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통종주 _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거친 강풍에 맞서며 대야산과 희양산을 넘다

 

글 사진 · 나종대

 

 

속리산국립공원은 1970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4, 당시 도립공원이던 괴산군 화양동구곡과 선유동구곡, 쌍곡지역 등 168km2가 추가돼 현재의 274km2라는 넓은 면적이 되었다. 이번 달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하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 늘재에서 출발한다. 3일간 시속 30km 강풍이 불었지만, 남성적 야성미가 물씬 풍기는 대야산(大耶山·931m)과 희양산(曦陽山·999m)을 넘어,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이화령 고개에 도착한다.

 

봄만 되면 겪게 되는 미세먼지가 올해는 잠잠하다. 코로나의 역설일까? ‘세계의 굴뚝이라 불리는 중국의 공장 가동과 우리나라 차량 이동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6월호 원고를 쓰다 산책로에서 깨끗한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오랜만에 북두칠성도 찾아본다.

 

 

43구간(땅통 백두대간 15구간)

늘재~대야산~버리미기재

18.7km, 10시간 40

 

남성적 매력의 대야산

421, 이번 구간은 광주광역시에 사는 산친구(山友) 문형래와 함께 한다. 광주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 고속도로를 타고 화서IC를 지나 상주시 화령(화서면 소재지)으로 간다. 화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830분경 늘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은 청화산~갓바위재~조항산~고모치~밀재~대야산~촛대봉~블란치재~곰넘이봉을 거쳐 버리미기재까지 가는 코스다. 오늘 타는 능선에서 왼쪽은 괴산군, 오른쪽은 문경시이다.

괴산(槐山)군의 느티나무를 의미하며, 괴산의 군목(郡木)은 느티나무다. 신라 진평왕 28(606) 장수 찬덕이 가잠성에서 백제군에게 100일 동안 공격을 받아 성이 완전히 고립되었으나, 찬덕은 항복하지 않고 성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자결하였다. 후에 신라 태종 무열왕(김춘추)은 찬덕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가잠성괴양이라 부르게 되었고, 괴양은 조선 태종(1413) 때 괴산군이 되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시속 30km 강풍이 분다고 한다. 정국기원단 조망처에서 속리산 주능선 사진을 찍는데, 모자가 바람에 날아 갈 것만 같아 벗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청화산에 올라 형래와 서로 인증사진을 찍어 준다. 형래는 작년 9월에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마쳤고, 다시 2번째 100대 명산을 진행 중이다. 갓바위재까지 함께 산행 후 밀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백두대간 조항산으로, 형래는 차량 회수를 위해 다시 늘재로 간다.

3주 만의 산행인지라 대간길이 설렌다. 연분홍 진달래가 나를 반겨준다. 때때로 땅통종주는 나를 찾는 소중한 시간이다. 진달래길을 홀로 걸으며 잔잔한 상념에 빠져본다. 괴산 청천면 삼송리의 의상저수지와 속리산 주능선, 괴산 35명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진다. 새의 목을 닮았다는 조항산(鳥項山·951m)을 넘어 고모치에서 점심을 먹는다. 마귀할멈통시바위는 대간 길에서 벗어나 있다. 조망처(899)에 올라 통시바위 사진을 찍는다. ‘통시변소의 경상도 사투리다.

밀재에서 형래를 만나 대야산을 함께 오른다. 조선중기까지는 선유산(仙遊山)이라 불린 대야산은 홍수가 났을 때 봉우리가 대야만큼 남았다고 한데서 산 이름이 유래하였다. 형래를 모델로 사진을 찍는다. 산만 찍으면 삭막한데, 오늘은 듬직한 산친구가 앵글에 함께 잡히니 훈훈하다. 형래는 밀재로 돌아가고, 나는 계속해서 산행을 진행한다. 홀로 80m에 달하는 수직절벽 구간을 밧줄에 의지해 힘들게 지나 촛대봉과 미륵바위에서 대야산의 남성미 넘치는 강한 산줄기를 바라본다.

