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듣다_충북 보은 마로면 ‘선애빌’에 사는 명상가 이종민

 

소박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글 · 박원식 사진 · 주민욱 기자

산이 첩첩해서 골이 웅숭깊다. 하늘까지 맞닿은 산부리. 산정을 스치며 당실당실 구름이 흐른다. 산의 발치에선 보성천 냇물이 곡류로 굽이친다. 2월, 늦겨울의 산천은 여전히 좌정 중. 두루두루 수묵 빛으로 잠잠하다. 산의 젖을 물고 언덕배기에 들어앉은 인가의 풍광만 사뭇 튄다. 이 산중에 웬 집단 주택? 의아하여 눈을 끔벅이기 십상인데, 생태공동체 마을 ‘선애빌’이다.

22가구에 40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모여 산다. 이들은 이 산골에 입장하기 전엔 모두들 도시에서 살았다. 전직도 제각각. 목수, 약사, 법무사, 교사, 만화가, 사업가, 상담가 등등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생태’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서 일찍부터 서로 교제하거나 숙의했다. 말하자면 동패들. 물신(物神)이라는 하나님을 굳세게 믿으며 한 푼이라도 더 모으고 뜯고 긁기 위해 전쟁처럼 각축하는 도시의 난리블루스를 뒤로 하고 옳다! 때가 왔다! 하고 여기 산중으로 들어온 건 2011년. 리더는 명상가 이종민(49). 그는 공동체 마을의 기획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해 마침내 본격적인 일판을 벌였다.

이종민은 경남 진주에서 모태를 박차고 나왔다. 서울대 토목공학과에서 배운 뒤 환경운동연합에 취직해 밥을 버는 한편, 자연을 타살하기를 업무처럼 자행하는 이 나라의 개발 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환경 파괴를 저지하기 위한 파수꾼 노릇을 해왔다. 대학을 다닐 때 운동권에서 뛰었던 이 남자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주도한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자연과 사람을 함께 생각하는 이념을 제시하는 모습에 강한 인상과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이종민은 일찌감치 그걸 모색하고 실천하는 일로 삶의 지향을 삼았다. 그의 얘기를 들어볼까?

“공대를 다니며 과학철학을 공부하며 성찰이랄까, 기술 중심의 발전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의 삶을 전개할 수 있는 생태적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숲해설가협회’ 사무국장을 하면서는 자연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풀빛문화연대’에 3년쯤 근무하면서는 살림과 문화예술을 연계하는 방식에 대한 모색이 많았죠. 그런데,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로망이 있어요. 가급적 빨리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것이죠. 마침 뜻을 함께하는 동호인들이 있어서 용감하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긴 준비과정을 거쳐서.”

널리 소문났듯이 도시는 늑대 혹은 여우들이 활동하는 소굴. 출세와 축재를 축으로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사각의 링. 해서, 피로에 찌든 많은 도시인들이 탈출을 도모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 도시도 매력적인 공간이거나 안전한 장소이거니와, 생판 낯선 농사라는 걸로 생계를 해결하겠다며 산골로 이주한다는 건 무모한 모험이거나 발칙한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의기투합된 에너지를 길라잡이 삼아 마침내 귀농을 결행했다. 가공할 만한 생존의 검투장인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형제로 떼지어 귀환한 것. 구성원들의 안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은 삶의 새로운 가치, 생태적인 생존 방식을 실험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웅장한 포부였겠지. 구성원들은 어떻게 끌어 모았을까?

 

 

‘엄격한 규약은 없어’

“제가 환경운동을 하며 명상에도 입문했습니다. ‘단월드’ ‘수선재’ 같은 명상 그룹에 속해 명상을 공부했습니다. ‘선(禪)문화진흥원’이라는 곳에선 직업처럼 아예 적을 두고 활동했죠. 그러면서 교유하던 명상단체 사람들과 뜻이 맞아 생태 공동체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명상과 생태를 접목한 생명마을을 꾸리자는 것이었죠.”

