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용의 춤추는 알프스.

 

정상 벽 아래 거대한 오버행을 두 개의 줄사다리로 올라가는 등반팀. 모든 산행의 진미는 과정에 있다. 정상을 오르는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정상 벽 아래 거대한 오버행을 두 개의 줄사다리로 올라가는 등반팀. 모든 산행의 진미는 과정에 있다. 정상을 오르는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글 사진 · 임덕용(꿈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하이릴리리 요를 하이릴리리이 요를

요를 레이히 리리 요를 레이히 리리

푸른 창공에 로프 던지면

그 아래 행복이 있고

그보다 더욱 높이 던질 때

행복은 가까우리

오색찬란한 무지개 찾아

어제도 오늘도 로프를 메고

하늘 끝까지 로프 던질 때

행복은 미소지리

요를 레이히 리리

요를 레이히 리리     

 

푸른 창공에 로프 행복은 찾아와주고

하늘 끝까지 로프 던질 때

행복은 가득차리

오색찬란한 무지개 찾아

어제도 오늘도 로프를 메고

하늘 끝까지 로프 던질 때

행복은 미소지리 요를 레이히 리리 요를 레이히 리리

 

- 김홍철 요들송

 

대부분의 페라타 등반은 올라가는 구간이 많은데 독수리길은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 수평 횡단과 상승이 각 30%다.
대부분의 페라타 등반은 올라가는 구간이 많은데 독수리길은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 수평 횡단과 상승이 각 30%다.

 

한국 요들송의 대부, 김홍철

‘푸른 창공에 로프를 던져라’는 1974년 발매한 요들 가수 김홍철의 앨범에 ‘아름다운 베르네 산골’, ‘아름다운 스위스 아가씨’와 함께 실린 노래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흥겨운 요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당시 산에 오르는 산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을 잘 묘사하고 있는 곡으로 김홍철의 요들과 맑은 목소리가 이 노래와 잘 어울렸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이 노래를 모르는 산악인이 없었고, 일반인들도 흥얼거리던 산노래다. 일반인들에게 ‘에델바이스’ 못지않게 널리 알려진 산노래라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원곡은 1949년 슬림 휘트먼(Slim Whitman)에 의해 미국에서 발표되었다. 1924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음악을 배운 휘트먼은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다가 요들을 배우면서 이런 장벽을 극복했다고 한다. 이 곡은 미국에서 발표되었지만 영국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요들송은 원래 알프스에서 소와 양을 치던 목동들이 서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발달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우리나라 요들송의 대부로 통하는 김홍철은 한국 요들송의 개척자이자 전도사로 많은 활동을 했고, 지금도 즐겁고 유쾌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산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과 들로 떠나는데,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는 요들송의 대부 김홍철도 산노래를 즐겨 부르며 산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이태원 한 골목의 높은 곳에 김홍철씨가 운영하던 ‘살레 스위스’가 있었다. 알프스 지방의 대표 음식인 ‘치즈 퐁듀’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치즈와 훈제 고기, 파스타를 팔았고, 주요 시간대엔 김홍철 씨와 연주단의 라이브 음악 연주회가 이어졌다. 한남동에 살던 내가 당시 연애하던 아내와 가장 자주 찾던 곳이기도 했다. 스위스 민속복을 입고 연주하던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나로 하여금 알프스 3대 북벽과 히말라야 원정 등반에 발을 들이게 한 마중물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알프스를 동경하며 꿈을 꾸었는데, 나는 이제 36년이 넘는 세월을 알프스에서 살고 있다.     

 

신비로운 동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횡단 구간.
신비로운 동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횡단 구간.

 

신비의 동굴 Grotta del mistero로 들어가는 나무 표지판.
신비의 동굴 Grotta del mistero로 들어가는 나무 표지판.

