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일의 산행 에세이 _ 철마산

 

숲속의 하늘 동네로 가는 천상의 고샅길은 눈 뜨고 꿈꾸는 몽환경이다.
숲속의 하늘 동네로 가는 천상의 고샅길은 눈 뜨고 꿈꾸는 몽환경이다.

 

글 사진 · 배두일 편집위원

 


동글납대대한 초록의 열매가 다래다래 달린 다래 넝쿨이 마냥 거치적거린다는 마을 ‘괘라리(掛蘿里)’에서 유래했다는 ‘과라리고개’로 오르자니, 낯설면서도 구수한 음절 하나하나가 시래기두름처럼 혀에 감친다. 한낮 땡볕이 달아오르기 전에 득달같이 숨 막히는 도시를 탈출하여, 살랑이는 푸르른 숲 바람과 구름자락 어른대는 골물을 귀신같이 찾아드는 캠핑 차량 행렬이 개다래 덩굴처럼 께끄름해도, 여기는 아직 자연의 숨결이 새근거리고 있음을 말해 준다.     

 

엉겅퀴와 잣나무 숲이 반기는 두멧길

인적 뜸한 두멧길이라 험하겠거니 지레 긴장한 발길을, 뜻밖에 호젓한 오솔길이 부드러운 흙과 푹신한 낙엽으로 달래 준다. 따가운 볕살 아래 무슨 꽃이 있으랴 싶은 눈앞엔, 보슬보슬한 자주색 꽃송이를 한들거리는 엉겅퀴가 꺼칫한 잎을 뻗쳐 손짓한다. 줄기에 빽빽한 털과 잎사귀의 억센 가시로 하여 한낱 잡초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이래봬도 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꽃이다.

옛날 옛적 밤에 몰래 바이킹족이 스코틀랜드를 침략하며 소리가 날까 봐 맨발로 성에 접근할 때 엉겅퀴를 밟은 병사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스코틀랜드는 바이킹족을 격퇴했고 엉겅퀴는 국화(國花)로 받들어졌다. 씨앗을 맺을 때 하얗게 흐트러진 머리털이 엉키고, 잎과 줄기를 짓찧어 상처에 붙이면 피가 엉긴다고 해서 붙었다는 ‘엉·겅·퀴’란 이름도 곱씹어 보면 ‘과·라·리’만큼이나 쌉싸래하고 상큼하다.

턱, 발길에 차인 잣송이 하나가 다람쥐나 청서가 이미 홀랑 파먹은 듯 솜뭉치처럼 가볍게 구르는 걸 보고서야, 고개를 젖혀 늘씬늘씬한 잣나무 숲에 들어선 줄 알았다. 잣 숲이나 낙엽송 숲이 일단 반가운 것은 그 속의 숲길은 가파를지언정 너덜이나 덤불로 험한 법이 없었다는 경험칙 때문이다.

잣나무는 소나무와 달리 바늘잎이 5개라는 것만 무슨 비장의 열쇠처럼 오래 간직하다가, 최근에야 학명이 ‘Pinus Koraiensis’인데 영어로는 ‘Korean Pine’으로서 만천하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그간 나의 무념무상이 어지간하다 싶었다. 중국, 일본, 시베리아에도 잣나무가 자라긴 하지만 잣이 별 볼 일 없는지라 우리 잣은 과거 중국으로 보내는 공물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단다.

 

태극의 배꼽을 지그시 누르는 과라리고개

계곡이 좁아지며 갈수록 길이 비탈지고 구불거리자 능선에 곧 올라설 것만 같아 마음이 절로 다급해진다. 삐질삐질, 땀방울이 이마와 등짝에 솟으며 입속이 거미줄 서린 듯 클클해도 선뜻 멈추지 못하고 끙끙대는 때, 오른쪽 머리께 나뭇잎 사이로 초록의 매실 같은 열매가 보인다. 산복숭아! 아직 앳된 열매지만 희부연 털이 덮인 야생의 개복숭아는 기관지에 좋다고 알려지며 매실보다 더 귀하게 대접받는다.

여기도 하나, 저기도 하나 하면서 무심코 세다가 입속에 침이 고이는 통에 몇 개인지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더는 셀 수도 없이 바로 옆에 다른 나무가 서 있고 멀리 뒤에도 보인다. 갈증이 가셔 한결 가뿐한 몸으로 다시 갈지자 비탈길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또 산복숭아 나무가 나타나 아예 밭을 이루는 광경에,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연분홍 복사꽃이 흐드러진 도요시절(桃夭時節)의 황홀경에 넋을 잃었지 싶다.