“‘선애빌’의 모델이 된 생태 공동체가 있었나요?”

“우리만의 모델을 창안하기 위해 국내에 산재한 공동체 마을, 생태 마을, 생태 건축들을 찾아 견학했어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도의 오르빌, 호주의 크리스털 워터스도 답사했습니다. 거의 5년 여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쳤어요.”

“‘선애빌’의 터가 매우 넓습니다. 이 큰 덩어리를 어떤 경로로 구입했나요?”

“임야 2만 평을 사서 용도에 맞게 다듬었습니다. 현재 주거지역과 부대시설, 농지 등으로 사용하는 땅 외 1만평 정도는 ‘선애빌’의 뒷산을 이루고 있죠. 부지 마련과 주택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주민들 각자 능력껏,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출자를 통해 충당했습니다. 우리 마을은 협동조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돈을 많이 냈거나 적게 냈거나 무관하게, 각자 한 표의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산은 공동 소유로 합니다.”

“공동체 자치를 위한 규약엔 어떤 것들이 있죠?”

“명문화된 규약이나 엄격한 틀은 없습니다. 다소 느슨한 형태의 운영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물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은 있습니다. 일테면, 생태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것으로 ‘선애빌’엔 수세식 변기가 없습니다. 빗물을 모아 저장해서 재활용하기, 태양 에너지 사용하기도 기본에 속하죠.”

“잘 지켜지고 있나요? 인간이라는 동물의 DNA엔 이기적 유전자가 박혀 있는데.”

“불편을 감수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라서 소소한 문제는 생깁니다. 가령, 1회용 젓가락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는 합의가 되지만, 그럴 경우 누군가는 사용하고 난 일반 젓가락을 씻어야 하는데, 이게 불편해지는 겁니다. 악마는 원칙에 있는 게 아니고 디테일에 있다 했던가요. 세부적인 면들을 차질 없이 실천해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실감합니다.”

“농사를 통한 자급자족은 가능한가요?”

“아직은 부족합니다. 애당초 농사만으로 먹고 살기 위해 집단농장식 운영을 했지만, 2년 만에 포기했습니다. 무엇보다 유기농업에 실패를 봤죠. 그래서 유기농은 접자, 관행농이라도 해보자, 그렇게 전환했습니다. 아니, 생태 공동체라며 농약을 써 농사를 한다고? 그렇게 힐난하는 눈총들이 없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현재 쌀은 100%, 부식은 30%를 자급하고 있어요.”

“나머지 부족분은 어떤 방법으로 채우나요? 호구 외에 필수 비용도 많을 텐데.”

“다양한 수입원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미 체험마을과, 천연비누 같은 것을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대안학교도 설립했어요. 구성원 각자의 기능을 살려 도시에 나가 소득을 올리기도 합니다.”

공동체 내부의 경제활동만으로는 힘에 부쳐 외부 진출이 불가피하다는 것. 그러나 형편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일테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도시민의 수효가 많아야 타산을 맞출 수가 있는데 그게 쉽질 않다. 재작년엔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작년엔 메르스의 파장으로 된통 고난을 겪었다. ‘보릿고개를 넘듯이 힘들었다’는 게 아닌가. 마을을 세운 지 겨우 5년 여, 물심양면으로 부대껴야 할 부진과 고난으로부터 해방되기에는 아직은 이른 시기일지도 모를 일.