 

거대한 벽에서 살던 독수리들

고요함과 아드레날린을 동시에 주는 브렌타 돌로미티에서 비아 페라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독수리 비아 페라타’ 루트는 안달로 마을 위 빠가넬라 스키장 거벽 위에서 살던 독수리들을 기념해서 만든 것이다. 지금도 수직 벽 동굴에서 사는 거대한 독수리들이 허공을 박차고 창공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루트는 길게는 알토 아디제(Alto Adige) 주에서 라고 디 가르다(Lago di Garda) 호수를 끼고 있는 트렌토(Trento) 주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비아 페라타 루트 중 난이도와 아름다움에서 으뜸이다. 일반인과 익스트림 경험이 많은 전문 산악인을 위해 루트의 주요 지점은 두세 개 코스로 나뉜다. 자신의 등반 능력에 맞게 코스를 선택해서 오를 수 있는 비아 페라타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일반 루트를 오르거나 엄청나게 큰 칸테인 스피골로 델 벤토(Spigolo del vento)를 따라 정상에 오르거나 독수리처럼 날아라(Flight of the Eagle)을 향해 계속 오를 수 있다.

 

펜듈럼하는 실바노가 하늘을 날고 있다. 멀리 첫 번째 티벳 다리가 보인다.
펜듈럼하는 실바노가 하늘을 날고 있다. 멀리 첫 번째 티벳 다리가 보인다.

 

일반적인 등반 시기는 케이블카가 운행하는 6월 중순부터 9월 말 사이지만 이른 봄, 몸이 근질근질한 친구들과 프랑코 죤코의 꼬드김에 못 이겨 안달로 주차장에 모였다. 스키장 주주인 프랑코 죤코는 자신의 사륜구동 차량으로 다섯 명을 태운 채 슬로프를 오를 수 있는 증명서가 있다. 등산로나 야생동물 관리를 위해 차량으로 자주 슬로프를 오르기 때문이며, 이 비아 페라타 루트를 만드는 데 공헌했으며, 마케팅 책임자기도 했다.

남들이 절대로 못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 할 수 없는 일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살레봐 암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실바노, 푸로리안이 동행했다. 모두 6b쯤은 등반하는 친구들이어서 비아 페라타 등반은 산책 정도로 생각하지만 아직 올라보지 않은 루트를 오르자니 마치 소풍 나온 어린이들처럼 즐거워한다. 실바노는 이탈리아 전화공사에서 일했고, 푸로리안은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는데 지금은 둘 다 연금을 받으며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며 산다.

폭스바겐에서 신차가 나올 때마다 무상으로 대여받고, 차에 드는 모든 경비도 지원받는 프랑코 죤코의 신차에 대한 자랑이 시작되었다. 전기차여서 산에서 오랫동안 달리기에는 충전의 문제가 있지만 힘이 좋아 비포장길을 오르내리기에는 아주 좋단다. 바퀴에 튕겨 나가는 작은 돌들의 경쾌한 소리를 들으며 차가 힘차게 올라간다. 블랙 슬로프를 오를 때는 마치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뒷좌석에 있는 사람들은 몸이 완전히 뒤로 젖혀지는 것 같단다.

창문을 모두 열고 달렸지만 가솔린의 매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은 것과 자동차가 힘들게 엔진을 돌리는 굉음이 없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차는 매우 힘차게 올라갔다. 시즌에만 올라왔던 스키장 정상에서는 바로 아래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라고 디 가르다와 트렌토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뒤돌아서자 브랜타 돌로미티의 웅장한 연봉들이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졌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버행 줄사다리의 끝부분을 오른 실바노가 안도의 숨을 쉰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버행 줄사다리의 끝부분을 오른 실바노가 안도의 숨을 쉰다.

 

알베르토 바넬에게 헌정된 루트

슬로프를 따라 20분쯤을 걸어 내려갔다. 등반 시작지점에는 나무벤치가 있어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신발끈을 메며 간단한 간식을 먹기에 안성마춤이었다. 모든 등반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보통이지만 이 등반 루트는 시작부터 와이어를 잡고 급경사의 아래로 150m쯤을 내려갔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인 카를로 알베르토 바넬(Carlo Alberto Banal)에게 헌정된 이 루트는 전체 등반의 1/4이 하강이고 1/4은 횡단, 1/4은 상승이며 정상 바로 아래의 거대한 오버행에 설치된 달팽이 형태의 쇠사다리를 오르는 게 마지막 절정의 1/4이다. 이미 10번 남짓 등반을 한 곳이지만 산과 벽은 매번 달랐다. 작열하는 태양을 등지고 오르던 때와 눈 덮인 슬로프를 산악 스키로 오른 후 겨울 비아 페라타를 등반하는 맛과 멋이 달랐다.  

