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식의 산에서 듣다

 

충남 김제군의 천년고찰 신안사 주지 맥산스님

자연을 살아있는 존재로 보는 눈

 

· 박원식   사진 · 주민욱 기자

 

 

 

불가(佛家)의 소식에 따르면 사람에겐 네 가지 고독이 있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괴로움도 홀로 받고 윤회의 길도 홀로 간다. 고독천지다. 삶이 어지러울 때마다 마음을 다독여 자신을 부양하지만, 고독은 일쑤 공기처럼 미만해있다. 삶의 막판엔 마침내 도살장으로 끌려간 소처럼 죽음 앞에 홀로 설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의 시나리오. 그렇다고 부질없이 허무감에 사로잡힐 일이 아니다. 그게 원래 그러려니 하고, 가급적 밝은 쪽으로 생각을 돌리며 살아가는 게 상책이지 않겠는가. 그게 영 여의치 않을 때면, 마음이라는 놈이 갈피없이 흔들릴 때면 나는 산을 오른다. 산사를 찾아간다.

산의 초입에서 기다려주는 건 언제나 초목이다. 헐벗은 겨울나무들. 훌훌 잎을 다 털어낸 나목은 개결하다. 일체의 군더더기를 다 벗은 채 본질만으로 존재하는 성자처럼. 욕망으로부터 이미 자유로워진 정신처럼. 이 근사한 무채색의 겨울나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산중 적막이 가슴으로 해일처럼 들이쳐 소란스럽던 잡념을 일거에 몰아낸다. 이게 다 산이 주는 무상의 보시(布施)다.

도시의 거리를 걸을 때면 긴장이 되거나 피로가 몰려든다. 맹수에게 쫓기는 기분인 채 괜히 속도를 내어 걷기도 한다. 그러나 산길에선 한가하고 편하다. 산이 주는 사랑이 이와 같다. 부모에게 신세진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산에게도 신세를 지고 살아온 셈이다. 산을 모성(母性)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할 게다.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비록 어머니의 배를 박차고 나온 중생이지만, 달리 생각해보자면 산이 나를 만든 게 아닌가 싶은 기분마저 든다. 산에서 육친의 정을 느끼는 것.

돌계단을 올라 산사로 들어선다. 천년고찰 신안사(身安寺)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 신음산 국사봉 자락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 신라 고승 자장(慈藏)이 창건했다지.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가끔 이 절에 유숙했더란다. ‘몸이 편해지는 절’이라는 이름 ‘신안사’를 작명한 이 역시 경순왕이라는 얘기가 풍편에 전해진다.

절집치고 명당에 들어앉지 않은 경우란 드물다. 신안사 역시 길지에 조성됐다. 둘레 사방으로 수려한 산봉우리들이 펼쳐져 눈길 가는 곳마다 풍광이 생동한다. 산봉을 연꽃이라 치자면 신안사는 연꽃 속 내실처럼 아늑하다. 널찍한 터전에 비해 전각의 수효는 많질 않다. 덕분에 여백의 묘(妙)가 살아 오히려 헌칠하다. 도처의 웬만한 절집마다 신축에 중창에 복원에, 갖가지 불사를 펼쳐 절의 사이즈를 키우는 게 하나의 추세. 여기 신안사는 그 점에서 이방이다. 절을 넓히면, 번쩍번쩍 광을 내고 치레를 하면 수행이 수월한가? 기돗발이 기차게 서는가? 자그만 돌 절구통에 원두를 탕탕 빻아 커피를 만들어 건네는 주지 맥산스님에게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사찰의 대형화 추세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른 거라 봐야합니다. 신도들이 흔히들 큰 절을 선호하는 거죠. 장엄한 불상을 모신 큰 절에 가면 바윗덩이만한 큰 복을 받을 거라 여기고, 반면에 작은 절에선 고작 간장 종지만한 복을 받을 거라 믿는 심리의 반영이죠. 그런 신도들의 요구에 따라 절의 규모를 키워나가는 겁니다. 이건 한마디로 ‘부처 장사’죠.”

“그게 불교만의 일은 아니죠. 종교 전반의 과도한 세속화가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구나무서서 걸어가는 곡예를 보는 것만 같아요.”

