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_ 라톡1봉원정대

 

세 번째 도전!

글 사진 · 박경이 편집장

 

세 남자가 라톡1봉으로 떠난다. 구은수. 강태웅. 오경호.

라톡1봉은 미국의 제프 로우 등이 1978년 등정을 시도한 이후 세계적인 등반가들의 도전을 받아온 난봉이다. 설벽, 빙벽, 암벽 등 수직벽 2,500m를 일주일 이상 비박하면서 올라야하는 험봉이다.

5월 30일 라톡1봉 등반을 떠나는 한국팀의 구은수 대장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다.

2011년 김세준, 왕준호, 구은수 셋이서 알파인 스타일로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세 대원은 알파인 방식과 인공등반으로 약 일주일 계획으로 등반을 시작했으나 등반 이틀째부터 계속되는 눈으로 사흘 동안 벽에 매달려 있다, 해발 5,300m 지점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2012년에 다시 구은수, 김세준, 왕준호가 도전했으나 전년도보다 더 많은 눈으로 하단벽만을 오르고 되돌아서야 했다. 이들은 8,000m 고봉에서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라톡원정대가 인수봉으로 훈련을 가는 길에 동행했다. 비로 인해 한차례 연기한 후에 어렵게 잡은 날짜에도 산길에는 물기가 남아있고 손이 시릴 정도로 꽃샘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이 택한 길은 고독의 길.

인수봉 정상을 향하는 가장 쉬운 길 중 하나지만 원정대들에게는 암벽화가 아닌 비브람 등산화를 신고 눈과 얼음이 덮인 바위를 장갑을 끼고 또는 아이스툴을 사용해 올라봐야 하는 필수코스요 전통적인 훈련코스라고 할 수 있다.  

오경호씨가 선등으로 두 줄을 달고 오른다. 강태웅씨가 셀프빌레이로 고정줄을 오르고 필자가 선등자의 빌레이를 받으며 오르면 구은수 대장이 강태웅씨의 빌레이를 받으며 오르는 방식이었다. 세 대원의 손발이 척척 맞는다. 비브람 등산화도 아닌 평상화를 신고도 물기 머금은 미끄러운 바위를 잘도 넘어간다. 물기를 머금거나 물이 흐르지 않아도 바위를 잡는 손끝이 시리고 올라갈수록 자욱한 안개 속에 제법 춥기도 해 차라리 화창한 봄날보다는 훈련에는 제격이었다.        

구은수(바름산악회) 대장은 뛰어난 등반가다. 20년 넘게 서울시구조대원이며 대장도 역임했고 도봉산 입구에 네파 매장을 운영한다. 에베레스트, 낭가파르바트, 시샤팡마, 매킨리, 무쿠트파르바트, 브리구판스,  탈레이사가르 북벽, 피크41 등을 올랐다.

강태웅(록파티산악회) 대원은 ‘2014 네파 익스트림팀 매킨리 원정대’의 일원으로  매킨리 등정에 성공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 강정식과 매킨리를 같이 올라 화제가 됐었다. 그밖에도 안나푸르나3봉, 아마다블람, 로체남벽을 등반했고, 임자체와 몽블랑을 등정했다. 설악산 한화콘도와 척산온천 사이 도로변에 수제손두부식당인 대청마루를 운영하고 있다.

오경호(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25기) 대원은 하드프리, 멀티등반, 스포츠클라이밍, 빅월등반, 빙벽, 믹스등반, 고산등반을 가리지 않는 멀티 클라이머다. 가셔브룸1봉과 2봉, 아일랜드피크, 로브제피크, 요세미테 등을 올랐다. 부평역 근처에 큐브클라이밍짐을 운영한다.

세 사람은 각각 소속이 다르지만 구조대라는 구심점으로 엮여있다. 구은수씨는 20년이 넘은 구조대원이며 전 서울시산악연맹 산악구조대장이었으며, 강태웅씨는 전 설악산적십자구조대 대장이었고, 오경호씨는 인천시산악연맹 산악구조대다.  

