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용의 춤추는 알프스

 글 사진 · 임덕용(꿈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돌로미티의 재앙

7월 4일, 주 밀라노 총영사관에서 교민들에게 한 통의 메일이 전송되었다.     
“<돌로미티 등 산악지대 여행 관련 안전공지> 7.3(일)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에서 폭염으로 인해 빙하가 붕괴되면서 등반객 다수가 피해(사망 7, 부상 8, 실종 14.-최종 집계는 사망 12명)를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최근 유럽지역 폭염이 지속됨에 따라 알프스산맥 등 우리 국민이 즐겨 찾는 트레킹 지역에서 유사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감안, 산악지역 산행 및 통행 시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산행 시에는 일몰 전 상당한 여유를 두고 산에서 벗어나거나 산장으로 도착하시기 바라며, 휴대폰 통화권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본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장비(GPS로 위도와 경도를 알 수 있는 시계 등), 비상식품, 물, 방수 의류 등을 휴대하시기를 권장합니다.”      작년 겨울 적설량이 매우 적었고, 올해는 유럽 최대 가뭄의 연속으로 많은 호수의 물이 말라갔다. 또 6월부터 계속된 폭염은 유럽 많은 도시를 40도 가깝게 달궜으며, 알프스의 빙하는 역대 최대로 많은 양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었다. 영하 빙점은 해발 5,000m를 찍고 있었고, 몽블랑과 마터호른 같은 명봉들의 등반 금지령이 내려졌다. 스위스 등지에 산재한 여러 빙하의 정상에서는 수십 년 전에 조난당한 산악인과 추락한 비행기들이 연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돌로미티를 등반하던 35년 전에는 마르몰라다 빙하가 한여름에도 호수 가깝게까지 닿아있었고 근 10년 전만 해도 섬머 스키를 탔던 곳인데, 지금은 정상 주변에만 빙하가 형성되어 있어서 만년설 산이 아닌 빙하만 남은 앙상한 산으로 변했다. 이번 빙하 붕괴 사고 바로 이틀 전에도 한국인들과 마르몰라다 정상 부근에서 빙하 트레킹을 했었다.

 

환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델레 트린체 루트. 오른쪽 작은 봉이 루트의 마지막 구간이다.
환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델레 트린체 루트. 오른쪽 작은 봉이 루트의 마지막 구간이다.

 

공중다리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스릴 만점의 스트레칭이었다.
공중다리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스릴 만점의 스트레칭이었다.
곤돌라 안에서 파비오와 함께.
파비오의 핸드폰으로 촬영한 장면. 장난스럽게 등반 중이다.
파비오의 핸드폰으로 촬영한 장면. 장난스럽게 등반 중이다.

 

즐거운 산 친구, 파비오와 라우라 부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제약 회사가 있는 ‘시에나’에서 근무하는 친구 파비오(Fabio)와 라우라(Laura) 부부가 돌로미티로 2주간 휴가를 왔다. 매년 여름과 겨울철에 2주씩 휴가를 오는 산악인, 스키어 부부다. 5년 전 코르티나 페라타 뿐따 안나(Punta Anna)를 등반하다가 알게 된 45세의 젊고 힘이 좋은 친구였다. 호탕한 성격에 건장한 체구가 보기만 해도 듬직했다. 그들 부부는 볼자노를 지날 때면 토스카나 산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끼안띠(Chianti) 레드 와인을 선물했고 나는 볼자노 남 티롤 알프스의 토산품인 삼겹살 훈제 스벡(Speck)과 누룽지 빵을 선물했다. 반갑게 볼 키스를 하며 서로의 안부만 확인하고는 곧장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아랍바(Arabba)로 갔다. 아랍바는 파비오 부부가 2주일간 묵을 숙소와 가까웠다. 매 여름이면 만나서 비아 페라타 등반을 몇 개씩 했지만 올해는 내가 가이드를 해야 하기에 단 하루만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간 내가 해본 페라타 등반 중 마르몰라다를 계속 조망하며 등반을 할 수 있고, 위험도도 거의 없는 중급의 페라타 델레 트린체 루트를 오르기로 했다. 파비오는 나를 “마에스트로(사부님)!”라고 부르며 마치 막내동생처럼 잘 따랐고, 부인 라우라는 파비오가 만약 볼자노에 산다면 나와 매일 산에 갔거나 클라이밍을 배워 알파인 가이드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루트 소개서에는 ‘전반적인 난이도는 쉬운 편이지만 동시에 적절한 파워와 경험이 필요한 루트입니다. 파돈(Padon) 그룹의 벽으로 끊임없는 힘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확실히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남깁니다.’라고 적혔다. 100여 년 전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돌로미티의 최고봉인 마르몰라다를 점령하기 위한 처절한 전투가 있었다. 고지 점령을 위해 마르몰라다 건너편의 이 벽에 와이어로프를 설치하고 군부대를 주둔시켰다. 요새화를 위해 암벽에 동굴을 팠고, 벽 사이의 작은 공간에도 돌로 막사를 지었다. 이탈리아군은 능선 돌파에 실패한 후 대초원 아래에서 공격하여 적진을 관통하려 했다. 그러나 2,340m의 고도를 ‘죽음의 언덕’으로 개명할 정도로 특별한 전과는 얻지 못했다.

