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삼백리길 2코스

남도삼백리길 제2코스 꽃산너머동화사길은 순천 별량면 화포 해변을 출발해

구불구불 동화사까지 가닿는 20km의 걷기 코스다.

길 자체는 들쭉날쭉한데 전체적으로 제방과 도로를 걷는 평지 일색이다.

지난달에 이어 남파랑길 62코스와 내내 겹치다 동초교(다리)에서 방향이 나뉜다.

주요 통과 지역은 화포~죽전방조제~창산마을~거차마을~용두마을~동화사이다.

그늘이 없어 여름엔 제법 힘들다.

글 사진 · 황소영 기자

더위도 피하고 일출도 볼 겸 일찌감치 화포에 선다.

20대 중반에 처음 산엘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그러니까 25년 전쯤엔 선크림이 보편화되지 않았었다. 바른다 해도 얼굴이 석고상처럼 하앴고, 땀이 났다 하면 우유처럼 허연 국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자도 잘 쓰지 않았다. 요즘은 선스틱, 선쿠션, 선패치까지 종류도 다양해졌는데 선크림을 습관화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남도삼백리길 2코스를 앞두고 생각이 달라졌다. 둘레길은 작년 여름에도, 재작년 여름에도 걸었지만 볕이 무섭게 느껴진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50이 넘어 처음으로 양산이란 걸 산다. 그늘 없는 포장도로 20여 km를 그냥 걸을 자신이 없었다.

화포 일출은 산너머에서 떠오른다.

순천의 바다, 화포

지난달엔 와온 일몰을 보겠다고 폭염이 절정인 낮 2시부터 걸었었다. 결국 일몰은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늦은 오후에 내려준 빗줄기가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2코스는 그때보다 길었고 그때보다 그늘이 적었다. 하필 또 길 위에 선 건 삼복더위의 한가운데였다. 1구간 출발점인 와온이 일몰로 유명하다면 2구간 출발점 화포는 일출로 유명했다. 그렇다면 겸사겸사 아침 일찍 걷기로 한다. 해 뜨는 걸 봐도 좋고, 못 봐도 일정 시간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새벽 5시 45분, 화포의 아침 해는 바다에서 올라오지 않는다. 붉은 기운은 순천만 너머 이름 모를 산에서 솟았다. 하여 화포 일출은 마을 뒷산인 봉화산에서 보는 게 더 낫다. 어쨌든 와온에선 화포를 보며 일몰을 보고, 화포에선 와온을 보며 일출을 보는 셈이다. 어쩌면 장개산이나 소코봉 능선일지도 모른다. 그 뒤엔 앵무산이 있었다. 모두 일몰로 유명한 산들이다. 해는 산 뒤에서 잠시 붉은 빛을 보이다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바다 위에도 붉은 물결이 맴돌았다. 아직은 어스름한 화포를 벗어난다. 새벽 낚시를 즐기는 두어 명과 파도에 흔들리는 고깃배 몇 척, 더위를 피해 일찌감치 바다에 나온 주민들…. 순천에도 이렇게 큰 바다가 있단 사실에 위로가 된다. 화포는 여수와 고흥 사이에 있다. 갯벌로 기억되는 순천만과는 색이 다르다. 광양과 마주한 동쪽엔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머물렀던 왜성이 있다. 당시 이순신은 신성포 바다에서 왜교성전투를 치르기도 했는데, 지금의 풍경으론 바다가 있었단 사실을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다. 바다는 예전보다 멀어졌다. 간척사업이 활발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자동타이머를 맞추고 찍은 사진. 이럴 땐 홀로 걷는 길이 아쉽다. 
뻘배 모양의 쉼터가 있는 죽전방조제.