촛대봉, 블란치재, 미륵바위, 곰넘이봉을 거쳐 저녁 7시쯤 922번 지방도로의 버리미기재에 도착한다. 버리미기재는 빌어 먹이다의 경상도 사투리인데, 손바닥만 한 밭떼기로 화전을 일궈 빌어 먹이던 곳이라는 뜻을 가진다. 밀재에서 예전 탄광촌이었던 문경시 가은읍으로 이동한다. 가은은 후백제왕 견훤이 태어난 곳이다. 역사책에 보면 견훤을 상주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당시 가은이 상주에 속했기 때문이다. 가은읍 숙소(모텔)를 잡고 삼겹살과 소주로 정담을 나눈다. 오늘 환희 속에 걸었던 대야산의 강렬했던 산행이 나의 눈꺼풀을 스르르 감기게 한다.

 

 

44구간(땅통 백두대간 16구간)

버리미기재~희양산~은티마을

18.3km, 11시간 8

 

좀처럼 도와주지 않는 희양산의 하늘

422, 오전 6시에 가은읍 편의점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922번 지방도로를 타고 들머리인 버리미기재로 향한다. 가다 보니 멀리 하얗고 웅장한 암릉미를 뽐내는 희양산이 보인다. 버리미기재 도착해 가까이에서 본 희양산은 더욱 아름답고 힘이 넘친다. 들머리에서 가까이 보이는 멋진 바위산은 구왕봉(九王峰·877m)이다. 버리미기재에서 나를 내려주고 형래는 두 번째 100대 명산 산행을 위해 구병산과 칠보산으로 떠난다. 형래는 몇 년 전 희양산 남쪽 능선 산행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장성봉에 오른 뒤 악휘봉 갈림길을 한 바퀴 돌아 희양산을 거쳐 은티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등산로 옆의 막장봉 암릉이 웅장하다. 장성봉을 세 번째 오르는데도 생소한 곳이 많다. 악휘봉 갈림길을 지나 점심을 먹고, 은티재로 내려가는데 갑자기 싸라기눈이 내린다. 4월에 눈이라니, 요즘 날씨가 겨울과 봄을 들락날락한다. 걷다가 수시로 핸드폰으로 기상청에 들어가, 실시간 인공위성 구름 영상을 확인한다. 혹여 날씨가 좋지 않아 구왕봉에서 희양산 사진을 찍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몰려왔다 개었다 반복한다. 일자로 쭉쭉 뻗은 화백나무의 연초록 잎사귀를 감상하며 주치봉을 오른다.

호리골고개를 거쳐 구왕봉에 오른다. 구왕봉은 봉암사를 세우기 위해 지증대사가 연못을 메울 때 쫓겨난 아홉 마리 용()에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구왕봉 정상을 조금 지나면 희양산 조망터가 있다. 날이 좋지 않아 조망터에서 30분 동안 하늘이 맑아지길 기다리며 희양산을 바라본다. 최치원이 지은 봉암사(鳳巖寺·879) 지증대사도헌의 비문에는 희양산의 산세에 대해 갑옷을 입은 기사가 앞으로 내달리는듯한 형상이라고 쓰여 있다.

구왕봉에서 지름티재까지 밧줄을 잡고 내려오니 어깨가 뻐근하다. 내려오는 도중 또 다시 싸라기눈이 내린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바로 은티마을로 하산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지름티재에 내려서자 하늘이 다시 맑아진다.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서둘러 밧줄을 잡고 힘겹게 희양산 고개를 오른다.

희양산 정상에 도착하자 시간당 30km의 강풍이 불고 있다. 카메라가 바람에 흔들리고 먹구름이 가득해 사진 찍기가 곤란할 정도다. 겨울 자켓을 입고 버프로 얼굴을 감싸면서 30여 분간 희양산 암릉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는다. 고군분투하다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없어, 산성터를 거쳐 은티마을로 하산한다. 은티마을에 도착하니 놀부의 고약한 심보인지 그제 사 희양산 쪽 하늘이 맑아진다.