마을 주민들은 1인당 월 19만원씩의 운영비를 낸다. 이 돈만 내면 세끼 식사는 공동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개인 통신료를 제외한 모든 공과금도 해결된다. 공동식당은 주민들이 순번제로 도우미를 맡는 것으로 운영된다. 그밖에 주민들은 야외의 갖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한 울력에 매주 한 차례 참여하며, 매주 내지는 격주로 한 번씩 열리는 마을회의에도 참석한다. 의무사항은 아니라지만 공동체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서는 참여를 회피하기 어려운 종목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지켜야 할 일을 지켜야 하는 불편은 없을까. 인간이란 복잡한 본성을 가진 생명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극심한 자기중심주의라는 게 있지 않던가. 생태주의,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동거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한다지만 모둠살이의 나날 중 권태나 속박을 느끼게 되면 자칫 새장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이종민에게 물어 보자. 이탈한 사람들은 없을까?

“극소수가 여길 떠나긴 했지만 초창기 멤버들은 거의 그대로 건재합니다. 출범 초기에 이미 시행착오가 발생할 것을 예상은 했지만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사안들이 나타나긴 했어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가 손상되지 않는, 즉 사생활을 구속하지 않는 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고, 운영 방식을 개선하거나 바꾸었습니다.”

“생태 공동체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를 꼽는다면?”

“윤구병 선생이 설립한 ‘변산 공동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단체는 20년 전에 출범했지만 완전한 자립은 4,5년 전부터서야 가능해진 것으로 압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물죠.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으니까. 우리는 애초 공동체에 대한 이상과 기준을 높게 설정했어요. 그러나 경직된 원칙을 내세워 따라오라 요구하는 일은 무리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어떤 좋은 취지의 일도 우선은 재미가 있어야 지속 가능할 것 같아요. 인간이란 싫증을 느끼는 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동물이라서.”

“그게 고민의 요점입니다. 우리끼리만 어울려 살다 보면 지겨워질 수가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은 참 좋은 것이지만 현실에 안주해 나태해질 가능성도 있고요. 각자의 스타일대로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많은 점들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자기실현의 에너지를 끌어내고, 소박하되 치열하게 살자는 생각입니다.”

“야생적 삶의 선구자들, 즉 인디언들의 삶과 관습을 현대의 생태적 시도에 적용할 여지는 없을까요?”

“우리는 인디언들의 기법인 ‘원탁회의’를 이미 도입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빙 둘러앉아 돌아가며 의견을 얘기하는 겁니다. ‘경청’의 힘을 경험하게 되죠. 사실 처음엔 인디언 방식을 가장 중요한 모델로 생각했습니다. 일상적으로 자연과 교감하고 명상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표본이라는 판단에서였죠. 그러나 우리의 농촌이 이미 자본 중심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는 현실이라서 적극적인 도입은 어렵습니다.”

“당신은 명상가예요. 명상을 통해 무엇을 얻나요?”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게 명상입니다. 비워내기를 통해서죠. 명상을 거듭하다 보면 모나고 각진 감정들이 둥근 원처럼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의식이 성장해 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선애빌’ 사람들은 새벽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명상을 통해 크고 작은 문제나 갈등을 해소하는 겁니다.”

“명상을 통한 자연과의 교감에도 한결 더한 깊이가 생기겠네요?”

“가령, 등산 자체도 좋은 명상일 수 있지만 명상 수련을 할 경우엔 ‘기감’이라는 게 생겨 더 새롭거나 깊게 느낄 수 있죠. 풍부하고 민감한 감성이 깨어나니까.”

“그런데 말이죠, 여기 ‘선애빌’이 당신 인생의 종착인가요? 마침내 이상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인가요?”

“남들이 흔히 묻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냐고. 간단하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여길 나가고 싶진 않습니다. 100% 만족감이라는 게 어디 있나요?(웃음)”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나왔고, 자연에 의존해 살아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반자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거나 변경시켜 왔다. 이 점에서 삶의 기초는 폭력이며, 생태적인 방식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많은 딜레마를 경험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를 일쑤 환장하게 만드는 물신 풍조와 반생태적 세태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만은 없는 일. 이종구의 실험과 꿈을 가상하다 응원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도 하지 않거나, 그 누구도 쉽사리 덤벼들기 힘든 일에 투신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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