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화누리길

 

동·서를 잇는 한반도 중심의 길을 걷다

 

평화누리길은 세계유일 분단지역의 상징성을 가진 길이다. 평화·안보·생태·역사 등을 연결하여 접경지역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화된 관광자원을 갖고 있으며, DMZ와 접하고 있는 경기, 강원의 각 시, 군별로 강화누리길, 김포누리길, 고양누리길, 고성누리길 등 크게 10개의 이름이 있다. 접경지역 발전종합계획(2011.7.27)에 따라 2021년까지 총 551km로 조성될 계획이다.

 

글 사진 · 하리(Ghari)

 

평화누리길을 우연히 접했다. 전곡에 갔다가 지역 안내글에서 한탄강 주상절리에 대한 내용을 보았고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 겠다고 생각하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평화누리길이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연천 임진강 변에 있는 고려왕조 태조 등에게 제향을 올리던 숭의전지(崇義殿址)에서 시작하는 경기평화누리길 11코스를 첫코스로 가게 된다.

평화누리길과의 이 첫 만남 이후로 틈날 때마다 길을 이어서 연천, 철원, 화천, 양구까지 왔다. 경기도 시작점인 김포 대명항부터 한 구간(경기 10코스)만 제외하고 양구까지 모두 걸었고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어가는 중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다음 코스로 강원 평화누리길 13코스(서화길)에 오른다. 소양강의 지류인 서화천을 따라 만발한 야생화를 감상하며 호젓한 트레킹을 즐겨본다. 다만 그동안은 혼자 걸었다면 이번은 선배들이 동행해 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보여행이다.  

 

 

10여 년 만에 모인 누리길 원정대

5월에 해외 근무를 발령받은 외교관 선배님 환송 모임 겸해서 고등학교 선후배들이 아차산 산행 모임을 했었다. 그 날 참석했던 멤버 중에 미국에서 잠시 들어와 있던 선배가 있었는데 나더러 평소에 산에 좀 다니냐고 묻는다. 산에 가게 되면 안 가본 산을 주로 다니는 편인데, 요즘은 산 대신 길을 좀 걷고 있다고 했더니 급 관심을 보이며 같이 한번 가자고 한다. 

바로 날짜를 6월 20일로 정했다. 한편으로는 ‘나야 계속 길을 이어서 걸어왔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형이 보행자 전용 길도 없는 지방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야 해서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또 길에서 몇 시간씩 계속 걷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또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데 괜찮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다.

우리가 이렇게 트레킹 계획을 잡고 있을 때 옆에서 ㅎ선배가 듣고 둘레길 대신 설악산을 같이 가자고 꼬드긴다. 내가 형도 같이 합류하자고 권유했지만 도로를 따라 길을 걷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해서 일단은 ㅅ선배와 나 이렇게 둘이 가기로 했다. 그래도 출발하기 며칠 전에 ㅎ형에게 혹시나 해서 한번 연락해 본다. 우연히 만나 같이 맥주 한잔 하면서 옆구리를 찔러 봤더니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내 동행을 수락한다. 이렇게 해서 셋이 되었고 토요일(6월 19일) 늦은 오후에 미아역에서 만나 내 차로 같이 이동한다.

내비는 서울양양고속도로 동홍천 IC를 경유해서 44번 국도로 안내한다. 목적지 양구 해안은 오지 중의 오지로 도착 시간 즈음에는 장 볼 데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원통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봐서 가기로 정하고 경로를 변경한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 밥 대신 탄수화물을 대체해 줄 감자, 계란, 소주+현지 막걸리를 사서 오늘의 숙소 양구 펀치볼 황토민박으로 간다.

내일 걷는 것도 걷는 거지만 삼겹살에 막걸리, 소주 한잔하면서 예전 이야기, 미국 이야기, 각자 외국에 파견되어 근무했던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허심탄회하게 웃으면서 핸드폰 음악도 곁들인다. 혼자 걸어온 지난 여정 때는 없었던 느끼지 못한 즐거움이다. 선배들과 같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 만인가. 내가 해외에 나가기 전에 모였을 것이니 최소한 10년 너머의 일이 된다. 

