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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 명인이 일군  쌍계명차

 

글 · 박경이 편집장  사진 · 정종원 기자

 

화개면에서 하동군 전체 녹차 생산량의 80% 이상이 나오므로 녹차 투어를 비롯해 녹차 축제, 녹차 명인, 다원, 녹차 관련단체(기관)가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중 딱 한곳을 소개해야 한다면 쌍계명차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십리벚꽃길 가는 길가에 아름다운 쌍계명차 건물이 있다. 대도시 중심가에나 있을 법한 현대식 건물외관은 갤러리로 착각될 정도이다. 내부로 들어서니 다양한 차와 다기도 판매하는 카페이고, 2층은 차박물관으로 꾸몄다.

김동곤 대표와 인사를 나누니 김 명인의 저서를 건넨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해 차 잡지에 2년간 연재한 내용을 <아! 茶山, 다산의 사랑과 茶와 풍류>로 엮었다. ‘차와 향기로운 나날이소서! 찻잔아래 茶 名人 김동곤 모심’이라는 증정사가 멋스럽다.

쌍계명차를 일군 김동곤 대표는 2006년 농림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 제28호로 지정됐다. 1년에 딱 한 번 4월에 첫 잎을 따서 만드는 ‘우전차’ 제조 명인이다. 지금은 ‘전통’을 떼고 식품명인으로 타이틀이 주어지나, 과거 전통명인으로 지정받는 절차는 아주 까다로웠다고 한다. 명인을 받기 위해 열 번씩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김동곤 명인은 한 번에 됐다. 20년 이상 종사하고, 윗대부터 제조했다는 것을 문서로 증명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다행히 한의사였던 부친이 차를 거래했던 영수증 같은 서류가 남아있어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대대로 한의사를 했었고 저는 못했지만 제 아들은 5대째 한의를 하고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60년대에 만든 걸 작설차, 지리산선차로 팔기도 했어요.”

김동곤 명인은 손자까지 포함해 12대째 하동군 화개면에서 살고 있는 하동 토박이다.

명인이 준비해 준 차가 달았다.

“우리 조상들은 차를 마시고 나면 입안에 감도는 단맛을 회미(回味)라고 했어요. 요샛말로 하면 뒷맛이죠. 천하의 진미도 배부르면 맛이 있겠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배부를 때 가장 맛있는 건 차밖에 없다’, ‘차는 식후일미(食後一味)다’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하동은 차 재배지로서는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하동 녹차가 ‘왕의 차’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가 화개동에서 재배되었기 때문이고, 성분과 맛, 품질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이겠다. 하동에서 천년을 이어온 녹차가 2017년 11월에는 ‘하동 전통차농업’으로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건물이야기를 꺼내자 “신청도 안했는데 경상남도에서 건축대상 금상을 주셨다”며 SNS 상에 유명해져서 방문객들도 많이 찾고, 화개의 차 명소가 생겼다는 평을 듣는다고 했다.

대형 백화점에 수십 개의 직영점과 이마트 전점에 쌍계명차가 입점했다. 우전차로 명인을 받았지만 백화점에 입점을 하려니 가짓수가 많아져야 해서 다양한 대용차를 개발, 생산하게 됐다. 우엉차, 생강차 등 차 원료를 100톤씩 수매한다니 시골마을 제다(製茶)에서 기업으로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 배경에는 가업을 잇는 2세들의 활약이 있었다. 한의사인 큰 아들이 레시피를 개발하고, 홍대 미대를 나온 디자이너 아들이 용기나 포장디자인에 힘쓰고 있다. ‘쌍계명차 디자인실이 막강하다’며 타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앞섰다고 자부한다.

김 명인은 ‘차 문화 연구가’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집안이 대대로 한의를 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제가 한의사는 못됐지만 ‘차 장사로 남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으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다도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학술발표회도 초대받고 차에 대한 고전도 많이 읽고 하다 보니, 저보고 ‘차 장사’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는 <화개동의 향기>, <하동 야생차> 등 차와 관련한 1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고, 앞으로도 지리산과 화개 문화, 차에 대한 10권의 책을 낼 계획을 밝혔다. “일찌감치 68년도에 차 모임 녹산 차회(茶會)를 만들었어요. 강의집을 모아서 책을 냈었고 그것이 계기가 돼서 책을 계속 내게 됐습니다.”

명인은 제다(製茶)와 경영은 2세와 직원들에게 맡기고 강의와 저술에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현재는 하동군 공무원 대상 차 문화 강의 외에 정기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하동 화개문화연구원이라는 사단법인을 준비 중에 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로 30 / 055-883-2440

 

 

 

대한제국을 담다 Cafe 양탕국

 

글 사진 · 박경이 편집장  

 

 

‘하동=녹차’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히 녹차의 본고장에 와서 커피로 둥지를 튼 사람이 있다. 양탕국커피문화마을 홍경일 대표! 2005년부터 커피에 관심을 가지고 타지에서 카페를 운영하다 하동 구재봉 자락 삼화실에서 적량면으로 넘어가는 산길 중간에 2009년부터 터를 잡았다.

