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후농(後農) 김상현과 대한산악연맹

 

글 · 김병준(전 대한산악연맹 전무이사)  사진 · 사람과산DB

 

 

화창한 봄날, 갑작스레 부음(訃音)을 들으니 너무 슬퍼 가슴이 메어진다. 파란만장 풍운의 인생.

저세상에선 부디 평안하소서.

 

 

후농 김상현. 1935년 전남 장성 태생. 6.25전쟁 중 고아가 되어, 신문배달, 구두닦이를 하며 야간고등학교 중퇴했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 혜성처럼 정계에 등장해 내리 3선을 했고, 한국현대사의 그 격렬했던 전환기에 4년여 감옥살이와 17년간의 공민권 박탈을 의연하게 버텨내며 제14대부터 또다시 내리 3선을 했다. 정치권에선 ‘마당발’로 통해 일화도 무수히 많고, 특유의 포용력과 친화력은 유명하다. 화합과 조화의 탁월한 정치인으로 학계에선 ‘한국 현대정치사의 텍스트’, ‘국회의장으로 최고 적임자’라고 극찬한다.

산과 인연이 없던 후농이 어떻게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됐을까? 1990년대 중반, 대한산악연맹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재정 상태는 사무실 전세보증금까지 바닥났고 오히려 빚이 산더미였다. 무능한 회장에 개인 실속에 급급한 일부 임원의 무책임한 권위주의가 만연했다. 새로운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만장일치로 추대한 분이 바로 후농이다.

후농은 산악운동을 올바르게 재건, 발전시키겠다는 확고한 소신으로 바쁜 일정에도 각종행사에 빠지지 않았다. 엄청나게 부지런했다. 빚도 하나하나 갚아나갔고, 어려울 때마다 후농의 친화와 포용력은 돋보였다. 7년여의 회장 재직 중 대한체육회 정회원, ‘산악연감’과 소식지 ‘대산련(大山聯)’, 전국등산학교 교재와 각종 규정집 발간, 7대륙 최고봉 등정,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 파견, ‘산악인의 날’ 부활, ‘대한민국 산악상’ 제정, 빙벽등반대회와 산악스키대회 개최 등 대한산악연맹을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후농은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으로 추대되어 아시아 산악인의 발전과 친목도모를 위해서도 큰 역량을 발휘했다.

후농은 사람의 정(情)이 뭔지 아는 온화하고 친근한, 소박 소탈한 신사다. 히말라야 칸첸중가 BC로 직접 지원하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추진력, 항시 따듯한 웃음과 해학으로 누구든지 감싸주는 큰 그릇, 세상을 품에 안은 진정 대인군자(大人君子)의 모습. 후농의 탁월한 지도력이 너무나 그리운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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