 

 

새벽안개 속 출발한 여정

더워지기 전에 출발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 재빨리 배낭을 챙겨 오전 5시 40분에 출발한다. 6·25때 미국 종군 기자가 가칠봉에 올라 이 동네를 내려다보고 해발 1,100~1,300m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 화채 그릇 모양과 닮았다 해서 펀치볼(Punch Bowl)이라 불렀다고 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이 북한과의 고지 점령을 위한 격전이 벌어졌던 지역이라니 실감이 되지 않고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우리 세 명 말고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새벽안개 속 몽환적인 분위기를 마음속에 담으면서 길을 나선다.

숙소 바로 인근에 있는 양구통일관 앞에서 그리팅 맨(Greeting Man)을 만난다. 연천 임진강변 옥녀봉 정상에서도 본적이 있고, 을지로 빌딩 숲 어딘 가에서도 봤었던 그 조형물이다. 유영호 작가는 그리팅 맨을 남미 우루과이에도 또 다른 국가들에도 설치해 놓았고 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15도 각도로 인사하는 이 그리팅 맨은 인간관계가 인사 하는데서 시작하고 평화의 바탕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 고요하고 적막한 평화가 계속 이어지기를….

양구는 시래기가 유명한데, 그 양구는 여기 펀치볼을 말한다. 안개 속에 시야가 멀리까지 미치지는 못하지만 저 넓은 들판이 시래기를 수확할 목적으로 심은 무 밭들이다. 무청만을 잘라서 수확하고 뿌리는 뽑지 않고 그대로 갈아엎어 다음 해의 거름이 되게 하는 식이다. 지난 번 코스를 걸을 때 여기에 종착지로 도착해서 시래기를 한 박스 사간 적이 있는데 아내가 부드럽고 맛있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길가에 무 밭이 아닌 파 비슷한 작물도 보인다. 모양이 정확히 파는 아닌 것 같았다 아마 저건 양파 밭일 거야라고 우리는 의견 일치를 보았다. 분지를 빠져나가는 고개에 접어든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ㅎ형은 큰 키에 걸음이 빠른 편인데 다행히 야생화 등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저 뒤에 있다. ㅅ형과 나는 기다릴 필요 없이 페이스대로 걷기만 하면 된다. 빠른 걸음으로 어느새 우리를 앞질러 갈 테니 뒤쳐지거나 말거나 개의하지 않기로 한다. 

 

 

적막함이 감도는 453번 지방도

기본적으로는 DMZ와 가까운 길을 따라 걷는 길이 평화누리길인데 양구 해안면-인제 서화면을 잇는 453번 지방도를 따라 걷는 오늘의 구간은 남방한계선을 따라 가지 않고 조금 우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민간인통제구역 표지와 지뢰 주의 안내판이 이 지역이 그냥 지방의 일반 도로 길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대전차 방호벽을 지나 분지 고개를 넘는다. 양귀비꽃이 눈에 띈다. 붉은 색의 양귀비꽃은 서울이나 서울 근교에서도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데 관상용으로 마약 양귀비와는 종이 좀 다르고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양귀비꽃과 지뢰안내판의 조합이 묘한 느낌을 줄 때쯤 오늘의 첫 다리를 만난다. 인북천(麟北川)을 건너는 가령촌교다. 여기부터는 인북천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다.

물길은 인북천(한강 제3지류)~소양강(한강 제2지류)~북한강(한강 제3지류)~한강으로 흘러 파주 교하에서 임진강을 만나 합쳐 조강이 되고 강화도를 남북으로 감싸 안고 흘러나가 마침내 서해와 만난다. 내가 평화누리길 여러 구간을 쭉 걸어오면서 함께 한 많은 하천들이 떠오른다. 해안면에서 시래기 등 고랭지 작물 재배로 발생하는 흙탕물이 인북천으로 입수되어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하여 흙탕물 저감시설들을 만들어 정화시켜 흘려보낸다고 들었다.

