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숲길_둔지오름

상상 이상의 놀라운 풍광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송당리에서 비자림로를 따라 평대리로 가다가 돝오름을 지나면 왼쪽으로 드넓은 평원 가운데 홀로 툭 불거진 오름 하나가 눈길을 끈다. 한동리와 행원리, 월정리의 너른 들녘을 배경으로 피라미드처럼 솟은 둔지오름이다. 둔지오름은 주변에 이렇다 할 오름이 없어서 더 도드라진다. 분화구 안쪽 사면은 제주 오름 중에서 견줄 곳이 없을 정도로 가팔라서 거의 흘러내린 수준이다. 

 

 

분화구 앞의 수많은 구릉

‘왕따’를 당한 듯 뚝 떨어져 홀로 솟은 둔지오름은 무척 이색적인 곳이다. 먼저 오름을 포위하듯 두른 사방의 무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동쪽과 남쪽은 온통 산담으로 빼곡하다. 이는 둔지오름 자락이 예로부터 제주 땅에서 묘를 쓰기에 명당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뿔 마냥 솟은 오름 하나를 가운데 두고 펼쳐진 흔한 뱅듸 같은데, 풍수에 눈이 밝은 지관들에게는 뭔가 달라보였나 보다. 멀리서도 이곳에 고인을 묻고자 애를 썼다고 한다. 

원뿔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은 둔지오름은 남서쪽으로 열린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다. 지질학적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동북쪽의 산 사면만 조금 남은 채 모두 무너져버린 것으로 보일만큼 여느 오름과는 판이한 모양새다. 특이한 점은 분화구가 터져나간 방면으로 울퉁불퉁하게 수많은 구릉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는 분출한 용암이 무너진 산체와 뒤섞이며 흘러가다가 퇴적한 것이라고 한다. 즉, 둔지오름의 분신 같은 것들이다. 오름 이름도 이 풍광으로 인해 붙은 것이다. ‘평지보다 좀 더 높은 곳’을 일컫는 제주어가 ‘둔지’로, 알오름보다 작은 이 구릉들을 품었기 때문이다.

탐방로는 북동쪽 사면과 서쪽 능선을 따라 나 있다. 한동리공동묘지 안쪽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직선에 가까운 길은 코가 땅에 닿을 듯 비탈의 연속이다. 오름 자체가 152m로 높은 축에 들고, 산체도 가팔라서다. 중간에 쉼터도 없이 아래서부터 꼭대기까지 계속 일정한 각도로 길이 이어진다.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제주만의 시원스런 풍광

가까이에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고, 탐방로가 가팔라서 오르기도 힘드니 둔지오름은 여느 오름에 비해 찾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고생 끝에 정상부 능선에 서면 놀라운 풍광이 펼쳐진다. 북동쪽 평대해변과 월정리해수욕장 쪽으로 거침없이 뻗어간 들판이 가슴을 뻥 뚫어준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요롭고 광활한 들녘이다. 남서쪽으로는 다랑쉬와 손지오름, 돝오름, 백약이오름과 높은오름, 민오름, 거슨세미, 안돌·밧돌오름을 지나 체오름에 이르기까지, 우뚝우뚝 솟은 동부의 오름들이 만드는 스카이라인이 장엄하기까지 하다. 숨차게 오른 고생에 비해 차고 넘치는 보상이다. 

산불감시초소 옆 평상에 앉아 이 풍광에 빠져드는 시간이 행복하기 그지없다. 자주 드는 생각이지만, 제주에서 가장 행복한 근무지가 오름 정상의 산불감시초소가 아닐까 싶다. 뱅듸와 곶자왈, 당근밭, 무밭을 지나온 맑고 깨끗한 제주의 바람이 온종일 불어오고, 흰 구름 두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 아니면 온 제주를 어둡게 뒤덮은 잿빛구름에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는 강풍이 불어제치는 날씨까지 그야말로 제주의 대자연을 제대로 만나고 호흡하는 곳이다. 

하산은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설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름 서쪽 능선을 따르는 게 좋다. 소나무와 억새가 어우러지는 이 길이 좀 더 순하고, 풍광도 다채롭다. 또 산담으로 뒤덮인 구릉들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내려서는 길에 한라산 쪽으로 열린 둔지봉 굼부리 안쪽 사면이 잘 보이는데, 깎아 세운 듯한 가파름이 새삼 놀랍다. 다랑쉬오름, 돝오름, 체오름과 안돌·밧돌오름, 거슨새미오름 같은 송당리의 오름이 펼쳐진 풍광 앞으로 너른 뱅듸를 따라 늘어선 밭이 눈길을 끈다. 저 사납고 거친 들판을 어찌 일궜을까? 제주인의 억척스러운 삶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능선을 내려선 후 오른쪽의 무덤 사이를 지나면 콘크리트포장도가 오름 북쪽의 덕평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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