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인왕산 둘레길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협찬 · 레드페이스 

파란 하늘 아래 경복궁 돌담길을 걸어보자!
파란 하늘 아래 경복궁 돌담길을 걸어보자!

꼭 정상 등정을 위한 산행이 아니어도 좋다. 인왕산(338.2m)은 서촌과 옥인동, 부암동과 효자동까지 수도 서울의 옛 정취가 묻어나는 마을들을 곁에 두고 있어 산과 도심을 고루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들머리에서 시작하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오늘 취재는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걸어본다. 고즈넉한 서촌 골목길 지나 닿은 수성동계곡, 빼어난 물줄기에서 시작된 오르락내리락 오솔길은 부암동으로 이어진다. 아기자기 카페가 즐비한 부암동을 뒤로하고 다시 들머리로 내려서는 길, 한눈에 조망되는 서울 도심, 청와대와 무궁화광장, 그리고 다시 경복궁. 연이어 등장하는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 산들바람 불어오는 가을을 맞이하여 약 6km, 3시간여 코스의 도심 속 걷기 여행을 떠나보자.  

시원한 폭포와 계곡을 만날 수 있는 가온다리. 그냥 건너면 재미없지! 자, 가위~바위~보!
시원한 폭포와 계곡을 만날 수 있는 가온다리. 그냥 건너면 재미없지! 자, 가위~바위~보!
1시간여의 둘레길 산행 끝에 부암동 인도에 도착했다. 종일 지친 기색 없이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박민구 함수현 부부.
1시간여의 둘레길 산행 끝에 부암동 인도에 도착했다. 종일 지친 기색 없이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박민구 함수현 부부.

산(山) 사제지간으로 시작된 부부의 인연

“북한산 암릉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하객들이 입장하는 곳엔 우리의 등반 장비를 전시했고, 신랑의 가슴에는 코사지 대신 미니 로프를 달았죠.” 긴 장마가 지나고 맑게 갠 8월 중순의 어느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다정히 손을 맞잡은 박민구(45), 함수현(42)씨를 만난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웨딩마치를 올린 3개월 차 신혼부부다. 2년여의 열애 끝에 봄의 신랑신부는 그들이 처음만난 도봉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예쁜 야외 잔디밭에서 평생의 사랑을 약속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의 준말)이라 생각하고 살았어요. 어릴 적부터 워낙 산을 좋아해서 국내외로 숱하게 산을 다녔는데, ‘이런 삶을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겠다’라며 결혼은 체념했었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산과 등반을 좋아해서 오랜 시간 산에 빠져 산사람으로 살았죠. 그래도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한 덕에 수현이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네요.” 박민구씨와 함수현씨는 자일의 정으로 맺어진 산악인 부부다. 걷어 올린 소매로 드러난 박민구씨의 탄탄한 전완근과 함수현씨의 그을린 피부에서 산의 기운을 물씬 느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사제지간으로 시작됐다. 2020년 봄, 함수현씨는 ‘블랙엔젤’ 표식으로 유명한 일본 북알프스 고난도 구간 종주를 위해 한국등산학교에 입교했다. 암벽과 알파인 등반 기술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박민구씨는 한국등산학교의 강사로, 두 사람은 6주의 교육기간 동안 서로를 지켜보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산을 대하는 민구오빠의 진심어린 모습에서 저와 닮은 점을 보았어요. 교육 막바지에 마음에 확신이 들었고, 이후 제가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했습니다.” “수현이가 당시 기수 학생대표를 맡았어요. 6주간 씩씩하고 솔직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왕산 둘레길은 어렵지 않은 난이도이지만, 접지력 좋은 워킹화와 스틱을 준비하면 더욱 안전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인왕산 둘레길은 어렵지 않은 난이도이지만, 접지력 좋은 워킹화와 스틱을 준비하면 더욱 안전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인왕산의 상징 호랑이 표지판이 설치된 둘레길 쉼터.
인왕산의 상징 호랑이 표지판이 설치된 둘레길 쉼터.

수성동계곡에서 시작하는 인왕산 둘레길

알콩달콩 박민구씨와 함수현씨의 연애스토리를 길벗 삼아 산길이 시작되는 수성동 계곡으로 향한다. 경복궁역에서 수성동계곡까지는 약 1.3km이다. 서촌과 옥인동을 지나는 여러 갈래의 골목길이 있는데, 취재진은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200m 직진하여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에서 시작하는 자하문로를 따른다. 길목 곳곳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식당과 가지각색의 카페, 게스트하우스와 갤러리까지 제각기 매력을 뽐내는 상점들이 취재진의 눈길을 재차 훔친다.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인 만큼 볼거리가 가득한 거리다. 이외에도 김재문하숙터, 박동완집터, 윤동주하숙집, 구립 박노수미술관 등 잘 보존된 사적지가 걷기 여행에 깊이를 더한다. “안녕하세요, 혹시 탐방에 해설이 필요하시면 저희를 불러주세요!” 옥인동 골목길 끝에 수성동계곡에 다다른다. 계곡 앞으로 다가서자 전문 숲해설가가 취재진에게 짧은 소개를 전한다. 사대문 안 경복궁을 품은 인왕산은 억겁의 세월을 품은 역사 그자체의 산이다. 종로구는 이에 인왕산 들머리 곳곳에서 ‘찾아가는 숲해설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등산객들의 인왕산 탐방을 돕고 있다. “저희는 독립문에서 출발하는 인왕산 정상 코스는 한번 가본 적 있어요. 둘레길을 걸어보는 일정은 처음이네요.” 수성동계곡은 인왕산 둘레길이 지나는 지점이다. 박민구씨와 함수현씨가 접어두었던 스틱을 꺼내며 트레킹을 준비한다. 계곡 옆 야자매트를 따르자 길은 이내 나무 그늘 아래로 이어지는  숲길로 바뀐다. 나무 데크길과 흙길을 번갈아 오르내리는 둘레길은 약 3km 거리의 부암동까지 이어지며 숲놀이터와 전망대, 가온다리와 계곡, 너른 쉼터를 지난다. 지루할 틈 없이 계속되는 오솔길, 곳곳에 설치된 생태 안내판이 둘레길 탐방의 이해를 돕는다.  

