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문경 용추계곡

 

문경 내선유동을 흐르는 용추계곡은 지난 1986년부터 문경8경으로 지정되었다.
문경 내선유동을 흐르는 용추계곡은 지난 1986년부터 문경8경으로 지정되었다.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협찬 · 레드페이스

유난히 봄이 짧다. 5월에 들어서기 무섭게 날씨는 연일 20도를 웃돌고, 신록의 연둣빛 산하는 귀띔 없이 진초록의 여름산이 되었다. 이 기세라면 십년 뒤에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만 남을지 모른다. 지구온난화는 멀리 있지 않다. 봄을 밀치고 전력질주로 달려오는 여름을 대비하여 무더위를 씻겨줄 시원한 계곡을 찾아 경북 문경으로 간다. 
 

계곡 옆 등산로는 잘 정돈된 오솔길이다.
계곡 옆 등산로는 잘 정돈된 오솔길이다.

 

맑은 계곡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걷다 더우면 계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달랬다.
맑은 계곡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걷다 더우면 계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달랬다.

 

백두대간이 품은 빼어난 골짜기

백두대간 대야산(930.7m)은 사계절 중 여름에 가장 인기가 좋다.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동을 품고 있어 여름철에 이 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야산을 기준으로 괴산 선유동과 문경 선유동이 나뉜다. ‘선유동’이라 하면 충북 괴산군을 떠올리기 쉽지만, 대야산 아래의 문경 내선유동 또한 그에 못지않은 계곡미로 예부터 시인묵객과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여기 여름에 주차전쟁 장난아니겠어요~”
들머리 간이화장실 옆 작은 공터에 차를 세운다. 공터는 계곡과 등산로 바로 앞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지만, 대충보아도 5대 정도의 차를 세울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다. 선착순 5명 안에 들지 못한다면 1.2km 거리의 대형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500m의 산길을 넘어와야 한다. 평일의 취재일, 취재진은 무사히 주차에 성공한다. 
“오늘 문경이라는 지역 자체가 첫 방문이라 정말 설렛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이 여행을 떠나는 원동력이자 매력인 것 같아요.”

“저도 여름이면 계곡 트레킹을 즐기는데, 용추계곡은 처음이에요. 어디 오늘 루트 탐방을 한번 해볼까나!” 
오늘 취재는 산과 여행을 좋아하는 두 청춘남녀가 함께 한다. 자연이 아름다운 곳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여행가 정다예씨와 암벽등반과 트레킹이 취미인 클라이머 신하섭씨다. 트레킹을 앞둔 취재진의 설렘 가득 목소리가 재잘재잘 아침을 깨우는 산새의 울음소리 같다. 주차장 옆 계곡 소리 장단에 맞춰 취재진의 지저귀는 수다가 이어진다.

오늘 계곡트레킹은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월영대까지 다녀오는 약 4km의 원점회귀 코스로 진행한다. 무난한 난이도에, 숲길과 산길, 계곡과 암릉을 두루 만끽할 수 있는 약 2시간의 코스로, ‘선유동천나들길 2코스’라 불리는 길이다.

주차장에서 식당가를 지나 인도를 5분여 따르자 우측으로 ‘선유동천나들길’ 안내판과 함께 등산로가 바로 시작된다. 이후 길은 내리 용추계곡을 좌측에 두고 이어진다. 등산로와 계곡길이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자연의 탐방로를 따라 살랑살랑 가벼운 걸음을 옮긴다.     

 

넓고 웅장한 바위 위로 물길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아름다운 월영대.
넓고 웅장한 바위 위로 물길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이 아름다운 월영대.

 

용이 승천한 바위 지나 월영대로

“이쪽에서 보면 하트모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폭포 안쪽으로 용비늘 자국을 볼 수 있어요.”

들머리에서 15분, 내선유동의 명물 용추폭포에 도착한다. 용추폭포는 수천년 동안 물에 닳아서 만들어진 원통형 홈이 파져 있는 커다란 바위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나들길 트레킹의 가장 묘미로 꼽힌다. 옛날에 이 구멍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바위에 용비늘 자국을 남겼다는 설화도 계곡미에 신비감을 더한다.

“처음 쉐프로 근무할 때 장만했던 나이프예요.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가장 좋아하는 칼이죠.”