뻘배 체험 가능한 거차마을

겨우 아침 6시인데 벌써부터 땀이 흐른다. 하긴 해가 전혀 없는 열대야도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바다를 왼쪽에 두고 도로로 이어진 길은 죽전방조제에서 다시 바다 곁으로 붙는다. 이제는 물보단 흙이 더 많은 갯벌이다. 뻘배 모형으로 만든 쉼터도 있다. 제방을 기준으로 왼쪽은 뻘밭, 오른쪽은 초록의 논이다. 곡식이 익으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전깃줄엔 참새가 빼곡하다. 왠지 이곳의 쌀에선 짠맛이 날 것도 같다. 둘레길을 걸을 때마다 곧잘 뱀을 보는 터라 더운 날씨에도 부러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신었는데 바다가 코앞이니 뱀은 없겠다며 안심한다. 멀리서 먼저 보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알아서 피하지만 이놈의 뱀들은 꼭 카메라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가 막 고개를 돌렸을 때 발 앞을 지나가곤 한다. 정말 30cm도 안 되는 거리여서 예전 지리산둘레길에서도, 오늘 남도삼백리길에서도 자칫 뱀을 밟을 뻔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는다. 꺄악 꺅! 논쪽 풀밭에서 기어 온 뱀은 갯벌쪽 제방 돌틈으로 사라졌다. 이 녀석들은 짠내가 싫지 않은 모양이구나. 하긴 깊은 산만큼 섬에도 만만치 않게 많으니, 뱀이 바다를 싫어한다는 건 뱀의 습성을 알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휴우, 일단 한고비 넘겼는데 이제부턴 무언가 기다란 것만 하도 심장이 벌렁벌렁 방망이질을 한다. 진회색 갯벌엔 무수한 덩어리가 뿌려져 있다. 뭐지? 고개를 뺀 채 눈을 크게 뜬다. 게다. 멀리선 흙덩이처럼 보인 저 무수한 생명들은 모두 게였다. 이 일대에선 꼬막, 칠게, 맛조개, 낙지, 짱뚱어 등이 잡힌다. 걷다가 돌아보면 역광으로 눈부신 풍경이 오히려 흑백사진처럼 단조롭다. 작은 배 하나가 하늘색 색깔을 뽐내며 갯벌 위를 누볐다. 별량 최남단인 거차마을에 닿는다. 주변 바위가 거칠어 ‘거츨개’로 불렀다가 ‘거찰개’를 거쳐 지금의 이름이 되었는데, 한자로는 ‘수레가 머뭇거리는 곳’이란 뜻이다. 보성으로 물건을 나르던 수레가 바다를 만나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 중기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였을 땐 백마를 타고 마을 뒤 천마산에 주로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거차는 뻘배체험장으로도 유명하다. 납작한 뻘배에 한쪽 무릎을 올린 다음 손잡이를 잡고 남은 발로 뻘을 박차고 나아가는 식이다. 머드팩은 덤이다. 창산마을 매점은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았는데 다행히 거차마을 매점은 문이 열렸다. 컵라면과 월드콘으로 허기를 달랜 후 길을 잇는다. 이제 바다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길은 논들이 가지런한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졌다. 한 시간에 4km씩 걷던 다리도 점점 무뎌지기 시작한다. 진작부터 더웠고 발바닥이 아팠다. 정자가 보일 때마다 쉬었고, 정자가 없으면 수문이나 문 닫힌 농협 입구에서도 쉬었다. 정면에 용달차가 온다. 길이 좁아 한쪽으로 비켜섰는데 내 앞에서 멈춘다. “어라, 아까 화포에서 봤는데 여기까지 걸어왔어요?” “네, 동화사까지 가려고요.” 이미 출발 3시간이 지난 후였다. “동화사는 여기 말고….” 아저씨는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 설명하지만 그 길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삼백리길을 걸으러 왔으니 질러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순천의 바다는 대부분 갯벌이지만 화포에선 제법 바다다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고흥 쪽을 향해 뻗은 갯벌.

용두마을에서 동화사까지

덕산수문 이후론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다. 철길 건널목 앞엔 용두마을이 2.3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 이정표를 끝으로 용두에 닿기까지 더 이상의 이정표는 없다. 외길이지만 30분 내내 도로를 걷자니 불안해진다. 제대로 가는 게 맞나? 논둑길로 이정표가 있었나? 돌아갈까? 철길을 건넌다. 도로를 걷다 또 철길을 건넌다. 용두마을이다. 마지막 이정표 본 곳으로 돌아갈 힘도 없었지만 돌아갔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이상하게 이정표가 안 보이네, 싶은 도로를 걷고 있다면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가야 한다. 순천에서 목포로 가는 경전선 철로 위를 주황색 무궁화호가 휭하니 지난다. 용두마을 매점에 들러 캔맥주 하나와 환타를 산다. 연거푸 들이켜고 다시 진행이다. 새우양식장 앞에 원산이 1.9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다. 남파랑길을 가리키는 빨간색 화살표는 우측으로 꺾였는데, 삼백리길 이정표는 직진이다. 여기선 우측이 맞다. 잘못된 이정표 하나가 둘레꾼을 이만저만 고생시키는 게 아니다. 남파랑길과 삼백리길은 동초교에서 나뉜다. 남파랑길은 다리 건너 왼쪽으로 1km만 가면 끝. 이후 벌교로 그다음 63코스가 이어진다. 삼백리길은 오른쪽으로 3km 남짓 이어진다. 그늘이 없어 걸음은 더 무겁다. 이제 풍경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양산마저 없었다면 진작에 일사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죽림교를 건너 인도 없는 도로를 걷다 보면 구간 종점인 동화사가 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삼거리 갈림길인데 왼쪽이 동화사고 오른쪽 도로는 낙안읍성까지 가 닿는다. 마지막은 아스팔트 오르막이다. 삼복더위에 약 18km를 걸어온 이에겐 고역의 길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배롱나무는 예쁘게 꽃을 피웠다. 동화사 전에 동구마을 갈림길이 있다. 하늘색 바탕에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졌다. 글씨도 예쁘다. 도로에서도 바로 아래 계곡이 보인다. 초반 바다는 막판 산으로 이어졌다. 파란 천막 아래 인근 동네 분들이 쉬고 있다. “제석산에서 내려오는 물인가요?” 아니다. 동화사 뒷산이라는데 어쩌면 개운산에서 흘러온 건지도 모르겠다. 지도에는 이 좋은 물줄기가 표기돼 있지 않다. 이 물은 곧장 대룡저수지를 거쳐 조금 전에 걸어온 동룡천이 되었다가 이내 바다가 된다. 길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창건한 동화사에서 끝난다. 한 달 뒤 찾았을 땐 진분홍 배롱나무 꽃은 모두 지고 없겠지. 아픈 발바닥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오전 햇살만 쬐었을 뿐인데 어느새 무릎이 까맣게 탔다.  

용두마을까진 이 경전선 기찻길과 함께 걷는다.
거차마을 뻘배체험장에 핀 꽃. 매점이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멀리 보이는 거차마을.
동화사에 핀 예쁜 꽃.
동화사와 배롱나무 꽃.
순천 별량면 동화사는 신라 도선국사 혹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창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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