잠시 쉬는 순간에도 꼭 붙어있는 신혼부부 박민구씨와 함수현씨.
잠시 쉬는 순간에도 꼭 붙어있는 신혼부부 박민구씨와 함수현씨.
수성동계곡부터는 인왕산둘레길을 따라 숲길 트레킹을 즐겼다.
수성동계곡부터는 인왕산둘레길을 따라 숲길 트레킹을 즐겼다.
인왕산 둘레길 중간에 만난 넝쿨이 예뻤던 하얀 담장. 산과 도심을 오가는 매력적인 인왕산 걷기 여행.
인왕산 둘레길 중간에 만난 넝쿨이 예뻤던 하얀 담장. 산과 도심을 오가는 매력적인 인왕산 걷기 여행.
북정마을의 꽃 계단길. 가장 인기있는 포토존이다.
북정마을의 꽃 계단길. 가장 인기있는 포토존이다.

신혼여행? 우린 “신혼원정!”

1시간여 트레킹 끝에 부암동 인도에 닿는다. 지대가 높은 부암동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자 붉은 천장의 집이 빼곡한 청운동의 조망이 펼쳐진다. 마치 유럽의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삼각형 모양의 지붕들이 멀리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과 대비되며 더욱 평화로운 그림을 연출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청운동 마을과 부암동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걷기 여행에 재미를 더할 것이다. 취재진은 청운동의 조망을 우측으로, 북악산의 산자락을 좌측에 끼고 창의문로를 따라 들머리로 향한다. “신혼여행지로 저는 일본 북알프스를, 오빠는 스위스 마터호른과 프랑스 몽블랑을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아직 자유여행이 제한되어있어서 선택지는 결국 하나였죠!” “마터호른은 이전에 개인등반으로 다녀온 적이 있어요. 등반지 자체가 좋았던 것도 이유이지만, 알피니즘의 발원지인 알프스를 평생의 반려자가 된 수현이와 다시 가고 싶더라고요.” 박민구 함수현씨는 얼마 전 약 3주간의 스위스~프랑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브라이트호른(4,164m), 마터호른(4,475m), 에귀 디 미디(3,842m) 등 3천 고지가 넘는 아찔한 고산들을 읊으며 두 사람이 그들만의 이색 허니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거 정말 신혼여행 이야기 맞나요? 무용담 듣는 것 같아요.” “둘 다 휴양이나 관광보다는 야영과 모험을 좋아해서요(웃음). 그럼 신혼여행 말고 ‘신혼원정’이라고 하죠!” 부암동에서 15분여 내려서자 청와대에 도착한다. 청와대는 지난 5월부터 국민들에게 개방되어 기존의 삼엄했던 경비가 다소 줄어든 분위기다. 청와대 앞의 한적한 무궁화광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건너편 경복궁의 거대한 돌담길에 다가선다. 연이어 등장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모험가 신혼부부의 흥미진진한 허니문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출발지였던 경복궁역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여정의 막바지에 두 사람에게 다음 원정 계획을 묻자,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북알프스”를 외친다. “빠르면 올겨울 동계원정을 계획하고 있어요. 고난도 구간에 있는 ‘블랙엔젤’ 표지판을 보는 게 제 오랜 버킷리스트였거든요. 2년 전에 등산학교에 입학했던 이유도 이거 때문이었는데, 거기서 민구오빠를 만나게 되었으니, 같이 가면 정말 감동적일 것 같아요.” “수현이가 북알프스 전문가라 마음이 든든합니다. 수현아 우리 유럽 알프스도 잘 다녀왔으니, 다음 알프스도 준비 잘해보자!”  

짧은 트레킹이 아쉬워 찾은 성북동 북정마을. 골목여행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짧은 트레킹이 아쉬워 찾은 성북동 북정마을. 골목여행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가지각색의 예쁜 골목길이 많은 서촌. 낙서가 가득한 담장 앞에서 박민구 함수현씨가 사랑의 메모를 적고 있다.
가지각색의 예쁜 골목길이 많은 서촌. 낙서가 가득한 담장 앞에서 박민구 함수현씨가 사랑의 메모를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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