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 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_춘천 의암암장

 

봄을 기다린 두 청년등반가와 춘천 의암암장을 찾았다.
봄을 기다린 두 청년등반가와 춘천 의암암장을 찾았다.

 

청춘의 춘천으로 간다. 서울을 떠나 2시간, 강촌역을 지나 북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경춘로를 달린다. 북한강변 위로 봄의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물빛은 찬란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연신 볼을 스친다. 바야흐로 등반의 계절이다.

 

올라운드 클라이머 김지암. 등반에 집중한 눈빛이 매섭다.
올라운드 클라이머 김지암. 등반에 집중한 눈빛이 매섭다.

 

봄의 수확을 기다리는 의암암장

의암호에 이르러 피암터널의 끝에서 우측으로 빠져 차를 세운다. 오늘의 목적지인 의암암장은 이곳에서 지척이다. 차에서 내려 호수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우뚝 선 벽이 바로 보인다. 쾌청한 하늘 아래 선명한 암릉이 그 자태를 뽐내며 의연히 서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바위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기만 하다. 겨우내 등반가의 발길이 뜸했던 바위도 간만의 인기척에 취재진을 반기는 듯하다.

의암암장은 2000년대 초반 춘천 지역 클라이머들이 개척한 20여 년 역사의 암장이다. 개척 당시 10개의 루트가 개척되었으나, 이후 추가 개척을 거쳐 현재는 21개 루트가 바위 전면에 걸쳐 분포한다. 의암암장은 절반 이상의 루트가 5.10대의 난이도이며, 최고난이도는 5.11c로, 초중급자들에게 적합한 암장이다. 전체 루트 중 2개는 멀티피치 루트로 멀티등반 시스템 연습을 하기에도 좋다.

바위는 곳곳의 오버행과 벽 앞으로 펼쳐지는 호수 조망이 특징이다. 등반자 뒤로 시원함 의암호가 펼쳐져 등반자들은 등반과 더불어 시원한 춘천의 명물 호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짧은 어프로치와 춘천의 인기 멀티피치 루트인 춘클리지가 가까이 있는 것도 의암암장의 장점이다.

“봄이라서 마음이 몰랑몰랑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등반의 계절이 되어서 설렘 가득입니다.”

바위 앞에서 진한 눈매의 젊은 두 클라이머를 만난다. 포근한 봄날씨에 설렘 가득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김지암씨와 권지민씨는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손정준스포츠클라이밍연구소에서 같이 운동을 하고 있는 사이다. 해당 암장은 동호인들 사이에서 ‘고수들의 소굴’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두 사람은 “진짜” 실력 향상을 위해 집 근처 암장이 아닌 옥수동으로 매일 출석도장을 찍는다.

“저랑 지민이는 각각 노원과 안양에 살아서 암장까지 이동시간이 1시간 이상 소요돼요. 그래도 훈련을 제대로 하고 있어서 불편 보다는 만족이 큽니다.”

“맞아요, 올겨울 내내 지암형이랑 저를 포함해서 암장 회원들끼리 주 2회 열심히 트레이닝을 했어요. 저희의 목표는 ‘겨울 농사 잘 지어서 봄에 수확하자’라는 마음이었는데, 어디 오늘 수확 좀 해볼까요?”

 

 

권지민씨가 처마(5.10c) 하단부 바위 턱에 올라서기 위해 오른발에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권지민씨가 처마(5.10c) 하단부 바위 턱에 올라서기 위해 오른발에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첨예한 발끝, 강렬한 눈빛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출발”을 외치며 권지민씨가 등반을 시작한다. 가벼운 몸과 뛰어난 유연성, 권지민씨가 사뿐사뿐 가벼운 몸짓으로 벽을 오른다. 이후 세 번째 볼트를 지나 손 홀드가 좋은 곳에서 카운트밸런스 동작을 구사하며 휴식을 취한다. 직벽 너머 오버행 아래에서는 한쪽 발을 바위 턱 위로 높이 들어 뒤꿈치를 단단히 고정시킨다.

“지민이 잘하죠? 지민이 등반하는 모습 보면 얼마나 가볍고 유연한지 몰라요. 아마 저랑 몸무게가 거의 두 배 차이날 거예요.(웃음)”

빌레이를 보던 김지암씨가 기분 좋은 칭찬을 더한다. 권지민씨의 주종목은 볼더링이다. 볼더링은 다른 종류의 등반에 비해 첨예한 발사용 기술을 요하는데, 볼더링에서 갈고 닦은 그의 능숙한 발사용 실력이 리드벽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발 홀드 하나하나에서 권지민씨의 유난히 높이 올라간 뒤꿈치가 눈에 띌 정도다. 의암암장 중앙부의 회전목마(5.10c)와 춘클B(5.10c)를 연달아 가뿐히 온사이트한 후, 권지민씨가 김지암씨에게 등반 차례를 넘긴다.

