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진흥회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 _ 고성 아야진항~속초 아바이마을

 

새벽의 바다를 걷는 즐거움

아야진항~청간정~영랑호~아바이마을

 

바다와 하늘이 짙은 남청색으로 일렁이는 풍경은 대단했다. 하늘에는 간혹 작은 별이 눈에 띄었고, 바다에는 환하게 불을 밝힌 오징어잡이배들이 점점이 떠 있었다. 어둠 속 바다를 따라 걸으면 파도 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근사한 일출은 없었으나 아쉽지는 않았다. 푸른 새벽의 근사한 트레킹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글 사진 · 서승범 객원기자

 

 

백사장이든 아스팔트든 한낮 달구어진 길을 걷는 건 고역이다. 물론 밤새 달리는 버스에 앉아 뒤척이는 것도 편안하지는 않다. 한여름의 후끈한 더위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의견을 모아 무더위가 가실 때까지는 새벽에 걷기로 했고, 이번이 그 첫 회였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던 일정을 바꾸어 자정 가까운 시간에 출발했다. 평소 출발했던 시간 무렵에는 이미 스트레칭을 마치고 아야진의 어둑한 항구를 걷고 있었다.

 

일출은 쨍하지 않았어도

지난 일정은 아야진항에서 마무리했고 대미는 천학정이었다. 아주 잘 달궈진 길을 내내 걷다가 정자에 올라 바람을 맞는 맛은 무척이나 근사했다. 그 바람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정자 그 자체였다. 천학정은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 기가 막힌 풍경으로 ‘고성 8경’의 하나로 꼽힌다. 여덟 개의 빼어난 풍경 중에는 또 하나의 정자가 있으니, 청간정이다.

청간정이 천학정보다 우리 귀에 익은 이유는 ‘관동 8경’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웠으니까. 일찍이 조선 시대부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을 꼽은 것인데, 그 범위가 관동, 그러니까 백두대간의 동쪽 지역이다. 오늘날로 치면 강원도와 경북 울진까지를 아우른다. 우리가 지나온 고성의 삼일포도 와 이곳 청간정이 관동 8경이다. 앞으로 갈 낙산사와 경포대 또한 8경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청간정은 정선과 김홍도가 그림을 남겼을 정도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지난해 가을 국립춘천박물관은 ‘관동팔경 기획전 시리즈’의 하나로 ‘고성 청간정’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아야진항에서 청간정까지는 1km 남짓, 새벽녘의 선선하고 푸르스름한 길을 따라 15분이면 족할 거리다. 배와 어구들이 즐비한 항구를 벗어나면 바다를 바라보고 걷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다와 나란하게 걷는다. 해는 아직 솟을 기미가 없이 하늘색과 바다의 색이 비슷하다. 잠시 만나는 바다는 청간해변이고 300m 조금 넘는 백사장이 끝나갈 무렵 내륙쪽으로 야트막한 산지를 만나는데 어둠 속에서도 그 위로 솟은 누각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04시 56분. 모두 청간정에 올라 배낭을 벗어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휴식을 위한 것은 아니고, 허기를 메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길을 걷다가 솟아오르는 해를 보는 것도 장관이겠으나 운치로는 청간정 일출만 할까. 잠시 숨을 돌리면서 짙푸른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드는 것을 지켜봤다.

하늘은 조금씩 밝아오고 사위는 점점 밝아지는데 붉은색은 이글거릴 생각이 없이 점점 옅어진다. 어느 순간, 일출의 순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장엄한 일출을 보았다면 감격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나 화룡점정 같은 일출 없이 날이 슬슬 밝는 것을 보는 것 또한 괜찮은 경험이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날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고, 그렇게 시작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삶 또한 화려하고 반짝이는 순간보다는 티 나지 않게 반복되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걷는다.

