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제주 111km 프로젝트

 

도전에 목말랐던 우리의 새로운 프로젝트, 제주도 반 바퀴 111km를 달린다!
도전에 목말랐던 우리의 새로운 프로젝트, 제주도 반 바퀴 111km를 달린다!

악우여, 아직 함께 부를 노래,부딪칠 술잔이 남았다!

글 · 김지암(영남대산악부 OB)  사진 · 최홍석(영남대산악부 OB) 

 

참으로 오랜만의 모임이었다. 일본에서 취직했던 홍석 형이 아예 돌아온다는 소식이 있고나서부터 우리는 새로운 작당모의로 분주했다. 3년 전 웨스턴 콕샬투 원정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소규모로 모여 등반, 트레일러닝, 산악스키를 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이번엔 사고를 칠 건이 필요했다. 늘 그래왔듯 교정형이 구상을 하면 나머지 부분은 각자의 재능 혹은 능력껏 살을 붙이는 식으로 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획한 ‘JEJU 111km Project’, 달려서 제주도 반 바퀴를 도는 것이다! 제주라는 공간이나 111km라는 숫자에 그 어느 누구도 왜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함께할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좋은 바보들이었다. 여태 산을 다니며 수차례의 능선종주와 훈련 삼아 달리기를 해왔지만 이렇게 긴 거리는 달리기가 처음인 대원은 물론 트레일러닝을 해왔던 나와 교정 형에게도 도전거리가 되기에 충분 혹은 그 이상이었다.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고 진통제를 먹으며 무릎의 통증을 달랬다.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고 진통제를 먹으며 무릎의 통증을 달랬다.

 

우리가 함께 할 ‘꺼리’, 달리자!

그동안 우리는 함께 할 도전거리가 필요했다. 그간 코로나로 해외로 나갈 하늘길이 막혔고 여태껏 구상해 온 재밌는 일들은 꿈으로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국내에서도 할 ‘꺼리’는 차고 넘쳤지만, 각자 일상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기에도 급급한 사회 초년생인 우리에겐 서로 시간을 맞춰 뒷산을 가는 일정에도 많은 조율과 지극한 정성이 필요했다.

대학산악부로 만난 우리는 항상 무언가에 들떠 있었다. 산악부실이 집이요, 집에서보다 산에서 더 자주 밥을 먹던 재학생 시절엔 여느 철없는 청춘들처럼 자유와 기회가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었다. 늘 어디론가 호기롭게 떠났고 초췌한 몰골로 돌아와도 우리는 부딪치는 술잔과 피어나는 산정에 젖어 피로를 느낄 새 없이 다음 산을 기약했다.

‘그래 우린 앞으로도 영원히 이렇게 함께 산엘 다닐 거야.’

하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점점 많은 책임과 의무를 던졌다. 직장, 가정, 연애, 결혼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산을 놓기는 더더욱 싫었다. 우리의 본질을 잃을 순 없었다. 결국 각자 시간과 조건에 맞게 등반을 하는 방법으로 저마다의 산을 다니곤 했다. 일상은 무수하게 반복적이었고 사회생활을 하며 일어나는 일들은 어지러웠다. ‘하루를 살아도 호랑이처럼 살라’는 존 포터의 말은 허공의 메아리였다. 그저 마음 한켠에 있던 첨예한 도전의 욕망이 꺼지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할 뿐이었다.

4월 28일 금요일을 D-day로 정했다. 서로 사는 곳이나 휴무 일정이 달랐기에 각자 스케줄에 맞게 훈련하고 공유하며 피드백하는 식으로 훈련을 이어나갔다. 달리기를 처음 하는 동훈, 동욱이는 오히려 더욱 열심이었다. 서로의 기록을 공유하기 위해 사용한 어플리케이션인 ‘Strava’를 켤 때면 늘 동생들의 달린 기록이 맨 먼저 보였다. 처음엔 5km로 시작하더니 10km, 20km로 거리를 점점 늘려가며 체력과 지구력을 키워나갔는데, 기록은 물론 달리는 시간을 보면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민철 형, 교정 형, 세옥 형, 홍석 형도 어느 누구 하나 소홀한 마음 없이 저마다 꾸준히 훈련을 해왔다. 그들의 기록을 보는 건 ‘오늘은 쉴까’하는 게으른 마음을 나무라기에 충분했다. 

 

고대하던 도전 당일. 새벽부터 거센 비와 강풍이 몰아쳤다. 그깟 비바람 쯤이야!
고대하던 도전 당일. 새벽부터 거센 비와 강풍이 몰아쳤다. 그깟 비바람 쯤이야!

 

가던 날이 악천후라니

27일 목요일, 각자 일을 마무리하고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밤의 제주도는 추웠고 뿌옇기까지 해 늦봄이 무색하리만큼 싸늘했다. 바람의 냄새와 감촉으로 보아 내일 날씨가 심상치 않을 것 같았다.

