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카누 원정대 _ 강릉 연곡천

 

카누로 걸어 보는 전국의 물길, 

대한민국 카누 원정대 출범!

 

지난 32년 동안 <사람과 산>은 백두대간, 정맥, 정간의 산길을 누비며 백두대간을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왔다. 산과 산 사이에는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의 물이 모여 강을 만들어 낸다. 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깊고, 강은 길게 이어진다. 이제 <사람과 산>과 함께 카누를 타고 전국의 물길을 걸어보려 한다.

 

글 · 김석우 편집위원  사진 · 정종원 기자

 

 

카누를 타는 사람을 카누이스트(Canoeist)라고 하지만 또 다른 표현으로 워터 워커(Water Walker)라고도 한다. 카누의 이동 속도가 사람이 길을 걷는 속도와 비슷해서이다. 물길을 걷기에 카누만큼 좋은 것이 없다. 우리는 전국 각지의 강과 하천을 카누로 걸어보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거창하게 ‘대한민국 카누 원정대’라고 말하며 의지를 다졌다. <춘천 물레길>의 임병로 대표, <피치오리진>의 길안나 대표, 두 사람 모두 아웃도어에선 꽤 오랫동안 이력이 난 베테랑들이다.

 

 

은어가 올라오는 강을 따라

첫 여행지는 강원도 강릉의 연곡천(連谷川)이다. 이곳을 첫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 때문이다. 6~7월은 강원도 연곡천에 은어가 올라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다에서 은어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룻밤을 잔 후, 다시 강을 내려와 바다로 나가는 일정을 택했다.  

연곡천은 오대산의 한 봉우리인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의 진고개에서 발원하여 오대산국립공원을 상류지역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빠져나간다. 길이는 20.4km이고, 동대산(1,433m), 철갑령(1,012m), 탑재, 천마봉, 운계봉(630m)등의 높은 산지를 지나면서 협곡과 기암절벽이 매우 많아 경치가 아주 좋다. 산행에 들머리가 있듯이 카누잉(Canoeing)에도 들머리가 있다. 우리는 들머리를 바다인 연곡해변에서 시작하였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을 가보니 눈이 푸르게 시린 동해 바다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하얀 백사장에 파란 바다, 그리고 동해의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카누만 아니었으면 당장이라도 물로 뛰어들고 싶은 날이었다. 연곡해변에는 솔향기 캠핑장(연곡면 동덕리 산3)이 있어 이곳에 텐트를 치고 종일 카누를 타고 와서 자는 일정도 권해드린다. 이름에 걸맞게 소나무숲이 아주 잘 관리 된 캠핑장이다. 

차에서 카누를 내리고 짐을 정리하여 카누에 싣는다. 카누가 처음인 길안나 대표가 짐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 질문에 “가지고 오고 싶은 거 다 가져오세요.”라고 답한다. 2인용 카누 한 대에는 약 200kg까지 짐을 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길안나 대표는 큰맘 먹고 지름 12m의 티피 텐트를 준비해 왔다. 대원들이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기 위한 럭셔리한 방이다. 

길안나 대표의 걱정과는 다르게 가뿐히 짐을 싣고 카누잉을 시작한다. 바다를 만나는 곳이기에 수량도 많고 제법 깊이가 있지만, 이내 아름다운 자연 하천의 매력을 드러낸다. 구불구불하고 하천의 폭이 좁아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넓어지기도 하고, 강의 옆은 푸른 녹음이 우거져 있다. 바다에서부터 산을 향해 올라가니 우리가 가는 방향 저 멀리 매봉(1,173m), 노인봉(1,338m), 두로봉(1,422m), 응복산(1,359m)이 보인다. 

 

 

금은동 물고기의 올림픽천

묘한 경험이다. 산을 카누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에는 낚시인들이 모여 앉아 이곳에 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낚시인들이 있는 곳은 조심스럽게 피해서 카누를 타야 한다. 어차피 강은 공유해야 하기에,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한쪽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낚시인들과 카누이스트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게 마련이다. 