 

 

산과 호수도 1품이오

속초라면 동해보다, 오징어보다 설악이 먼저 떠오른다. 대간을 일부라도 걸어본 경험이 있거나 산을 좋아하는 이라면 그러할 것이다. 설악이 속초만의 산은 아닐지언정 속초는 설악의 도시다. 설악은 인제와 양양, 속초와 고성에 걸쳐 있어 설악의 언저리에 자리를 잡은 도시와 마을은 제법 많지만 사람들은 속초를 설악의 적자로 여긴다. 고성 구간을 걸으면서 잘 보이지 않던 설악의 산줄기가 멀리로 보이면서 속초가 멀지 않았음을 알았고, 속초 구간을 걸으면서 설악은 내내 우리 곁에 있었다. 먼 발치에서 바라본 것만으로는 상상도 못할 기암과 괴석, 능선과 계곡, 암릉과 폭포를 품고 있는 설악은 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고 설렌다. 일찍이 선조들은 설악의 경치에 대해 이렇게 적어두었다.

‘산봉우리가 절벽을 이루었는데 높이가 천길이나 되어서 기괴하기가 형언할 수가 없고 새도 날아서 지나가지 못하며 행인들은 절벽이 떨어져 누르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할 지경이다.’ (<동국여지승람>)

그 설악에서 속초를 내려다본다면 반듯한 해안선을 기준으로 바다와 육지가 나뉠 것이고, 육지에는 푸른 점 두 개가 보일 것이다. 영랑호와 속초호다. 설악에서 보기에 왼쪽, 그러니까 북쪽에 있는 것이 영랑호, 오른쪽(남쪽)이 청초호다. 속초 시가지는 두 호수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해파랑길은, 영랑호는 끼고 돌면서 청초호는 지나친다. 둘 다 석호이지만 영랑호는 바다와 통하는 물길이 거의 막혀 민물 호수이고, 청초호는 설악대교 아래로 바닷물이 수시로 드나들어 호수보다는 바다에 가깝다. 영랑호는 신라 시대 화랑 영랑과 술랑 등이 무술 대회 나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영랑이 무술 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잊어버렸다고 해서 영랑호로 불렸다. 술랑이 남았다면 술랑호가 되었을 텐데, 이 또한 제법 어울린다. 관창이나 사다함이 사연의 주인공이었다면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랑호 한 바퀴는 8km에 약간 모자란다. 못 해도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리는 거리, 취향에 따라 영랑호를 따라 걸을 사람은 걷고 범바위에 올라 쉬면서 조망을 즐길 사람은 즐기도록 한다. 영랑호는 바깥쪽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쪽에는 더 깊이 파고드는 구석이 많아 ‘이제 모퉁이만 돌면 되겠구나’ 해도 돌아나갈 생각 없이 안쪽으로만 깊어진다. 대신 호수 건너 울산바위의 암릉이 보이는 덕에 지루하진 않다.

마음 아픈 건 영랑호 초입에 숲에 남은 화재의 흔적이다. 불과 1년 전인 2019년 봄의 고성 산불. 불은 삽시간에 남쪽으로 속초까지 번져 이곳 영랑동 주민들까지 모두 대피했다. 그 흔적이 까맣게 변한 숲과 민가로 아직도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불길이 이 근처에서 잡혔는지 일부의 숲은 멀쩡하다.

 

 