용추폭포를 지나 계속해서 숲길을 따른다. 걷다 더우면 계곡에 발을 담그고, 또 걷다 지치면 나무그늘 아래 너른 바위에서 편히 누워 쉬며 진정한 유유자적 나들길 여정을 즐긴다. 잠시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막이 이어지고, 머리 위 나무동굴도 막지 못한 초여름의 열기에 취재진 모두 긴팔 재킷을 벗고 반팔로 산행을 이어간다. 이내 반팔에 드러난 신하섭씨의 왼쪽 어깨에서 날카로운 나이프 그림을 발견한다. 타투의 의미를 묻자 그는 짧게 “꿈”이라 답한다.

“제 꿈이에요. 처음 근무했던 캐나다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이후 미국 뉴욕의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죠. 당시의 벅찬 감동과 요리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자는 마음으로 꿈을 새겼습니다.”

신하섭씨는 학부에서 프랑스요리를 전공 후, 캐나다와 미국에서 4년간 쉐프로 근무했다. 어릴적 유난히 요리를 재밌어하던 소년이 쉐프의 꿈을 이뤄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긴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온 그는 현재 뛰어난 요리실력과 풍부한 해외경험을 살려 김밥과 떡볶이를 전개하는 국내 요식업기업 죠스푸드의 해외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류 열풍의 여파로 한식의 인기가 덩달아 뜨거워지면서, 지금도 일 년 중 절반은 주재원으로서 해외에서 근무하는 그이다.

“언젠간 다시 제가 있던 곳, 주방으로 돌아갈 거예요. 지금까지의 숱한 선택이 모두 요리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되었듯이, 현재의 삶도 결국은 요리로 귀결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언제가 올 그날을 위해서 오늘도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용추계곡은 물살이 잔잔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남녀노소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용추계곡은 물살이 잔잔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남녀노소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달빛이 드리우는 밤의 계곡

신하섭씨의 가슴 뜨거운 요리이야기를 경청하다보니 어느새 오늘의 목적지 월영대에 도착한다. 용추폭포를 지난 지 30여 분 만이다. 월영대의 거대한 바위 위로 계곡물이 넓고 얇게 흐른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마치 선녀의 비단 옷자락 같다. 월영대(月影臺)의 이름은 휘영청 밝은 달이 높이 뜨는 밤, 바위 위를 흐르는 맑은 물에 달빛이 드리우는 풍경이 아름답다 한데서 유래했다. 한낮에도 이리 그림 같은 풍경인데, 밤의 풍경에 비할 것이 아니라고 하니 다음번 용추계곡 방문은 저녁으로 일정을 잡으리라 계획해본다.  

“용추계곡은 아이들과 소풍으로 놀러 와도 좋을 것 같아요. 계곡 수심도 얕고, 물살도 잔잔하고요. 입구 쪽 넓은 바위에서 돗자리 깔고 쉬기도 좋겠어요.”

 

월영대에 도착한 취재진. 이 곳에서 피아골을 따르면 대야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월영대에 도착한 취재진. 이 곳에서 피아골을 따르면 대야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월영대를 기점으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편도 산행을 마무리하며 정다예씨가 나들길 탐방 소감을 전한다. 그의 짧은 소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정다예씨는 유아교육업계 종사자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해 자연스레 교사를 꿈꿔온 그는 학부에서 유아교육을 전공 후, 유치원교사로 수년간 근무하였다. 이후 그간의 현장경험과 전공을 바탕으로 유아교육 컨텐츠를 개발하는 기획자로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넓히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성적에 맞춰 학교를 고르다보니 목표했던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보건계열 학과를 선택했는데, 아마 그대로 공부를 이어갔다면 취업도 쉽고 안정적이었을 테죠. 하지만 2학년을 마칠 때쯤, 더 늦기 전에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대로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수능을 봐서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했죠.”

당시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시작이 늦었다’라는 주변의 걱정과 우려는 그의 꿈과 결정을 흔들기에 조금의 타격감도 없었다. 이후 10여 년, 현재 정다예씨는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서 보란 듯이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재밌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되었고, 직업이자 삶이 된 그이다.

“그동안의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규모가 큰 회사에서 제 역량을 발휘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교육자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용추계곡은 탐방로 주변으로 수림이 울창하여 내리 나무 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용추계곡은 탐방로 주변으로 수림이 울창하여 내리 나무 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다.

 

하산길은 계곡 건너편의 탐방로를 선택한다. 평평한 오솔길을 20여 분 따르다 이내 댓골산장으로 연결된 도로에 합류한다.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내리막의 도로를 내려서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곱씹어본다. 월영대를 오르는 길에 신하섭씨가 들려준 쉐프의 꿈, 용추로 돌아가는 길에 정다예씨가 들려준 교사의 꿈. 앞으로도 이어질 두 사람의 씩씩한 걸음을 응원하며 용추계곡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