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용현 박사 칼럼 _ 산 위의 철학자 ②

 

From Here to Eternity

영원을 향한 도전

글 · 공용현(철학박사, 전 한국등산학교 총동문회장)

  

프리솔로 클라이밍(free solo climbing, 自由單獨登攀)

1976년 미국의 젊은 등반가 존 바카(John Bachar)가 요세미티의 거대한 암벽을 확보줄 없이 맨몸으로 오른 이후, 이 전례 없이 놀라운 등반 방식은 종종 심각한 논쟁들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의 핵심은 소위 프리솔로(free soloing), 즉 인공 보조물이나 확보 없이 혼자서 거칠고 높은 암벽을 오르는 행위를 정당한 등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바카를 위시한 요세미티의 솔로 클라이머들이 이루어 낸 이 새롭고도 파격적인 행위는 등반의 본질을 재고하게 만든 몇몇 새로운 등반 방식, 예를 들어 프리 클라이밍(free climbing)이나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암벽에서 구현한 행위는 등반 규칙이나 성과에 대한 우열의 평가를 넘어서서, 단 한 번의 실수에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되는 극단적인 시도였기 때문이다.

 

도발적인 몸짓으로 죽음의 심연을 가로지르다

대다수의 등산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위가 스포츠 정신에 명백히 위배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스포츠란 그 형식과 내용이 아무리 다양하게 변할지라도 그 목적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건전하고 강인하게 함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 그 자체를 담보로 하는 등반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광기에 찬 경솔한 몸부림 이상의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프리솔로를 정통적인 등반의 장르에 넣을 수 없다고 냉소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하는 이러한 무절제 등반 행태는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해버린다.

사실 수직의 암벽을 생명을 보호할 아무런 장비 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오르내리는 그들의 모습은 자기과시의 충동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은 손끝과 발끝의 매 동작마다 인생의 전부를 걸고 한순간의 실수도 허용될 수 없는 긴장감 속에서 스텝을 옮긴다. 어찌 보면 그들은 마치 죽음의 심연을 가로지르며 온갖 장비로 무장한 통상의 등반가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암벽등반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그들의 행위는 혁명적이다. 프리솔로는 하드프리(hard free)나 디렛티시마(direttissima)를 통하여 진지하게 등반 수준의 향상을 모색해왔던 암벽등반의 기존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그들의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몸짓에는 마력적인 냄새가 풍긴다. 어떤 면에서는 처음으로 바위를 접하는 젊은이에게 단계적 훈련보다는 만용과 요행수가 판을 치는 속된 영웅주의를 부추기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분명히 암벽등반은 곡예사의 줄타기도 아니고 노름판의 도박도 아니다. 어떠한 등반이라도 삶의 양식(form of life)에 지나지 않는 것. 그렇다면 삶의 지평을 확장하고 삶의 질을 고양(高揚)한다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삶 그 자체를 송두리째 위협하거나 말살시키는 등반행위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인가.

아니다. 요세미티의 솔로 클라이머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적인 평가의 대부분은 등반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많은 이들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등반의 지향점과 궁극적인 목적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왜 이러한 혁신적인 등반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를 오해하고 있다. 그들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전통에 대한 항거나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생사의 결정을 믿는 숙명론자도 아니고 생명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치기(稚氣)의 발로도 아니다.

그들의 등반관과 등반방식을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상태의 노출과 같은 피상적인 관찰보다는 프리솔로라는 새로운 형태의 등반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 내면적 동기와, 암벽등반을 통하여 인간이 쟁취하게 될 최고의 경지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반성은 결과적으로 암벽등반의 정의(定義)를 전체적으로 재정립하고, 등반을 통해서 창출하게 될 산악문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프리솔로는 등산 진화의 산물

인간이 순수한 목적으로 암벽등반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높고 험준한 바위를 오르는 일을 그대로 암벽등반이라고 부른다면 그 역사는 아마도 인간의 역사만큼 장구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원시인들이 산양을 잡거나 독수리의 알을 찾기 위해서 암벽을 오르는 일을 암벽등반이라고 부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산꼭대기에 있는 적의 성채를 공격하기 위해서 암벽을 오르거나, 신에게 봉헌물을 바치기 위해서 인간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암릉을 타고 정상을 오르는 것을 암벽등반이라고 간주할 수 없는 것이다.

