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 People

 

제주특별자치도산악연맹 산악안전대 오경아 대장

제주도산악안전대가 가장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글 사진 · 박경이 편집장

 

제주특별자치도산악연맹 산악안전대(이하 산악안전대)는 1961년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산악구조대다. 그리고 2012년에 한국 산악구조대 처음으로 여성 대장을 탄생시켰다. 바로 산악계의 알파걸, 오경아 대장이다. 그는 지금 6년차 대장으로 3번째 연임 중이다.

남자에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며 높은 자신감과 성취욕구를 가진 여성을 칭하는 알파걸. 긍정적 자아관, 높은 자부심, 리더십, 독립심, 도전정신, 합리적 사고, 강한 성취동기,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능력, 자기주장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점 등이 알파걸들의 특징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페미니스트하고 다르게 남성들을 적대시하거나 남녀차별 문제에 각을 세우지 않는다. 오 대장에게 이 수식어가 ‘매우 적당함’을 증명해야 할 듯한 동지애를 가지고 그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오 대장은 88년도에 서귀포백록산악회에 입회해 그해 대통령기등반대회 여자부 1등을 했다. 그 후 스포츠클라이밍대회 1등을 하기도 하고, 벽등반에 미쳐 육지에 등반다니느라 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스포츠클라이밍 심판과 산악구조강사 자격 취득, 데날리 등정, 요세미테, 키르기스스탄 악사이, 마칼루 등반까지 ‘산악인’ 이라는 호칭에 어디하나 부족함 없이 전천후 클라이머로 살아왔다. 90년도부터 산악안전대에 들어와 열심히 활동하던 그도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기를 맞아 딜레마에 처했다. 그렇지만 등반은 못할지언정 모유수유하면서도, 아기를 업고서라도 총무직을 수행했고 산악안전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총무 10년을 하고 2012년에 대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산악안전대의 대장 선출방식은 대원들이 적어낸 후보 중에서, 투표를 통해 다득점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당시 4명이 1차에 9:7:3:1로 표를 얻었다. 상위 2명을 재투표해 오 대장이 거의 대부분의 표를 받았다. ‘대장을 하겠다 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하기 싫다 해서 안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닌 것 같다’며 대장을 수락했다.

격의 없이 질문했다. 왜 많은 표를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오래 다닌 거? 88년도부터 안전대 영입제의가 있었어요. 그런데 동계 2년은 지나야 안전대에 들어올 수 있는 룰이 있었기 때문에 2년 지나서 들어왔어요. 그리고 총무 10년 한 것도 잘 봐주셨을 것 같고. 또 ‘제 목소리가 큰 거?(하하하)’, 불의와 타협하지 못하는 그런 점을 잘 봐주지 않았나 생각돼요.” 자신감이나 전문성이 뒷받침돼야 목소리가 클 수 있는 법이다.

“대장 되고나서 하고 싶었던 일이 3가지였습니다. 책을 만들자, 돈을 만들자, 젊은 대원들을 데려오자. 그중 맨 먼저 했던 일은 720페이지의 거대한 책을 낸 일이에요.”

산악안전대 40주년 때 사진전을 하고 판매수익금 200만 원이 만들어졌다. 그것으로 책을 내자고 했지만 50주년을 건너뛰고, 오 대장 취임 후인 2016년에 55주년 기념 <산악안전대 SINCE 1961>을 내게 됐다. 2백만 원이 종자돈이었는데 오천만원이 넘게 들었다. 도에서 3천만 원을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십시일반 모았다.

두 번째는 재정자립이다. 국내에서 제일 오래 된 구조대지만 서울이나 타 지역에 비해 외부 지원은 미미했다. “초기에는 밥 먹을 때마다, 산에 갈 때마다 돈 걷고 그랬어요.” 스스로 표현대로 ‘대장과 대원들이 앵벌이’한 결과 작년 한라산국립공원 예산에서 받은 1,000만원을 포함해 지속적인 재원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원 연회비 10만원 외에는 특별히 걷지 않게 됐다. “대한산악구조협회가 활성화 되면서 우리가 훈련 차 육지갈 일이 많거든요. 한 번도 돈을 안 걷었어요. 1년에 한 번씩 구조대 단체복도 나갑니다.”

