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카누원정대 _ 금산 적벽강

 

붉은 벽을 휘돌아 내려서는 아름다운 물길

 

무더위와 COVID-19가 기승을 부린다.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둥둥 떠다니고 싶은 욕구가 절로 강해진다. 유속이 빠르고, 여울이 많아 카누 타는 재미가 있는 곳에서 늦여름을 떠나보낸다.

 

글 · 김석우 편집위원  사진 · 정종원 기자

 

 

카누를 타는 행위는 정적이고, 정신적인 행위이다. 양쪽으로 노(패들)를 저을 수 있는 카약과 달리 카누는 한쪽으로만 노를 저어야만 하는 구조적 취약성이 있다. 한마디로 빨리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취약성이라고 했지만, 빨리 가는 건 대다수 한국인의 성향에 맞을 뿐이지 소수의 카누이스트들은 느리게 가기를 더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산을 다닐 때도 빨리 멀리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천천히 걷고 산을 즐기는 사람도 있는 것과 같다.

장마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장마가 지나가고 연일 무더위가 이어진다. 카누가 아무리 정적인 취미라 하지만, 이런 무더위와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창궐하는 시기에는 재미와 즐거움이 그리워진다. 굽이치는 강줄기와 빠른 유속, 그리고 군데군데 이어지는 여울이 있는 금강(錦江)을 가본다. 

 

 

대한민국의 3대강 적벽강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신무산(897m)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무주, 진안, 금산,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 공주,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거쳐 강경에서부터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흘러드는 길이 394.79km의 강이다. 한강, 낙동강에 이어 대한민국의 3대강이며 국가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진안군 유역의 용담댐과 대전광역시 유역의 대청댐이 있고, 하류에는 금강하구둑이 있다. 충청북도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報靑川),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 남부에서 미호천(美湖川), 기타 초강(草江)·갑천(甲川) 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한다. 20여 개의 지류는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그중에서 적벽강(赤壁江) 구간을 카누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적벽강은 금강의 다른 별칭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에 금강이 들어오면 이 구간을 적벽강이라고 한다. 적벽강이라는 명칭은 그 주변의 바위가 붉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적벽강의 근처에는 금산군 부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인 성주산(624m)이 솟아 있다.

이번에 모인 원정대원들은 무엇보다 방역 수칙에 맞게 4인으로 제한하였고, 가능하면 백신을 맞은 대원으로 선정하였다. 금강의 적벽강 주차장에 모인 대원은 대구에서 오신 정길운씨, 춘천에서 온 임병로, 심혁호씨이다. 10여 년 카누를 타온 임병로씨와 심혁호씨와 다르게 정길운씨는 카누가 처음이다. 정길운씨는 등산과 MTB를 즐기다가 카누에 입문을 하게 되었는데, 카누를 타기도 전에 덜컥 카누를 먼저 사버려 선주(船主)가 되었다. 배에 크기가 문제인가? 자신의 배가 있으면 선주라 할 수 있다.

가족이 모두 대구에서 와 카누를 띄우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총총히 주변 관광을 하러 사라져 버린다. 서로에게 취미를 강요하지 않는 대한민국 50대 가장의 현명한 처신이다. 종일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저녁에 만나 함께 대구로 내려갈 계획이라 한다. 

 

 

압도적인 오버행의 빨간 벽

전날 내린 비로 적벽강은 수량이 늘었다. 바닥이 보이던 강은 흙탕물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불어난 물 덕분에 카누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카누를 띄워 적벽 밑으로 건너가 본다. 압도적인 오버행의 빨간 벽이 등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고개가 꺾어질 듯이 젖혀서 벽을 찬찬히 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간단한 교육을 했음에도 정길운씨는 우리와 같이 카누를 타지 못한다. 방향 전환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우리랑 다른 방향으로 멀리 혼자 떨어져 있다. 몸이 기억하고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하나 보채지 않고 기다려 주고, 때에 따라서는 옆에서 가르쳐 준다. 특히 심혁호씨는 정길운씨 옆에서 하나하나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가르쳐준다.