암벽등반은 먹이를 찾는 것과 같은 물질적 필요성이나 기도의 효험과 같은 정신적 필요성 때문에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순히 암벽을 올랐다는 사실 자체나 유용성의 이유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것이라 해도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암벽등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암벽등반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알프스의 황금시대나 히말라야의 거봉 등정 시대를 거쳐오면서 등반사의 이정표가 될만한 영웅적인 등반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괄목할 만한 암벽등반이 시도되었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암벽등반의 형태는 찾기 어렵다.

그 시대의 등반이 더 높고 험한 곳에 도전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 등반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정상 정복에 있었지 등정의 과정에 간혹 노출되는 암벽 코스를 독자적이고 핵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험준한 암벽은 성공을 가로막는 심술궂고 혹독한 방해자였고 가능한 한 피해 가거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뚫고 지나가야 할 장벽에 불과했다. 그들은 동원 가능한 모든 최신 장비의 운반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초등을 위해 수십 개의 사다리와 수백 개의 볼트를 사용하는 일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암벽과 등반가의 직접적인 만남

시대는 변했다. 정복할 봉우리는 하나둘 사라지고 등반가들은 이제 정복한 산정의 높이보다는 정상을 오르는 과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정당한 수단으로 험한 루트를 오를 것”을 강조했던 머메리(Mummery)의 고귀한 정신이 되살아나고, “스스로가 선택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무상의 행위”를 등반의 극치로 보았던 테레이(Terray)의 순수한 태도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진취적인 등반관에 자극받아 이른바 벽등반의 시대가 열렸다. 이와 함께 거봉 등정의 영광에 가려 그동안 작은 등반 또는 등반의 일부분으로 여겨졌던 암벽등반도 독립된 등반의 장르로 발전하고 이윽고 등반의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실로 암벽등반의 역사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암벽의 높이나 암괴의 거대함이 문제되지 않는다. 하나의 암벽에도 난이도에 따라 수십 개의 코스가 생겨나고, 어떤 장비를 어느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등반의 질을 평가하게 되었다. 등반가의 육체적 능력을 측정하는 까다로운 규칙이 제정되기도 하고 거대한 산의 정복 과정에서는 거의 제기된 적이 없었던 등반윤리가 등산가의 정신적 건전성을 저울질하게 되었다. 등반가는 암벽에 매달림으로 해서 비로소 자연 앞에 마주 선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인간은 바위 위에서 얼마만큼 강해질 수 있는가. YDS 5.15 그레이드의 프리 클라이밍 코스가 인간 능력의 무엇을 측정하기 위해서 새롭게 개척되고 있는가. 몸을 의탁할 한 조각의 쇠붙이조차 없다면 그대로 추락해버릴 오버행의 사면에 매달려서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등반가의 인간관은 과연 무엇인가. 왜 등반가는 한 조각의 빵조차 제공해주지 못하는 피곤하고 비생산적인 사업에 자신의 전부를 맡기는가.

암벽등반의 시대를 통하여 제기된 이러한 의문과 반성은 더욱 새롭고 충실한 알피니즘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탁월한 암벽등반가들은 이 모험적인 행위가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겨루는 스포츠 이상의 것이며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재확인시켜주는 고도로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필연적 귀결로 그들은 도식적인 등반방식을 벗어나 단지 물리적인 높이만이 아닌 암벽의 새로운 높이를 지향하게 되었다.

프리 클라이밍의 신봉자들은 인공 보조물을 사용한 암벽등반을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고 오직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오를 수 있는 암벽을 그들의 과제로 삼았다. 클린 클라이밍을 추구하는 더욱 경건하고 진보된 등반가들은 암벽이 파괴와 훼손의 대상이 아니라 적응과 조화를 통하여 인간 능력을 배양시켜야 되는 장소,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었다.

‘암벽과의 직접적 만남’을 선언한 등반가의 눈에는 피톤이나 볼트를 때려 박으며 포악하게 암벽을 오르는 행위는 고층 빌딩을 엘리베이터로 오른 후 옥상에서 환호성을 지르거나, 결코 항복할 의사가 없는 적을 흉기로 위협해 패배를 강요하는 행위와 다름없이 비쳤을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 시각은 등반의 수준을 한층 높이고 과거보다는 더욱 강하고 세련된 일급의 등반가들을 배출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높이’, ‘직접성’, ‘순수성’의 의미, 그리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인간에게 부과하게 되는 엄청난 부담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이 높이의 최고점이 무엇과 맞닿아 있는가. 인간이 직접적으로 암벽과 마주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 순수한 만남을 통해 인간이 획득하게 될 궁극적인 목표가 과연 무엇인가.