‘모든 걸음이 좋았다’까진 아니라도

단출한 장비만으로 푸른 새벽 속으로 들어가 걷는 일은 수경과 오리발만으로 깊은 바다를 누비는 프리다이빙과 비슷했다. 함께 걷고 있지만 자기만의 시간이었고 공간이었다. 바람이 좋았던 청간정에서는 웃음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금의 사정과 앞으로의 꿈도 나누었다. 널찍하게 펼쳐진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모아놓고 펼친 만찬급 조찬에서는 왁자지껄한 이야기꽃이 피었다. 망망한 바다를 옆에 끼고 걸을 때도,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빨간 2층 버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영랑호 둘레길의 아기자기한 숲길을 걸을 때도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러니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질주하는 차들 옆으로 아스팔트를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데크가 망가진 구간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던 건 감사한 순간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진흥회에서 우리 땅 곳곳을 걷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차를 몰고 아야진항 보고 청간정으로 넘어와 일출을 볼 수도 있고, 양양의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고정의 한갓진 바다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다. 그 또한 여행이겠지만 이어진 길을 빠뜨리지 않고 정직하게 따르며 얻게 되는 풍경과 생각이 있다. 진흥회에서 2년 넘게 걸었던 평화누리길 역시 구간을 나누어 형편과 사정에 맞게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그 길과 길 위의 풍경은 트레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김준석 사무총장은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의 길, 곡식이 익어가는 논 사이로 혹은 제방을 따라 난 길, 들어갈 수 없는 철책을 따라 걷는 길 등 다양한 길을 걸으면 우리 땅, 국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연재를 시작하는 호에서 말했듯, 해파랑길 또한 평화누리길처럼 제법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해파랑길의 끝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남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향할 것이다. 그 끝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울을 향할 것이다. 그 길의 마지막 걸음이 ‘언제’일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건 ‘언젠가’로 퉁치고 길을 걷는 것에 집중하고 즐길 뿐이다. 길을 걷는 여행은 ‘하면 된다’ 정신보다 ‘되면 좋고’ 정도의 마음가짐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길이 즐겁다.

점을 찍는 여행과 선을 긋는 여행은 다르다. 그 선이 어떤 형태를 이루어가는 여행 또한 단순한 선의 여행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언젠가 서해안길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 길을 걸은 사람은 평화누리길을 출발하기 전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아마도 조금은 넒어지고 깊어지지 않았을까.

청초호를 조금 못간 곳에 속초등대전망대가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내부를 관람할 수 없지만 해파랑길이 전망대를 거치기 때문에 지났다. 전망대 야외에 우리나라 동서남북 끄트머리에 있는 등대를 모형으로 전시해두었다. 최북단의 등대는 우리가 49코스에서 지나왔던 대진등대이고 최남단 등대는 마라도에 있다. 맨 서쪽에는 소청도 등대가 있고 동쪽은 당연히 독도에 있다. 언젠가 바닷길을 따라 우리 영해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갯배를 타고

“여기를 잡으라고. 아니 그렇게 말고. 여기 손잡이를 잡고 이렇게 뉘여. 옳지. 잡아당겨. 세게. 빨리빨리. 끝까지 갔으면 얼른 와서 다시 끌어야지.”

속초의 명물 갯배는 그리 넓지 않은 물길을 건너는 배다. 양쪽 끝을 쇠줄로 고정하고 옷걸이 비슷한 도구로 쇠줄을 잡아끈다. 말하자면 무동력 바지선이다. 그리 힘들지도 않고 재미도 있어서 원하면 방법을 알려주고 배를 끌어보도록 한다. 알다시피 갯배가 있는 아바이마을은 전쟁 때 북쪽 사람들이 피난을 와 곧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잠시 머물기 위해 모여 살았던 곳이다. 기껏해야 폭 50m 정도 되는 곳에 다리 하나 놓는 것이 대수일까. 하지만 처음 갯배를 탔던 2004년에도 쇠줄을 끌어 배를 움직였고 2020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운행을 하고 있다. 실용을 위한 연육교와 재미를 위한 갯배를 모두 두고 용도에 맞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편한 다리를 두고 부러 재미를 위해 갯배를 타는 이는 별로 없을 것 같다. 갯배가 계속 남기를 바란다.

여정은 아바이마을에서 마무리하기로 한다. 정오가 지나면서 햇살이 따가워진 데다 생활 리듬이 뒤바뀐 탓인지 피곤해하는 회원들이 많아서다. 뭐, 다음 새벽에 걸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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