 

벽이 기억하는 전쟁의 슬픔을 껴안아 보자!

 

이 아름다운 산에서 왜 전쟁을 했을까?

 

세계대전의 흔적이 곳곳에

등반 루트는 전체적으로 붉은색의 화산석 같이 부서지기 쉬운 암석과 검은빛을 띠는 단단한 암석이 섞여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항상 마르몰라다가 보였고, 돌로미티의 중앙에 위치한 삿쏘룽고(Sassolungo)와 셀라(Sella) 암군, 멀리는 빳쏘 포르도이(Passo Pordoi)와 연결되는 지능이었다. 이 페라타 루트는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릿지’ 등반 같다. 처음에 고도를 올려 치면 그 뒤로는 거의 평행선으로 오르고 내리며 등반하는 재미가 있었고, 특히 뛰어난 경관은 정말 명품 비아 페라타 등반지임을 실감케 했다. 루트 접근은 카나제이(Canazei)나 발 디 파사(Val di Fassa)에서 할 수도 있다. 마르몰라다 바로 아래의 댐 근처에 차량을 주차한 후 도로 왼쪽 698번 푯말이 있는 포르타 베스코보(Porta Vescovo)를 보며 1시간쯤 급경사로 오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파비오 숙소가 가깝다는 이유로 아랍바마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포르타 베스코보를 올랐다. “이 나이에 벽 등반하는 것도 대단한데!”하며 키득거리면서 말이다. 곤돌라 역을 나와 흰색과 빨간색 표지판을 따라 올랐다. 금방 비아 페라타 표지판이 나왔고 우리는 매우 익숙하게 등반 준비를 했다. 처음 30m는 벽의 경사가 급하고 노출되어 까다롭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멋진 경관이 펼쳐졌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날이 맑고 화창했다. 작은 나무다리가 두 벽을 연결시켜주었고, 풀 한 포기 없는 벽과 하늘만이 존재했다. 1시간 30분쯤의 1단계 벽 등반이 끝나면 탈출로를 만난다. 등반을 포기하려면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오른쪽 초원을 따라 내려가 포르타 베스코보와 파돈 산장을 연결하는 고지대 도로를 이용하여 길을 빠져나갈 수 있다. 두 번째 구간은 세계대전의 흔적과 역사적 증거가 가득한 곳으로, 2시간쯤 걸린다. 본타디니 비박(Bontadini bivouac)을 향해 오르자 첫 번째 동굴이 나왔다. 필자와 달리 반대편으로 계속 간다면 벨루노 산군의 토파네(Tofane), 벨모(Pelmo), 안텔라오(Antelao)를 볼 수 있다. 길이가 30m쯤인 터널을 빠져나오자 636번 등산로를 만났다. 본타디니 비박지에서는 많은 군사 유물을 볼 수 있어서 마치 전쟁 박물관에 온 듯했다.   

피너클 마지막 부분을 오르는 파비오가 멋져 보인다.

 

마르몰라다와 아래 호수가 잘 보이고 와이어로프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여름이어도 음지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다.

 

파비오가 마지막 구간을 오르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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