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통종주 _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 마침내 설악산을 마주하다!

 

올여름은 긴 장마와 태풍, 코로나까지 겹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다. 화창한 날씨를 택해 강릉시 삽당령에서 시작하여 대관령, 오대산, 점봉산을 넘어 한계령에 도착한 5일간의 가을 산행에서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특히, 야생화를 길벗 삼아 바라본 설악산이 필자를 들뜨게 했다. 비록 마지막 날은 입술까지 부르텄지만, 130km의 여정을 무사히 마쳐 기쁘다.

 

글 사진 · 나종대

 

 

제57구간(땅통 백두대간 29구간)

삽당령-고루포기산-대관령

29.6km, 12시간 48분 

가을이 반기는 대관령행 산행

9월 17일, 광주에서 오전 9시 5분 버스를 탄다. 일찍 출발하는 이유는 산행 전 강릉의 명소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강릉 오죽헌에서 운 좋게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호조, 이조, 형조, 병조판서를 거친 이이는 49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를 치를 돈도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견득사의(見得思義)를 생활신조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죽헌을 둘러본 뒤 택시를 타고 관동팔경 중 하나인 경포대로 이동한다. 경포대에 올라 선비처럼 경포호수를 바라보니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워진다.

9월 18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숙소 인근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택시로 정선과 강릉 경계인 삽당령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코스는 석두봉~화란봉~닭목령~고루포기산~능경봉을 거쳐 대관령까지 가는 29km이다. 오전 5시 50분에 헤드랜턴을 켜고 산행을 시작했는데, 금방 동이 튼다. 862봉과 석두봉을 지나 제8쉼터에서 백두대간을 남진으로 진부령부터 지리산까지 백패킹으로 종주 중인 제주산악인 두 명을 만난다. 텐트와 식량 등 무게가 만만치 않을 텐데 대단하다. 등산로를 걷는데 ‘톡톡!’, ‘툭툭!’하는 소리가 들린다. ‘새소리일까?’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다. 아!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화란봉 급경사 구간이 필자의 나이를 체감하게 한다. 힘들게 화란봉을 지나 하늘전망대에 도착한다. 날씨가 좋아 설악산 대청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짧은 감상을 마치고 전망대를 떠나 다시 발을 옮긴다. ‘고개 모양이 닭의 목을 닮았다’는 닭목령과 왕산제 1·2쉼터를 지나 고루포기산을 오른다. 고루포기산의 이름은 ‘키 작고 가지 많은 다복솔 소나무가 포기를 지어 많이 자라는 산’이라는 데서 산이름이 유래했다. 정상에서 1km가량 진행하니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 대관령 산야를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정상을 지나 영동고속도로 제1터널이 있는 횡계재와 행운의돌탑을 거쳐 능경봉에 도착한다. 능경봉에 서니 강릉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 동해가 진홍빛 노을로 번지고 있다. 대관령 표지석이 있는 구 대관령휴게소에서 대관령면 소재지인 횡계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친다.

 

 

제58구간(땅통 백두대간 30구간)

대관령~노인봉~진고개

27.8km, 11시간 25분 

선자령 지나 백 년 노인 화강암으로

9월 19일, 오전 6시에 아침을 먹고, 택시로 구 대관령휴게소로 이동해 7시 20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코스는 선자령~곤신봉~동해전망대~매봉~소황병산~노인봉을 거쳐 진고개까지 가는 27km 코스다. KT송신소~전망대를 거쳐 선자령에 오르는데 어제 밤 선자령에서 백패킹을 하고 하산하는 등산객이 보여 “별이 좋았지요?”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라고 한다.

선자령(仙子嶺·1,157m)에 올라 삼양목장 목초지가 있는 곤신봉으로 향하는데, 곤신봉에 출입금지표지판이 붙어 있다. 곤신봉을 뒤로 하고 선자령을 둘러보니 가을이 찾아온 풀밭이 이미 누렇게 변했다. 그러나 삼양목장 일대는 아직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건초 재배를 위해 늦게 파종했기 때문인 것 같다. 군데군데 홀로 서 있는 나무와 그 아래서 텐트를 치고 있는 등산객도 보인다. 그 모습이 그림 같아 한 컷 담아 본다.

동해전망대~매봉~소황병산을 거쳐 노인봉(老人峰·1,338m)에 오른다. 노인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정상부 화강암이 백 년 노인과 같이 보인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했다. 노인봉 정상에서는 멀리 설악산 대청봉이 보인다. 하산하여 진고개에 도착하니 민박집 차가 기다리고 있다. 샤워하고 동태탕에 밥을 맛있게 먹는다. 맛있다고 하니 주인이 동태 냄비를 통째로 줘서 두 그릇을 더 먹는다.

 

제59구간(땅통 백두대간 31구간)

진고개~오대산두로봉~구룡령

23.4km, 11시간 15분 

오대산에서 바라본 가슴 벅찬 설악산

9월 20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보니 전날 빨래를 부탁한 옷이 세탁·건조되어 문 앞에 놓여 있다. 감사하다. 아침 식사 후, 진고개로 이동하여 오전 6시 50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코스는 오대산의 동대산과 두로봉을 넘어 신배령~만월봉~응복산~약수산을 거쳐 구룡령까지 가는 23km이다.

오대산(五臺山)의 다섯 봉우리는 주봉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상왕봉(1,485m), 두로봉(1,421m), 동대산(1,433m), 효령봉(1,560m)이다. 다섯 봉우리가 원을 그린 모습이 흡사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오대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동대산~차돌백이~신선목이~두로봉을 거쳐 신배령으로 내려가는데, 응복산(鷹伏山·1,360m) 너머로 아득하게 보이는 설악산에 가슴이 떨린다.

