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숲길

 

다정히 마주 선 성산의 두 오름

통오름독자봉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꽃이 피었으나 향기를 탐할 수 없고, 창밖의 신록은 이리도 짙푸른데 그 소식 나눌 정다운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얄궂은 봄날, 시름에 겨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모두 평안한지, 그리운 이들의 안부가 유난히 궁금한 시간…, 그래도 정부와 온 국민의 헌신적인 협조로 유례없는 재앙 코로나19가 조금씩 잡혀가는 듯해서 다행이다. 꽃 피는 봄은 빼앗겼으나 우리 마음의 봄기운은 날로 생명의 기운으로 넘쳐나길 바라는 2002년 봄날이다.  

 

제주올레 3코스의 중심

제주제2공항 예정지와 성읍민속마을 사이에 서귀포시 성산읍의 ‘신산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솟은 두 오름이 있다. 통오름과 독자봉이다. 성산읍엔 이름만 들으면 누구라도 알만한 유명한 오름이 수두룩하다. 널리 알려진 성산 일출봉부터 오조포구 한가운데 솟은 식산봉과 두산봉으로 알려진 거대한 분화구의 말미오름이 있고, 모구리오름과 유건에오름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에 비해 관광객들이 지나지 않는 한적한 길가에 다소곳이 솟은 통오름과 독자봉은 찾는 이가 뜸한 비인기 오름이다. 그러나 올라보면 누구라도 반할 멋진 곳이다. 한적해서 좋고, 숲은 아름다우며, 적당한 경사와 완만한 능선, 확 트인 조망 등 어느 하나 나무랄 게 없는 제주의 숨은 보석이다.

두 오름은 중산간동로의 8자 모양을 한 신산교차로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사이좋게 붙었다. 그래서 연결해 오르내리기가 좋다. 제주올레 3코스가 두 오름을 이어 지난다. 당연히 올레꾼들에게는 널리 알려졌고 멋진 추억으로 사랑받는 오름이다.

 

 

다섯 봉우리가 감싼, 통을 닮은 오름

북쪽에 있는 통오름은 해발고도 143.1m에 오름의 높이가 43m로,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가졌다. 능선을 따라 부드럽고 나지막한 다섯 개의 봉우리가 서쪽으로 트인, 원형에 가까운 말굽형 분화구를 감싸고 있다. 오름의 모양이 말이나 소를 위한 물통을 닮아서 ‘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통오름 탐방로는 신산교차로에서 바로 시작된다. 교차로 한켠에 탐방안내도가 서 있어서 들머리 찾기가 쉽다. 능선에 닿기까지 네모난 통나무 계단이 구불거리며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국의 계단을 떠올리게 한다. 오르는 길엔 제주에서 흔치 않은 참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여느 오름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계단을 올라 만난 능선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산불감시초소다. 초소 앞으로 시야가 확 트이며 서북쪽의 영주산을 시작으로 멀리 백약이오름과 좌보미, 동검은이, 다랑쉬, 따라비 등 제주 동부의 수많은 오름이 늘어선 멋들어진 풍광이 펼쳐진다. 발아래론 수많은 무덤이 산담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신산공동묘지가 눈길을 끈다.

통오름 탐방로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서 분화구를 왼쪽에 두고 동북쪽으로 휘어 도는 능선을 따른다. 올레 3코스와 겹치는 노선이다. 능선엔 소나무가 많지만 억새와 띠 같은 풀도 자주 나타나며 온통 초지대였다는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몇 개의 무덤과 봉우리를 지나며 내려선 곳에 올레의 상징인 간세가 보인다. 여기서 올레길은 오른쪽으로 갈리고, 출발지로 돌아오는 통오름 탐방로는 왼쪽 길을 따른다. 억새가 무성한 둘레길을 따라 나오다가 통오름 분화구에 들어선 널찍한 밭도 만난다.

 

 

봉수대 터와 전망대를 갖춘 독자봉

통오름 바로 남쪽에 솟은 독자봉은 해발고도 159.3m, 오름 자체의 높이가 79m로 통오름에 비해 제법 당찬 산세를 가졌다. 우뚝 솟은 모양이 외로워 보여서 ‘독자봉(獨子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주변 마을에 외아들을 둔 집이 많은 게 이 오름 때문이라는 재밌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신산리 사람들은 이 오름을 ‘독자망(獨子望)’ 또는 ‘망오름’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봉 또한 통오름처럼 말굽형 분화구를 가졌다. 그러나 분화구가 서쪽으로 트인 통오름과는 반대로 동남향으로 열렸다. 그래서 두 오름은 서로 등을 맞대고 돌아앉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독자봉 들머리는 신산교차로에서 신산리 쪽으로 350m쯤 내려선 도로 옆이다. 신산리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서 들머리엔 번듯한 주차장에 화장실, 운동시설까지 보인다. 매화나무와 소나무, 여러 늘푸른나무가 섞인 숲 사이로 통나무 계단이 능선에 닿기까지 이어진다. 통신사 기지국을 지나 조금 더 간 곳에 북쪽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오르니 건너편의 통오름부터 유건에오름, 모구악, 백약이, 좌보미, 다랑쉬 같은 제주 동쪽의 내로라하는 오름들이 하늘금을 이뤘다. 북동쪽으론 바다를 마주하고 솟은 대수산봉과 두산봉, 성산일출봉이 또렷하고, 섭지코지도 훤하다. 동남쪽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하얀 탑은 성산기상대다.

소나무 사이로 난 능선길은 평탄하고 쾌적하다. 왼쪽으로 움푹 파인 분화구를 끼고 부드럽게 돌아간 건너편에서 독특한 모양을 한 봉우리를 만나는데, 독자봉수 터다. 지름 20m는 족히 될 만한 너른 원형의 둑이 이중 구조로 둘려졌고, 가운데가 봉긋하다. 전체가 억새로 뒤덮인 이곳 독자봉수는 서쪽의 남산봉수, 북동쪽의 수산봉수와 교신했다고 한다.

봉수대를 지나면서 길은 부드러운 내리막이다. 얼마 후 제주올레 3코스가 오른쪽으로 갈리고, 독자봉 탐방로는 왼쪽으로 향한다. 내려선 곳에서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굼부리 쉼터’라 적힌 이정표도 보여 잠시 들어섰다가 웃자란 수풀 때문에 돌아섰다.

368개나 된다는 제주의 오름 중 탐방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오름은 언제 올라도 좋다. 다랑쉬와 노꼬메, 새별, 금오름이 그렇고, 백약이와 아부, 따라비, 군산, 바굼지, 안돌, 밧돌, 물영아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하나 올라보니 아주 작은 오름이지만 보석 같은 곳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오름과 독자봉이 그런 곳이다. 사철 언제 찾아도 기분 좋은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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