긴 ‘劍峰山’의 필체는 준수했고 힘이 넘쳤다. 최종훈 전 삼척국유림관리소장이 직접 쓴 글귀이나 따로 필자를 적시하진 않았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남쪽으로는 멀리 경북 울진의 원자력발전소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오는 5월부터 해양레일바이크가 운행을 시작할 궁촌리 해변이 보인다. 임원과 노곡, 호산리 앞바다는 더욱 가깝게 펼쳐진다.  

삼림욕과 등산, 바다여행… 세 마리 토끼 잡기

하산은 동쪽 능선으로 나아가며 자연휴양림을 한 바퀴 감싸면서 내려간다. 정상에서 200미터 거리에 보조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휴양림까지 2.2킬로미터인데 이용이 뜸한 길이라고. 나무에 붙여진 빨간 화살표를 따라 울창한 숲길로 내려선다.

전망바위를 지나 가파르게 내려서니 물소리가 들리는 안부를 지나고 다시 된비알을 올라선다. 두 번째 보조등산로 갈림길이 나왔다. ‘1킬로미터 30분’. 곧장 임도로 내려서는 길인데 동해를 보며 산행하려고 좀 더 길게 능선을 이어간다.  

“저기 바닷가공원 보이죠? 남화산이라고 부르는데 해맞이공원이 조성되고 있어요.”

그래도 동해 일출 산행은 검봉산애 비할 바가 아니라는 해설사를 따라 숲속의 집 앞 잔디마당으로 내려섰다.

“이따가 저녁에 팀장님과 임원항 같이 가게요. 멀리서 온 세치 혀라도 세치 맛은 봐야 할 거 아닙니까?”

그날 저녁, 임원포구의 밤은 개장 2년을 맞은 검봉산자연휴양림의 운영과 산림휴양문화 정책을 안주삼아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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