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삼성산 BAC 암장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협찬 · 레드페이스

BAC 암장은 경기도 안양시 소재 삼성산 병풍바위에 개척된 등반지이다. 바위모임 산악회가 2005년부터 1년 반에 걸쳐 개척했으며, 암장이름 BAC는 Bawi Alpine Club의 약자에서 따왔다. 암질은 화강암이며, 높이는 15m 내외 폭은 50여m에 이른다. 인기루트인 악(5.10a), 5월의 어느날(5.10b), 일어나(5.11a) 등이 개척되어있는 중앙벽 외에도 좌우 아래로 큰 바위가 나뉘어 있으며, 난이도 5.9~5.14까지의 20여 개의 루트가 고루 분포한다. 대부분의 루트가 초중급의 코스여서 산악회 암벽등반 기초교육 진행 장소로도 인기가 좋은 수도권 대표 암장 중 하나이다.

안양해솔학교에서 시작하는 어프로치

“저 오늘 자연바위 리드 첫 입문 날이에요. 2년 전 도봉산에서 암벽등반에 입문한 뒤로 계속 북한산, 도봉산 등 멀티피치만 다녔거든요. 첫 하드프리를 안양으로 오게 될 줄이야!” “여기 안양예술공원 근처구나~ 삼성산은 저도 처음인데, 예전에 근처에 볼더링 하러 왔던 게 기억나요.” 지난달에 이어 산악인 부부 박민구 함수현씨와 취재를 함께한다. “오늘 취재를 위해 주 5일 열심히 훈련했다”며 함수현씨가 씩씩한 인사를 건넨다. 훈련의 효과인지 불과 한 달 전보다 더욱 날렵해진 모습에서 오늘 등반의 기대감이 높아진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암장을 향하여 다같이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저기 보이는 병풍바위가 BAC 암장이에요. 주말에 오면 여기서 클라이머들의 등반 모습이 보일 정도죠!” BAC 암장 접근은 안양해솔학교에서 시작한다. 멀리 삼성산을 바라보자 9부 능선 위로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바로 암장이 개척된 병풍바위다. 학교앞 호암 제2터널 좌측의 등산로를 따른다. 터널 위를 지나 철망 구간을 넘어서고, 다시 약수터를 지나 10분여 산을 오르자 금세 조금전 올려다보았던 우뚝 선 병풍바위에 도착한다. 중앙벽 앞 평평한 터에 짐을 풀고 땀방울을 식힌다. 뒤돌아서자 멀리 안양 일대와 금천구, 광명시까지 광활한 도심 조망이 펼쳐진다. 20여 분의 짧은 산행에 비해 과분한 조망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나무가 조망을 가리지 않기에, BAC 암장은 겨울에도 해가 잘 들어 수도권 겨울등반지로도 꼽히는 곳이다. 

산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의 길

중국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은 그의 시 ‘귀거래사’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즐거움과 동경을 노래했다. 유유자적 자연 속 물아일체는 뭇 도시인이라면 한번쯤 꿈꿔볼만한 이야기, BAC 암장에 그 의미를 담은 동명의 루트가 있다. 등반길이 15m로 암장 최장 길이 루트인 귀거래사(5.10c)는 하단부 크랙선과 상단부 오버행의 바위턱이 잘 어우러져 밸런스와 힘, 지구력과 집중력을 고루 요하는 BAC 암장의 최고 인기 루트다.

“이야 하늘도 높고 벽도 높고. 루트가 재밌어 보여요. 바로 해보죠!”

중앙벽 좌측의 바위 턱에 올라 넓은 침니에 들어선다. 곧바로 높이 뻗은 평평한 바위와 귀거래사 등반선을 만난다. 고개 들어 완등 앵커를 바라보니 회색 바위 너머 청명한 가을하늘이 고요한 바위와 어우러지며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맑은 하늘과 선선한 날씨, 바야흐로 등반의 계절이다. 짧은 감상을 마치고 박민구씨가 장비를 챙겨 바위 앞에 선다.

“오빠 오른쪽도 보면서 가세요. 왼쪽 발도 조심하고요. 안전제일이에요.”

“네, 수현이 말대로 하겠습니다. 조심조심!”

“강사님에게 등반 코칭이라니, 이건 정말 마누라의 특권입니다.”