길에서 산, 고개, 터널, 하천, 다리를 번갈아 만난다. 길 위에서 다리를 많이도 만나면서 다리 이름을 넣어 사진을 남기는 습관 아닌 습관도 생겼다. 다른 건 알겠는데 걸으면서 보이는 요 앞, 저 멀리 있는 산들의 이름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궁금해 하곤 했다. 나중에 한번 저 산도 가봐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 걷는 길은 긴 구간은 아니다. 강원 평화누리길 13코스 서화길(총 37km)중 일부 구간만 걷는 14km이다. 평소 다른 구간에서 20~30km 걸었던 것에 비하면 소풍길 수준이긴 한데 서화면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을이나 인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걷는 사람들도 없고 자전거 한 두 대가 지나갈 뿐이다. 오히려 이런 적막이 좋다. 우리의 걷기가 끝날 때쯤에야 비로소 마을을 보게 된다.

아재들이 양구 이야기를 나눈다. 전체 해봐야 인구가 2만 정도 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군부대들도 축소하거나 빠져나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군민들의 걱정이 많다고 한다. 양구에 집이나 땅을 사두면 나중에 가치가 오를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웃는다. 투자 가치보다는 그냥 집하나 마련해두고 와서 주말에 쉬고 갈 수 있는 아담한 주택 정도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 까라는 별로 가망 없는 생각을 해보며 실소한다.

 

 

인북천 따라 이어지는 도보여행

형이 도로를 버리고 천변으로 갈 수 있는지 보자고 하면서 앞서 내려가서 살펴본다. 길은 없다. 설령 걸을 수 있다 해도 이 동네의 천변은 유실될 지도 모르는 지뢰의 위험이 있다고 하니 다시 도로로 올라와 걷던 길로 걷는다. 조금 걷다 보면 다릿골 시험장 이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런데 무슨 시험장인가 살펴보니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운영하는 군개발장비 시험장이라고 한다.

이 시험장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잠시 내려가 보니 인북천이 흐르고 하천을 가로지르는 1970년대 초반에 군부대에서 만든 다리가 난간이 중간중간 떨어져 나간 채로 낡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다리 모퉁이에 처음으로 평화누리길 안내 표시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천변에 조성된 데크길로 접어들어 인북천을 감상하며 한가함과 자연을 맛본다.

멀리 날아가는 흰 새를 사진에 담아본다. 저건 백로일까?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류의 새일 것이다. 연천, 철원 지역에는 두루미(학)들이 도래한다고 한다. 그 쪽을 지나면서 몰랐을 때는 들녘에 많은 하얀 새 무리들이 두루미인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루미는 160cm 정도로 크고 머리에 빨간 타원모양의 점이 있으며 1년에 1,000마리 정도 밖에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에 연천, 철원에 가서 두루미를 만나봤으면 좋겠다.

홍수로 하천이 유실되어 공사가 한창이다. 5~10분 정도 걷던 짧은 천변 데크 길은 끊어지고 다시 군 코로나 격리시설을 뒤편을 지나 도로로 접어든다. 잠시 후 도로 가의 비교적 큰 규모의 부대를 지나자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쓰인 안내석을 본다. 금강산이 멀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길 안내만 보일 뿐 어디가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건지 의문을 품는다. 나중에 택시로 돌아오는 길에 기사님께 여쭈어 보니 군부대 옆으로 갈라진 길이 금강산 가는 길인데 민통선 지역이라 일반인들은 출입을 할 수 없다고 알려주신다.

이제 평촌교를 건넌다. 우리가 걸어왔던 인북천으로 유입되는 서화천(瑞和川)을 건너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인제천리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천변 둑방길로 이끌어 준다. 평화누리길과 같이 병행하는 구간이다. 햇살은 이미 따가워져 있고 그늘 하나 없다. 아래쪽에서는 하천 정비 장비들이 보이고 공사가 한창이다.