금강은 강폭이 적당한 크기에 군데군데 여울이 있다. 여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울 밑의 지형을 예상할 수 있다. 어디에 바위가 있고, 그 바위가 얼마나 솟아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다. 그 경지는 경험에 비례할 것이다. 모두가 그 경험치를 축적하기 위해 열심히 여울을 들여다보고, 카누와 함께 몸으로 느끼고 있다.

고요한 강을 떠내려가다 보면, 저 멀리서 여울의 급한 물결 소리가 들려온다. 카누에서 일어서거나 무릎을 꿇은 상태로 상체를 높여 여울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다. 금강은 여울이 꽤 많은 편이다. 다양한 형태의 여울들은 카누 타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여름 마지막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시선도 즐기면서 네 대의 카누가 신나게 강을 내려간다. 

 

 

180도로 꺾어지는 유턴 형태의 여울

평상시의 카누잉보다는 속도가 빠르다. 금강의 원래 속도에 더해 전날 내린 비로 물 위를 걷는 자들의 속도는 경보로 바뀌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강을 내려간다. 수통리에서 출발하여 예미리, 신촌리, 평촌리를 지나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여울이 나타난다. 넓었던 강폭이 좁아지면서 물살이 급격히 빨라지고, 180도로 꺾어지는 유턴 형태의 여울이 있다. 네 대의 카누가 마치 자동차가 드리프트 하듯이 줄줄이 이 여울을 지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 여울에서 정종원 기자가 드론으로 멋진 사진을 남기기로 약속을 했다.

카누를 타는 곳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는 곳이 많다. 오랜 시간, 정종원 기자는 먼 거리에서 드론을 띄워 우리를 기다렸다. 우리를 기다리는 동안 드론은 배터리를 소진하고 있었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정 기자는 소나무 숲 위에 드론을 걸고 말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멋진 사진을 기대하며 흘러가는데 다급하게 전화가 온다. 드론이 나무에 걸렸다는 것이다.

4대의 카누 모두가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모두가 드론이 걸린 곳으로 가서 드론을 찾는다. 드론 조종기에 있는 화면을 보고 드론의 위치와 상태를 알 수 있다. 소나무 숲의 맨 위에 앉아있는 드론은 찾기가 쉽지 않다. 모두가 땀을 흘리며 작은 동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정길운씨가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가족들은 오늘 우리가 자기로 예정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드론만 찾을 수는 없다. 근처에서 밤을 보내기로 빠르게 결정한다. 차가 들어와 카누를 실을 수 있는 곳으로 가족들을 불러 카누를 싣고 정길운씨는 대구로 내려간다.

어느 덧 어둠이 찾아오고, 서둘러 잠자리를 만든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모두가 모닥불 앞으로 모여 앉는다. 세상일이 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변수가 생기고 그 변수가 재미있거나, 위험한 일을 만들어낸다. 당황하지 않고 마치 묶인 실타래처럼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좋은 경험이 되고, 추억이 쌓이게 된다. 좋은 추억으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모두가 다양한 경험을 쌓아뒀던 사람들인지라 긍정적이다. 내일은 반드시 드론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눈빛으로 모닥불을 바라본다.

 

 

금산 8경 귀래정 마을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인스턴트커피와 과자를 먹고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 건너 먼 곳에서 찾아보니, 소나무 숲 위에 살짝 앉아있는 하얀 기체가 보인다. 카누가 3개라서 3명만 드론을 찾으러 가고 주변을 걸어 다녀보니, 우리가 잠을 잔 곳이 명당이다. 금산 8경 중 제7경인 귀래정(歸來亭)이 있는 곳이다.

금모래밭과 새알 같은 강돌이 곱게 깔려있고, 마을 옆에는 50년 이상의 노송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지난날에는 충남, 충북, 전북의 세 도지사가 호화로운 뱃놀이를 하였고, 주민들은 그 시중을 드느라 고생이 많았다. 작은 동산 위에 있던 귀래정이란 정자는, 그 정자 때문에 너무 많은 손님을 치러야 하는 마을 사람들이 정자를 불태워 지금은 그 빈터만 남아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사람들에 치여 정자를 불태웠을까?

우리가 잔 곳을 둘러보니,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들이 강둑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멀리 드론을 들고 돌아오는 대원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한가득하다. 비록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곳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서로가 배려하고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내공을 발견한 것은 멋진 수확이었다. 물론 귀래정 마을의 아름다움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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