대장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고 한다. “산에만 열심히 다니면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제 성향이 아니었는데 돈을 만들어내는 그런 것들이 홍보가 돼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인터뷰도 응하는 것이구요” 재정을 포함해 여러 사업들을 만들려면 정치력이 필요하더라는 것이다. 두 가지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젊은 대원 모집이라는 목표는 조금 브레이크가 걸렸다 “신규대원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40대 대원들인 점이 아쉽죠. 제주에 바위 하는 젊은이들은 많은데 토털 클라이밍을 하는 친구들이 적어요.” 중년이상 층에서 안전대에 지원자가 많은데 평균연령이 너무 높아지니까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는 고충이 있다.

“여자 대장, 여자 대장 이런 소리를 듣기 싫었어요. 여자라고 특별대우 해준 적도 없으니까.”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한 여성 앞에는 ‘여성’이라는 역차별적인 수식어 하나가 더 붙는다. 특별대우를 바라지는 않아도 구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여성이기에 힘든 점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특별히 어려운 건 없는데 체력이 딸려요.”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게 겨루는 스포츠가 거의 없는 것을 봐도 체육, 생리학적으로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다 험한 산악지형을 타야 하는 산악구조대에서 남자들 체력과 동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팀에서 제 나이가 중간쯤이라 선배도 많고 또래, 후배들도 많은데 여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원들이 잘 따라주는 편이에요, 구조대가 분열이 있으면 안 되죠”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구조대 중에서 제주도가 가장 잘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여자 대장을 잘 뒷받침해준 대원들의 공도 크겠다. 그리고 오 대장이 대장직을 잘 수행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다.

오 대장은 마운틴아일랜드라는 아웃도어매장을 운영한다. 아웃도어업계가 다 침체기인데다 설상가상 6년째 자리 잡은 매장 건물이 중국인 손에 넘어가 임대료를 곱절 넘게 올려서 타격이 크다고 한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랑 시간 보낼 수 있고 산에 다닐 수 있는 정도에 만족한다’지만 ‘요즘 같으면 집은 하나 가지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직원들도 이제 그만 대장직을 내려놓고 매장에 신경 좀 써달라고 한단다.

다행히 두 아이들은 엄마 다리를 붙잡고 매달리지 않는다. 대장을 맡았을 때 7살, 5살 두 아이는 엄마손이 한참 필요한 나이라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동서고금을 막론 산악인 엄마, 일하는 엄마의 숙명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내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대장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만두지 말고 계속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아이들이 물을 아주 좋아해서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 목욕탕 가는 길에 출동이 떨어져서 차를 돌려야만했다. 실종된 할아버지 한 분을 찾으러 가야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징징대지도 않고 “엄마 화이팅! 그 할아버지 꼭 찾아와”하며 의젓하게 보내 주더란다. 아이들한테 늘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으로 바쁜 중에도 ‘가을에 자전거일주’, ‘겨울에 스키장’ 등 일 년에 두 번 약속은 지키고 있다.

또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사람들이 많지만 특별히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장으로도 근무했던 김대준씨에게 감사를 표한다. “제주에서 전국구조대합동훈련을 할 때 희미해진 옛길을 다시 정비하느라 두 달간 매주말 산을 오르락내리락했어요. 제가 맨날 밥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매번 각출하기도 그랬는데 많이 도와주셨어요.” 김대준씨는 오 대장이 언제든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란다.

올해 12월에 임기를 마칠 생각인 오 대장은 차기 대장감의 조건으로 ‘구조대 생활 20년 이상’을 생각하는데, 그래야 원로 안흥찬씨를 비롯한 선배들하고도 연결이 되겠다는 판단에서다. 제주도를 넘어 한국 산악계에 그의 경험과 지혜들이 공유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