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Theme mountaineering

능가산 관음봉 424m

웰빙 템플스테이 트레킹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글|백진국 부산주재기자 사진|주민욱 기자

“뭐 하러 힘든 생활 체험하러 왔소? 그냥 거시기하게 살면 되지. 여기는 뭐 거시기한 게 있다고? 여러분들 보니까 참 거시기 하네!” 웃음이 터진다. 다실인 설선당으로 내소사 주지 진학스님이 들어설 때 누구의 마음이라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스님의 강렬한 눈빛에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사뭇 긴장했다. 그러나 진학스님은 차를 권하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연신 참가자들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엄숙했던 분위기가 가벼워지며 “마음을 거룩하게 사용하라”는 스님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힌다.

산사의 어둠이 낮고 깊게 설선당 꽃살문 안으로 스며들 때 지대방으로 옮겨간 참가자들은 반가부좌로 앉아 진학스님으로부터 참선 수행을 배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심, 내안에 불성이 있다는 믿음, 반드시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심이 참선수행의 첫 관문이다. 편견과 집착을 버리고 번뇌와 망상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화두를 붙잡고, 모습 없는 모습인 마음의 본성을 찾아가는 수행 방법이 참선이다.

“눈은 감지 말고 반쯤 뜨고 시선을 약 1미터쯤 앞쪽에 가볍게 둡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글쓴이는 눈을 반쯤 감는 게 힘들어 완전히 감아버린다. 불가에서 번뇌라고 말하는 온갖 망상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며 머릿속을 맴돈다. 나를 들여다 볼 수도 없었고 망상들이 사라지지도 않았지만 20여분의 짧은 참선이 끝났음을 알리는 스님의 죽비 소리를 들었을 때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은 평화로웠고 그 놀라운 감정의 변화가 경이로웠다.

“이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꾸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내게 되어 다른 분들한테 방해가 되어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은 들었지만 제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졌습니다.”

참가자 중 유일한 어린이인 초등학교 6학년 승엽이의 말이 제법 어른스럽다.

옆방에는 참가자들을 안내하고 템플스테이의 행정적인 업무를 맡고 있는 김영인씨가 언제나 배고픈(?) 피교육생들을 위해 감자를 삶아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감자는 보기에도 맛깔스럽고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참선 수행을 마친 참가자들의 한결 밝고 맑아진 얼굴들. 도시의 밤과 다른 산사의 정갈한 밤. 캄캄한 어둠 속에 달고 단 잠이 온다.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이른 산사의 아침은 시작된다.

도량석은 사찰에서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도량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으로 잠들어 있는 천지만물을 깨우며 일체 중생들을 미혹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새벽 4시 법당에 모여 앉는다. 도량석 소리는 점점 스러지고 범종의 장중하고 청아한 긴 여음이 단전에 쩌릿하게 울리며 알 수 없는 마음 저 깊은 곳을 깨우고 법당을 돌아 온 우주를 가득 채운다.

범종은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치는데 이는 불교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천상의 28계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을 포함한 33곳에 있는 중생들의 의식을 깨우는 의미이며 범종이 울릴 때에만 지옥에 있는 중생들이 쉴 수 있다고 한다. 새벽 예불을 주관하는 한 욕심 들어낸 스님의 염불 소리에 속세의 온갖 욕망을 내려놓고 느린 목탁소리에 급할 것 없는 마음은 고요하기만 하다.

처음 해 보는 낯선 의식, 눈치껏 옆사람을 따라 해보지만 절하고 일어서는 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그러나 합장한 두 손 끝에 모은 신실한 마음만은 제대로다.

반야심경 암송을 끝으로 새벽예불을 마치고 지대방으로 옮겨 진만 총무스님의 인도로 108배를 드린다. 백팔참회문을 낭송하는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까지 숙이며 한없는 겸허함을 배워본다. 호흡이 가빠지고 무릎이 아파올수록 쉴 새 없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사라지고 마음 또한 낮아만 진다. 시나브로 밝아오는 여명처럼 시나브로 맑아지는 마음이 보일 듯도 하다.

