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무·황명옥 부부 인터뷰, 애큐온캐피탈 대표이사

 

주말마다 장거리 산행과 달리기 “부부가 함께 해서 더 즐겁습니다”

글 · 선주성 기자  사진 · 정종원 기자

 

지리산 성삼재~중산리 12시간 종주를 다녀온 다음날 이중무, 황명옥 부부는 늘 그렇듯 함께 몸풀기 산행을 위해 아차산을 찾았다.
지리산 성삼재~중산리 12시간 종주를 다녀온 다음날 이중무, 황명옥 부부는 늘 그렇듯 함께 몸풀기 산행을 위해 아차산을 찾았다.

 

이중무(53세)·황명옥(52세)씨 부부는 한 달에 두세 번 토요일 마다 20km 정도의 장거리 산행을 한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한강에 나가 21km를 달린다. 이 부부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들의 체력과 건강,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돈독한 부부애에 부러움을 느낀다.

이중무 애큐온캐피탈 대표이사는 투자업 분야에서는 유명한 등산·마라톤 애호가. 풀코스 마라톤 100회 완주를 이미 십여 년 전에 넘어서고 나서는 더 이상 완주 숫자를 헤아리지 않을 정도다. 적어도 200회는 넘었을 것이라고. 마라톤 최고 기록도 2시간 46분으로 아마추어 최고수 수준이다.

20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등산은 우리나라 웬만한 산은 다 다녀올 정도로 마니아다. 지리산, 설악산 종주 코스는 일 년에 최소 10차례 할 정도다. 아내 황명옥씨도 등산을 본격 시작한 7~8년 전부터 남편과 거의 모든 장거리 산행을 함께 한다. 남편의 인도로 시작한 마라톤도 수십 차례 완주했고 최고 기록 또한 3시간 32분에 이를 정도로 아주 잘 달리는 수준이다.

두 사람이 장거리 등산·달리기를 함께 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일상의 이야기를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접했을 때 그 비결이 궁금했다. ‘간섭받기 싫어’ ‘생각을 즐기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등산을 홀로 다니는 중년의 ‘외로운 늑대’들에게 지혜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비결’을 알려면 책상에 앉아 2회에 걸쳐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난 6월 18일, 이·황 부부가 지인들과 함께 하는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에 동행했다.     

 

이중무, 황명옥 부부가 주말 아침 산행을 하고 있다.
이중무, 황명옥 부부가 주말 아침 산행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12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에서 20km를 함께 달리고 결승선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선주성 기자)
지난 6월 12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운탄고도 스카이레이스'에서 20km를 함께 달리고 결승선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선주성 기자)

 

두통과 가슴 통증으로 시작했던 등산과 달리기

새벽 2시,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설악동 주차장에 서자 일행 28명이 빠르게 내려 헤드랜턴을 켰다. 오늘 산행 코스는 외설악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신흥사~비선대~마등령(1,326.8m)~공룡능선~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신흥사로 약 20km다.  

일행은 이·황 부부의 지인들로 산행 고수와 ‘생초보’가 섞여 있었다. 선두에 황명옥씨가 섰다. 이 코스를 남편과 함께 여러 차례 왔기에 지인들과 오면 페이스와 방향을 이끌고 간다. 전체 리더이자 기획자인 이중무씨가 맨 뒤에서 일행을 보살폈다. 이씨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일정 내내 웃으며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신흥사에서 비선대까지 평탄한 길이 끝나고 가파른 언덕길에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물었다. “산을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나.”

“어릴 적부터 두통이 심했다. 어떤 때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두통이 심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두통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심지어 신체해부학까지. 많이 걸으면 좀 괜찮아졌다. 특히 산을 걸으면 더 좋아졌다. 그래서 대학 때부터 산을 자주 다니게 되었다. 산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두통을 완화하기 위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한국씨티그룹캐피탈에 입사했다. 삼십대 초에 지점장에 올랐다. 일 밖에 몰랐다. 그러던 1999년 어느 날, 가슴 통증을 느꼈다. 어릴 적부터 따라다니는 두통에 가슴 통증까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와 등산을 하면서 두통도 가슴 통증도 사라졌다. 그래서 달리기와 등산을 더 많이 자주하게 되었다.
 

꽃을 알고 산의 공기를 느끼는 게 좋아 산에 계속 가고 싶다는 황명옥씨.
꽃을 알고 산의 공기를 느끼는 게 좋아 산에 계속 가고 싶다는 황명옥씨.