양탕국커피문화마을(이하 양탕국마을) 입구에는 커피농업문화연구원, 양탕국카페문화관, 양탕국커피문화대학원대학교, 양탕국아저씨의 작은 커피집, GARDEN CH 등 나무 현판들을 모아 붙였다. ‘양탕국커피문화대학원대학교’ 옆에는 ‘COMMING SOON' 이 붙어 있는데 미래에 개설할 것을 선언적인 의미로 붙여놓은 것이란 설명을 들었다. 산을 깎아 만든 터에 카페, 로스팅체험장, 도자체험장, 교육관, 생활관, 음악당, 공드림재 레스토랑 등이 있고 커피묘목을 재배하는 온실과 세 가구가 거주하는 살림집까지 들어서있다. 커피문화마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규모이다.

첫눈에 양탕국커피마을의 특징은 멋들어진 한옥들과 클래식한 내부, 커피잔이 아닌 막사발, 생소한 커피와인 등이었다. 막사발에 따라주는 커피와 처음 맛보는 커피와인이 생소했지만 맛있었다.

홍 대표에게 ‘Cafe 양탕국. 대한제국을 담다’에 담긴 역사와 철학을 들었다.

차의 고장인 하동이지만 오늘날 차 문화에서 커피를 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면 커피도 한축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Cafe 양탕국. 대한제국을 담다’라는 현판이 카페 중앙에 붙어 있는데, 양탕국과 대한제국에 담긴 사연은 무엇일까?  

“대한제국 태동기에 인천항을 통해 처음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왔습니다. 아관파천 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접하면서 궁중에서 즐겨 마시기 시작했어요. 양탕국은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란 뜻이고 빛깔과 맛이 탕약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어요. 그리고 당시 저잣거리 서민들은 커피를 막사발에 부어 마셨습니다.”

홍 대표는 양탕국식 추출법, 양탕국과 막사발, 한국적인 건축물 등 커피문화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현재 5,000명 정도가 양탕국식 바리스타 교육을 수료했는데 복잡하고 어려운 일본식, 서양식을 양탕국식 교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커피추출의 메커니즘을 나름대로 연구해 양탕국식 5대 추출법으로 개발하거나 개량했다. 우림법, 절임법, 달임법, 감응법, 침투법으로 이름 붙였다. 매우 쉽고 기품 있는 맛을 내고 있다고 자평한다. 커피볶기와 내리기는 물론 전통 찻사발빚기, 바리스타체험, 생태체험 등을 즐길 수 있으며 교육생에 한해 숙박을 할 수 있다. 카페 뒷동산에는 커피묘목을 기르는 온실이 있는데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우수 관광농원’에 선정됐다고 한다.

“시도별로 문화원과 기숙학교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경영자를 만드는 것이고, 궁극적인 경영은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것입니다.”  긴 시간에 걸쳐 들은 이야기를 더 요약하면 막사발로 상징되는 우리의 투박함을 꿋꿋하게 지키려 하며, 그 투박함은 다른 말로 단순함이고 단순함은 곧 생명을 의미한단다. 길고 긴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고 이렇게 간단하게 줄일 내용은 아니나 지면의 한계로 다 옮기지 못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철학으로 양탕국식 커피문화를 거꾸로 해외에 수출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건축물과 막사발까지 같이 포함하는 것이다. 마닐라 로빈슨몰에서 해외시연회도 하고 덕수궁 시연회 등 여러 행사에 초청받고 있다.

양탕국마을 높은 곳에서는 삼화실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소문이 나서 서울을 비롯 전국에서 단체로 양탕국마을로 투어를 많이 온단다. 하루 방문객이 200~500명 정도이고 연간 10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니 양탕국커피 해외1호점이 세워질 날이 그리 멀지않은 듯하다. 하지만 홍경일 대표의 말이 뜻밖이었다. “수익의 90%는 기부합니다.” 홍 대표는 실은 목사로서 양탕국마을 제일 위에 교회를 건축 중이다.      