“발우공양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수행의 한 과정으로 법공양이라고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그릇을 들고 먹고, 어시발우(큰 발우)에는 비벼 먹거나 다른 음식물을 놓지 않습니다. 이 공양이 여기 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잊지 말고 감사히 먹도록 합니다.”

진만 스님의 죽비 소리로 발우 공양이 시작된다. 발우는 네개의 그릇으로 구성되는데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속에 차례로 들어간다. 제일 큰 그릇은 밥그릇, 두 번째는 국그릇, 세 번째는 청수그릇, 네 번째가 찬그릇이다.

밥과 국은 먹을 만큼만 담는다. 음식은 남기지 않고 먹고 마지막 남긴 단무지나 김치 조각과 청수그릇에 미리 받아놓은 청수로 밥그릇, 국그릇, 찬그릇 순으로 깨끗이 씻어낸다. 정성들인 음식을 정성들여 먹으며 삼가고 절제하는 마음을 배운다.

주변은 어느새 밝아왔고 참가자들 중 일부는 좌복(절 방석)을 정리하고 일부는 비질을 한다. 또 일부는 공양간에서 산행 중 먹을 김밥을 준비하며, 절에서 하는 수행의 하나인 공동의 노동 ‘울력’을 가르침 없이 배운다.

진만 스님과 능가산 관음봉 산행을 위해 30여분 차를 타고 이동한다. 차 안에서 오늘 산행을 안내해 줄 내변산 산악구조대 김민, 송병환씨의 유쾌한 입담에 참가자들은 즐거운 산행을 예감한다.

사자동에 내린다. 유월의 햇살이 절정의 녹음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그 거침없는 햇살이 눈부시다. 잘 꾸며진 탐방로를 걷는다. 탐방로 곳곳의 눈에 잘 띄는 나무에는 생태해설판을 붙여 놓아 탐방객들이 숲을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예쁜 다리를 몇 개 지나고 침목 계단을 오르면 동양화에서 본 듯한 호수와 이를 감싸고 있는 기운찬 봉우리들이 그림 같은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말없이 걸어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져 통할 것 같은 호수 옆을 돌아 이름 모를 새소리가 유난한 숲길로 들어간다. 잠시 걸으면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직소폭포를 볼 수 있는 전망대. 설렁설렁 10분여를 더 걸으면 직소폭포가 온전한 제 모습을 보여준다.

땀에 젖은 얼굴을 씻어내고 잠시 올라 20여분 산허리를 돌아가 자그만 소(沼)옆에서 점심을 먹는다. 하나씩 준비한 한 줄짜리 김밥의 단출함이 오히려 넉넉하다. 조급한 마음 버리는 법을 배우는 산행이다. 천천히 먹으며 나무와 바위와 계곡물과 새들에게 말을 건네 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지만 그들의 활력이, 너그러움이, 아낌없이 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적게 먹으니 걷는 게 수월하다.

재백이고개를 지난다. 지금까지의 유순함과 달리 오르막이 계속된다. 30여분 바짝 오른다. 한 순간 시야가 트이며 곰소만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야를 돌려 주위를 바라본다. 어깨를 걸치고 함께 서 있는 산봉우리들의 웅장하면서 유순하고 기운차면서 경쾌한 산세가 매력적이다. 마음에 담아 놓고 다시 오고 싶은 산이다.

연이어 82개의 침목 계단을 오르면 관음봉 삼거리. 소유하지 않는 욕심 없는 마음. 정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관음봉을 오르지 않고 산을 내려간다.

산을 내려가며 전날보다 비워져 가벼워지고 맑아진 마음을 들여다본다. 때로 쉽게 그 마음을 잊는다 해도 잊혀지지 않을 오늘의 마음을 꺼내들 때마다 세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리라. 내소사 천왕문으로 이어진 전나무 숲이 오래도록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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