 

“산의 공기, 냄새, 느낌, 기운이 좋아 더 자주 오고 싶다”는 여자

날이 밝아지면서 운무가 끼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날이 일찍 밝았다. 능선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이씨의 마음이 좀 급해지는 듯 했다. 가파른 오르막만 걸어온 지 3시간이 조금 넘은 5시 10분쯤. 운무 때문에 해수면 일출은 어차피 못 볼 것이었다. 다행히 이른 아침 하늘에 약간 떠올라 운무를 가르며 비치는 붉은 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황 부부는 일주일 전에 강원도 정선 운탄고도 20km 트레일러닝대회에 나가 5시간을 함께 걷고 달렸다. 그리고 한 달 전인 5월 22일에는 지인들을 데리고 지리산 성삼재~중산리 12시간 종주를 했다. 아내 황씨에게 물었다.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잘했나.”

“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운동을 좋아하긴 했다. 그렇지만 청년기 이후 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20년 전부터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남편이 나에게 걷기를 권했다. 남편이 산을 자주 다니고 달리기를 엄청 좋아하지만 나에게 운동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걸을 때는 그냥 내 속도에 맞춰주었다.

가끔 산에도 같이 갔다. 남편이 해주는 꽃, 역사, 산 이야기 같은 것이 좋았다. 공기, 냄새, 기운, 분위기가 좋아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긴 시간 산을 걷게 되었다. 그러다 7년 전부터 남편이 좋아하는 달리기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달리기도 재밌다. 그래서 풀코스 마라톤을 여러 차례 뛰게 되었고, 요즘은 지금의 최고기록인 3시간 32분을 2분 정도 더 당기고 싶어 열심히 달린다.”

마등령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금강문 인근에서 다리에 쥐가 난 일행이 있어 계획보다 조금 늦은  아침 6시 10분 경 마등령에 도착했다. 행동식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휴식을 취하기 힘들다. 이제부터 공룡능선 시작이다. 이름 그대로 공룡의 등뼈처럼 무시무시한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이다. 나한봉, 1275봉, 신선대가 있다.
 

이중무 애큐온캐피탈 대표이사는 "늘 웃는 얼굴로 아내에게 맞춰주는 것이 부부애의 비결"이라고 했다.
이중무 애큐온캐피탈 대표이사는 "늘 웃는 얼굴로 아내에게 맞춰주는 것이 부부애의 비결"이라고 했다.

 

산행 할 때 등산 스토리텔러로 변신하는 남자

기자는 일행의 맨 뒤에 있는 이중무씨와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중무씨는 직장에서 잘 나갔다. 30대 초에 한국씨티그룹캐피탈 지점장이 된 이후로 30대 후반에 이미 대기업 임원이 됐다. 그러다 40대 초반에 갑자기 타의에 의해 회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분노와 좌절로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때 새벽 첫 버스를 타고 설악산에 와서 물과 빵이나 김밥만 들고 하루 종일 산을 걷다가 막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길 거의 매일 같이 했다. 산을 오르고 걸으니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고 기회를 기다리며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당시 설악산 구석구석, 사계절 모습을 다 경험했다. 지금도 어느 시절 어느 곳에 무슨 꽃이 피는지 다 기억할 정도다. 어릴 적 어머니가 약초나 나물을 캐러 산에 데리고 다니며 설명해 주신 것이 풀꽃나무를 잘 기억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고 했다. 거기에 공부와 경험을 더 보태 아내에게 등산스토리텔러로 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중무, 황명옥 부부가 설악산 공룡능선을 종주하며 대청, 중청, 소청봉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 선주성 기자)
이중무, 황명옥 부부가 설악산 공룡능선을 종주하며 대청, 중청, 소청봉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 선주성 기자)

 

이씨는 공룡능선을 걸으며 일행들이 가끔씩 뒤돌아보도록 유도했다. 가파른 경사길을 힘들게 오르고 내리기만 하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한 때는 자랑거리를 만들려고 속도 위주로 산행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 10여 년 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가족 4명이 함께 지리산 1박2일 종주를 하며 깨달았다. 아이들과 천천히 함께 걸으며 주변 경치를 충분히 감상하는 것이 제대로 산행을 하는 것임을.

 

설악산 공룡능선의 어느 오르막을 오르는 이중무, 황명옥 부부. 맨 앞에 황씨, 맨 뒤에 이씨가 있다.(사진: 선주성 기자)
설악산 공룡능선의 어느 오르막을 오르는 이중무, 황명옥 부부. 맨 앞에 황씨, 맨 뒤에 이씨가 있다.(사진: 선주성 기자)

 

나한봉(1,298m)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 급경사 구간을 지났다. 다시 큰새봉(1,132m)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하면서 일행들이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선두에 선 황명옥씨는 여전히 발걸음이 가볍다. 빨리 가는 일행을 뺀 본 그룹은 이제 10여 명. 맨 뒤에서 선 리더 이중무씨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좀 지친 모습의 일행이 있으면 그냥 쉬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휴식조차도 수많은 경험 속에 나온 계획에 있었던 것이었다.