 

순수와 높이의 극단을 향해

스스로 ‘강한 자(hardmen)’가 되기를 갈망했던 일류 클라이머들은 지금까지 암벽등반의 역사가 인간 위주의 불공정한 룰에 의해서 영위되어 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기계 부스러기를 동원해야만 겨우 달성될 수 있는 인공등반은 물론 프리 클라이밍에서조차 등반가와 암벽은 일대일의 공정한 룰에서 마주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확보용 보조물이나 줄을 등반행위가 아니라 오직 추락방지용으로만 사용한다 해도 그런 것들이 때때로 인간의 능력을 과장시키고 위험과 공포에 따르는 정신적 난관을 손쉽게 해소시켜 버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등반가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육체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정신적 어려움까지 포함된 것이라면 생명을 보장해주는 확보용 줄은 극복해야 할 대상을 육체적인 것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암벽등반을 통해서 자신의 강함을 확인하고자 했던 등반가에게 부담스러운 것이 되었다. 이리하여 그들 중 일부는 확보용 줄을 버리고 홀로 암벽에 마주 서게 되었다. 이것은 그동안 숱하게 논의되었던 등반의 순수성과 솔직성 그리고 직접성의 문제에 쐐기를 박는 행위였다.

완전한 등반을 추구해왔던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갈망은 인간을 아무런 매개자 없이 암벽과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죽음과 직접적으로 마주치게 했다. 이 행위는 위험도에 있어서 극단이다. 그러나 암벽등반에 있어 최고의 진화적 형태일지도 모를 이 극단적 행위는 순수성과 직접성 그리고 높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극단인 것이다.

 

영원으로 가는 길

요세미티의 솔로 클라이머들은 영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모서리 끝에 손가락을 걸고 절박한 위험 속에서 마음과 감각이 얼마나 날카롭게 다듬어질 수 있는지를 경험한다. 생명을 보호할 줄조차 없는 삭막한 바위 모서리에서 그들은 육체와 정신이 혼합된 인간의 진정한 능력을 다시금 깨닫고 말로써 표현할 길 없는 생명의 솟구치는 고동소리를 듣는다.

프리솔로는 죽음의 연습이 아니다. 존 바카, 제프 아케이(Jeff Achey), 론 카우크(Ron Kauk)가 말했듯이 그것은 ‘진지한 죽음’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가까이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삶도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삶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죽음의 심연 위를 건너가는 것 ㅡ 이것은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가 말한 ‘공포와 전율’이자, 인간이 쟁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프리솔로 클라이머에게 있어서 죽음과 삶의 세계는 다른 세계가 아니다. 시간은 흐름을 멈추고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공간 속에서 그들은 영원으로 가는 길목을 조망한다. 혹시 신(神)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를 저편 세계로 발을 옮기며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한 새로운 높이가 불멸성에 맞닿아 있음을 절감한다. 그들은 그 순간 추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다 해도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한쪽 발을 디디고 있는 영원 속으로 사라져 갈 뿐이다.

프리솔로의 정당성에 대한 결정적인 평가는 아직은 시기상조다. 이것이 등반사조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인지 아니면 등반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수준인지 단정하기 쉽지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그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적어도 프리솔로를 수행할 수 있는 등반가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등반성의 진수(眞髓)란 체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세미티의 프리솔로 클라이머들이 도전하는 암벽의 등급은 아직 프리 클라이밍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수준은 다른 방식으로 시도되는 어떠한 등반과도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나게 높은 수준이다. 나는 그들을 제외하고 진실로 강한 자라고 부를 수 있는 암벽등반가가 따로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후기>

이 글 첫머리에 나온 전설적인 프리솔로 등반가 존 바카는 2009년 7월, 캘리포니아에 있는 매머드 호숫가의 다이크 월(Dike Wall)에서 프리솔로로 등반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당년 52세였다. 댄 오스맨, 딘 포터... 많은 자유단독등반가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명복을 빈다. 2014년 제22회 황금피켈상의 수상자에 프리솔로로 안나푸르나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한 스위스의 율리 스텍(Ueli Steck)이 선정되었다. 그는 자신의 등반성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이렇게 간결하게 답했다. “당신들이 평가할 등반이 아니다.” 그 역시 2017년 4월, 히말라야의 눕체에서 등반 중 추락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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