등반을 시작하는 박민구씨의 뒤로 함수현씨가 애정 어린 조언을 던진다. 현직 등산강사로 활동하는 박민구씨에게 안전 주의를 외치는 함수현씨의 모습을 보며 주민욱 기자가 “마누라의 특권”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사랑의 빌레이어 함수현씨를 뒤로하고 박민구씨가 레이백 자세를 구사하며 하단부를 재빨리 지난다. 네 번째 볼트부터 시작되는 오버행에서도 양팔을 쭉쭉 뻗으며 속공등반을 이어간다. 좌우로 부드럽게 동작을 바꾸며 나비처럼 벽을 오르는 등반자. 바위와 하나 되어 오르는 그의 몸짓에서 루트명 귀거래사의 의미를 떠올려본다. 사시사철 산과 바위를 찾아 벽을 오르는 등반가들의 삶과 열정도 시인 도원명이 동경하는 삶과 부합하지 않을까?  

 

 

이 악물고 오른 악 바위

“오빠, 내가 알아서 갈 거니까 알려주면 안 돼!”

“알았어~ 수현이 화이팅!”

톱로핑으로 중앙벽 악(5.10a)의 동작풀이를 끝낸 함수현씨가 재등을 위해 다시 바위 앞에 선다. 첫 시도에서 홀드를 꼼꼼히 만져보았기에 이번 판은 더욱 비장한 마음이다. 출발 전 남편 박민구씨에게 신신당부 ‘묵언 빌레이’ 요청도 빼먹지 않는다. 악은 슬랩 스타일의 직벽을 지나 오버행 턱에 올라서는 루트로 총 등반길이가 약 10m인 아기자기한 루트다.

“출발” 나지막한 외침과 함께 함수현씨가 첫볼트를 지나 바위 턱에 오른다. 이후 평평한 슬랩 직벽에 발을 옮기며 한발 한발 천천히 등반을 진행한다. 첫 번째 판에서 한 번에 잡지 못했던 오버행 아래의 사이드홀드도 이번엔 오른팔을 쭉 뻗어 안정적으로 무게를 싣는다.

“이야 눈빛이 살아있습니다!” 완등앵커에서 함수현씨의 등반을 내려다보던 주민욱 기자가 기합과 함께 오버행을 넘어서는 그의 등반에 응원을 더한다.

“휴, 스포츠 등반이 이렇게 어렵구만! 이 악물고 올랐네.” 이내 함수현씨가 단 한 번의 텐션 없이 완등에 성공한다. 등반 전 자신을 ‘오쩜칠 클라이머(난이도 5.7을 등반하는 초보 클라이머)’라고 소개하던 그의 언행은 겸손함이었음이라. 오늘부로 함수현씨는 ‘파이브텐 클라이머(난이도 5.10을 등반하는 중급 클라이머)’다. 

 

 

부상도 막지 못한 산으로 향하는 걸음
“걸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바로 산에 갔어요. 그래서인지 사고 후 몇 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종종 다리에 통증이 찾아와요.”

뒤이어 악 루트 등반을 마친 박민구씨가 암벽화를 벗으며 다리 통증을 호소한다. 박민구씨는 4년 전 운전 중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에 복합골절 부상을 입었다. 복합골절은 단순 골조직 부상을 넘어 주변의 혈관, 신경, 근육 등이 동시에 손상을 입는 골절로, 당시 부상의 정도는 담당의사가

“수술 후 다리길이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했다. 등반가의 삶을 살던 박민구씨는 앞으로 등반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막막할 뿐이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고, 지금은 많이 회복했어요. 이렇게 다시 등반을 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저는 발목을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미끄러지면서 버티다가 발목이 완전히 꺾여 돌아갔었죠.”

함수현씨는 동계 설악산 산행 중 발목 골절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 사고 직후 출동한 산악구조대원들에게 업혀서 내려와 치료를 받았지만, 몇 해가 지나도록 아직 완전한 회복을 하진 못했다.

“가끔 오빠랑 서로 아프다고 밤에 낑낑대곤 합니다.(웃음) 차라리 그때 그냥 발라당 넘어졌으면 덜 다쳤을 텐데 말이에요!”

각각 큰 부상을 겪고도 부부는 회복과 동시에 다시 산으로 향했다. 부상도 막지 못한 산으로의 무수한 걸음들. 그리고 그 걸음은 서로를 향한 걸음이기도 했다. 열정 가득 부부와의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 시원한 가을비가 후두둑 숲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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