2015년 첫 번째 루트가 만들어졌을 때 개통 바로 전에 눈 덮인 슬로프를 산악 스키로 오른 후 등반을 하고 스키로 활강했던 추억이 제일 좋았다. 1차 루트를 비교적 쉽게 만들고 난 후 개척 회사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변형 상급 루트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이 루트의 정점인 정상 벽 거대한 오버행을 줄 사다리를 타고 빙빙 돌면서 올라가게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티벳 다리를 확보하고 건너는 실바노와 푸로리안.
두 번째 티벳 다리를 확보하고 건너는 실바노와 푸로리안.

 

첫 번째 티벳 다리를 건너면 바로 위로 두 번째 다리가 나온다.
첫 번째 티벳 다리를 건너면 바로 위로 두 번째 다리가 나온다.

 

첫 줄사다리는 빙빙 돌면서 올라가며 360도 경치를 볼 수 있는 구간이 20m고, 바로 위로 다시 20m 오버행에는 흔들 와이어 사다리를 설치해서 유명세를 떨쳤다. 그 후 2년 뒤 다시 비아 페라타 역사상 처음으로 펜듈럼(Pendulum,시계추처럼 옆으로 달려가서 다시 등반을 시작하는 행위) 루트를 만들었고, 펜듈럼 후 직상하는 오버행을 최대한의 팔 힘과 발 디딤 없는 구간으로 만들어 난이도를 한 단계 올렸다.     

 

정상 마지막 벽 진입 바로 전에 트렌토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나무 벤치가 와이어 로프로 고정되어 있다.
정상 마지막 벽 진입 바로 전에 트렌토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나무 벤치가 와이어 로프로 고정되어 있다.

 

“죤코. 너는 이 루트 몇 번 등반했지?”

“100번까지는 세었는데 지금은 기억 안 하는 게 편해서 잘 몰라.”

“넌 이 루트 만들 때부터 관여했는데 등반할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지?”

“글세, 다른 페라타 등반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이나 시도를 어떻게 할 수 있나를 항상 생각해.”

“등반 기분은?”

“글쎄, 난 이제 무감각해졌는데. 지금도 보름달이 떴을 때는 매번 야간 등반하는데 차원이 달라. 고요 속에서 혼자 야간 등반할 때의 멋은 정말 좋지. 다음에 같이 하자!”

“아 참,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이 루트를 등반하고 남긴 평을 보거나 말로 등반 소감을 듣는 즐거움이 직접 등반하는 것보다 더 좋아.”

76세 영감 프랑코 죤코의 말이다.     

 

정상에 새로 설치한 금속판 비아 페랏따 루트 표시도. 금속판이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그림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정상에 새로 설치한 금속판 비아 페랏따 루트 표시도. 금속판이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그림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정상에 선 프랑코 죤코와 실바노, 푸로리안과 나.
정상에 선 프랑코 죤코와 실바노, 푸로리안과 나.

 

그렇다. 산을 직접 가는 것도 좋지만 산을 모르는 사람들을 산에 데리고 가며 가르쳐 주고 알려주는 즐거움이 더 크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산에 빠지는 과정을, 미쳐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독약이다. 나 혼자만이 아닌 동질감, 공통점, 같이 산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정신발작형 병명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알프스와 히말라야 원정을 꿈꾸던 10대 후반의 내가 불렀던 ‘푸른 창공’ 노래가 생각난다.

 

푸른 창공에 로프 던지면

그 아래 알프스가 있고

그보다 더욱 높이 던질 때

히말라야는 가까우리

오색찬란한 장비를 달고

어제도 오늘도 로프를 메고

하늘 끝까지 로프 던질 때

정상은 미소지리

요를 레이히 리리 요를 레이히 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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