“오, 이 루트는 각이 세서 재밌어 보이는데? 자 출발할게!”

김지암씨가 고른 루트는 중앙부 좌측의 처마(5.10c)다. 처마는 등반길이 20m인 비교적 긴 루트로, 크랙선을 따라 사선의 벽을 오르다가 마지막 2개 볼트를 앞두고 처마 모양의 넓은 오버행바위를 넘어서는 루트다. “퉤퉤” 등반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김지암씨가 때아닌 침을 뱉는다. 자세히 보니 크랙 사이로 손을 넣을 때마다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과 겨우내 쌓인 흙먼지가 김지암씨의 눈을 공격하며 등반을 방해한다. 연신 고개를 흔들고 손으로  쫓아보아도 김지암씨를 감싸는 날파리떼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지암씨 하강해도 돼요!” 취재진의 만류에도 김지암씨가 계속해서 완등앵커를 향해 오른다. 두 눈을 더욱 부릅뜨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처마바위를 넘어선다. 결과는 온사이트. 강렬한 눈빛으로 벌레떼를 물리쳤으니 난이도 두 개는 더 쳐서 5.11a 온사이트로 인정해주기로 한다.      

 

 

처마(5.10c) 루트는 등반길이 20m로, 의암암장의 루트 중 비교적 긴 코스다.
처마(5.10c) 루트는 등반길이 20m로, 의암암장의 루트 중 비교적 긴 코스다.

우리가 등반을 사랑하게 된 이유

“처음 시작은 초등학교때 체험 등반이었어요. 이후 대학교에서 교내에 있는 외벽 등반을 했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제대로 푹 빠지게 되었죠. 암장은 집 근처 안양에서 다니다가, 이후 직장 지방 파견으로 충남 서산으로 옮겼어요. 이후 다시 서울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옥수동 암장에 등록했죠. 의도치 않게 암장 유목민 생활을 했었네요.(웃음)”

권지민씨가 본격적으로 등반에 입문하게 된 건 4년여 전,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암벽등반’ 과목을 수강하면서부터다. 빠르게 등반에 매료된 그는 이후 안양 펀클라임짐, 서산 고릴라클라이밍을 거쳐 현재 서울 옥수동 암장에서 등반 경험과 실력을 열심히 쌓고 있다. 권지민씨의 등반 최고 성적은 볼더링 V6와 스포츠클라이밍 5.11d다. 두 숫자는 단순히 등반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난이도로, 지난 4년 동안 권지민씨의 등반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만든 뜨거운 결과물이다.

“저는 대학산악부에서 처음 등반을 배웠습니다. 원래부터 등반을 했던 건 아니고, 가벼운 취미로 등산을 즐기는 정도였어요. 신입생때 우연히 벽에 붙은 산악부 모집 포스터를 봤었는데, 적혀있던 문구와 사진이 인상 깊어서 산악부에 찾아갔죠. 그 순간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지금까지 열심히 산에 다니고 있습니다.”

김지암씨는 영남대학교 산악부 출신으로 현재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 소속이다. 그의 산악부 입문년도는 2012년,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산악부라지만 그는 국내 각종 장기훈련을 비롯하여 2015년 파키스탄 비아포 러쉬피크(5,098m) 등정, 2016년 일본 북알프스 오쿠호다카다케(3,190m) 등정, 2017년 일본 야츠가다케 동계 빙벽원정, 2017년 익스트림라이더 거벽 교육 수료 등 탄탄한 알파인 등반 이력이 있으며, 2016년 미국 존뮤어트레일(358km) 단독 종주와 수차례의 지리산 42km 무박 화대종주 등 장거리트레킹, 트레일러닝, 산악스키와 같은 산과 관련된 전분야를 아우르는 올라운드 클라이머이다.  

“그동안 산악부 등반에서는 멀티피치만 주로 했었는데, 지금 옥수동 암장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스포츠클라이밍이나 볼더링 등 다른 분야의 등반도 다양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종류의 등반을 골고루 하는 게 전체적인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암형, 혼자만 성장하면 안 돼~ 우리 남은 훈련도 같이 열심히 빡세게 해보자고! 그나저나 춘클리지 야간등반 콜?” “콜!”

오후내리 진행된 등반 촬영을 마무리하기 무섭게 두 사람이 헤드랜턴을 챙겨 씩씩하게 다시 벽으로 향한다. 등반을 사랑하는 두 청년등반가, 노을 지는 의암호를 뒤로하고 멀리 사라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한 편의 청춘드라마가 따로 없다. 올봄 방영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제목은 ‘클라이머’, 대흥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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