이중무, 황명옥부부가 아차산 정상 가는 길 중간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중무, 황명옥부부가 아차산 정상 가는 길 중간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1년 동안 3,820km 달려… ‘1km 1,500원 기부’ 나와의 약속

잠깐 쉬는 동안 소셜네트워크에서 본 놀라운 이야기를 물었다. “4주전 지리산 성삼재~중산리 12시간 종주를 다녀온 후에도 아내와 함께 ‘가볍게 몸풀기’로 21km를 달리셨더군요. 작년 6월부터 올해 5월말까지 1년 동안 달린 거리가 3,820km를 달렸네요. 다른 사람이 보면 몸을 너무 혹사하는 것 같은데요.”

“이제 예전처럼 빨리 달리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길게 달리는 것은 몸을 회복하는 행위다. 아내도 좋아한다. 그리고 1km를 달릴 때마다 1,500원씩 기부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달린다. 매달 50만원 이상은 소아암환자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기부하고자 한다.

내가 대표로 있는 애큐원캐피탈도 회사 차원에서 소아암환우돕기 기부를 한다. 직원들이 달리기를 통해 스스로 기부금을 모으면, 회사에서 매칭으로 더 보태 직원 이름으로도 기부한다.”

 

등산을 하며 두통과 허리통증을 극복했다는 이중무, 황명옥 부부.
등산을 하며 두통과 허리통증을 극복했다는 이중무, 황명옥 부부.

 

이중무 애큐온캐피탈 대표이사는 투자업계에서는 드물게 8년째 외국계 투자사 대표를 하고 있다. 이 대표가 회사를 이끌고 나서 매출이 5배나 늘었다. 직원들과 달리기, 등산을 같이 한다. 골프는 이제 안한다. 금융업계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골프 안치는 CEO다. “등산이나 달리기가 직원들과 조직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나요.”

“CEO는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 일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사교를 위한 골프는 안하더라도 사업에 큰 지장 없다. 직원들과 산에 가고 달리기 하는 것이 오히려 단합심, 유대감을 형성해 회사 성과에 더 도움이 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게 부부애의 기본 아니겠냐"라고 말하는 이중무,황명옥 부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게 부부애의 기본 아니겠냐"라고 말하는 이중무,황명옥 부부.

 

“기다려 주고, 맞춰 주고… 산행 즐겁게 해주는 남편이 좋아”

신선대에 오르는 마지막 언덕길을 넘어 희운각 대피소 전 무너미고개에 이르자 일행들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천불동 계곡을 지나며 며칠 전 비로 물이 많아진 양폭포, 음폭포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양폭대피소 지나면 계곡 따라 평탄한 내리막이다. 이 대표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내와 이렇게 같이 산과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비결은 뭔가요.”

“비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내를 강요하지 않고 아내에게 맞춰줬다. 내가 산과 달리기에 몰입할 때에도 아내와는 살살 걷기만 했다. 그러다 작은 산에 갔고, 계절에 맞춰 눈에 보이는 풀꽃나무 이야기를 해줬다. 아내가 산에 다니면서 허리통증이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더 자주, 점점 더 높은 산에 가게 됐다. 이제는 아내가 더 먼저 산에 가자고 한다.”

긴 내리막길에서 아내 황명옥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남편은 늘 나에게 맞춰 주고 기다려 준다.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을 다 해준다. 내가 달리기를 해보니 알겠는데, 남편이 마라톤을 아주 잘 하기 때문에 기록 욕심이 있을 텐데도 내가 달리기를 한 이후로 늘 나와 함께 달리고 내 속도로 달린다. 그리고 함께 산에 가고 달리며 늘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 날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산행이 끝나갈 무렵, 이중무 황명옥 부부에게 시차를 두고 걸으며 물었다. 배우자의 장점 세 가지만 말해 달라고. “아내는 참 슬기롭다. 경우가 바르다. 지나침이 없다.” “남편은 추진력이 좋고, 자상하고, 애교가 많다.” 27년을 같이 산 부부가 상대방에 대해 이런 장점을 말할 수 있다면 공룡능선 뿐 아니라 백두대간 종주도 서로 웃으며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 부부와 산행을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 마음속에 부러움과 반성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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