구은수 대장과 강태웅씨는 오래전부터 구조대와 한국등산학교 강사로 친한 사이였지만 오경호씨는 멀리 돌아 이들과 인연이 닿았다. 오경호씨가 의정부에 살며 구은수씨가 대장을 맡고 있던 서울시구조대에 노크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경호씨는 그 후 인천 부평역에 클라이밍짐을 오픈하면서 인천연맹과 연이 닿아 소원을 이루게 됐다.

셋 다 구조대원 아니랄까 날렵하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누가 봐도 ‘등반 좀 할 것 같은’ 강한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행동거지 하나 말투 하나에도 부드러운 남자가 보인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셋의 공통점이 더 나왔다. 현재의 아내들을 고독의 길을 통해 인수봉 정상에 이끈 역사를 만든 것. 인수봉 정상에 오른다는 생각도 못하고 따라나섰다가 현재의 남편과 한 줄에 엮여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처자를 하루에 셋이나 알게 되다니…. 가장 최근 결혼한 오경호씨는 결혼식도 인수봉 정상에서 올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포타레지에 앉은 웨딩사진도 찍었단다.    

이날 강태웅 대원은 즐거움 담당이었다. 나이 먹어(?) 손이 시려운 형님 구은수 대장에게 장갑을 빌려주고는 연신 적재적소에서 장갑을 소재로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무뚝뚝한 두 남자 사이에 에너지 넘치는 농담으로 대화의 물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바위를 잡는 손끝이 꽤나 시려워 ‘아유 손 시려’를 연발한 필자가 생각해보니 선등을 서는 오경호씨는 한마디도 없이 잘도 올라갔다. 클라이밍짐을 운영하는 현역답게 그의 손끝에는 장갑 이상의 굳은살을 갖고 있을 터였다. 라톡1봉의 수직벽을 오르며 손가락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극심한 동통을 체감할 세 대원들의 그림이 저절로 그려졌다.      

귀바위 밑에 이르자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도 부니 난데없이 필자가 훈련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들고 서둘러 등반을 끝내고 싶은 조바심이 들었으나, 세 남자는 유쾌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하고 급할 게 없었다. 머지않아 라톡1봉에 매달려 얼만큼의 혹독함을 겪을지 상상하니  이쯤이야 그들에게는 콧등을 스치는 봄바람 수준일 게다.

1피치부터 정상까지 2시간도 채 안 걸렸다. 정상에 오르니 바람은 더 세차게 불고 시장기도 없으니 그냥 하강하려나 했는데 차가운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김밥을 꺼낸다. 뜨거운 물 한모금도 없이 찬 김밥을 입에 넣으며 덜덜 떨리지만 안 그런 척 앉아 또 여유를 부린다. 수직벽에 매달려 분명 오늘보다 못한 식사를 몇 날 며칠 먹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이 또한 훈련의 하나가 아니겠나.

스노샤워를 어떻게 하면 덜 맞지?, 포타레지를 대신할 배낭을 어떻게 개조하지?, 원정등반 식량으로 뭐가 좋을까?

서로 근거지가 달라 자주 모이기 어려운지라 모인 김에 실제적인 원정 준비사항에 대한 대화가 오고갔다. 구은수 대장은 일주일 이상 벽에 옹색하게 매달려 밤을 새야하므로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낭으로 각자 걸터앉아 잠을 잘 수 있는 미니 포타레지를 만들 궁리를 하고 있었다.

프로답게 안개와 찬바람 속에 하강하면서도 절대 조금함을 보이지 않는다. 고산거벽에 도전하는 이들의 기본자세다. 5월 30일 출국해 7월 7일 귀국하는 라톡1봉원정대의 세 대원의 준비는 이상무! 등반을 곤란하게 하는 폭설과 낙석, 낙빙 등은 신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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