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딕워킹으로 떠나는 전국 투어_소백산자락길

 

조금이나마 산자락과 까워지는 시간

글 · 남태식(노르딕워킹 인스트럭터)  사진 · 박요한((사)국제노르딕워킹협회 회장)

2월 11일, ‘노르딕워킹으로 떠나는 전국 투어’는 경북 영주시의 소백산자락길을 따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수서원을 출발, 순흥저수지와 죽계구곡, 초암사, 달밭골, 비로사에 이르는 12km구간에서 진행되었다. 사단법인 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 KOREA)는 매월 11일을 노르딕워킹데이로 정하고 전국의 걷기 좋은 길에서 노르딕워킹을 위한 주월리(Juwalli)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870그루 적송이 감싸는 소수서원

스위스 여행 중에 안개가 조금씩 걷혀가던 이른 새벽에 인터라켄역 근처를 산책한 적이 있는데, 사방으로 수려한 산이 둘러싼 풍광 속에서 한없이 고즈넉한 걷기에 빠져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발길을 돌려야 했던 시간까지 계속 걸어가면서 조금이나마 산자락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장엄하지만 고요하고, 우뚝 솟은 첨봉의 강인함을 가졌지만 산바람이 불고 새소리가 어우러지며 포근했던 곳이다. 산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을 다시금 회상하면서 소백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선시대의 첫번째 사설 교육기관인 소수서원은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의 주도로 선비들이 공부하는 백운동서원을 세운 게 시초다. 그 후 1548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했을 때 명종이 직접 쓴 ‘소수서원’ 편액을 하사했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다’라는 의미로, 학문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설립이념을 담은 것이다.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870그루가 넘는 적송이 입구에서부터 장관이다.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을 닮으라는 의미를 가져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는 이 솔숲의 수령은 300~500년쯤이다. 소나무로 우거진 숲을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애썼을 선조들의 정성과 노력이 느껴진다. 솔숲이 끝나는 곳에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불교 유물인 당간지주가 서 있다. 소수서원 터가 신라시대에 세워진 숙수사(宿水寺)가 있던 곳이어서다.

문화와 자연이 함께하는 걷기 여행

서원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경렴정(景濂亭)이 보인다. 경렴정 앞으로 서원을 감싸며 지나는 죽계천이 흐르고, 그 건너편의 취한대(翠寒臺)도 눈길을 끈다. 서원에 이처럼 정자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유생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었을 테다. 정문인 지도문(志道門)으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명륜당이 보인다.

강당의 서쪽에는 고려말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 안향을 기리는 사당인 문성공묘(文成公廟)가 있다. 명륜당 뒤편에 학생과 스승과 서원 임원들이 기거하던 직방재, 일신재가 있고, 그 오른쪽에 학생들의 공간인 지락재, 학구재가 질서 있게 배치돼 있다. 앞쪽에 제향 공간이 있고, 뒤에 배움의 공간을 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법을 따른다.

설명을 들은 후 소수서원을 나와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도로를 건너 만난 흙길 양옆으로 사과와 배밭이 보였다. 가지만 앙상했지만 길 초입부터 드는 평온한 느낌이 날 들뜨게 했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보다 이 길을 걸어가는 자체가 좋아서 계속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자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파주의 마장호수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영주시 순흥면 일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순흥저수지다. 저수지를 두른 목재데크를 따라가다 보니 저수지 저쪽 언덕에 조그마한 펜션 같은 집 몇 채가 보였다. 저기서 이쪽을 바라보면 저수지와 눈 쌓인 소백산 줄기가 어우러져 무척 멋있을 듯했다. 참 기막힌 곳에 터를 잡았다.

계곡길 따라 걷는 산자락 힐링 코스 

소백산국립공원 주차장까지는 농로와 흙길이 번갈아 나타나다가 죽계구곡 탐방로부터는 이름처럼 계곡이 중심을 이뤘다. 경사는 급하지 않았고 계곡 대부분은 얼어 있었다. 계곡을 따라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길 중간중간에 햇살이 잘 들어 큰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날씨가 풀려 계곡물이 다시 흐르면 그 소리와 햇살이 비친 푸른 나뭇잎이 무척 아름다울 듯했다.

죽계구곡 끝은 소백산 국망봉의 남쪽으로, 초암사가 자리한다. 초암사는 의상대사가 호국사찰을 세우고자 초막을 지어 임시거처를 정하고 명당자리를 골라 부석사를 세웠는데, 초막을 지었던 곳에 절을 지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절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면 초암사 삼층석탑이 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초암사를 지나 정상인 국망봉으로 오르거나 산을 둘러서 달밭골로 넘어갈 수 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달밭골을 향해 갔다. ‘소백산자락길’ 끝에는 잣나무숲 명상쉼터가 있다. 높게 뻗어간 잣나무 우듬지의 살랑거리는 잎사귀들을 보니 그간의 피로가 녹는 느낌이 들었다.

날이 풀리기 전에 다녀온 소백산자락길은 청정한 하늘과 따듯한 햇살이 걷는 동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힐링 코스였다. 정상에 올라가 고지에서 경치를 한눈에 담는 것도 좋지만 산자락을 따라 걷는 것도 나름의 운치와 재미가 있었다. 시간 관계상 오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비로봉 정상에서 활짝 열린 하늘과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줄 차가운 바람 또한 같이 경험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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