우로풍상(雨露風霜)에 비틀리고 배틀린 나무들에 둘러싸인 널찍한 터에 나무 장의자가 몇 개 놓여 있고 커다란 돌담불이 쌓인 잿마루 과라리고개에 선다. ‘산다는 게 살아간다는 게 모두, 굽이굽이 돌아 산마루턱에 다다르는, 산길과도 같아서 … 어디 한구석 짠한 데가 있거든, 여기 과라리 고갯마루에 무심한 돌 하나 던지거라 … 과라리 과라리 울 엄니 아리랑….’ 무려 23년 전 이맘때에 이름을 숨긴 산꾼이 산에 듦은 ‘만고풍상 마다 않고 얼싸안는’ 엄마의 품을 파고듦이고 엄마의 품은 곧 산이었다고 사무친 가슴을 돌무더기 꼭대기에 토해 놓았다. 한북정맥의 운악산과 수원산 사이에서 돋친 천마지맥은 두물머리를 향해 곧장 수직으로 남진하는 와중에 남양주에 이르러 서쪽 진접읍과 오남읍, 동쪽 수동면과 화도읍의 사이를 파고들어, 형제 같은 이름의 천마산과 철마산으로 바람을 가르며 태극의 호를 세로로 대차게 나부낀다. 과라리고개는 그 중간에서 태극의 배꼽을 지그시 눌러 아래로 천마산 3.9km와 위로 철마산 3.1km를 휘돌리며 든든히 균형을 잡는다.

북쪽으로 철마산(鐵馬山·711m)을 향해 거슬러 오르는 능선은 억세고 거친 이름과는 딴판으로 동네 고샅길처럼 정겹게 너울진다. 길섶에 군데군데 파헤쳐진 자국은 조롱조롱했던 꽃을 다 떨군 둥굴레를 뿌리째 파낸 흙더미로, 주변에 남은 게 수두룩한 걸로 보아 멧돼지가 남긴 마구잡이 식습관의 흔적 같다. 뿌리줄기가 쓰지 않고 조금 달착지근하다는데, 그래도 녀석들은 사탕 봉지를 바닥내야 직성이 풀리는 꼬맹이들처럼 환장하진 않나 보다.

좌우 시야를 가로막는 숲 동굴에 길까지 덮여 두리번거리다가 자꾸 눈에 꽂히는, 산에서 어쩌다 만나기에 여기도 있네 했는데 두 번 세 번 나타나다가 아예 줄지어 선 나무는 참 멋들어지게 생긴 참나무다. 회양목, 산수유, 반송과도 같이 가지가 밑둥치에서 부챗살처럼 10개 정도 갈라져 거대한 우산을 펴 놓은 듯 덜퍽진 신갈나무가 능선에 우거졌다.

 

산들바람 불어오는 꿈결의 ‘둥굴레 능선’

격조 있는 우아한 기품으로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반송의 돌연변이 발생 확률이 극히 낮고 그 씨앗이 반송이 되기도 힘들듯, 풀포기같이 풍성한 신갈나무도 흔치 않거늘 어찌 여기선 흔할까. 옛날에 땔감으로 나무를 댕강 자르고 나면 둥치에서 새로 잔가지들이 많이 나와 떨기나무처럼 다보록이 자란다고도 했는데 그 때문일까. 천마지맥의 두물머리 끝자락에 솟은 예빈산이 조선시대 궁중 연회를 관장하는 예빈시(禮賓寺)라는 관아에 땔감을 대는 산이었으므로, 같은 산줄기인 여기서도 도끼질 소리가 요란했을지 모른다.

뿔뚝 솟은 봉우리 아니면 쀼쭉 튀어나온 돌멩이라도 나올 때가 지났음에도, 산들바람에 물결 굼실대듯 보들보들한 하늘 동네 ‘천상의 고샅길’이 굽이져, 눈 뜨고 꿈을 꾸며 하느작거린다. 봉긋한 저 등성이에 오르면 지게를 받쳐 둔 나무꾼이 가슴을 풀어 젖히고 땀에 전 얼굴을 옷자락으로 훔치고 있을 듯하다.

여전히 길섶에는 끼리끼리 몸 기울여 속닥거리는 둥굴레가 옴실거리는데 그렇지, 이 능선이 대나무처럼 옆으로 뻗는 둥굴레 뿌리줄기와 닮지 않았나. 둥글둥글한 뿌리에 촘촘한 마디들이 굴레 모양이어서 둥굴레가 됐다는 얘기처럼 아래위로 너울너울, 좌우로 꿈트럭꿈트럭 숲속으로 어룽거리는 꿈결의 ‘둥굴레 능선’이여.

“여긴 천마산보다 더하네!”

정상 쪽에서 내려오다가 멈추어 무릎 보호대를 꺼내는 노부부가 내뱉는 탄식이 웬 뚱딴짓소리인가 하여 빤히 바라보았다. 길고 긴 둘레길에 넋을 놓고 희희낙락하다가 막판 두세 개 봉우리가 살벌한 바윗길로 유격 훈련을 시키는 통에 넋을 빼앗기고 지금 무릎이 아파 죽겠다는 게 아닌가. 하긴 여기 쇠를 푸는 광산이 있었던 터라 쇠푸니고개며 철마산의 이름이 생겼단즉, 앞으로 하산해야 하는 산의 거죽은 지금까지와는 천양지판으로 험궂고 모진가 보다.

입때껏 흙과 오솔길의 꿈결에 물크러졌으니 이제 돌과 비탈길의 악몽에 쫄깃해지는 것도 괜찮겠다. 무릇 맛이란 속은 야드르르하고 겉은 빠사삭한 내유외강으로 완성되는 거니까.

저작권자 © 사람과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