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Theme mountaineering

웰빙산행 첨찰산 485m

전남 진도군 진도읍

글|백진국 기자  사진|주민욱 기자

족할 첨(尖)에 살필 찰(察), ‘첨찰산.’ 우뚝 솟아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주변을 살피기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혀끝에 편하게 얹히지도 않고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름이다.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이라 불리기도 했던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 이 산 서쪽 들머리에는 별스러운 이름만큼 특별한 곳이 있다,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노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고 5대째 예술혼을 이어가고 있는 집, ‘진도의 양천 허씨들은 빗자루 몽둥이만 들어도 작품이 나온다“는 소문의 근원지, 인구 4만의 섬에서 250여명의 화가를 배출한 힘, 운림산방이다.

앞마당에 인공으로 조성한 연못, 그 한가운데 조그만 인공섬이 있고 예인의 자존심처럼 단아하게 자리잡은 백일홍 한 그루와 소박하게 지은 초가집, 그 너머로 운림산방의 일부처럼  첨찰산이 있다. 뾰족하게 솟아 날카로운 모습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담백한 모양새다.

운림산방 바로 옆 ‘첨찰산 쌍계사’ 편액이 걸려 있는 쌍계사 해탈문을 지난다. 절 입구에서 왼쪽방향, 자연석으로 바닥을 정비해 놓은 산길을 걷는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세상사에 거칠어진 마음에 위로가 되고 팽나무, 굴참나무, 덜꿩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상록수림은 평화롭다. 동백꽃이 유명한 이곳은 천연기념물 107호, 다양한 수종들이 조화로워 보존가치가 높은 숲이다.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란 잎이 하늘을 가려 낮에도 어둑어둑합니다. 한여름에도 햇볕 걱정 없이 시원하게 산행할 수 있는 멋진 등산로죠. 바로 지금은 동백이 한창일 땐데 올해는 꽃도 적게 피고, 꽃봉오리도 작은 것 같습니다.”

진도군청산악회 김충식씨의 설명대로 귀하게 꽃을 피워 노란꽃술을 감싸안은 붉은 동백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꽃도 송이째 툭 떨어져 바닥에 흩어져있는 꽃도 아주 인상적이다.

길은 소치선생의 산수화 속에 있을 법한 아담한 계곡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더니 약수터와 이정표(정상 1.3km)를 지나자 갈림길. 현재 위치를 표시해 놓은 개념도가 있다. 왼쪽은 계곡에 이어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흙이 무너지지 않게 나무로 정비해 놓은 오른쪽 길을 택한다. 이제껏 산책로 같은 길이었는데 비로소 산길다운 오름을 시작한다.

땅에는 새벽에 내린 눈으로 얼음이 박혀있고 바람에는 겨울 심술이 양껏 들었다. 한겨울 추위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꽃샘추위, 봄 속의 겨울이다. 중간 중간 나무의자가 놓여있고 위험하지 않은 바위구간에 설치된 밧줄을 지나가 무인산불감시소가 나타나고, 싱겁게도 곧 정상이다.  

돌로 쌓은 원형기단에 원추형 돌탑의 봉수대가 있는 정상은 이름 그대로 멀리까지 세세히 살펴볼 수 있게 탁 트여 있다. 하늘과 바다와 먼 산의 어울림이 한 폭의 산수화다. 서쪽으로 계집 녀(女)자가 들어가는 유일한 산이라는 여귀산의 자태가 뚜렷하고 북으로 산 전체가 바위로 우뚝 솟은 해발 193미터 금골산의 형상이 기이하다. 그 옆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의 좁은 해협인 울독목에 세워진 진도대교가 보인다.

울돌목은 1597년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격파했던 명량대첩이 있었던 현장. 우리나라 최초의 조력발전소도 보인다. 동으로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점점이 떠있는 섬들 건너 해남의 두륜산이 아련하다.

“첨찰산 정상은 새해 해맞이 행사를 하는 장소입니다. 차도를 이용하면 5분, 걸어서도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습니다. 해돋이의 아름다움은 말 할 필요가 없지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이는데 오늘은 안 보이네요.”

동행한 이재식씨가 안타까워하지만 지금 보는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봉수대 아래의 첨찰산 정상석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갈림길, 쌍계사로 원점회귀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정표에 ‘아리랑비 40분’이라 적혀있다.

임도를 따라 기상대 앞에서 오른쪽, 남쪽 능선을 탄다.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정비해 놓은 이 길은 두목재를 지나 덕신산, 화개봉, 학정봉을 거쳐 운림삼방으로 갈 수 있는 산행로다. 반듯하게 정돈된 논밭과 빨강, 파랑 지붕의 집들이 장난감처럼 오밀조밀한 고군면 향동마을을 보며 30여분 걸으면 두목재다.

고개에는 운림산방에서 향동마을로 이어진 아스팔트 도로가 나있다. 도로로 내려서고 싶은 유혹을 참고 덕신산을 오른다. 몸은 마음을 따르는 법이라, 쉬운 산이라 생각하고 긴장감을 놓은 때문인지 짧은 오르막이 힘들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정상을 지나 햇볕이 따뜻한 무덤가에서 잠시 휴식, 간단한 간식과 함께 진도 특산품인 홍주가 배낭에서 나온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는 진도홍주는 산삼, 삼지구엽초와 함께 3대 선약으로 불리는 ‘지초’로 빚어 술 마신 다음날도 숙취와 조갈증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진도에만 전승, 제조되고 있는 진도 특산품이기에 민관이 협력해서 세계화, 명품화 작업에 도전하고 있고, 또 성공을 확신합니다.”

진도홍주(hongju.jindo.go.kr)를 설명하는 이기앙 진도홍주 신활력사업소장의 말에 진한 애정이 배있다. 그의 열성이 고마워 진도에서는 꼭 홍주를 마셔야겠다.

매년 봄 가을,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연출하는 ‘신비의 바닷길’인 의신면 ‘모도’와 그림 같은 남도의 해안선을 바라보며 능선을 둥글게 돌아간다. 화개봉으로 짐작되는 봉우리를 오르지만 눈에 띠는 전망도 표식도 없다.

 

무심결에 지나친 것 같아 어디쯤이었을까 하고 지난 능선길을 머릿속에 더듬고 있는데 뜻밖의 장소에 개념도가 있다. 화개봉에 이 개념도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려선다.

바위 봉우리로 되어있고 오르면 아무런 표식은 없지만 전망이 툭 트인 학정봉. 운림산방과 쌍계사 그리고 첨찰산 정상이 보인다.

“5월이면 우리가 올라왔던 삼선암골, 정상에서 아리랑비로 내려서는 봉화골에 너도밤나무가 노란 꽃을 피웁니다. 학정봉에서 바라보면 장관이죠.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첨찰산 산행을 한 보람이 있을 겁니다.”

김충식씨의 말을 들으며 얼마 남지 않은 첨찰산을 내려간다. 발에 밟히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에 이미 온 봄을 느끼며 노랗게 물들 오월의 첨찰산을 상상해본다. 어디선가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 산을 휘감아 돌아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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