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국립공원 50주년 인물열전

 

지리산 시인 박남준

지리산과 시인의 아름다운 관계

 

글 · 양승주 기자  사진 · 신준식 기자

 

지리산 악양 들판을 가로질러 들어간다. 이른 아침을 보낸 오전의 따사로운 햇볕이 들판에 내리쬐고 있다. 동매마을 언덕을 올라가 그 끝에서 시인의 집에 도착했다. 시인의 집은 방 한 칸과 부엌 한 칸짜리 아담한 집이다. 집 넓이 정도 크기의 마당에 풀과 꽃과 나무와 그네가 있다.

박 시인은 우리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지인들과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박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기별 없이 불시에 들이닥친 ‘불청객’이었지만, 스스럼없이 오고가는 대화로 보나 그 대화 중간 중간 얼굴에 감도는 화색으로 보나 ‘친한 사이’임이 분명했다. 지인들은 모두 네 명이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을 지낸 강순형, 구례에서 온 국악 연주자, 찻집 운영자, 귀농을 준비 중인 사람이었다. 여기에 우리까지 합류해 시인의 집 찻상에 일곱 명이 둘러앉았다.

 

금목서와 깨달음, 차꽃과 곶감, 백초주와 거문고

박 시인은 지리산 악양에서 14년을 살아오고 있다. 그 전에는 모악산 외딴 산골에서 13년을 살았다. 이를 합치면 산과 가까이 하여 살아온 세월만 27년이다. “구절초 차에요.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차 따르는 소리가 시인의 방을 채운다. 박 시인은 차를 따르며 몇 번을 덕고 말려 어떻게 한다고 자신만의 차 만드는 방법을 설명했다. 차는 쌉싸름하고 맛있었다.

박 시인은 자신이 겪은 한 가지 재밌는 일화를 들려줬다. 자신의 집 뒷간 옆에 심은 나무에 얽힌 이야기다.

“어느 날 구례 장에서 눈이 가는 묘목이 있었어요. 그래서 묘목 장사꾼에게 물었더니 금목서라고 합디다. ‘그럼 그 금목서 하나만 주쇼’ 했더니, 그 장사꾼이 금목서는 옆에 있는 은목서와 서로 짝이니 함께 사야 된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난 혼자 사니 금목서만 사가겠소’ 버럭 하고는 금목서만 사왔지요.”

그 길에 집에 와서 묘목을 심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어느 가을날 박 시인이 뒷간에서 큰 볼 일을 보는데 글쎄 자신의 똥에서 꽃향기가 나더라는 것이다. 박 시인은 ‘산중 생활을 오래 했더니 이제 몸이 정화되고 깨달음을 얻어 똥에서도 향기가 나는 것인가!’ 하는 식으로 생각했다. 이제 곧 산신이 되어 하늘로 사라지겠구나 싶었을 때, 뒷간의 앞과 지붕에 떨어진 금목서 꽃잎을 발견했다. 똥에서 났던 향기는 금목서 꽃향기였던 것이다.

금목서 꽃은 그 향기가 달콤하고 그윽하며, 꽃의 향기가 만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만리향이라고도 불린다. 꽃은 노란색이며 가을에 열매와 함께 나뭇가지마다 수많이 핀다.

박 시인이 들려준 금목서에 얽힌 우연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참 재밌는 일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런데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니 그 이야기에는 박 시인이 악양 생활을 하며 느끼는 고독, 외로움, 깨달음에 대한 생각도 함께 묻어나고 있었다.

박 시인은 곶감을 만든다. “동네에서 보면 진짜 곶감을 만드는 사람들은 감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1월 초에 곶감을 만들어요. 설날 때 팔기도 하고 먹기도 하려면 지금 만들면 안 되고 조금 기다렸다가 만들어야 돼요.” 첫눈이 내릴 즈음 되면 박 시인의 집 처마에서 곶감이 주렁주렁 달려 마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해 7월 출간된 책 <박남준의 악양편지>에 실린 ‘첫눈과 곶감’과 ‘풍락이라는 이름의 차’ 두 편의 짤막한 글에서 박 시인이 언제 어떤 마음으로 감을 깎고, 마을 공동 대나무밭에서 잘라온 대나무를 힘겹게 지고 올라와 집에 곶감을 걸어두는지 사진과 함께 엿볼 수 있다.

차를 어느 정도 마셨을 때 박 시인이 곶감을 길고 얇게 손수 찢어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시인은 손님이 오면 계절에 따라 그릇에 차꽃, 진달래, 민들레 따위를 올려놓는다. 곶감과 함께 방 한쪽에 있던 백초주도 꺼냈다. 술잔을 기울였다. 차와 꽃과 술에 악기가 빠질 수 없다. 박 시인 집에는 묵혀둔 거문고가 있었다. 박 시인은 연주 실력이 아직 서투르다고 했다. 같이 앉아 있던 국악 연주자가 상 앞에 술 한 잔을 가득 따라 두고, 산조와 정악을 넘나들며 거문고를 탔다. 한동안 시인의 방에서 곡차와 거문고 소리의 진한 향기에 취했다.

 

심원재(心遠齋) 목각과 문암송 시낭송

박남준 시인의 집 마루 위에는 심원재라고 새겨진 목각이 있다. 박 시인이 악양으로 들어오고 나서 그의 스승이 준 것이다. 박 시인은 심원재라는 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스승은 그것에 아랑곳없이 목각현판을 그마저도 조금 삐뚤게 달아놓고는 가버렸다고 한다. 박 시인이 심원재의 뜻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좀 어려운 얘기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자아성찰 정도의 의미가 담겼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목각현판이 달리고 일 년 정도가 지나서야 문득 박 시인은 심원재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심원재 현판은 지금까지도 삐뚤게 달린 그대로 두고 있다.

차를 함께 마신 일곱 명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다. 문암송 아래에서 거문고 뜯는 소리에 맞춰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을 듣고 싶었다. 문암송은 커다란 바위 위에서 수백 년간 자란 크고 기이한 소나무다. 시인은 부탁을 들어주었다. 채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문암송은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악양 들판과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박 시인이 먼저 문암송 앞에서 술잔을 채워 고수레를 했다. 그러고 나서 거문고 연주자가 박 시인을 마주보고 자리를 잡았다. 바람결에 거문고 소리가 퉁겨지고 시인은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박남준 시인의 <아름다운 관계>라는 시다.

 

“바위 위에 소나무 저렇게 싱싱하다니

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었던 불모의 바위였지

작은 풀씨들도 날아와 싹을 키웠지만

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 편 내어준 적 있었는가 피워 본 적 있었던가”

 

시를 낭송하는 동안 낙엽이 둘 셋 허공에 흩날려 바닥에 내려앉았다. 시인의 진지한 노랫말에 땅에 떨어지는 낙엽마저 무겁게만 느껴졌다. 지리산에 사는 시인이라!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관계가 있을까.

시낭송이 끝나고 박남준 시인에게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제가 올해 환갑이 됐습니다. 움켜쥐고 그런 시간보다, 좀 건방진 말일 수도 있지만, 이제 하나씩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을 털어내고 내놓아야 하는 나이에 있잖아요. ‘마무리 삶을 어떻게 잘 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지요. ‘선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어떻게 비워내는 삶을 살까’ 더듬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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