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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하는 아빠와 아들딸

“어? 박지빈이구나!”

종주하다 알아보는 팬들이 많아요

 

글 · 박경이 편집장 사진 · 박경이 편집장, 박정인

  

 

아빠 박정인씨로부터 취재요청을 받았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했고, 다시 한 번 6학년 딸과 종주를 시작해 20개 구간 이상을 마쳤다는 사연이었다. ‘대간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백두대간과 정맥 종주가 우리 등산문화로 자리 잡았으니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6학년 딸이라는 말에 주저 없이 방문해 달라 즉답했다. 그 딸을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도 백두대간 종주를 최초로 기획, 실행해서 이 땅에 백두대간 종주붐이 일게 하는데 단초를 제공했던 1988년 한국대학산악연맹 백두대간종주팀의 일원으로서 한 구간을 걸었었다. 그 뒤로 서너 번 정도 일부 구간을 걸어본 적은 있으나 완주 도전은 아직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며칠 뒤 마감으로 바쁜 저녁시간 본지 사무실에 세 사람이 방문했다. 부천에서 가산동까지 멀지 않은 길이나 막히는 길 위에서 내비게이션마저 말썽을 부려 긴 시간을 차 안에 있었던지 늘어진 어깨의 아이들을 보니 미안하다. “마감기간 핑계로 오라고 했지만 ‘리틀 산악인’들에게 산악잡지사 견학도 추억이 될까 싶은 배려도 있었단다. 얘들아!”    

아빠 박정인씨(50세)는 기계제조업체를 운영한다. 현탁군은 3월이면 부천 부흥중학교 2학년, 지빈양은 같은 중학교 1학년에 진학한다.

어떤 계기로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됐는지 아버지에게 먼저 물었다.

“사업을 하는데 안 좋은 일이 많았어요. 침수피해와 화재 등…. 갈 데가 없었어요. 부천에 있는 고래산에 올라갔는데 어느 산악회 리본이 매달려 있었어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인데 부천의 산악회에 가입을 하고 아들과 같이 따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워킹산행한지는 29년 됐지만 아들과 같이 산악회 버스를 타면서 여러 번 쫓겨났다고 한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산악회 버스 안의 문화가 초등학생에게 적절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렷다.

“그래서 뜻이 맞는 지인들과 백두대간 종주를 하기로 했어요. 1,3,5주 토요일 밤 9시 부천에서 출발해서 무박 산행하는 안내산악회를 통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2016년 7월 31일에 끝이 났습니다. 37구간 37주, 무박으로 17개월 걸렸어요.” 현탁군이 팀에서 막내이고, 어른 중에서는 당시 48세인 박정인씨가 막내였다고. “현탁이가 5구간을 할 때까지는 후미에 쳐졌지만 나머지 구간은 거의 65% 안에 들어왔어요.”

아빠를 따라 나섰던 현탁이의 진심은 어땠을까?

“왜 한밤에 가야 하나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낮에 가는 줄 알았는데 버스 안에서 잠깐 자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걷는 거예요. 제 배낭 멜 힘도 없어서 아빠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나중에 힘이 생기고서는 스스로 하게 됐어요.” 그렇게 매주 20km정도 산행을 하고 다시 장시간 버스를 타야하니 피곤했겠다는 기자의 유도 질문에 “맨 처음에는 솔직히 포기하고 싶었어요. 월요일에 학교 가서 엄청 피곤했는데, 월요일에 체육이 안 들어서 너무 다행이었어요”라며 웃는 현탁군은 어린 나이임에도 최강무기인 긍정마인드를 장착한 듯하다.

그것 외에도 현탁이를 산으로 이끈 다른 동기가 더 있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것을 안 담임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고. “아빠가 산행 사진을 USB에 담아주셔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는데 너무 부러워했고, 교장선생님까지도 격려해 주셨어요. 제 능력을 너무나 인정해 주는 기가(기술·가정) 선생님도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지빈이가 곧 저희 학교에 입학한다는 것도 선생님들이 다 알고 계세요.” 미루어 짐작하건데 교장선생님이나 기가 선생님이나 등산도 좋아하실 테고 백두대간 종주 하는 현탁군을 아마도 부러워하는 마음이 내심 있지 않을까?  

지빈양에게 말을 걸었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왼쪽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지빈이가 약해 보여서 혹시나 물었다. “그전에 몸이 약했어요. 4명이 달리기를 하면 항상 3등이나 4등을 했는데 지금은 체력도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감사해요.” 박정인씨는 지빈양을 위해서 미리 8개월간 100대 명산 위주로 당일산행을 하면서 체력훈련을 시켰고, 현탁이와의 완주를 마친 17년 3월 11일부터 종주를 시작했다. 2,4주 금요일 무박으로 34구간 중 20구간을 마친 상태.

다만 지난 1월 6일 태백산 구간을 할 때 깜빡 잊고 귀마개를 놓고 와서 귀에 동상이 걸렸다고 했다. 왼쪽 귀에 물집이 잡혔다. “새벽에 출발했는데 폭설이 내린 후라 러셀이 안 돼 있어 힘들었어요. 애들이 자기 스스로 장비를 챙기도록 하는데 이번에 하필 귀마개를 빠뜨리고 갔더라구요.” 종주를 하면서 다른 일행들도 절대 못 도와주게 하니 “친부맞냐”는 소리도 농담으로 듣는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잔소리 하는 것 보다는 귀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고생을 했으니 스스로 깨닫기는 했겠다. 지빈이도 지난 태백산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다음번에는 함백산 구간을 간다는데 마치는 날까지 이젠 그런 고생은 없기를….

혹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없었는지 묻자 “지금까지 갔던 게 아까웠어요. 물거품이 될까봐. 지금 반 넘었거든요.”라며 떨리는 작은 목소리에 진심이 느껴졌다. 혹시나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종주를 시작했을까봐 물었더니 “오빠만 유명해지는 것 같아서 아빠한테 졸랐어요. 인터넷에 ‘백두대간 박현탁’을 검색해 보면 뜨니까요”라고 말하는데 사실 아빠와 오빠의 공작(?)도 있었다. 계획적으로 약을 올렸더니 지빈이가 한 달 정도 후에 결심을 했다고 한다. 종주를 하다보면 SNS를 통해 알려진 지빈이를 알아보고 사탕도 주고 사진찍자고 하는 팬도 생겼다고 한다.

장래 희망이 요리사인 지빈이. 계란말이도 할 줄 안다 해서 감탄을 했더니 “오믈렛, 계란말이는 기본이잖아요”라고 시크하게 말하는 지빈이 앞에서 괜히 필자가 머쓱해져서 한마디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완주하게 되면 꼭 다시 연락해라 지빈아.” <박지빈양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지빈양이 쓴 산행기를 316P에 싣습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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