경남 하동군 적량면 공드림재길 155 / 055-883-9240

 www.양탕국.org. cafe.daum.net/ytg9470

 

 

 

악양 대봉감으로 와인을 만드는 SM Jeong 와이너리

 

글 사진 · 박경이 편집장  

 

 

하동을 대표하는 특산물 세 가지는 녹차, 매실, 대봉감이다. 충분한 일조량으로 생산된 악양 대봉감은 맛과 색깔, 모양이 아름다워 임금님 진상품으로 유명한데 악양에 대봉감으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Winery)가 생겼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에서 평사리 들판 맞은편을 보면 흰 벽에 주황 지붕의 멋진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SM Jeong 와이너리다. 산비탈에 위치한 와이너리 어느 곳에서나 평사리 들판이 눈앞에 펼쳐지며 가슴이 뻥 뚫리고 절로 힐링이 되는 광경이다. 가을에 들판이 누렇게 익으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포도가 아니라 감으로 와인을 만드는 정성모 대표는 2013년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와인과 와이너리 문화를 접했다. 또 캘리포니아의 곡창지대를 보며 농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와이프가 중학교 선생이거든요. 와이프나 저나 모두 월급쟁이로 정년까지 평범하게 가야하는 줄 알고 고지식하고 보수적으로 살아왔는데요. 미국에서 3년간 생활하며 다르게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막연하게 나이 들면 고향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고향 옆인 악양에 1,500평 땅을 사놓았는데 귀국해서 사표를 내고 혼자서 악양에 내려왔다. 2016년에 교사인 아내와 고등학생 아들은 일산에 두고 정 대표 혼자서 컨테이너에 살며 7개월간을 건물 짓는다고 매일 매달려 있었다. 집을 짓는데 온 천지가 감밭이었다. 포도 와인을 생각했다가 감 와인에 도전했고 사는 집이 사업체가 돼버렸다.

“혼자서 감으로 와인이라고 만들어서 면장님을 찾아갔거든요. 근데 면장님이 무릎을 딱 치면서 악양에 감이 엄청 많이 열리지만 가격도 너무 낮고 판로도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딱 좋은 아이디어라고 좋아해 주셨어요.”

2013년쯤 15kg에 6~7만 원 정도 하던 감이 요즘은 2만 원대로 폭락했다. 감 와인으로 만들면 최소한 열배의 부가가치가 된다고 한다. 감식초나 말랭이를 만들어도 수요가 적어서 감이 열려도 어르신들이 딸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주민들이 생산하는 대봉감이나 재첩 등을 정 대표가 과거 근무하던 삼성생명이나 지인들을 통해 엄청나게 팔아주었다. 와이너리에 온 사람들도 많이들 사간다. 정 대표가 지나가니 어르신들이 내 식구 반기듯 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 대표는 슬로시티주민협의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처음엔 와인보다는 농촌 관광 쪽에 포커스를 맞췄는데 면장님도, 군청에서도 너무 반응이 좋은 거예요. 음주 문화도 바뀌고 있고 와인에 대한 수요도 있을 것 같아서 가볍게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한 것으로 생각을 하시더라구요(웃음).”

손님들도 맛 여하를 떠나서 정 대표가 만든 와인만 찾고 돌아갈 때 또 사가려 한단다. 아직은  본인 와인에 대해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시음과 테스트만 하고 있지만 올 상반기에는 제품을 출시할 생각이다. 상표디자인, 브랜드 등록 등 제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군에서도 많이 도와준다고 한다.

이곳 와이너리는 아직 충분한 양의 와인을 생산하지 못하는 대신 힐링숙박형 체험와이너리를 표방하고 있다. 1층은 와인만들기 체험실과 단체 워크숍, 모임을 할 수 있는 식당공간이고 2층은 펜션이다. 4인실이 셋, 30명 단체실이 하나 있다.

정 대표는 단체 손님이 오면 단체의 성격이나 요구에 맞춰 프로그램을 구성해 주고 직접 가이드하고 요리까지도 한다. 작년에 700명 정도가 다녀갔는데 한 사람당 평균적으로 10만원을 쓰고 가는 셈이었다고. 하동 여행을 기획하는 앰배서더나 일인 여행사인 셈이라 군청 문화관광실하고도 상부상조하고 있다.

“와이너리라고 해서 와인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주변 여행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또 맛있는 와인과 식사도 같이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좀 생소하지만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일반화된 문화이기도 하지요.”

대한민국 전체주류시장에서 와인점유율이 3%뿐인데 그나마 국산와인은 그중에서도 아주 미미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고향에 자리 잡았으니 한번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고. 전국와인생산자협회에도 가입했다. 국내에 400~500군데가 와인을 생산하고 있고 70여 업체가 회원 가입되어 있다. 2년간 와인대학에 가서 공부도 하고, 협회에서 정보도 얻고, 하동군에서는 와인생산, 제조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받고 있다. 고3 아들은 농대에 진학해 가업을 이을 예정이다.

“제 대에 와인 맛을 못 내면 대를 이어서라도 와인 맛을 내야겠지요. 아들이 제 사업을 부담 없이 물려받을 수 있게 기반을 만들어 주려고 해요. 백년 후가 될지 2백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정씨 집안의 오백년을 이어갈 와인 양조장을 꿈꾸고 있습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소축길 105 / 055-883-5673, 010-3324-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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