만월봉을 거쳐 매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는 응복산을 오른다. 마늘봉을 거쳐 1,264봉을 오르는데 오늘 오른 산 중 가장 가파른 경사를 자랑해 다리가 툴툴거린다. 금강초롱꽃이 지천인 약수산을 넘어 구룡령에서 민박집 트럭으로 홍천군 내면 광원리로 이동한다. 씻고 삼겹살을 먹는데, 주인아저씨가 오대산에서 딴 귀한 능이를 줘서 시식한다. 살짝 데친 뒤 먹어보니, 입안에 향이 가득 퍼지면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제60구간(땅통 백두대간 32구간)

구룡령~갈전곡봉~조침령

23.6km, 10시간 54분 

홍천·인제 삼둔사가리를 지나다

9월 21일, 아침 6시에 민박집 트럭으로 구룡령을 향해 달리다, “어제 약수산에서 조망처를 지나쳐 설악산 사진을 못 찍었어요”라고 했더니, 민박집 주인이 구룡령 생태이동통로를 지나 설악산이 보이는 곳에 내려 준다. 일출 전이라 설악산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다. 주인의 배려 덕분에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구룡령에서 오전 6시 40분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코스는 갈전곡봉(1,204m)에 올라 968.1봉~1,080봉을 거쳐 조침령까지 가는 23km 코스로, ‘삼둔사가리’ 일부를 지난다. ‘삼둔’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평평한 둔덕’으로, 홍천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을 말한다. ‘사가리’는 ‘계곡가의 마을 네 곳’으로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이다. 갈전곡봉을 지나 왕승골 안부에 도착하니 좌측으로는 조경동(朝耕洞)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한자를 풀면 ‘아침가리’란 뜻이 된다.

점심을 먹고 연가리골 샘터를 거쳐 많은 재와 봉우리를 넘는다. 이미 두 번이나 이 길을 걸었지만 생소하다. 특징적인 바위나 봉우리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걷다 힘이 들면 오늘 새벽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경기에서 4골을 넣은 손흥민의 동영상을 보며 힘을 내 본다. “가자! 흥민아!”라고 소리 지르니 힘이 솟구친다.

쇠나드리고개를 넘어 조침령에 도착한다. 임도와 도로를 탄 끝에 양양군 서면 서림리의 두메산골민박에 도착한다. 씻고 주인 부부와 함께 겸상으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신다. 어떻게 이런 외진 곳에 살게 되었는지 물으니, “서림리에 살 때는 2층짜리 큰 집에서 살았어요. 저희가 이산가족인데, 어느 날 브로커를 통해 북한 청진에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이 왔었죠. 이후 중국에서 가족들을 몇 차례 만났고, 가족들을 금전적으로 돕다 보니 집과 농토를 팔게 되었어요. 그래도 가족들을 도와준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주인 부부와의 대화에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느낀다. 내일 새벽 3시 40분에 주인아저씨 차로 조침령 터널까지 가기로 약속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제61구간(땅통 백두대간 33구간)

조침령~점봉산~한계령

25.3km, 13시간 11분 

한계령에서 끝난 5일간의 130km 종주

9월 22일, 새벽 2시 40분에 일어난다. 오전 8시 이전에 단목령을 통과하고 한계령에 오후 4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다. 아침을 먹고 새벽 3시 40분에 민박집 차로 1km 거리의 조침령 터널 입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코스는 북암령~단목령~오색삼거리~점봉산(1,426m)~망대암산~1158봉을 거쳐 한계령까지 가는 25km이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다. 새벽 산행이라 거미줄이 계속 얼굴에 걸린다. 중간에 빵을 먹으려는데 입술이 부르터서 아프다. 단목령을 오전 8시 7분에 통과한다.

이른 점심을 먹고 오색삼거리를 지나 점봉산(點鳳山·1,426m)에 오르는데 갑자기 구름이 밀려온다. 길가엔 금강초롱꽃이 지천이다.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식물인데, 나의 길벗이 되어 준다. 정상에는 용담이 군락지를 이루고 있지만, 구름 때문에 지척인 대청봉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망대암산(望對岩山·1,231m)~12담계곡갈림길~UFO바위~1158봉을 거쳐 한계령 암벽을 탄다. 절경이다! 기묘한 바위들이 발걸음을 잡는다. 우회길이 있지만 밧줄을 잡고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나무로 된 발받침을 딛고 내려와 ‘이제 다 내려왔구나!’ 방심하는 순간 길을 잃는다. 오후 4시까지 한계령에 도착할 계획이었지만 위험한 암릉이라 서두르지 말자고 나를 다독인다.

한계령지킴터를 무사히 통과하여 한계령에서 택시를 타고 원통터미널로 간다. 오후 5시 50분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광주행 오후 7시 50분 막차가 떠났다. 강변역에서 전철을 타고 수서역에서 저녁을 먹는다. SRT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내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현관문을 여니 아내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서 있다. 아내가 “모자 좀 벗어봐”라고 한다. 모자를 벗어 아내에게 “괜찮지?”라고 했더니, 아내가 안쓰러운 얼굴로 “수고했다”라고 한다. 배낭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항상 자던 침대, 서재, 거실, 정수기가 정겹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 산행은 ‘취미산행’이 아닌 ‘일’처럼 진행한 일정이었다.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점심때마다 참치 통조림을 김치와 함께 먹었으며, 하산해서는 술도 마시지 않았다. 이것으로 5일간 130km의 금수강산 순례를 마친다. 다음 산행은 총 4구간이 남아있지만, 무리하지 않기 위해, 10월 중순쯤 한계령~진부령까지 2일간 백두대간 구간을 마치고, 10월 하순쯤 진부령~통일전망대까지 2일간 땅통종주 졸업산행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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