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숲길

 

송당리 오름 전망대 높은오름

 

높은오름은 이름에서부터 맹주다운 기운을 대놓고 풍긴다. 제주에서 오름이 몰려 있는 구좌읍 송당리에서도 가장 높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과연 우뚝한 자태를 가졌다. 주변에서 보기엔 삼각뿔모양이어서 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탄탄한 산의 느낌도 준다. 그러나 정상엔 동그랗고 아담한 굼부리를 품었다.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오름의 원형을 잘 보여주는 곳 

일대에서 유일하게 고도가 400m를 넘어서 주위의 숱한 오름보다 도드라진다. 오름 자체의 높이도 175m로 높은 축에 들고, 근처의 다랑쉬오름과 함께 제주 오름의 원형을 잘 간직한 곳으로 꼽힌다. 단단하고 거대한 뿔처럼 솟았기에 사면이 가파른 편이다. 30년쯤 전만 하더라도 오름 전체가 온통 풀밭이었다는데, 지금은 나무로 덮여가고 있다.

작정하고 오름을 찾아다니는 이가 아닌 다음에야 뭍에서 온 여행자가 이 오름을 오를 일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인기가 없는 곳이다. 일단 ‘높은’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행목록에서 제외됐을 가능성이 크다. 주변에 낮으면서도 멋진 오름이 수두룩하니 굳이 고생하며 이곳을 오를 이유를 찾지 못했을 테고, 우뚝 솟은 외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또 그리 외진 곳이 아닌 데도 승용차가 없다면 찾아가기가 애매하다. 마지막으로 오름 들머리에 자리한 널찍한 공동묘지도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그러니 여자 혼자라면 더 주저되는 곳이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사실 제주의 오름 중 높은오름만큼 장쾌한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서쪽의 노꼬메오름과 남쪽의 군산 정도가 꼽힐까? 제주 동쪽의 숱한 오름을 높은 지점에서 굽어보는 조망의 즐거움은 무척 특별하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실제로 걸어보면 탐방로가 힘들지 않다. 

정상엔 둘레가 500m나 되는 우묵한 원형 굼부리가 밋밋한 세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인 채 멋진 자태를 뽐낸다. 아찔한 깊이를 가진 다랑쉬나 산굼부리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아늑한 풀밭 느낌의 굼부리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면 앞마당처럼 편안하다. 

일대에서 우뚝 솟다 보니 정상부 능선에서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로 앞의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이 손바닥처럼 훤하고, 동부 오름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랑쉬오름과 송당리의 허다한 오름을 조망하기에 단연 최고의 명당이다. 동쪽 끝 멀리 깍두기 머리를 한 성산일출봉과 한라산도 잘 보인다.

 

 

아담하고 예쁜 분화구

탐방로는 무척 단순하다. 구좌읍공설묘지 사이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탐방이 시작된다. 공설묘지를 벗어나면 계단길이 이어진다. 중간쯤에 숨 돌리며 쉬어가라고 얼마간의 평지도 나온다. 거기서 정상부 능선까지 다시 오르막 구간인데, 살짝 가파르다. 그러나 주변으로 가없이 펼쳐지는 제주 풍광이 아름다워서 감탄하다보면 어느새 정상부 능선을 만난다. 

능선을 만난 지점에서 왼쪽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이 가깝다. 놀랍게도 감시초소 바로 뒤에 무덤 한 기가 눈길을 끈다. 어찌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고인을 묻었을까! 하긴 이만한 명당이 또 없을 듯하다. 화구벽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어디라고 콕 집기 힘들 만큼 최고의 풍광이 펼쳐진다. 제주 동쪽의 거의 모든 오름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하나하나 짚어가며 걷는 재미가 비할 데가 없다. 

화구벽이 높이를 낮춘 동북쪽에서 얕고 우묵한 초지대를 이룬 분화구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화구 안은 철따라 온갖 꽃이 흐드러져 천상의 화원을 방불케 한다. 높은오름은 ‘피뿌리풀’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몽고에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피뿌리풀은 더덕처럼 생긴 굵은 뿌리의 색이 핏빛처럼 붉어서 이런 무서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십 개의 작은 꽃이 모인 꽃송이는 아주 신비롭고 예쁘며, 예전엔 오름 능선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었으나 무분별한 남획으로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하산은 올랐던 코스를 되짚어 내려서는 길 뿐이다. 공동묘지 바로 아래에 차를 댈 만한 공간이 넉넉하다. 높은오름을 시작으로 이웃한 동검은이오름과 문석이오름을 함께 탐방하면 좋다. 체력이 괜찮다면 식수와 도시락을 준비해서 백약이오름과 좌보미오름까지 둘러보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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