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강릉 안반데기


겨울산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협찬 · 레드페이스

산악스키(Ski Mountaineering)는 스키를 사용하여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 활동이다. 알프스 지역을 중심으로 스키 등산의 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스키 알피니즘(Ski Alpin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키장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올라 활강을 즐기는 일반적인 스키와 달리, 산악스키는 플레이트에 클라이밍 스킨(skin, 또는 씰 seal)을 부착하여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비교적 대중적이지 않지만, 오는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세계적인 스포츠이며, 국내에서는 안반데기, 선자령, 대관령, 발왕산, 한라산, 울릉도, 덕유산 등이 겨울 산악스키 성지로 알려져 있다. 그중 천고지 고랭지밭이 아름다운 강릉의 안반데기로 올겨울 마지막 산악스키 여정을 떠난다.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    

"간밤에 눈이 내려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도로 통행 차단기가 내려가 있진 않네요.”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날은 여기서부터 산악스키로 올라갈 수 있어요. 차량 통행이 막혔다면 그것도 방법이었을 거예요.”

왕산로를 벗어나 안반데기길을 따른다. 곧바로 시작된 꼬불꼬불 오르막 임도는 해발 1,100m에 위치한 안반데기까지 이어진다. 안반데기는 고루포기산과 옥녀봉 사이의 고랭지 채소밭이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로, 눈이 내려도 잘 녹지 않고 적설량이 뛰어나 산악스키의 성지로 꼽히며,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하며, 밤하늘 은하수 성지로도 유명세를 치루고 있다. 

임도를 따라 10여 분,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 표지판에 도착하며 천고지 마을에 들어선다. 표지판 앞으로 발자국 하나 없는 광활한 순백의 눈밭이 펼쳐지고, 멀리 능선 위에서 소리 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고원에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막힘없는 벌판이 펼쳐지는 안반데기의 전경은 마치 제주의 ‘오름’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안반데기는 마을의 지형이 안반처럼 우묵하고 널찍하여 ‘안반데기’라 불리게 되었는데,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내리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데기’는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현서가 스키를 아주 잘 타요. 아들 성욱이도 교내 스키동아리에 가입해서 방학 내내 스키만 타고 있고요.”

“부모님을 따라 7살 때 처음 스키를 배웠어요. 어느덧 15년 차 스키어네요. 덕분에 평생 취미가 생겼어요.” 

안반데기에서 진행하는 오늘 산악스키 촬영은 부드럽고 시원한 미소가 꼭 닮은 아빠와 딸, 최기련 최현서씨가 함께한다. 스키는 이들 부녀를 포함해 아내와 아들까지 4인 가족의 공통 취미다. 스키장에서 즐기는 일반 스키는 물론이거니와 가족 모두 산악스키를 즐기며, 다 함께 수차례 일본으로 스키원정도 다녀온 이상적인 아웃도어 가족이다. 차에서 내린 최기련씨가 멀리 안반데기 설원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푸념을 늘어놓는다.

“어휴, 아이들 스키강습에, 가족 해외원정에, 매년 개별 장비와 시즌권 구입까지! 그동안 가족 취미활동에 쓴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에요~ 허리가 휘어요 휘어!”

 

 

스키로 산을 오르는 부녀

짧은 고원 감상을 마치고, 부녀가 능숙하게 장비를 챙긴다. 경사면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악스키는 스키 플레이트에 미끄럼 방지를 위한 스킨을 필수적으로 붙인다. 준비 작업을 모두 마친 두 사람이 플레이트 고정이 가능한 전용 배낭을 메고 앞장서 눈밭 위에 올라선다.

“아빠, 내가 먼저 갈게!”

“오케이, 현서야 우측에 눈이 많네! 자 오른쪽으로 출발!”

플레이트에 양발을 고정시킨 최기련씨와 최현서씨가 동시에 발을 밀어 올리며 업힐(Uphill)을 시작한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플레이트에서 양 뒤꿈치가 들리면서 스윽-스윽- 부드러운 동작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두 사람의 뒤로 새하얀 곡선의 포물선이 그려진다. 