숙소엔 나를 제외한 모든 대원이 모여 있었고, 전날 연락해 놀러온다던 한결 선배, 청미 누나는 배고픈 손주들 먹일 요량으로 먹을거리를 잔뜩 싸왔다. 선배들이 정성껏 만들어 준 저녁 식사를 하며 간단한 얘기를 나눴고, 단 몇 시간만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서둘러 채비를 마무리 했다.

다음날 새벽 4시 눈을 떴을 땐 폭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여름도 아닌 봄날, 게다가 하필 거사 당일에 비바람이 몰아치다니…. 비는 강풍을 타고 비스듬히 퍼부어 몸에 닿는 곳마다 아플 지경이었고, 한기 가득한 바람은 그 아픔마저 잊게 만드니 병 주고 약 주는 고약한 날씨였다. 그렇다고 시간을 늦추거나 다음날로 미루자는 식의 얘기는 그 어느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우린 그저 겨울 설악산에서 텐트 생활을 하는 듯 조용히 옷을 주워 입고 장비를 챙겼고 어제 먹고 남은 밥을 데워 먹을 뿐이었다.

아직은 밤 그늘이 깔린 5시, 파이팅을 외치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거창할 것 없는 조용한 울림이었다. 비와 바람의 기세가 여전했지만 얘기를 나누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며 애써 추위를 무시했다. 그깟 비바람쯤이야! 어차피 우리는 뛸 테니. 오전 중으로 날씨가 갤 거라는 예보를 믿을 뿐이었다. 약속한대로 우리는 뒤처지는 이 없이 다 함께 뛰었다.

 

날이 밝으며 비는 줄었지만 하늘에 깔린 구름과 바람은 여전했다. 젖은 옷을 갈아 입어가며 체온 유지에 신경을 썼다.
날이 밝으며 비는 줄었지만 하늘에 깔린 구름과 바람은 여전했다. 젖은 옷을 갈아 입어가며 체온 유지에 신경을 썼다.

 

10km 지점마다 유정 누나, 청미 누나, 홍석 형이 지원차량을 동원해 CP를 마련해주었고, 틈틈이 촬영과 인터뷰를 병행하며 달렸다. 예보대로 내리는 비가 줄었지만 하늘에 깔린 구름과 바람은 여전했다. 쉬는 동안 서둘러 젖은 옷을 갈아 입어가며 체온 유지에 신경을 썼다.

 

20km 지점부터 오른 무릎이 찌르듯 아프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속으로 삼키며 달리기를 이어갔다.
20km 지점부터 오른 무릎이 찌르듯 아프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속으로 삼키며 달리기를 이어갔다.

 

20km쯤 달렸을까, 오른 무릎이 찌르듯 아프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평소 잘못된 자세로 무리해서 달린 탓에 20km쯤을 지날 때마다 무릎이 아파왔지만, 이번엔 아프긴 아파도 60km 때쯤 아프길 바랐다. 살짝 걷고 스트레칭도 하며 통증이 줄기를 바랐지만, 이미 시작된 통증을 가라앉히긴 힘들어 보였다.

뒤늦게 진통제를 먹고 테이핑을 했지만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진 못했다. 속이 쓰린 것을 예방하기 위해 진통제는 앞으로 두 알만 더 먹기로 했다. ‘무릎만 살리면 돼! 무릎을 살려야 해!’를 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인내했다. 왼 무릎을 내딛을 때 ‘가야해!’, 오른 발을 내딛을 때 ‘그만’을 머릿속으로 수 없이 되뇌었다.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도 속으로 삼켰다.    

 

함께 달린 나의 악우들, 우리 늘 건강하고 행복하자. 그래야 앞으로도 함께 달릴 수 있을 테니!
함께 달린 나의 악우들, 우리 늘 건강하고 행복하자. 그래야 앞으로도 함께 달릴 수 있을 테니!

 

달리는 내내 내 앞뒤, 양옆으로 동료가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 뛰었지만 함께 뛰는 것이기도 했다.
달리는 내내 내 앞뒤, 양옆으로 동료가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 뛰었지만 함께 뛰는 것이기도 했다.

 

포기해도 괜찮을 수많은 이유

30km쯤 달렸을 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있던 민철 형은 상황이 나빠져 대열에서 이탈해 지원조에 합류했다. 한결 선배가 차를 타고 우리 옆으로 지나며 파이팅을 외쳐주었을 때는 순간 고통이 멎는 듯 했다. 한결 선배는 언제 어디서든 엄마 같은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매번 배불리 밥을 먹이고 베풀어 주었는데, 정말 엄마를 본 듯 없던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10km 지점마다 유정 누나, 청미 누나, 홍석 형이 지원차량을 동원해 CP를 마련해주었다.
10km 지점마다 유정 누나, 청미 누나, 홍석 형이 지원차량을 동원해 CP를 마련해주었다.