둑방길 왼편으로 비닐하우스와 인가가 있는 것을 보면서 흰 감자꽃, 보라색 가지꽃을 감상한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이 꽃들을 처음 본단다. 얼마 안 지나 마을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쉬면서 오늘 도보여행을 여기 서화2리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한다. 날씨도 더워지고 4시간이면 충분히 걸었다 싶다. 이 동네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차를 세워 둔 해안면으로 복귀하기로 한다. 

 

국토정중앙 양구의 관광명소

서화에서 해안까지는 버스가 하루 1회만 운행한다고 한다. 원통에서 택시를 불러 실제 우리가 이동하는 거리는 2만원이 좀 안 나오는 거리지만 원통에서 들어오는 거리까지 계산해서 3만원에 가기로 기사님과 합의했다. 택시 이동 시간은 15분, 거북이걸음으로 유유히 걸었던 길을 휙휙 지나가면서 왔던 여정을 다시 음미해 본다.

일요일이어서 차량 정체를 생각해 빨리 복귀하기로 했지만 미국에서 온 ㅅ형과 양구가 처음이라는 형에게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니 이왕 이 지역에 온 김에 내가 평화누리길을 지나오면서 봤던 기억에 남는 곳들을 안내하기로 했다. 먼저 펀치볼에 왔으니 지형을 잘 확인해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향한다. 일반적으로는 해안에서 양구읍 방면으로 갈 때 돌산령 터널을 이용해 통행하지만, 우리는 굽이굽이 고갯길을 올라간다.

민통선 안에서부터 스며 나오는 대암약수에 들러 시원한 청정 샘물로 목을 축이고 바로 전망대로 향한다. 마치 대야처럼 생긴 해안(亥安) 분지를 내려다보고, “아~ 이래서 펀치볼이라고 하는 구나”하면서 서로 인증 사진을 찍어준다. 대암산(1,304m), 도솔산(1,148.2m),  대우산(1,179m), 가칠봉(1,242m) 등 펀치볼을 두르고 있는 산들을 보이는 데까지 바라본다. 멀리 북한의 무산, 향로봉도 보인다고 하지만 운무가 끼어 있어 확인은 못 했다.

전망대에서 지척인 고개마루 도솔령을 넘어 내려가는 길, 북한 쪽의 산들을 위시해서 멋진 조망이 펼쳐지며 기사인 나에게 차를 세우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웅장하면서도 숲이 우거진 부드러운 산세가 시원한 눈 맛을 제공하고 역시 기념사진이 빠질 수 없다. 아래로는 가야할 길이 구불구불 내려다보인다. ㅎ형 왈, “휴가를 사람들 몰리는 동해 같은 데 갈 거 없이 이런 동네로 와야겠어. 아내랑 가봐야 할 데가 한군데 더 생겼네.”란다. 정말 조용하고 한적하긴 하다. 차들은 거의 없고 자전거 겨우 몇 대 지나가는 정도.

이제 차 밀리는 시간을 피해 빨리 가야 한다. 하지만 둘러봐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바로 ‘평화의 댐’이다. 피의 능선 전적비에 잠시 들러 과거의 치열한 전투를 떠올려보고 두타연 입구를 거쳐 목적지로 향한다. 두타연은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출입이 안 되지만 평화누리길의 한 구간(12km)이므로 다음에 통제가 풀리면 꼭 와봐야 할 곳이다.

북한 금강산댐 방류 수공에 대비하여 1989년에 1차 댐 건설, 이후 2005년 증축 완공된 평화의 댐은 북측의 방류를 막기 보다는 홍수조절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에게는 관광 명소로서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졌다. 나도 부모님을 모시고 한번 와보고자 한다. 평화누리길 걷는 몇 십 명의 단체를 만난다. 저렇게 같이 단체의 일원으로 걷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홀로 걷는 자유로움을 더 원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주변을 둘러보고 댐의 북측이 내려 다 보이는 배경으로 멋진 인증샷을 건진다. 돌아오는 길은 다행히 교통 체증이 있는 곳을 피해서 막히지 않았다. 기분 좋게 이틀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형들과 같이 걸으면서 추억을 만들어서 너무 좋았고 또 이런 도보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함께 동행해 주신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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