“어이쿠, 여기 왜 이렇게 깊어.” 뒤따라 남은 취재진도 눈밭에 올라선다. 앞서가는 두 사람과 달리 일반 등산화로 사면을 밟자 눈 속으로 발이 깊숙이 빠진다. 무릎 아래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오르막을 오르는 모습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게 바로 산악스키를 타는 이유에요. 산을 오르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멀리 금세 능선부에 도착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출발 전 최기련씨의 말을 떠올린다. 겨울산을 오르는 또 하나의 방법, 스키 등산이 생겨난 이유를 몸소 느낀다. 업힐을 마친 최기련씨가 플레이트에 부착된 스킨을 제거하며 곧바로 활강 준비를 한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곳으로 방향을 틀더니 햇볕이 내리쬐는 자연설 슬로프를 향해 주저 없이 출발한다. 뒤이어 최현서씨도 아빠를 따라 신나게 활강한다. “와 현서씨, 자세 너무 좋은데요!” 수준급의 스키 실력도 부전여전이다.  

“아빠, 이번엔 내려오면서 점프해보자.”

“좋지, 현서가 한번 멋지게 보여줘 봐!”

번갈아 활강을 마친 최기련씨와 최현서씨가 다시 플레이트 바닥에 스킨을 붙이며 업힐을 준비한다. 두 번째 업힐은 최기련씨가 앞장서 오른다. 앞서가는 아빠의 스텝을 따라 최현서씨도 속도를 높이며 힘껏 발을 밀어 올린다. 두 사람의 숨이 가빠질 때쯤 어느새 다시 사면이 끝나는 지점에 닿는다. 

그대로 뒤돌아 두 번째 다운힐은 최현서씨가 먼저 출발한다. 눈 내린 둥그런 안반데기 언덕을 부드럽게 내려서는 최현서씨, 눈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재빨리 방향을 틀며 세찬 눈보라를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제자리에서 두 발로 높이 뛰며 한 바퀴 도는 묘기까지 보여주며 최현서씨가 근사한 활강을 마친다.  

 

 

우리 가족의 버킷리스트

“오트루트(Haute Route)라고 들어보셨나요?” 

최기련씨와 최현서씨가 플레이트에 다시 스킨을 붙이며 취재진에게 그들의 다음 모험 계획을 들려준다. 오트루트는 프랑스 샤모니에서 출발하여 스위스 체르마트까지 이어지는 알프스 고지대를 횡단하는 약 150km의 스키 루트이다. Haute는 ‘높다’라는 뜻으로, 오트루트는 ‘고지대 모험의 길’을 의미한다.  

“알프스 스키 투어는 전 세계 스키어들에게 꿈의 루트입니다. 스키가 취미인 저희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이고요. 애들이 취업하기 전에는 다녀와야 할 텐데요.(웃음)”

“코로나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빠와 엄마, 오빠까지 가족 다 같이 함께 가려고요!”

오트루트 이야기에 들뜬 최현서씨가 더욱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트루트는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아찔한 절벽 위의 산장에서 숙박하며 5~6일간 하루에 수십 킬로씩 스키로만 이동한다. 루트 곳곳에 크레바스나 눈사태 다발 지역이 있고, 때때로 날씨에 따라 위험상황에 처할 수 있어, 전문 현지 가이드 없이 이 루트를 횡단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수준급의 스키 실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하며, 예측불허의 고산의 위험성도 감수해야 한다.  

“오트루트뿐만 아니라 알프스의 산을 오를 때는 산악스키와 빙벽장비를 배낭에 챙기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스키를 타야만 지날 수 있는 구간이 있고, 바일을 사용해 벽을 넘어야 할 수도 있고요. 이런 게 진정한 모험이죠.”  

모험가 부녀의 흥미진진 이야기에 맞춰 눈 덮인 안반데기 고원에 눈부신 햇살이 내리쬔다. 언젠가 꿈의 오트루트로 떠나는 그날을 위하여, 부녀가 다시 저 먼 안반데기 능선을 향하여 힘차게 발을 밀어 올린다. 

“인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면, 모험을 주저하지 말아야죠. 자, 현서야 준비됐지?”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