 

40km를 달릴 때쯤 이젠 모두 어딘가 한두 군데씩은 아픈 눈치였다. 애써 내색하지 않고 각자가 이겨내려는 모습에 어디가 아픈지 굳이 서로 묻지 않았다. 날씨는 여전히 사나웠고, 고통의 시간은 성큼 다가왔다. 앞으로 70km가 더 남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은 이제 오른쪽을 타고 왼쪽에도 전이돼 어느 발을 내딛던 고통만 있을 뿐이었다. 통증이 끔찍했지만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내 앞뒤, 양옆으로 동료가 있었고, 그들도 엄청난 인내로 최선을 다하며 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 뛰었지만 함께 뛰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50, 60, ... 70, 90km를 우리는 서로 등을 밀어주고 곁을 지키며 달렸다. 조금씩 간격이 생길 때가 있었지만 이내 서로 한데 모여 다 같이 뛰는 모습은 대형을 갖춘 채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는 철새 무리 같았다. 석양빛이 내리 쬐는 송악산과 바다를 향해 달릴 때는 황홀한 기분마저 들었다.

 

완주 막바지에 우리는 서로 등을 밀어주고 곁을 지키며 절뚝이며 걸었다.
완주 막바지에 우리는 서로 등을 밀어주고 곁을 지키며 절뚝이며 걸었다.

 

달린 거리를 말해주는 시계가 100km를 알렸을 때, 우리는 마치 미리 계획한 작전처럼 남아있는 모든 힘을 쏟아내며 동시에 포효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뛸 수가 없었다. 통증이 아니더라도 정말 다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산을 옮기는 듯 힘들었다. 그렇게 어둠이 내린 중문의 골목 어귀를 가로등 불빛 아래 절뚝이며 걸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인적이 끊긴 껌껌한 길을 걸을 땐 조금 쓸쓸한 기분마저 들었지만 고개만 돌리면 그 기분을 같이 견뎌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힘들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1시간 30분쯤을 더 걸었다.      

 

지원팀, 촬영팀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이번 프로젝트는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원팀, 촬영팀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이번 프로젝트는 모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촬영팀이 지원차량으로 이동하며 틈틈이 우리의 도전을 기록해주었다.
촬영팀이 지원차량으로 이동하며 틈틈이 우리의 도전을 기록해주었다.

 

유대감, 우리의 중요한 가치

마침내 시계에 111km가 찍히는 순간, 더는 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때 엄청난 감정이 몰려오진 않았다. 기쁨의 함성이나 부둥켜안고 눈물 콧물을 흘리는 드라마틱한 장면도 없었다. 감정을 표출할 최소한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우린 너무 지쳤고 숙소까지 이동하는 차에 몸을 내 던지다시피 했다. 숙소에 도착해 선배들이 해준 따뜻한 저녁을 먹고 혹여나 무릎 연골이 더 탈이 날까 싶어서 찬물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깊고 거대한 잠이었다.

 

완주 직후, 우리는 감정을 표출할 최소한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차에 몸을 내던지고 깊고 거대한 잠에 빠져들었다.
완주 직후, 우리는 감정을 표출할 최소한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차에 몸을 내던지고 깊고 거대한 잠에 빠져들었다.

 

우린 달리며 그간 못다 한 얘기를 나누고자 했지만 오르막길에서 허리에 갖다 대주는 손과 곁을 지켜주는 눈빛으로 말을 대신했다. 우리가 산을 다니기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뭐냐고 물었던 형우 형의 말이 기억난다. ‘유대감’이라고 스스로 대답했던 그 형은 우리가 지금껏 함께 산을 다니게 만들어준 유산을 남기고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는 듯하다. 사람이 좋고 산이 좋아 산을 다닌 우리에게 유대감은 지금껏 왜 산을 가는가에 대한 물음에 어물쩡한 대답 중 가장 확실한 것이 되곤 했다.

 

완주 후, 이번 프로젝트를 기념하며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회기에 남긴 우리 모두의 친필 싸인.
완주 후, 이번 프로젝트를 기념하며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회기에 남긴 우리 모두의 친필 싸인.

 

나는 달릴 때 더는 못 뛰겠다던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달리기를 마친 후에도 앞으로 더는 달리지 않겠다는 그들의 말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곧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할 테지. 설악산, 팔공산, 지리산, …. 그 무수한 산으로의 걸음들을 믿는다. 또 함께 부를 산가(山歌), 부딪칠 술잔을 믿는다. 가슴에 꿈을 품고 머릿속에 창의력을 잃지 않은 채로 앞으로도 산을 다니고 싶다. 그때도 함께 할 지금의 동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 테니.

 

Strava로 기록한 우리의 도전.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111km, 제주 반 바퀴를 14시간 24분 만에 달렸다.
Strava로 기록한 우리의 도전.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111km, 제주 반 바퀴를 14시간 24분 만에 달렸다.

 

우리에게 멋진 신발을 지원해 준 예지 누나, 놀러왔다는 걸 핑계로 지원조를 자처한 한결 선배, 유정 누나, 청미 누나, 우리의 모습을 담기 위해 촬영을 담당한 홍석 형, 대구경북의 산 선배들, 응원해준 친구들까지 이번 프로젝트는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받은 큰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우리가 가는 산길에 앞으로도 정과 사랑이 가득하길 바라며, 자, 다음엔 어디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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