연곡천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에는 연곡면에서 아버지와 함께 <통통통 영농조합 법인>을 만들고 있는 이광표 <와바다다> 대표가 연곡천에서 카누 투어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광표 대표는 연곡천을 ‘올림픽천’이라고 부르며 우리를 유혹했다. 3월에는 황어, 6~7월에는 은어, 10~11월에는 연어가 올라오는 보기 드문 하천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물고기를 올림픽의 금은동 메달로 비유해서 올림픽천이라 한 것이다. 무릎을 탁 칠만한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이다. 시기를 잘 맞추면 황어, 은어, 연어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멋진 체험을 할 수 있다. 연곡천에 기대어 살고있는 연곡면 사람들이 카누 투어를 진행하게 된다면 현지에서의 다양한 체험과 함께 낚시인들과의 사소한 마찰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군데군데 수심이 낮아 카누를 끌어야 하는 곳도 나타난다. 과감하게 옷을 적시며 물로 들어간다. 무릎 이하의 깊이니 위험하지는 않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심은 낮아지지만, 하천의 깊은 곳을 찾아 카누를 운전해 간다. 물의 흐름과 모양을 보며 수심을 가늠해 보는 또 다른 재미이다. 2~3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니 우리가 가고자 했던 작은 모래톱이 나타난다. 카누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도로가 멀어 차로 오려면 한참을 걸어 들어 와야 하는 곳이다. 

2~3시간의 카누잉으로 우린 완전히 고립된 오지로 들어오게 되었다. 해가 산을 넘어가려 하니 산봉우리들이 더욱 명징해진다. 노을이 강물에 비치니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진다. 텐트 치기를 미루고 임병로 대표와 조금 더 상류로 카누를 타고 간다. 자연이 그린 이 그림 속에 우리도 한번 껴들고 싶었다. 해가 제법 길어졌기 때문에 모든 일정은 여유롭게 흘러갔다. 

 

 

북두칠성 아래 낭만 카누캠핑 

저녁을 준비하고 짐정리를 하는데, 티피 텐트가 무너졌다. 강릉의 바람을 간과한 결과이다. 티피 텐트가 바람에 강한 텐트이긴 하지만, 모래톱에 지름 12m의 텐트를 고정하기엔 팩의 길이가 짧았다. 땅을 파서 팩을 박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지만, 강릉의 세찬 바람은 여지없이 티피 텐트를 허물어 버렸다. 두세 번의 시도에 우린 티피 텐트를 포기했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음에 더 긴 팩을 준비해 오기로 하고 지금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한다. 

해가 지고, 바람이 잠잠해 질 무렵, 길안나 대표가 준비해온 화롯대에 사가지고 온 장작을 넣고 모닥불을 피웠다. 모두가 모여 멍하니 모닥불을 보는 불멍이 시작된다. 하늘엔 북두칠성이 빛을 발하고 강 옆엔 모닥불이 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각자 자신의 텐트로 몸을 눕힌다.

온갖 새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깬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기분 때문인지 강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연곡천은 더 맑다. 간단하게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이른 시각, 카누를 띄운다. 다시 바다로 나갈 시간이다. 왔던 물길을 다시 내려가는데 시선이 달라지니, 처음 온 곳 같다. 

올라올 때와 다르게 노질을 적게 해도 물과 함께 내려가니 속도가 빠르다. 방향만 잘 잡아주면 된다. 천천히 떠다니다 어느덧 바다가 보인다. 어제 들머리로 삼았던 곳보다 더 바다 쪽으로 가본다. 갈매기가 있고, 파도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모래톱에 카누를 정박하고 바다로 나가본다. 

앞에는 바다, 뒤엔 연곡천을 두고 대한민국 카누 원정대 3명의 대원이 힘차게 점프샷을 해본다. 30년 전, 백두대간길을 개척하고 찾아다녔던 선배들처럼 우리가 이제 대한민국 카누 물길을 찾아 보려 한다. 우리의 카누 원정에 같이 하고자하는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라. LNT(Leave No Trace)에 입각한 들잠 자기에 익숙한 모험가라면 누구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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