“사람의 내면을 다듬어 삶을 윤택하게, 가치 있게 만드는데 도움을 줘야하는 게 종교이고 불교이지만 작금의 현실은 달라요. 돈 생기는 일에 힘을 쏟고 있으니 문제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 이게 우리 사회의 위험한 현실이지만, 사찰의 살림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아무리 좋은 종교도 잘못 쓰이면 횡포로 전락합니다. 외과 의사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이지만, 강도가 칼을 들면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지 않던가.”

“부처님께서 보신다면 기겁할 일!”

“종교에도 적당한 물적 기반은 나쁠 게 없습니다. 그러나 탐욕으로 흐르면 위태롭죠. 종교의 오랜 역사를 두고 볼 때 가난 때문에 문 닫은 종교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물질이 넘쳐 타락했을 때 종교가 시들곤 했어요. 청빈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규모는 작지만 견실하고, 소박하지만 활달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신원사 말이죠.”

“아름다운 절이라고, 흔히들 말하죠. 적당한 꾸밈이야 없진 않지만, 비유하자면,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랄까, 건강한 자연미를 지닌 아낙네랄까,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업력이란 무서운 것’

맥산스님의 나이는 올해로 62세. 법랍 30세. 선(禪)이면 선, 경(經)이면 경, 두루 화통할 연치(年齒). 해병대 출신인 이 스님의 음성은 괄괄하고 눈매는 소년처럼 쾌활하다. 젊었던 시절 한 때, 그는 죽음의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다가 금강경을 읽고 머릿속에 솔바람이 부는 시원한 경험을 했단다. 그게 출가의 결정적인 계기였다지. 속리산 법주사에서 행자로 불문에 든 그는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 전계사(傳戒師;남에게 계법을 전해주는 스님) 중산(中山) 혜남스님에게 계를 받았다. 명진스님이 서울 강남 봉원사 주지를 할 때 맥산은 포교국장을 지냈다. 이후 서울지방경찰청 상근 경승(警僧)과 공주 마곡사 수련원장을 거쳐 이곳 신안사 주지 소임을 맡았다.

불교 공부란, 수행이란, 잘 죽는 공부라지? 청년기 때의 관심사였던 죽음의 문제를 맥산은 어떻게 해갈했을까. 사후엔 무엇이 올까? 부처님도 사후를 말한 적은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삼라만상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습니다. 사람이건 무엇이건 일단 생겨난 것은 사라지게 돼있어요. 만약에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게 있을까. 때가 되면 껍데기는 기꺼이 벗어던져야 하는 것이죠.”

“승려의 다비식 염불의 끝구절은 ‘쾌활! 쾌활!’이라죠? 좋다, 좋다는 겁니다. 죽는 날이야말로 최고의 날이라는 거죠. 죽음 뒤엔 무엇이 있기에 그토록 좋다는 거죠?”

“사후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또렷이 알 수 있을까마는, 내가 지은 선업과 악업은 계속 이어집니다.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걸 윤회라 하죠. 업력이란 무서운 것. 그것은 한 순간에 없어지지 않는 것. 만약 이 업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게 바로 해탈이죠. 적막으로 들어간다 해서 입적(入寂)이라고도 하고.”

“업의 노리개가 되지 않으려면 부디 선업을 쌓는 게 요긴하겠군요.”

“선업을 짓는 사람은 편하게 죽고, 악업을 지은 사람은 고통스럽게 죽습니다.”

“앉아서도, 서서도 홀연히 열반했다는 고승들의 예화란 통쾌해요. 한데, 수행이니 업이니, 그걸 눈곱만치도 알지 못하는 시골 영감님들도 흔히들 평온히 가죠. 수행자와 속인은 무엇으로 구분되나요?”

“수행이란 끊임없이 내면을 성찰하는 활동입니다. 본능에서 올라오는 욕망과 이기심에 휘둘리지 않도록 내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를 추구하죠. 쌍둥이에게 젖을 먹일 경우, 욕심 많은 녀석은 어미의 젖 한 쪽을 빨면서 동시에 다른 쪽 젖마저 악착같이 손으로 움켜쥡니다. 본능의 장난이죠. 본능대로만 사는 사람은 남을 수탈하기를 일삼기 십상이에요. 본능을, 욕망을 다스리는 데에 실패하지 않는다면 그는 속가에 살아도 이미 속인이 아닙니다. 그는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실천할 테고, 수행이란 결국 그런 것이죠.”