5년 전 홀로 백두대간을 걸을 때 나사모산우회 지강우·정옥주 부부, 변찬섭 산우와 숙박했던 은티마을의 대간인 휴식처 은티산장은 산장지기 할머니가 노쇠하여 이제 산장 문을 열지 않는다. 은티주막 인근 주차장에서 기다리더 형래를 만나 괴산군 연풍면 행촌리 면소재지로 간다. 숙소(모텔)를 정하고, 저녁을 먹는다. 긴 하루를 마무리 지으며 오늘도 자유롭게 산을 타도록 배려해 주는 아내와 어려운 시기에 취업한 나의 아들딸, 그리고 새 생명을 잉태한 며느리까지,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45구간(땅통 백두대간 17구간)

은티마을~백화산~이화령

21.7km, 10시간 21

 

사진을 위해 희양산에 다시 오르다

423, 새벽 5시에 여명이 튼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아침으로 콩나물국밥을 먹고 산행을 시작하기 전 잠시 연풍초등학교에 들른다. 단원 김홍도가 연풍현감(1791~1795)3년간 했던 풍악헌이라는 동헌이 교내에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는 조선 왕 정조의 초상을 그리는 작업에 참여해 그 상으로 충청도 연풍현감에 제수되면서 중인 신분으로서는 최고 직책에 올랐다.

짧은 역사탐방을 마치고 연풍면 주진리 은티마을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코스는 배너미평전~시루봉갈림길~이만봉~곰틀봉~사다리재~뇌정산갈림길~평전치~백화산~황학산~조봉을 거쳐 이화령까지 가는 코스다. 산성 터에 오르니 어제보다 조망이 훨씬 좋다. 전날 궂은 날씨 탓에 희양산에서 원하던 사진을 얻지 못해 아쉬움이 컸기에 고민이 든다. ‘시간은 곧 기회이므로, 다가왔을 때 얼른 잡지 않으면 다시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 희양산은 본가인 광주광역시에서 멀어 다시 오기도 힘들기 때문에 멋진 사진을 위해 힘들어도 희양산에 다시 오르기로 한다.

희양산아! 안녕!”도착한 정상에 심한 강풍이 불었지만 맑은 하늘이 반갑기만 하다. 기분이 좋아 희양산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 본다. 40분 정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고 다시 산성터로 내려와 이만봉으로 향한다. 오전 11시경 이만봉 직전에 강풍을 피할 수 있는 적당한 은신처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영양 보충을 위해 가져온 참치 캔도 김치와 함께 먹으니 달다.

식사를 마치고 이만봉 조망터에 올라 새하얀 희양산과 이화령 너머로 보이는 다음 구간인 조령산, 주흘산, 부봉, 월악산 사진을 찍는다. 배도 부른 데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마치 한편의 자연 오페라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조망터를 지나 오른 곰틀봉에서는 수명을 다해 넘어져 있는 정상의 고사목을 본다. 사다리재~뇌정산 갈림길~평전치를 거쳐 백화산을 오르는 길에는 지천으로 활짝 핀 노란 양지꽃을 감상한다. 백화산을 꼭짓점으로 주위로 백두대간의 산 너울이 둥글게 물결친다.

 

나만의 고독을 즐기는 시간

이번 3일의 산행 동안은 나의 길동무인 책 읽어 주는 라디오유튜브를 켜지 않았다. 오로지 하염없이 걸으며 빌 게이츠처럼 고독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매년 두 차례 짐을 꾸려 홀로 호숫가 통나무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2주일 남짓 생각주간을 설정하여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자신만의 생각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다. 현대인에게는 때로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있어 땅통종주는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조용히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시간이다.

백화산(白華山·1,063.5m) 바위 조망터에 앉아 희양산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지난 산 너울을 감상한다. 백화산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황학산~조봉을 거쳐 이화령(梨花嶺·548m)으로 하산하며 3일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화령은 옛날에 고개가 너무 가파르고 험하여 여러 사람이 어울려 고개를 넘어갔다는 의미로 이유릿재라 불렸으나, 그 후 주위에 배나무가 많이 있어 이화령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번 대야산~희양산 구간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난코스로 꼽히고, 대중교통 이용도 쉽지 않았다. 나의 산우 형래가 도와준 덕에 이동을 편히 할 수 있었고, 숙박 물품을 트렁크에 넣을 수 있어 배낭도 가벼웠다. 함께해서 즐거웠고 정말 고마웠다는 말로 이번 달 산행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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