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마디가 아주 어렵나요?” 그의 질문에 모두들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이면 쉽게 할 수 있을 걸요.” 이 말에 그가 우모복을 벗지 않고 두 번째 마디 등반에 들어선다. 손가락 반 마디가 걸리는 아주 작은 홀드에서도 그는 여유롭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등반 동작을 연출한다. 그러던 중 루트 중간쯤 좋은 홀드에서 갑자기 등반을 멈춘 마우로는 우모재킷을 벗기 시작한다. ‘왜일까?’ 잠시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잠시 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프로 등산가로 사진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는 그가 우모재킷을 입고 등반하면 사진이 좋지
“긍열아! 한 개 박아.” “네, 좀 더 올라가서요.” “아니 거기에 박아.” “조금만 더 가서요.” 긍열이와 내가 계속 확보물 설치로 실랑이다. 그의 등반 능력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혹시 밑으로 던져지면…. 겨우 그가 내 청에 할 수 없다는 듯 아이스 스크류를 설치하자 안도의 숨이 절로 난다. 그가 혹시라도 밑으로 떨어지면 그의 가슴에 있는 커다란 카메라 3개가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기에 더 초조했었다. 그가 중단에서 확보를 하고 내가 등반을 시작하자마자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아니 헬리콥터 소리인가? 조금은 이상한
세 남자, 엘캡피탄 ‘노즈’에 도전장 ‘사실 크랙이야 그다지 어려울 게 없지만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9~11마디도 똑같은 크랙으로 계속 이어진다. 11마디를 끝내고 레지를 보았다. 이곳이 돌트 타워(Dolt Tower)다. 오늘 자야 할 비박지인데 그리 잠자리가 좋지 못할 거 같다. 여기저기 돌무더기가 있고 레지가 경사가 져서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없다. 딱딱한 베이글 빵으로 허기를 달래자니 여간 고통이 아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내일은 20마디까지 가야 비박을 할 수 있다. 장대
암남공원 입구에서 300여 미터 올라가면 구름다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가까이 있는 거북암을 가려면 구름다리 지나기 전 왼쪽으로 빠져야 한다. 약간의 급경사를 내려서니 탄성 없이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름 때와는 사뭇 다른 가을 바다의 낭만을 남김없이 느끼게 한다.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정용, 김미선씨도 그 숨 막히는 풍경에 취한 듯 하다. 암남공원이 주는 멋진 선물이다. “와~ 진짜 멋찌네예.” 박정용씨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한 후 거북암을 향해 앞서 갔다. 거북암에 도착하니 햇볕이 따사롭다. 이
절제된 자유를 찾아 이곳까지 온 우리들. 과연 어떤 세계를 느끼며, 어떤 것을 찾으려고 이렇게 모험을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 많은 것들을 배워 가는 것 같다. 나를 배우고, 남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7월 21일 ABC에서- 7월 30일, 밤사이 내린 눈과 포타레지 속에 가득 찬 습기로 잠을 설친 덕분에 일찍 아침을 맞는다. 잠시 뒤 함께 잠을 청한 장기헌 등반대장 역시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숄더 캠프에서 5일째 아침을 맞았다. 7월 3일 한국을 떠나 12일 베이스에 입성한 이후 전진캠프(ABC) 구축과 200
만경대 리지의 안전등반을 위해 모인 취재팀은 마산출신으로 서울에서 등산 유학중인 안치영씨. 최근에 코오롱 등산학교를 졸업한 이연수씨. 영국 출신의 방송인 피어나씨(활짝 피어나라고 지은 이름). 이화여대 산악부원인 오늘의 막내 이지영씨 등 네 사람은 모두 암벽 등반 유경험자들이다. 안전 등반이 뭔가를 보여 주기 위해 가장 젊은이가 선등을 서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되자 모두들 이지영씨의 얼굴을 쳐다본다. 멀뚱멀뚱 웃다가 결국 안치영씨가 앞장선다. 울퉁불퉁 큼직한 바위를 두 손으로 잡고 무릎을 올려 성큼 바위에 올라타는 것으
모든 산악인들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설악산 천화대 리지다. 그곳엔 외설악 전체를 바라보면서 등반할 수 있다는 절경에 대한 경외감뿐 아니라 설악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범봉이 있기 때문이다. 범봉은 1968년 요델산악회에서 초등하였다.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황금시대가 개화하던 당시 외설악 오지인 범봉 등반은 많은 산악인들에게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천화대 리지에서 흘러내리는 석주길, 흑범길, 염라길 등 다양한 리지 코스가 개척되기에 이르렀다. 설악산 적십자구조대 전서화 대장에게서 최근
그리움만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한 친구나 선후배가 유난히 많은 설악산. 때론 포근하지만, 화려하고 웅장하면서도 겹겹이 서려 금강산을 능가하는 산. 그래서 엄하면서도 예리하여 오를수록 더욱 어려운 산. 6월 15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정 기자와 함께 서울을 출발했다. 태풍이나 기상특보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일기예보와 무관하게 취재등반을 진행하기로 했다. “확보해줄 사람 한 명 부탁한다.” 전서화(설악산 적십자구조대 대장)씨에게 갑작스런 부탁을 했다. 사람 좋은 전서화씨는 “알았어요, 일단 내려오세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