산문에 들었으니 속세의 뜻을 이미 접었을 성 싶지만, 맥산스님의 의단은 주로 세태로 뻗친다. 손아귀에 움켜쥐기를 아귀다툼처럼 행하는 세태를, 승려들까지 나서 돈과 권력을 탐하는 행태를 강 건너 불구경처럼 좌시한다면 그게 무슨 수행자일꼬! 그런 생각에서다. 수행으로 얻은 바가 있다면 마땅히 세상에 유익이 되도록 돌려주는 게 승려의 본분사라는 것. 보살행을 말함이겠지.

 

‘수행이란 살얼음판을 걷는 일’

보살행이란 무엇인가. 원효는 ‘중생의 똥오줌과 송장을 치워주는 게 보살행’이라 설했다. 높고 넓고 아득한 경지다. 산다는 일은 우리를 얼마나 쩨쩨하게 만들던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안락을 얻기 위해 구차하고 야박하게 살기 십상이다. 이타(利他)는 멀리에 있고, 이기(利己)로 날마다 눈먼다.

“수행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을 타파하는 노력의 연속입니다. 내 욕심만 양껏 채워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태도를 버리고 남들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공부가 불교의 요체에요. 관세음보살을 외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고, 남을 이롭게 하는 도리를 찾는 게 수행이자 불법(佛法)이라는 것. 앗! 그러나 저 자신, 아직도 휘둘리는 경우가 없지 않은 건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죠.”

“알면 알수록 모를 게 더 많아지고,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이니 부끄럽고 괴로워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수행이란 실로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는 일과 닮았어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라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다고 자인하는 순간 또 다른 함정에 빠지니까. 절차탁마(切磋琢磨)라, 부지런히 닦아나갈 수밖에요.”

“깨달음이란 먹고 살고 죽는, 삶의 모든 것에 관한 회의가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번뇌에 휩쓸리지 않고, 남의 말 한 마디에 휘둘리지 않고, 어느 경우에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깨달은 자라 할 수 있죠.”

맵찬 한풍이 허공을 소용돌이치며 아우성이다. 하늘에 걸린 구름장은 하중을 못이긴 낡은 천정처럼 무너져 내릴 듯 바람에 너울거린다. 바람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가. 마음은 두서없는 바람을 닮았다. 태어난 진상을 알기 어려우며, 멀리 가기에 잡을 수 없다. 바람처럼 흐트러지는 마음을 단도리할 수 있다면 피안으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지만, 어림없다, 번뇌로 채워진 마음의 뒤를 쫓다 파장에 이르는 게 인생이지 않던가.

뜰 한쪽엔 견공이 있다. 맥산스님은 놈을 데리고 자주 산에 오른다. 산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평야는 사람에게 먹고 살 곡식을 주지만 산은 정신적 양식을 제공합니다. 산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을 일관된 주제로 삼은 동양화가 전하는 메시지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겠죠.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산신을 극진히 숭배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절을 찾는 불자들이 각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공간은 산신각입니다.”

“산신각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고서야 속이 비로소 시원해진다고들 하죠.”

“불교는 자루 속의 종교입니다. 뭐든 포용하죠. 산신신앙은 원래 불교의 전통은 아니지만 이 땅에 전파된 불교는 그걸 보듬었어요. 한편, 산신이 복을 줄 거라는 불자들의 믿음을 단순히 기복신앙이라 봐선 안 됩니다. 사실 그런 믿음은 아름다워요. 자연을 살아있는 존재로 보는 눈, 자연 안에 신이 있다는 상상력은 자연파괴가 일상화된 오늘의 나쁜 풍조와는 사뭇 다른 것이니까. 산은 개발의 대상이 아닙니다. 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일부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고봉을 정복 대상으로 삼아 오르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많은 등산객들이 산을 정복하려 드는 게 사실이지만, 육체를 극한의 고통에 밀어 넣고 고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결국 정신의 산을 오르는 존재들일 수도 있죠. 그들은 철학자에 가깝습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상에서 가장 힘 센 동물이지만, 그 힘을 약한 대상과, 말없는 생명과 상생하는 데에 쓰지 않으면 헛노릇이죠.”

내 경험에 의하면 승려들의 언설은 때로는 시원한 단비였다. 또 때로는, 낡고 모호한 정신주의로 들렸다. 나는 오늘 우연히 산을 올라 우연히 맥산스님을 만났다. 그의 어려울 것 없는 언설들은 가끔 귀를 솔깃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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